오늘은 부활절감사예배 및 총동원 주일을 위한 40일 절식 및 릴레이 금식 15일째입니다. 모두 함께 기도하시고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꽃샘 추위도 잠시 물러갔고, 남쪽에서는 봄꽃 소식이 날아옵니다. 봄이 주는 행복감이 크지만, 그대 주변에 연로하신 어른들을 잘 돌보셔서 환절기에 쉽게 상하시는 건강을 잘 챙겨 주셔야겠습니다. 그럼 지난 주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227. 하나님의 ‘뜻(θελημα)’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인간의 행위보다 선행(先行)하기에, 아무도 하나님의 뜻은 모릅니다. ‘뜻’의 헬라어 ‘델라마(θελημα)’는 ‘의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지(will)는 모든 피조물의 행위보다 더 근원적이고 선행적입니다. 그러므로 ‘행하는 자’라는 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선행적이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행하는 자”에 더 집착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어가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약화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경솔함에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 때에서야 비로소 그의 뜻을 알 수 있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롬 11:33-34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감히 사람은 스스로 주의 길은 찾지 못하고, 아무도 주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주와 의논할만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며, 우연히 단한번이라도 일치할 가능성조차도 없습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다르고 영원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그들이 너무도 쉽게 ‘주여 주여’를 헛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사람이 주님보다 앞서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주장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회정의, 자유, 해방, 민중, 의식화 등등의 말들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영적 무지가 교회 안에 세상신(고후 4:4)들을 백주에 활보하듯 자유분방하게 넘치게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진짜 영적 장님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십자가 안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모든 것이 부정된 후에 긍정되는 영역(領域)입니다. 즉 “주여! 나는 주님의 뜻을 모릅니다.”라고 말할 때부터 주님의 뜻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주여! 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라고 완전히 포기할 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행위론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은 자기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선행, 정의, 자유, 해방, 구제사업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에게는 감추진 하나님 자신의 의지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같은 구제활동도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실재가 하나님의 의지이면 하나님의 뜻이요, 사람의 의지이면 사람의 뜻임을 명심하십시오. ‘행위’가 우선이 아니고 ‘뜻’이 우선하며, ‘뜻’이 ‘행위’를 지배하고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 주께서 그대의 눈을 열어 십자가에서 주의 뜻을 보게 하소서!”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귀한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