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대의 행복한 하루를 축복합니다. 동해안 쪽에는 눈이 많이 오고 있답니다. 또 오늘은 KCU의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동해안의 소담스러운 눈이 겨울 가뭄을 해소하고, KCU 졸업생들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을 축복합니다. 그들이 인생의 힘으로는 하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주를 의지하면 참 좋겠는데..., 이런 마음으로 어제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201. 좁은 문, 어느 것 하나도 그대 스스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좁습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주님의 교훈은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대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한 번도 그런 반성적 논리는 제기하시지 않고 마치 그대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경 해석상의 대립적인 관점에 있는 ‘바울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앙’과 ‘야고보적인 행함으로 말미암은 신앙’을 더 높은 차원에서 총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대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것은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위로부터 입혀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행할 수 있다는 과격한 바울적 신앙도 한쪽 면으로 기울어진 것이며,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과격한 야고보적 신앙도 한쪽 면으로 강조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대는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그대 마음 심(心)의 중심 중(中)을 바치는 충(忠)으로 최선을 다하여 주의 말씀(言)을 이루는 것(成)는 것(誠)이 진정한 충성(忠誠)이며 주님의 교훈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행위의 출발은 내 자신의 결단에서 최선에 의해 출발하지만 궁극적인 그대의 고백은 오직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믿게 하셨고 행하게 하셨다는 것으로 주님께만 최후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자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한다”(요 3:3)거나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요 6:63)거나 혹은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 14:17)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슷한 말씀이지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곧 인간의 자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강력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이 말씀도 바르게 이해한다면 그대 힘으로 좁은 문을 찾아 들어가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대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뿐입니다. 영생의 문이 좁은 이유가 곧 인간의 힘으로 들어갈 있는 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쨌든 좁은 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아직도 그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습니까? 그럼 아직 그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선 그대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능력과 그것이 기대되는 소망으로 가득찬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주도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께서 가지시고, 그대는 그대의 인생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일이 지금 그대가 해야 할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