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절감사예배 및 총동원 주일을 위한 40일 절식 및 릴레이 금식 8일째입니다.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한 열매를 향한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발며, 지난 주 금요일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222. “주여 주여”라는 저주스러운 부름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주여 주여’라는 아름다운 부름이 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여주여’라고 불러도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곧 저주스러운 부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이런 경우일까?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여, 주여”라는 부름이 저주스러운 첫째 경우는 많이 기도하고 부르겠지만 주님과 개인적 교제를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부름의 기도는 언제나 일방통행식, 즉 하나님께 통보하는 형식의 신앙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런 기도는 말은 많이 하지만 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타인과 대화하면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아서 서로의 인간관계가 닫혀 있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신 주님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우리 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당신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내 쪽이 아니고 주님 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인격 관계이지 어떤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신앙을 의식이나 형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와 행사에 모범일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흠이 없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신앙이 동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고, 기도도 누구 못지않게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주님과 살아서 나누는 인격적 관계가 아니고 자기 의지 혹은 신념 위에 완벽하게 신앙적 삶을 세워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일생 주님을 찾고 또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구원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구원은 주님 은혜와 그에 따른 신앙 위에 서 있지 않고, 자신이 열심히 쌓아 놓은 자기 의의 더미 위에 서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 앞에 서는 날 기절낙담하여 사단의 치밀하고 교묘한 속임수에 이를 갈고 지옥으로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 자신이지 우리의 신념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부르짖는 ‘주여 주여’가 바로 가련하고 한심한 부름입니다. 이들이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들 자신이 참 인격의 주님을 모르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들에 내적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열심과 빈틈없는 종교행위로 그 불안을 메꿉니다. 이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우리 크리스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그의 종교가 요구하는 계율과 가르침을 잘 따르며 아주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그대의 의지와 신념에 의해 형성된 자기 예수, 자기 복음으로 참된 주님의 복음과 대치시키면 안됩니다. 주님 앞에 그대의 의지와 신념을 멈추고 가만히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님은 우레와 같은 소리로 때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그대의 양심을 통하여 선명하게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귀한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