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이면 행복한 생각이 많이 드는 시간입니다. 돌아보는 일주일이 감사하고, 이번 주말의 일들이 감사하고, 함께 예배히며 만날 거룩한 백성들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사가 그대에게도 넘치는 아침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그제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182. 외식하는 자들은 ‘돼지’(χοροs)입니다.
돼지는 구약에서도 철저하게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짐승입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서 겉으로는 정하게 보이나 속에는 탐욕이 가득한 신자들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벧후 2:22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신자들 중에 교회에서 근본적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 중에 시간이 갈수록 이중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 이것을 비유한 짐승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좋은 설교와 착실한 성경공부를 하면 자신들이 좋은 성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중생활, 즉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의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좋은 설교를 듣지 못해서, 또는 성경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자기들이 변화되지 않는 줄 압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 때문에 그들이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중생 곧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듣고 훌륭한 성경공부를 하여도 그는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든다면 뱀에게 좋은 양식을 먹인다고 그 뱀이 양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교회 안에서는 깔끔한 신자이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장 주저없이 더러운 곳으로 달려갑니다. 돼지들을 아무리 방안에서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향수를 발라도 문밖에만 나가면 곧 바로 수렁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속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에는 세상 욕심을 그대로 가진 돼지일 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타락과 방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그마한 허물을 대단히 크게 말하고 비난하며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이런 개들과 돼지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것이나 진주들을 주시지 않습니다. 아니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자신의 중생, 곧 거듭남을 감사하며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대에게 개나 돼지의 속성이 발동하지 않도록 경성해야 합니다. 개나 돼지의 가장 치명적인 속성은 자신의 청결상태에는 관심도 없고 또 외부의 청결상태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들이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입니다. 그대는 매 순간 자신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거룩한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성도의 성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금요일의 느긋한 오후가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