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심방을 위해 경남 마산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 있습니다. 심방의 귀한 열매가 있기를 바라며 어제 저녁에 써둔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평안을 빕니다!
216. 거짓 선지자는 교훈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합니다.
사실상 그 누구도 자신이 설교한 만큼 높은 표준에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적인 표준에는 이르지 못할지 모르나, 질적인 면에서는 교훈과 행위가 일치해야 합니다. 설교란 언제나 설교 내용보다 설교자가 우선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설교자란 위대한 일생을 가진 설교자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그 사람의 선교라는 말입니다.
마 7:17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맻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맻나니
이 말씀은 “그 사람이 참된 선지자라면 그의 예언은 참된 것이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삼하 18:27에 보면 요압이 반역자 압살롬을 무찌른 후 그 승전보를 전하고자 했을 때 아히마스가 자원하여 다윗 왕에게 보고하고자 달려가는 내용의 기사가 있습니다(삼하 18:27). 실제로 아히마하스가 전하여야 하는 내용은 승전보이지만 다윗이 기다리는 소식은 그 아들 압살롬의 생사여부였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아히마하스에게 이 일을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갈 것을 고집하고 달려갑니다. 그가 달려오는 것을 파수꾼이 보고 다윗에게 가서 “달려오는 자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나이다”라고 했을 때, 다윗이 유명한 말을 합니다.
삼하 18: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좋은 사람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는 이 말은 참된 선지자에게 적합한 말입니다. 교훈자 자신이 틀려 있으면 그의 교훈은 틀린 교훈입니다. 겉은 번지르르하면서도 속은 썩고 부패한 자들의 교훈, 그 아까운 교훈을 부패한 자들의 입에서 빼앗으라는 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마 23:1-7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행함이 없고 바른 말만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주님의 실날한 비판입니다. 어떤 일군이든지 그의 가르침이 비록 옳다고 해도 생활이 나쁘면 그는 거짓 선지자로 지목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교회를 떠나는 즉시 그의 삶으로 스스로 부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외치던 그가 형제에 대하여 증오의 판단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웃으며 농담한다든지, 또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세상 오락과 취미에 심취한다면 그들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이와 같은 삶은 없는지요? 치열하게 반성하고 돌이켜서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삶이 되고, 삶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자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하늘의 백성입니다. 말씀이 곧 그대에게 법이 되어야 하며, 삶이 곧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를 얕보지 못하며, 감히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이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저주스러운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대의 평안을 빕니다.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귀한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