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자신의 승전을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금방패를 만들고 그 방패에 자신의 뜻을 담은 문구를 새기라고 금장색에게 명령했답니다. 고민하던 금장색이 솔로몬을 찾아가 아버지 다윗왕의 뜻을 전하고 지혜를 구했는데, 솔로몬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를 주었고, 이 문구를 본 다윗이 매우 만족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나갈 것이며, 아무리 불행한 일이라도 이 역시 지나갈 뿐입니다. 그대의 오늘도 지나가겠으니 하루 동안의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내일은 주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하며 어제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208.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좁은 길로 인도하는 주님의 태도는 매우 단호합니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6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생명의 길은 이처럼 좁습니다. 영생으로의 초대는 다정하고 따뜻한 것이지만, 그것이 넓은 문으로 보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의 문이 처음은 넓었다가 나중에 좁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의 고백은 매우 단순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대의 신앙고백은 그 깊이를 더해 갈 것입니다.
주님의 길은 좁은 문에서 시작하여 좁은 길로 걷지만, 마지막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활하고 밝고 명랑한 나라에 이릅니다. 주님도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천상천하의 주가 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일군과 아비를 버렸지만(마 4:18 22) 천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마태는 좋은 직장을 버렸고(마 9:9).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후 엄청난 재산의 손실을 보았으며(눅 19:1-10). 마리아는 평생 모은 향유를 깨뜨려 부었습니다(요 12:3). 특히 바울은 재산,학문,직위를 다 버렸습니다. 모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산상보훈대로 살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리라는 기대보다는 이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딤후 3:12). 목자가 가고 있는 목회의 길이라고 다 좁은 것은 아닙니다. 목사도 얼마든지 넓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가끔 동역자들이 교인들이 자기를 힘들게 한다며 하소연하고, 그래서 목회의 길이 좁은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목자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일 목회자가 교회를 직장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직장인들도 직장에서 상하로 시달리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좁은 길이란 주님과의 영적 생명의 교통을 지속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삶을 말합니다. 즉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진리가운데서 걸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좁은 길로 가다 바로 옆에 넓은 길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 발을 옮기고 싶은 유혹이 매일 매순간 일어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그 길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놓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속이면서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 투망을 준비합니다. 그대가 깨어 경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의 평안을 빕니다.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귀한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