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중순을 넘기면서 봄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날씨도 많이 풀렸구요. 요즈음 가끔 눈도 오고 해서 마지막 겨울의 정취도 있어 참 좋습니다. 돌아보면 행복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오직 그대의 선한 마음이 그대 주변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그 선한 마음과 행복을 기대하며 지난 주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203. 이 문은 구하는 자가 적어서 좁습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문이 좁기는 하지만 영생의 문이기에 들어서기만 하면 아픈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고 다시 저주가 없으며 수정같이 맑은 생수의 강이 흐르는 쁄라(בְּעוּלָ֑ה)의 땅에 들어가서 헵시바(ֶפְצִי־בָהּ)라 불리며 영생을 누릴텐데도 이 천국의 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위 말씀에서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라는 뜻이며,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특히 헵시바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쁨을 그대 안에 두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다시는 내가 너를 버리운 자로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내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함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고됨과 설움을 겪으며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 끝난 이스라엘을 통해서 새 역사를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대가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쁄라의 땅이 열리고, 헵시바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쁄라의 땅에 들어가 헵시바의 기쁨을 누릴 것에 관심이 없고 또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거의 대부분 거룩한 것이나 진주를 구하기보다는(마 7:6)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하고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후 생각하는 것이 세상이요, 찾는 것이 땅에 속한 것이어서, 저 하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소수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자도 믿음 자체가 세상의 것을 위한 천박한 우상숭배와 같으니 이 문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눈을 가리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야 이 위대한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도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주의 빛과 음성으로 쓰러진 후에야 그의 눈이 비늘로 덮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직가 거리의 아나니의 기도로 그 비늘이 떨어진 후에야 세상을 밝은 눈으로 밝히 볼 수 있었습니다(행 9:8).
사랑하는 이여...!
그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밝히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울이 기세등등하여 다마스커스로의 넓은 길로 갔지만, 주님이 열고 기다리는 것은 좁은 문이었습니다.
행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그는 그 문으로 들어가 주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사도로, 이방인의 사도로 찬란한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비록 그의 길은 좁은 길이었지만, 그 길은 쁄라의 땅이었으며, 헵시바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대 역시 주께서 여시는 좁은 문으로 들어섰을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도 그대의 발걸음이 쁄라의 땅을 밟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선한 안티 크리스천, 그 귀한 왕들의 귀환을 열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