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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17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본문 :

본문 : 눅2:25-33

우리 민족은 원래 단결이 잘 되고 동질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아마도 5000년 역사에서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지내온 민족이라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같이 뭉치고 대응하다가 그런 동질성을 가진 공동체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중국에 국빈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온 국민들의 감정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수행하여 간 기자들이 대통령이 참여한 행사에서 그 나라 공안에게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느냐 라는 국민감정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한 나라의 국가의 체면이 뭐며 도대체 국민 체면이 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대접인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속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보면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조그만 하고 귀찮고 불편하고 약소한 국가요, 또 남북 대치로 인하여 그들에게 늘 골머리를 앓게 하는 언짢은 나라요, 또 요즘은 사드문제로 신경질이 나게 하는 불편한 나라인데 그렇다고 마음대로 어떻게 해 버릴 수도 없는 그래서 속상하게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나타난 게 이번의 일들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또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한 그들을 함부로 대하여도 별로 뾰족한 대응의 수단과 방법이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이게 정말 우리를 기분 상하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언제나 그들이 힘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기가 막히는 일들입니다. 정말 우리는 남북통일이 어서 되어서 이웃나라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당당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우선 남북의 국방비가 엄청 줄어 들게 되고 그걸로 경제부흥에 사용하게 되고 국방력도 엄청 늘어난다고 예상됩니다. 통일은 노동인력이 늘어나서 경제활성화에 엄청 기여하게 되고 경제도 세계 5,6위로 진입하게 된다는 보고입니다. 그러면 중국이나 일본이 더 이상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재작년에 우리 선교팀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를 부른 것이 이런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절한 바램은 바로 남북의 통일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북한 7만 동포들의 간절한 소원은 바로 남북의 통일입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남북통일입니다. 어서 우리의 소원대로 남북이 통일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너무나 절실한 지금입니다.

예루살렘 도성에서 살던 시므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조국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셔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당장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해 주십사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가 고통 받고 괴로움을 받고 있는 자기의 조국 이스라엘을 그 고통에서 건지셔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요 경건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던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간구하면서 기다린 사람입니다. 어느 날 그는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네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위한 그 메시야가 꼭 오시리라는 계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계시를 들었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것에 대한 성령의 지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를 만나는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메시야를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시므온을 통하여 보면 한마디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메시야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가 만나게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바로 시므온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느냐? 메시야를 기다리며 만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잠언 8:17절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탄이 무엇입니까?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입니다. 그 성탄을 기다리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어야 합니까? 본문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1.임마누엘의 소원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메시야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즉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라는 간절한 소원이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기다림이란 바로 메시야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요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즉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건 임마누엘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왜 임마누엘의 신앙입니까?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기거나 탈피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여기에 오셔서 이 안타까운 상황을 제발 좀 해결하여 주세요라는 것이 임마누엘이라는 신앙입니다. 시므온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그렇게 임마누엘 외에는 도저히 해결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임마누엘, 제발 여기 오시옵소서, 그리고 좀 만져 주세요, 어떻게 좀 해결하여 주세요, 부탁이오니 맡아 주세요라는 신앙이었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바로 이러한 임마누엘의 신앙들입니다.

마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런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도 바로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탄은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소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잉태되어서 내려왔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말라기에서 마태복음까지는 약 400년간의 긴 침묵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멈추고 그 기록도 멈추어서 조용한 침묵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부르짖습니다. 그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원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역시 ‘임마누엘’의 소원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요 자신의 백성인 인간들, 즉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싶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그분의 역사하심이 있고 소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소원을 하나님이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창조하여 에덴에 두시고 함께 교제하시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 그 아담이 범죄하여 동산에 숨었을 때에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찾아가셨고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너무나 죄를 범하여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물로써 그들을 심판하셨을 적에도 그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구원의 길을 열어 노아와 후손들을 통하여 인류를 살려 주신 임마누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내가 만든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다짐하시면서 무지개를 두셔서 그 약속을 지켜 오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무지개가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라는 임마누엘입니다. 여러분, 비가 오고 무지개가 뜨면 바로 ‘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누나’ ‘임마누엘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비올 때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공중에 그 무지개를 걸어두시고 임마누엘을 공개적으로 표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고 싶은 분이십니다. 실제로 에덴동산에서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숲속에 숨었을 때에도 하나님이 직접 그를 찾아가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왜 거기 있느냐’라고 찾아가시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말씀은 “나는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다”라는 선포하심입니다. 그게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임마누엘의 역사를 기다리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도울 수도 없어요, 해결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오 주여 이 자리에 오소서, 이곳에 오소서, 그리고 제발 좀 도와 주세요, 그런 간절한 기도,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이렇게 이 임마누엘은 우리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요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오직 예수 뿐이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마28: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임마누엘에 대한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독생자까지 나에게 보내주신 그 하나님, 세상 끝날까지 영원토록 나와 함께 계실 그분이 임마누엘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를 간절히 사모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성탄을 경험한 사람들은 임마누엘을 확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며 임마누엘이 되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는 그분을 경험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내 주위에서 나를 붙들고 계시는 나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금년도 성탄절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도 남김없이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2. 구원의 열망.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바로 메시야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을 열망하고 그 열망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열망을 채우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망을 우리 주님이 채우시고 담당하셨습니다.

30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예루살렘의 시므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자기 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소망하였습니다. 기대하였습니다. 엄청나게 열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조국이 너무나 어려움에 처하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힘도 세력도 능력도 그들을 구원하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당하고 겪으면서 지내왔던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속이 터지고 억울하고 그랬습니다. 더 이상 어느 세력에도 기대를 걸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메시야가 나타나야만 해결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을 기다리고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원자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 구원자를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메시야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도 바로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모두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에덴의 범죄자 아담을 찾아가신 하나님의 마음인 바로 그를 구원하려 하심이었고 노아를 통하여 심판하심도 그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인류가 멸망당하지 않고 다 구원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하나님이 만드신 그 생명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지옥으로 쓸어버리고 보내버린다, 이건 아버지의 뜻이 도저히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 주님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세주이십니다. 인류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내려 보내신 구원의 아버지이십니다. 성탄절은 구원의 절기입니다. 생명구원의 절기요 영혼구원의 절기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이 카드나 보내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나 부르는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절은 결코 자선남비나 떠 올리고 송년회나 떠 올리는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절이 지나면 1년이 가고 새해가 온다 그런 절기로서의 성탄절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죽어가는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여 천국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주님을 기념하고 경배하고 그 주님의 생명을 나누고 베푸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요 감격할 일입니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하심을 다시 한 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신 우리 하나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구원받았고 그분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얻었고 그분으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있고, 할렐루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다시 한 번 구원에 동참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기 예수는 인간구원을 위하여 냄새나는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구원의 절기요 살리는 절기요 생명의 절기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인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를 소망하십니다.

동시에 나의 간절한 구원의 제목이 무엇인지 그에 대하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성탄은 구원자 하나님께 ‘주여 저를 도와 주세요’ ‘내 문제를 해결하여 주세요’라고 간구할 수 있는 신앙이요 기회입니다. 예수를 만난 당시의 많은 환자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구원요청의 간구에 응답하셨고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고 섭리하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를 통하여 가지신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인 우리들을 향하신 간절한 소원을 자녀가 된 우리가 제대로 알고 지켜야 제대로 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모르면 그 소원을 이뤄드릴 수가 없고 자녀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 역시 제대로 할 일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알고 그 분의 소원을 알고 그리고 그 소원을 이뤄드려야 한다는 것이 자녀된 우리의 할 일들입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담은 책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버지 하나님은 무얼 원하시는지, 그분의 간절한 소원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우리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이러한 일들을 하나하나 잘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우리에게 두시고 그걸 행하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아버지의 뜻을 받은 자들입니다. 부모가 간절히 자식을 바라보며 소망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두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소원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기를 바라십니다. 아무도 그야말로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구원받고 천국 가기를 간절히 희망하시고 소망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님이 재림하지 아니하시고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구원계획을 모르고 세속주의로 인하여 영적으로 깊이 잠을 자고 정신이 혼미하여 있습니다. 정신이 흐릿하여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겁니다. 마치 안경을 끼긴 했는데 성에가 끼어서 앞이 분간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짙은 안개가 내리면 앞뒤 좌우 분간이 제대로 안 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제 성탄을 경험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그 열망을 이뤄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 책임자들입니다. 생명구원에 대한 책임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원받을 자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금년도 성탄절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내 이웃을 구원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인도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소개하고 인도하고 구원받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만의 성탄절이 아니라 구원의 성탄절, 생명얻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3. 평안과 평화의 열망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또 다른 믿음은 바로 ‘평화의 주님이 이 땅에 오소서’입니다. 메시야는 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30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13,14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성탄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평안이요 평화의 소식입니다. 시므온은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리고 고백합니다.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기다림은 ‘평안으로 놓아주시려 함이요 평화의 주님이 이 땅에 오소서’입니다. 성탄은 이 땅에 이런 평화의 소식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쁜 일이요 그래서 감격입니다. ‘평화의 주님이 이 땅에 오소서’ 이것이 성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노래이며 소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을 맞는 우리는 평화를 노래하고 간구하여야 합니다. 어디에 가서든지 평화를 만들어 가고 세워가야 합니다. 그 평화를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이고 이 믿음을 확인시켜야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고 살아 있는 믿음, 이런 믿음을 보이고 나타내어야 하는 사람들이 메시야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언제 그런 평화를 보여야 합니까? 어려울 때에 보여야 합니다. 시련 가운데서 보여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분의 소원을 성취하여 드립시다. 이게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심으려면 내가 먼저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갈등하고 내 안이 평화롭지 못하면 내가 이웃에게 평화를 심을 수가 없습니다. 나와 평화, 부부간에 평화, 가정에서 평화, 이웃과의 평화, 가는 곳마다 평화를 심고 세우고 만들어야 합니다. 내개 먼저 평화로워야 내가 이웃에게 이 평화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웃과 갈등하고 이웃과 멀어지고 그러면 안 됩니다. 웃음을 심고 기쁨을 심고 찬양을 심고 감사를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애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여러분과 저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예수로 인한 이 평화, 이걸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 성탄의 절기에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평화가 평화의 예수를 만나서 내 안에 이 참된 평화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에는 이 안에 평화로 가득 채우고, 심고, 그리고 나누고, 베푸는 그런 평화의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사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행동하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잘 드러내 보이셔야 합니다. 생활로 보이고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을 소망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거룩함을 잘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소원의 표현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입니다. 그걸 이뤄드려야 합니다. 이게 여러분과 제가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서 할 일이요 신앙인으로서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 성탄절에는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사랑하심에 대한 그 깊은 뜻을 확실하게 더 인식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그런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고 표현하였고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극난한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이 그런 엄청난 선물의 의미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심에 대한 그 짝사랑이 직접 표현되고 나타났고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 위한 놀라우신 섭리가 바로 성탄인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증거요,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관심입니다.

사랑하시므로 하나님의 근심이 깊어지셨습니다. 언제나 사랑하면 근심이 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준비되고 자격을 갖춘 존재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도대체 격이 맞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지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고 죄를 지은 존재요 그래서 하나님과 도저히 격이 맞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가까이 하신 것입니다. 아니 함께 있고 싶으신 간절한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사랑하셔야 하는데 그 대상이 되는 인간은 너무나 형편이 없어, 그래서 하나님이 가슴앓이를 하신 것입니다.

4. 영광의 열망
31,32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는 역사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 만방에 드러내는 놀라운 축복의 기회입니다.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어니하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오심입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고 찬양한 것입니다(13,14절).

성탄은 하나님의 영광의 드러나심입니다. 이 영광이 나타남이 바로 이 성탄입니다.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 이 성탄을 맞으면서.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맺음 :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우리 주님이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여 오소서, 이 자리에 오소서라는 찬양자들입니다.
임마누엘을 기다리며 구원을 기다립니다. 평안과 평화의 열망자들입니다. 영광의 찬양자들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오직 예수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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