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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15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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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존중하면 됩니다.

본문 :

본문: 말3:13-18

요즘 워마드(womad) 때문에 우리 사회가 아주 시끌거립니다. 워마드란 여성이란 영어 단어 woman과 유목민이란 단어의 nomad가 합해져서 생긴 신조어로 극단주의적인 여성우월주의 싸이트입니다.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에서 일어난 나체모델사진 유포의 주범이 여성인 것으로 밝혀지고 경찰이 지나치게 신속히 그를 입건했다고 촉발된 여성들의 시위운동이 엉뚱한 것으로 비화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워마드'에 등장하였고 그 워마드에 천주교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예수님 상을 불 지르고 또 그들이 미사에 쓰이는 성만찬 떡인 성체를 들고 거기에 조롱하고 낙서하고 불태웠습니다. 이제는 ‘예수 XXX 불태웠다’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예수님 형상을 불태웠다는 이유는 예수님이 남성이라는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이 '워마드'는 극단적인 여성 페미니즘 커뮤니티입니다. 이 '워마드'는 최근에는 인터넷에 우리나라 ㅂ,ㅅ 즉 부산인 것 같은데 이 ㅂ,ㅅ에 있는 “ㄱㅈ 성당에 불 지른다”라고 방화하겠다는 예고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플라스틱 기름통에 기름을 넣는 사진을 첨부한 게시글에는 '천주교와 전면전 선포한다. 임신중절이 합법화 될 때까지 매주 일요일에 성당 하나 불태우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는 현상들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은 종교시설에 대해서도 순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고 경외함에서부터 기독교신앙이 출발하고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절대타자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요,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주관자이시며, 나아가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아버지라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고 무너지면 기독교신앙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고 맙니다.

이 기독교 신앙의 첫 출발은 바로 구약의 십계명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잘 압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판, 10가지의 계명이 쓰였던 그 돌판의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세번째 계명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아니하리라”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잘 섬기는 데서 신앙이 시작됩니다.  `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존중심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란 절대타자의 하나님이 인본주의 영향으로 인간사회로 끌어내려져서 조롱하고 비웃고 심지어는 불태우고 그러는 사회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부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롱하고 불태우고 그야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회입니다. 인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거룩히 섬겨라고 가르치며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오늘은 ‘존종하면 됩니다’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존중하면 됩니다.
13,14절,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도리어 말세에 사람들은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고는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반문하며 대든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며 그 섬김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대든다는 것입니다. 말세의 경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의 분으로 모시고 섬기며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영원불변하시는 분으로 모시고 나의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신앙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모시고 섬기고 대접하고 따라가며 높이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보았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미리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아니하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시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필리핀의 현직대통령이 엄청난 망말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논리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과 셀카 찍어서 보여 주면 내가 대통령직 사임하겠다”라고 공언까지 했습니다. 필리핀은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나라인데 그 나라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신이 바보 같다”며 기독교 교리와 신성을 모독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하나님께 사과한다”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망령되어 일컫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부패하고 가증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부패하고 가증하여서 선을 행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부인하고 마음대로 살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인도하시지도 사랑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창조자를 인정하고 그 창조주 앞에서 겸손하게 사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시란 내 삶의 모든 것과 인류역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통제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그걸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걸 분명하게 고백하고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인도자로, 내 인생의 확실한 주관자로 분명히 고백하여야 합니다. 빈틈없이 정확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경외하여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하는 믿음입니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경외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도 주시고 영광도 주시고 생명도 오래 가도록 허락하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인생의 최대의 가치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며 그를 따라 살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장의 말씀이 바로 이 잠언 22:4절이라는 말입니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렐루야! 확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확실히 믿으며 확실하게 존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2.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면 됩니다.
16,17절,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믿음의 대상을, 존재를 믿으며 그 대상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분의 하시는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가진다란 바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우리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일이며 동시에 그분의 귀하신 이름을 믿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을 존중하고 그 이름을 정말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여러분, 여기 최제봉목사를 안다란 살아 있는 사람인 저의 존재를 아는 것이요 동시에 저의 이름을 알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과 존재는 동일합니다. 이름으로 존재를 압니다. 그리고 저의 행위를 알고 그가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도 이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요,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불러요 동일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도 몰라요 단순히 존재만 믿어요 그건 정령신앙입니다. 무속신앙입니다. 그건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믿고 부르는 일과 동일한 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하신 명칭의 고유명사는 ‘야웨’로 믿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이름을 쉽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명사가 엘로힘, 하나님, 주님, 전능자, 아버지 등등이었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필사자들도 성경을 옮겨 쓰다가 야웨란 글자가 나오면 붓을 씻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한 자, 한 자씩 따박따박 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거나 일컫거나 쓰거나 하는 일에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하였으며 그 이름을 정말 귀하고 존중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정말 소중하고 여기고 두렵게 여기고 믿어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도 가르치시기를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명령하십니다(레19:12). 욕되게 하는 사람을 죄없다 아니하리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도리어 그 이름을 자랑하고 빛내야 합니다. 시20: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성도여야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의 이름을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9)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 목동 어린 다윗을 만나니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자였습니다. 이유가 성경에 잘 기록되어 나옵니다. 삼상17: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고 반대로 골리앗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이름을 온 만방에 존중하게 하였습니다.

롬2:24절에는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시키면 엄청난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은 죄없다 아니하십니다. 성도는 누구나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게 여기고 대하시는 분들입니까? 아니면 나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오히려 모욕되게 하시는 분들입니까? 골리앗입니까? 어린 목동 다윗입니까? 우리 모두는 다 주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다윗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간단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따른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지 아니하고 내 판단위주로 기준을 정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특히 교회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내 판단만 따르면 그건 자주자주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그러지 않아야 합니다.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래야 합니다. 동성애 잔치인 퀴어축제 같은 건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사입니다. 워마드 같은 운동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29:13).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해야 합니다(시86:9).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고 그 이름을 높이고 높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3.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존중하게 됩니다.
17,18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나님은 특별한 날에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다고 보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나의 편이야’라고 지명하실 때에 기쁨으로 아멘하고 그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즐겨야 하고 하나님의 편에 서는 걸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 교회에 온다 그 자체가 귀합니다. 보세요, 이 사회에서 유명한 인물, 덕망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 분이 우리 교회예배에 와서 우리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설교말씀을 듣고 그리고 등록하고 성도가 되었다, 그러면 그 자체가 우리 교회로서는 기쁨이요, 우리 성도들에게는 커다란 명예요 감격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우리로서는 존중받는 일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 이와 같은 현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주십니다. 이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편에 서는 것을 기뻐하고 감격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 선 믿음입니다.

18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때가 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분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말씀도 이와 동일합니다.

마25:31-33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우리가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우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영광을 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양이 되어야 합니다. 오른편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권면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그렇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택하리라, 하나님의 편에 서리라,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하나님만 사랑해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변치 아니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길이 우리들의 갈 길이요 선택지이며 신앙적 자세입니다.

습3: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시며 기뻐하시는 사람, 얼마나 멋있는 사람들입니까? 이게 여러분이요 이게 저라는 말입니다. 왜요? 언제요? 어떻게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그렇게 됩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처럼 손주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서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이 감격, 이 기쁨, 이것이 우리의 감격이요,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야말로 신앙 안에서 예스요, 아멘이요,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맺음 : 존중하는 것은 상대를 듣고 믿고 높이고 따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하나님을 내 일생의 가장 존귀한 분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노아홍수에서 하나님은 그런 노아의 8식구만 구원하셨습니다. 어린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처럼, 하나님의 사람 모세처럼, 불의 사자 엘리야나 다니엘처럼, 이방인의 전도자 바울처럼, 요한처럼 일생을 하나님을 존중하며 따르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시20: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높이고 자랑하고 그 하나님을 흐뭇하게 하시도록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존중하면 됩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면 됩니다.
3.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존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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