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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Apr 24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하나님이 칭찬하신 사람

본문 :

욥1:6-8

어린아이나 어린이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칭찬 받으면 좋고 책망 받으면 싫어합니다. 칭찬의 효과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책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입니다. 실제로 고래훈련을 하는 조련사들이 고래가 시키는 대로 잘하면 쓰다듬어 주고 먹을 것을 주고 그러면 그 때마다 고래가 꼬리를 흔들고 입을 맞추고 하는 칭찬에 대한 반응을 하고 그리고 더 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도 칭찬에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긍정적 현상이 나타나게 되곤 합니다. 누구든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혹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흐뭇해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반대로 책망을 받거나 핀잔을 받으면 괜히 기분이 별로이고 속으로 상하고 그럽니다. 지극히 속물적 근성인데 그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심지어는 미물까지도 칭찬에는 기뻐하고 흐뭇해지는 법입니다.

 

칭찬 중에 가장 큰 칭찬은 뭐니뭐니 하여도 하나님이 하시는 칭찬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칭찬을 받는다 그건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축복일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이런 감격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사람들이 더러 나타납니다. 우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셔서 선택하셨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 성경의 기록은 “내가 이세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이루려 하노라”라고 칭찬하셨고 인정하셨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칭찬이요 인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적 표현으로 칭찬하시고 인정하신 대단한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 표현으로 엄청난 칭찬을 받은 대표적인물입니다.

 

어느 날 하늘나라에서 천상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천상회의의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 천상회의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사단도 거기 모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기를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갑자기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엄청 칭찬을 하십니다. 인간들의 언어로 누가 뭐라고 했나요? 뜬금없이 하나님이 욥을 거명하시며 칭찬을 쏟으신 것입니다. 그것도 그야말로 엄청나게 쏟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언어로 하신 말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런 정말 정말 엄청난 칭찬을 욥을 거명하시면서 쏟아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이 하신 칭찬은 어떤 것인가? 왜 칭찬하셨을까? 도대체 욥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욥의 삶이 어떠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런 칭찬하시는 것인가? 또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평생의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 것인데 그 중에서 칭찬을 받는다 이건 정말 전율입니다. 엄청난 감격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오늘 본문에는 욥에 대한 칭찬이 나오니까 우리가 그걸 보자 그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음을 갖추고 생활을 하면, 삶을 갖추면 될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렇게 되면 될 것 아닙니까?

 

욥기의 신학은 한마디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인생에서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고난, 그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는 길이 무엇인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욥과 같이 준비되어서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그러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우리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욥을 보면서 여러분도 저도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칭찬받는 신앙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한탄보다 예배하는 사람.

1: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본서 욥기 성경은 성경이 표현하는 가장 극칭찬의 표현으로 욥을 칭찬하는 일로 서두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욥기 1장 기록은 성경전체에서 사람에게 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칭찬기록입니다. 더군더나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서입니다.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정말 멋진 인물이요 멋진 표현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칭찬 받으시는 멋진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는 자녀가 10명입니다. 2절,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7은 성경적 만수요, 3은 하늘의 수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합하여 10은 만수로 이와 같이 많은 자녀는 고대에는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욥은 이런 복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또 소유물도 대단하였습니다.

3절,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동방이라면 가나안에서 동쪽인 에돔과 모압의 지경입니다. 그 지역에서 욥은 가장 큰 부자요 큰 인물입니다. 자녀도 10명, 소유물도 대단한 인물, 그 욥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의 모든 것들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4,5절,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신앙으로도 정말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언제나 자신도, 자녀들도 다 같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바르게 세우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노력한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상세계의 회의에서 그 욥의 고난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시행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잔치하고 있던 중입니다.

 

14절 이하, 욥에게 한 사환이 달려와서 보고합니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들이 다 날아가 버린 큰 아들 생일날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그런 장면입니다. 그야말로 유구무언의 날, 하늘이 무너진 날, 무슨 말로도, 무신 위로로도, 그 어떤 우리로도, 표현이 안되는 그런 날입니다. 욥의 그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추스르거나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날입니다.

 

일반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때는 그저 한숨이 제격입니다. 한숨을 쉬고 원망을 하고 기가 차서 울고불고 그런 것입니다. 한꺼번에 10명의 자식들을 다 잃었어요, 그 많던 재산이란 재산을 다 잃었어요, 그야말로 몇 십년 일군 것들을 순식간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말이 안되는 상태입니다. 뭘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합니까? 절망절망, 또 절망 그것 밖에 더 표현이 안되는 그런 날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 때에 욥이 취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욥의 신앙행동입니다. 보세요.

 

20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그가 일어나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이건 큰 슬픔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는 욥입니다. 그것도 엎드려 예배하여, 경배하여, 기가 막히는 자리입니다. 그 기막힌 자리에서 욥은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자신을 세웁니다. 그래서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예배합니다. 이 기막힌 순간에 예배자로 섰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요? 한탄하고 절망하기 쉬운데 그런 자리에서 욥은 옷을 찢고 슬픔을 표시하면서 머리를 밀고 그리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경배합니다. 원망하기 쉬운데, 기가 막히는 현실,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이 안되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엎드려 예배하는 욥입니다. 기가 막힌 현실에서 엎드려 경배하는 욥, 여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왜입니까? 무슨 뜻이 있는데요 라고 묻는 신앙입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게 내가 뭐 잘 못했는데, 아이들도 반듯하게 가르쳤고 내가 얼마나 예배도 잘 하였고 그럴 수가 있었을 터인데,

 

엎드리는 믿음, 예배하는 믿음, 이건 절대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바리세인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리처럼 조용히 엎드리는 사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사람입니다. 절대적인 슬픔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가 막혀도 그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칭찬받은 욥은 자신을 그 극한 상황에서 예배자로 섰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저런 말이 아니라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세우는 신앙, 이런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이 평가를 하셨습니다. 한탄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신앙이 칭찬받는 신앙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100년 뒤, 1618에서 1648년까지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간의 30년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전역에 흑사병이 나돌아 1,700만 명의 인구 중에서 무려 1,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일은 ‘거대한 무덤’과도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 천주교가 개입하여 도와주어서 천주교의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 되어서 개신교는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벤자민 슈몰크목사라는 기독교 목사님이 날마다 고통 속에 있는 신자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 부부가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신자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가 섬기던 교회당과 집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귀한 두 아들이 잿더미 속에서 서로 껴안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들 부부는 두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시에 곡이 붙어서 찬송가 431장이 탄생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탄하거나 불평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 그리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그런 욥같은 사람입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세요, 나에게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세요, 깨우쳐 주세요, 주여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엎드리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예배자로 세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원망을 넘는 사람, 한탄을 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예배자로 세우는 사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욥처럼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불평보다 찬송.

21절,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 기가 막힌 현실에서 가장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불평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어요, 얼마나 귀하게 낳은 아들인데요, 딸인데요? 얼마나 어렵게 모은 재산인데요? 그러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쉬운데 그런데 욥의 말이 엄청 대단합니다. 이게 욥이 가진 전천후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잃어버린 욥이 하는 고백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그리고는 한마디로 하면 불평보다 찬양하는 신앙입니다. 당연히 불평하여야 할 터인데 그런데 찬양합니다. 이 불평에서 찬양하는 그 신앙을 하나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속이 상할 때 가장 하기 쉬운 것이 불평입니다. 무엇보다 불평이 쏟아지고 원망이 쏟아지기가 가장 쉬운 것입니다. 왜요? 우선 가장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나오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더군더나 돈도 댓가도 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도 안 들고, 돈도 안 들고, 바로바로 하기 쉬운 것, 그게 불평입니다. 그게 원망입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냥 당장이라도 됩니다. 그래서 불평하기가 쉽고 쉽습니다. 이게 인간들입니다. 이게 절망적인 상태를 만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더구나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신앙생활도 더 잘하려고 애썼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람 욥은 달랐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는 고백입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빈손으로 왔으니 또 역시 내가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라는 고백입니다. 말이 쉽지 모든 것을 전부 다 잃고 나서 그야말로 맨몸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당장 원망하고 당장 불평하고 그래야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영원한 절대적인 주관자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욥입니다. 사람은 어려우면 이유를 찾으려 하고 자꾸 희생양을 찾게 됩니다. 뭣 때문이야, 뭣 때문이야라는 이유를 찾으려 하고 거기다 갖다 대려고 합니다. 그리고 불평하게 되고 원망하게 됩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보세요, 운전하다고 사고가 나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대개는 환경을 찾습니다. 길이 문제였다, 상대 차가 어쨌다, 저쨌다 그럽니다. 불평의 대상을 찾습니다. 원망의 상대를 찾습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이게 인간들의 한계입니다.

 

욥도 얼마든지 불평하고 짜증을 낼 수가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뭐 갑자기 한 사환이 달려 오더니, 스바 사람들이 와서 그 많던 소 500마리를 한꺼번에 다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또 다른 사환이 헐레벌떡 달려 오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7천 마리나 되던 양들이 다 불타 버렸어요, 또 다른 종이 와서는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낙타 3천 마리나 되는 것들 그걸 다 빼앗아 가 버렸고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그러더니 아직 말도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한 사람이 달려 와서는 뭐,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쳐서 그 청년들 위에 무너져 그들이 죽었나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형제간에도 그렇게 의가 좋은 그런 자녀들 10명이 한꺼번에 다 죽었다니요? 어째 하루 만에 그 잘못도 없는 알토란 같은 자녀들이 다 갔다니요?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이게 어찌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그 상황을 당하였다면 어쩔까? 과연 욥같이 할 수가 있을까? 이게 의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늘을 쳐다 보면서 “도대체 하나님이 있다고?”라고 비웃고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썼습니다(시14:1).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제대로 서지 못하면 하늘을 향하여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말 불신앙의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의 사람 욥 보세요, 하나님이 온전하다고 칭찬하시는 사람, 정직하다고 평가하시는 사람, 그 욥은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하고서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하고 22절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그런 욥입니다.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욥은 도리어 찬양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불평보다 찬양을, 이게 칭찬 받은 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하기 쉬운 지리에서 그냥 감정이 가는 데로 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앞세우고 주님의 뜻을 찾고 그게 신앙입니다. 그런 자라에서 원망과 불평을 억누를 수가 있다면 그건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자기의 얼굴로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불평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할 수만 있으면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드리도록 하세요, 이게 욥의 신앙이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입니다. 불평이 솟구치는 그 순간에도 찬송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너무너무 속상하면 엎드리세요. 하나님은 그런 신앙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평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때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엉터리인지를 분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원망보다 아멘을.

이제 욥에게 남은 게 무엇입니까? 10명이나 되던 그 모든 자녀들 다 갔고 그 많던 모든 재산들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고백처럼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련이 왔습니다. 사단이 욥의 몸을 쳐서 발바닥에서 머리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잿더미에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자기의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기가 막힌 현실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참한 욥에게 하나도 없다고 했더니 남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옆에 아내가 있었습니다. 욥의 아내가 욥에게 말합니다.

 

2:9,10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런 기막힌 남편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할 말이 아닌데 그런데 상황이 상황입니다. 그래서 다가왔고 그래서 한 말입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렇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 차라리 죽어 버려’ 그 말입니다.

 

너무너무 기막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그럴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껏 하나님을 그렇게 성실하게 잘 믿었는데, 그렇게 잘 섬겼는데 그런데 왜 이 꼴이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리도 믿음생활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차라리 집어치고 말어 그 말입니다.

 

그런 그 시점에서 욥이 하는 말입니다.

2:10절,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범죄하고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욥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도 접었습니다. 범죄도 접었습니다. 입술로도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이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 놓으면 그것도 엄청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원망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불평이 다가옵니다. 마음 속에 엄청난 갈등들이 엄습하여 옵니다. 원망의 불씨에 불이 붙으면 모든 게 다 타 버립니다. 믿음도 타 버리고 감사도 타 버리고 찬양도 타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앙이 다 타 버립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멋진 신앙인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나는 복이 아니라 화를 당하였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원망과 불평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감사와 아멘으로 바꾸고 채우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뜻이라면 따르겠어요라는 노래처럼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멘으로 받겠어요라는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힘든 상태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의 계획하심,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으신지 그걸 물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좋으신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걸 확실하게 믿고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원망보다 아멘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하여도 원망보다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옆에서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아무리 윽박질러도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욥처럼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그리시기 바랍니다. 아멘하는 욥이 되시기 바랍니다. 원망하면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됩니다. 그러나 아멘하면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보다 아멘으로 서시기 바랍니다.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맺음 :

하나님은 아무나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칭찬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욥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의 허락을 얻는 사단처럼, 간혹 우리에게도 우리를 시험하는 사단의 일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 욥처럼, 고난 속에서도 그는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멋진 신앙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게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게 멋진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 그걸 소유하시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인가요?

 

1. 한탄보다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2. 불평보다 찬송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3. 원망보다 아멘을 하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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