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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30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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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본문 :
본문 :딤후4:6-9
지난 3주간 요14-16장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요17장은 설교를 마치신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지만 오늘날 우리를 위한 기도요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유심히 보면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저들도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힘은 하나님과 하나요 예수님과 하나됨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성령안에서 거룩함입니다. 세 번째로는 진리로 하나 되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진정한 힘은 첫째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요 두 번째는 거룩함이며 세 번째로는 연합, 하나됨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있는 교회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안에서 연합되고 하나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룩함과 하나 됨,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추구하여야 할 덕목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입니다. 2018년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이라는 표어로 시작한 지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미 여기까지 왔네요. 벌써, 정말 우리 모두도 다 모르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오는 두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보면 준비된 년말 맞이와 준비되지 않은 년말 맞이가 있습니다. 느낌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다. 우선 준비되지 못하고 그저 세월이 여기까지 흘러서 맞이하는 맞이의 대표적인 표현은 바로 ‘아니 벌써’라는 후회입니다. 생각을 다잡기도 전에, 일을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그 무언가를 성과를 내기도 전에 이미 여기까지 왔네요라는 후회입니다.
또 하나는 준비된 맞이입니다. 그 맞이는 ‘감사하다’는 맞이입니다. 같이 년말을 맞고 마지막을 맞는데도 달라요, 다 알고 감사하다, 고맙다, 정말 잘 달려 왔다, 잘 살아 왔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온 자기에게 고맙고 같이 달린 주위의 사람들이 고맙고 그리고 그렇게 도우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나 저나 우리는 모두가 이 시점에서 ‘아니 벌써’란 후회가 아니라 ‘내가 벌써’란 감사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이렇게 준비된 마무리로 감사하며 마무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오늘은 금년의 마무리 주일 송년주일로 사도바울의 마지막 설교를 봅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일정 모두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 본문을 편지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회를 상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누구나 년말을 맞이하든지 마지막을 맞이하면 나름의 감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년말을 맞이하십니까? 어떤 자세로 여러분들의 일생을 달려가시려 합니까?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대 바울의 고백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1. “지금까지 나는”
6,7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뒤를 돌아보니 내가 벌써 떠날 시각이 다가왔습니다. 어느덧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입니다. 전제란 제물 위에 포도주나 독주를 붓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순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내가 이제 곧 순교를 당하겠구나, 순교할 날이 다가오는구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모든 것의 마지막,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임박하여 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시점에 자신이 섰다는 표현의 말입니다.
1)달려갈 길-사명의 길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지금까지 열심히 사명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정말 이방인들, 즉 유대인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일생을 온 열정을 다하여 이곳저곳을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온 소아시야를 다녀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사명자로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사명자로 산 사람들입니다. 누가 멋진 사람들입니까?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원 없이 일하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사람들입니까? 사명에서 살고 사명에서 일하고 사명에서 죽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사명자들, 그들을 붙잡고 일하신 하나님이시오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는 그런 사명자들에 의하여 쓰여져 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바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사명자로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모세, 그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사람입니다. 원래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그런 인도자로 관심을 가지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사랑하고 좋아했지만 그 지나친 열심히 사람을 해치는 일로 나타나서 멀리 멀리 도망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만나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모세가 반항하다가 반항하다가 결국 잡혀서 사명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평생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고 나와서 인도한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장인 34장을 보면 하나님이 그런 모세를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이스라엘 온 땅을 보이시고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너에게 약속한 그대로 행하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비록 모세는 거길 입성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지도자 모세는 백이십 세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칭찬하여 기록합니다. 정말 멋있는 지도자요 정말 멋진 사명자였습니다.
누가 멋진 사람입니까? 사명자로 평생을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누가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평생을 그 사명의 터 위에서 열심히 달려갈 길을 다 달린 바울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이런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런 고백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2)믿음을 지켰으니 –신앙
복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앙에서 살다가 신앙으로 죽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믿음에서 서서 살다가 가는 사람들, 그들이 복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입니다.
벧전1: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확실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며 이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믿음입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그렇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제대로 된 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입니다. 이 믿음, 칭찬, 영광, 존귀를 얻게할 믿음, 이 믿음을 지키고 이 믿음을 바르게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들입니다.
벧전1: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참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게 제대로 된 아멘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결국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겁니다. 이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일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세워진 자의 특징은 감사로 표현되어집니다. 감사란 단어가 구약에 132회, 신약에 64회, 합하여 196회가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은 시편에 77회, 신약은 바울서신에 48회가 기록되어 주로 다윗과 바울사도의 글에 나타납니다. 잘 알 듯이 다윗은 평생에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고 아들 압살롬에게 밀려 도망을 다녔던 왕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감사하고 감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많은 환란과 고난을 당하였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감사하라 감사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가르치고 감사한 사도였습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제대로 된 믿음인 것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 믿음은 얼마나 소중한 위치를 차지합니까? 신앙이 중요하고 믿음이 중요하며 믿음을 세워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들입니까? 정말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을 믿음 위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게 가장 복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최고로 귀하고 아름답고 보람된 가치 있는 삶입니다. 믿음 따라 사는 사람들, 이들이 귀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지난 2015년 리비아의 해변가에서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목숨을 잃은 34명의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의 시신이 발굴됐다고 리비아 당국이 발표했습니다. IS 대원들은 소셜미디어에 오렌지색 조종사복을 입은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에게 총을 쏘고 참수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영상에서 IS 대원들은 ‘무슬림을 죽이려는 기독교 십자군’이라며 인질로 잡힌 이들을 참수했다고 스스로가 알렸습니다. 영상은 이들을 ‘적대적인 에티오피아 교회에 속한 십자가의 예배자’라고 소개했었고 그게 최근에 드론으로 촬영된 이들의 무덤은 시르테의 해변도시 인근의 한 농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IS는 이집트의 콥트교도들도 많이 처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다 믿음을 지키려다가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바른 믿음, 바른 신앙만이 모든 사람들에게 최후로 남는 요소입니다. 제대로 살았다란 바른 믿음으로 살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로 최고로 가치 있는 덕목입니다. 이것을 잡지 못하면 모든 것들을 다 놓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게 제대로 살다가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에서 멋지게 삶을 살다가 간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힘주어서 가르칩니다.
대단한 결심입니다. 절대신앙으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을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우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믿느냐 안 믿느냐의 질문, 즉 생명책이 네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제대로 살았느냐, 즉 상급받을 일 얼마나 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것만 묻고 그것만 찾을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찾으시는 요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이렇게ㅜ고백하고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 그들이 년말을 맞이하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복된 일입니다. 믿음의 부요한 자, 사명자로 삶을 살아가는 자들, 이런 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들로 년말을 맞으시기 축복합니다. 이런 인생의 길을 걸으시기 축복합니다.
3)여기까지 온 나를 칭찬해
여기까지 오고 나니 자기를 자랑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러웠습니다. 자기에게 감사했습니다. 물론 혼자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려온 자기가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칭찬해야 합니다. 이제 자기에게 사랑해, 수고했어, 잘했어라고 엄청난 칭찬을 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치며 칭찬해도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응원단을 보내실 것입니다. 천사를 보내고 힘찬 응원을 하실 것입니다.
돌아보면 나만 아닌 동역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용기요, 힘이요, 감격입니다. 인생의 경주장에서 나 혼자가 아닌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한 일입니다. 혼자 달리면 외롭습니다. 혼자 달리면 쉽게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같이 달리고 같이 갈 사람이 있다 그건 정말 귀하고 귀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같이 가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동갑네기요 그 다음은 친구가 되고 그 다음은 동기가 되고 그 다음은 경쟁자가 되다가 마지막에는 불행하게도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코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갑네기는 다음은 친구가 되고 그 다음은 동기가 되고 그 다음은 동역자가 되고 다음은 일생을 함께 가는 동지가 되고 다음은 반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생을 같이 가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이게 무척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같이 달려갈 동역자, 그게 귀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든지 나만 살겠다고 하면 그게 추해지기 쉽습니다. 인생은 무인도에 가서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를 나눠가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나 사람들이나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가 win-win해야 합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공동체의 원리입니다.
자기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자기를 후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정말 자기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상을 주어야 합니다. 1년 내내 사고 안 당하고, 병마를 피해 가고 그랬다면 그걸로 감사해야 합니다. 아니 그러하지 않았을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엄청난 어려움을 당했을지라도 그래도 헤처 나온 나를 칭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나를 칭찬하세요, 용기를 주세요, 감사를 표하세요, 상급을 주세요, 내가 오늘도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걸 정말 감사하게요, 사랑하세요.
6,7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할렐루야!
2. “이제 후로 나는”
“이제 후로는 나를” 그럼 이제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바울 사도는 여기에 대하여서도 우리에게 정확하게 앞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1)하나님을 만나고
우리들 모두 앞에는 언젠가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즉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날에 의로운 재판장으로 나에게 나타나실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후로 나는 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만나는 날, 그날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다 그 분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오라 하시면 이 영혼 들어 가겠네
언제나 우리는 주님 만날 준비자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그게 가장 귀한 일입니다. 정말 귀하고 귀한 일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그 앞에 설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게 앞으로, 아니 내 모든 사람에서 가장 엄숙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그걸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들의 마디는 4마디입니다. 어머니 배 속의 10개월의 기간, 이 세상에 태어나서의 개인차의 인생들의 기간들, 그리고 다음 세상으로 옮겨가는 기간들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다음의 세상에서 반드시 하나님 앞을 거치게 됩니다. 그 앞을 지나 갈 때에 반드시 모두가 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미국에 간다, 중국에 간다, 그 지역에 가서는 반드시 공항에서 입국에 대하여 적법한 대상인지 아닌지를 검사받게 됩니다. 어제 말로 중국 북경에서 오래 동안 선교하던 선교사의 아내가 북경 공항에서 입국거절을 당하였는데 북경에 있던 남편도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천국도 이와 같이 다 천국 입성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평생을 내가 하나님 앞에 선다, 그걸 생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내가 우리 하나님 앞에 간다, 그걸 생가하시기 바랍니다. 그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오라 하시면 이 영혼 들어 가겠네. 그렇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예수님을 만나고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우리는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이 심판을 성경이 가르치기를 요5:22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하나님은 그 심판을 우리 주님께 다 맡겼다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천국 입성을 위하여 우리 주님, 예수님이 그 심판의 일을 맡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생을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그 주님이 내가 천국 입성을 하려는 그 현장에서 나의 심판자로 서신다니 그분이 바로 나의 신랑인데, 이게 얼마나 어드밴티지가 많겠습니까? 정말 감격입니다. 나의 신랑이 나를 담당하여 천국에 들어가는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다루신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이지요, 정말로 할렐루야입니다.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내 주님, 그 주님이 나를 담당하십니다. 그 주님이 내 문제를 취급하십니다. 그 주님이 나를 맡아서 정리하십니다. 이게 감격이지요. 엄청난 축복입니다.
역시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고 기억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 가려면 반드시 공항 검색대를 거쳐야 합니다. 누구도 그냥 갈 수가 없습니다. 천국도 이와 같습니다. 반드시 심판대를 거쳐야 합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우리 주님을 만나고 그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오라 하시면 이 영혼 들어 가겠네” 그렇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3)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제 내가 하나님을 만나면 나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상급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왜요? 내가 열심히 믿음을 지켰고 사명자로 달려왔고 천국을 사모하며 달려 왔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런 복을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셨다 그 말입니다.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정말 감격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엄청난 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저에게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걸 확신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면류관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믿음의 확신입니다. 감격입니다. 정말 정말 감격입니다. 이런 감격이 바울사도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정말 신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신나게 전도하고 신나게 선교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바울입니다. 감격입니다. 아멘입니다.
면류관을 바라보는 신앙인, 이게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게 우리들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입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감격이지요. 그리고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입니다. 감격입니다. 아멘입니다.
현재의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입니다. 이제 정리할 시간입니다.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장사를 더 하겠다고 하면 그건 오버입니다. 이제 한 해를 정리할 시간입니다. 이미 여기까지 왓습니다. 벌써 후회하면 안됩니다.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입니다. 이걸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걸 아는 것이 복입니다. 못가 그러면 안됩니다. 시간이 되면 자연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아멘입니다,
하나님을 보세요. 상급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맞으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격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지키시고 돌보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리 오너라 함께 같이 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요 싫어요, 노라고 응대하면 안됩니다.
맺음 : 다음 주에 공동회의가 잘 되면 이 설교가 제가 담임목사로 주일 강단에서 하는 마지막 설교가 될 듯합니다. 1월부터는 다음에 오실 목사님이 설교하시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주일에는 설교 한 번은 제가 하게 될 것이구요. 사랑하는 일산교회 성도 여러분,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여기에 우리가 섰습니다.
1. “지금까지 나는”
6,7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달려갈 길-사명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2)믿음을 지켰으니–신앙을 지켰습니다.
3)여기까지 온 나를 칭찬해야 합니다.
2. “이제 후로 나는”
1)하나님을 만나고
2)예수님을 만나고
3)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할렐루야! 끝까지 바울사도처럼 믿음의 경주자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