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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16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

본문 :

본문 :요14:27-29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다락방설교에서 강조하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는 법, 3가지는 첫째는 기도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라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3번째로는 평안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는 방법은 평안함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평안하고 누구보다 안정된 영적상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영생입니다. 영원히 죽어 지옥 갈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영생은 우리 모든 인류가 받은 가장 귀한 축복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가지고 누릴 행복입니다. 모든 인류는 누구나 행복을 기다리며 이를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마음이 평안해야만 얻을 수가 있는 열매입니다. 잠언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세계를 위하여 영생을 주셨고 현재 세계를 위하여 행복을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보장한 선물입니다.

다락방 설교를 하신 우리 예수님은 그 설교의 맨 마지막 장 16장, 마지막 절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평안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바로 이런 평안함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아멘입니다. 너희 모두는 다 내가 주는 이 평안함을 가져, 그래서 이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런 평안함으로 고별의 설교를 마무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들이 많이 있지만 우선 드러나는 표식 한 가지는 그 내면의 안에 평안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그 모든 것들을 뛰어 넘는 평안함, 그 모든 것들을 넘어 그 다음의 환경을 바라보면서 갖는 평안함,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평안함입니다. 이런 평안함은 세상의 평안과 다르고 환경 때문에 주어지는 평안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그런 평안함을 제자들에게 보장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설교를 시작하실 그 순간에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설교의 마무리는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가 환란을 당하더라도 담대하여라 그리고 세상에서 평안을 누려라 라고 결론하셨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사는 법, 평안을 누리는 일입니다.

1. 세상이 주는 평안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전혀 다른 평안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평안함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돈에서 무엇인가 평안을 얻어 보려고 열심히 돈을 법니다. 그 결과 평안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눅12:19절을 보면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는 평안이 있습니다. 출세에서 평안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평안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에서 오는 평안함도 정말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면 정말 평안함을 누리며 살게 되고 행복해지기 마련입니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된다고 해서, 문제를 가진 사람이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참으로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혜가 높아진다고 해서 평안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환경도 인간에게 결코 영원하고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평안은 문제 해결로 어느 정도는 가능해 집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없어져야 평안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인생은 문제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없이 세상을 살려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 없는 평안은 죽음의 평안입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은 문제와 문제의 연속입니다. 

세상에 주는 평안이란 자기의 요구가 해결되어주는 결과이고 욕구 충족의 결과일 따름입니다. 단지 자기가 바라고 소원하던 그 일이 성취됨의 결과고 거기에서 오는 평안일 따름입니다. 남보다 더 가지고 다 이루어서 오는 성취의 만족함일 따름입니다. 이런 만족과 평안은 일시적인 평안이요 만족함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 성취라는 것이 한이 없습니다. 인간은 끝없는 욕구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정말 평안하게 일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평생 동안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일이 잘 안되어서 고생한다기 보다 욕심 때문에 고생합니다. 욕심 때문에 자기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고생시키고 가족들도 어렵게 만들고 상황이 안 좋게 하고 나아가서는 엄청난 고생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돈을 벌어도 선하게 쓸 줄 모르고 주책없이 돈 자랑하다가 자기도 고생하고 이웃도 고생시키시기 마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마디로 하면 모든 사람은 죄 때문에 고생하고 죄에게 끌려다니며 살아가기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세상이 주는 평안은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진정한 평안도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요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2. 주님이 주시는 평안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우리 주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렇습니다. 주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의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그 평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하십니다.

참된 평안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두 사람의 화가가 ‘평안’이란 주제로 각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빛을 발하며 잔잔하게 뻗어 있는 맑은 호수가 마음을 평안함을 상징하는 그러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이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전혀 엉뚱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보라를 일으키고 천둥이 치고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의 그림이었습니다. 그 폭포 옆에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자작나무 위로 둥우리를 틀고 로빈세 한 마리가 물보라에 흠뻑 젖은 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화가는 이 새의 모습이 바로 마음의 평안의 나타낸 것이라고 그렸던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후자가 참된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란 골짜기에 자리잡은 잔잔한 호수 같은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바람이 없기 때문에 조용한 것뿐이고 비가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맑게 보일 뿐입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비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위험한 요소가 얼마든지 있지만 그러나 환경 때문에 잠깐 동안 고요한 것 뿐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마음의 평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은 폭포와 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평안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평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함, 그 평안을 받으면 세상이 주는 그 평안과 전혀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주께서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입니다. 할렐루야!. 그 평안함이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 평안함이 진정한 평안입니다.

15: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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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도 있고 그 예수님이 기쁨 자체이시기도 합니다. 기쁨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기쁨이 가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시던 중에 몹시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피곤하신 주님은 배의 고물을 베고 곤히 주무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풍랑이 일었습니다. 곧 이어서 돌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여전히 주무셨고 두려웠던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면서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 봅니까?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데 주무시려 합니까?”라고 깨웁니다. 그러자 잠이 깨신 주님은 바다를 꾸짖으시면서 잔잔하게 해 주셨고 제자들은 무사히 건너편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풍랑을 헤치며 노 저어 가십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일었던 것 같은 돌풍도 있을 것이고 바울을 태우며 로마로 가던 알렉산드리아 배가 만난 지중해의 14일 간의 유라굴로 광풍도 있을 것입니다. 캄캄한 밤 사나온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노 저어 가는 것과도 같은 그런 시련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그런 풍랑에서도 주님을 더 신뢰하면서 참 평안을 누리고 경험하시기 축복합니다.

15:9,10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눅1:78,79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섬기며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평안함을 주신다, 그런 조건절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조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참된 평안과 기쁨이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놀라운 역사하심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십니다. 과거에도 인도셨고 현재에도 여전히 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창조주시며 피조물을 운영하시는 주관자 주님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창조자 하나님, 그 주관자 우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내 삶에 아무리 문제가 많이 있고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를 돕고 지켜주시는 우리 하나님, 섭리자 우리 하나님이 아버지로 계시면 여전히 우리는 평안함을 누리고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 염려, 내 모든 문제들,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지켜 주시며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

3.  맡기며 얻는 평안
14:1-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맡기면 마음에 근심하지 않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시고 해결하시고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 응답을 보장하셨다는 약속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며 염려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로 옮겨 드리는 일입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백 번의 근심보다 한 번의 기도가 낫고 천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감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훨씬 더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늘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맡기면 우리 하나님이 맡으시고 책임지십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굳게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맡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이게 우리와 예수님이 맺은 굳고 굳은 약속입니다.

요16: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이 직접하신 보장이요 약속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정말 정말입니다. 이런 확실한 보장이 세상 그 어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 아무런 염려하지 말고 그 염려 꽁꽁 묶어 두고 그리고 기도만 하여라, 기도가 힘이다, 기도가 능력이다, 기도가 엄청난 보장이다 그런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기쁨 충만하리라, 평안이 가득하리라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 내 아버지가 내 문제를 맡으시고 책임지신다, 그렇게 믿고 맡기면 나에게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문제가 내 앞에 있고 숙제가 내 코 앞에 다가 왔다고 하더라도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우리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 책임지신다, 해결자이시다 라고 믿고 맡기면 그분이 맡아주십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하리라,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노력으로 반드시 해결하리라 그러면 그게 긴장이 되고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게 바로 무거운 짐입니다. 그게 불신입니다. 그게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불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계시다, 나를 도우신다, 해결하신다 그리고 믿고 맡기면 그 안에 평안함이 찾아오고 그 안에 감격이 찾아옵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정말 돈은 손으로 받고 통장으로 받습니다. 보화도 손으로 받습니다. 집은 등기로 받습니다. 그런데 평안은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주님의 평안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 참 평안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탐욕, 우리의 분노, 우리의 시기, 질투, 교만한 마음들,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빼앗습니다. 평안한 마음을 원한다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참된 평안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마음의 만족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에 대하여 아주 명언을 말했습니다. 그게 빌4:10-13절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다음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단호하게 진리를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세상이 아무리 시끌벅쩍하여도 우리의 가정에는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은 금은보화가 없어도 살 수가 있습니다. 값비싼 가구가 없어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값비싼 고급차나 고급 외제차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좋은 집이 없어도 고가의 명품이 없어도 정말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좋은 집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은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우리 주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 평안함을 얻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의 이야기

맺음 :
주님은 고별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게 요한복음14,15,16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설교의 핵심이 3가지입니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렇게 세상에 나가서 살어’ 그런 의미의 설교이십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사는 방법입니다. 오늘 성령님이 최목사를 통하여 일산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사는 방법 1, 즉 제1원리는 ‘기도하며 살아라’는 말씀이었고, 제2원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라’는 말씀이었고 그리고 오늘 제3원리는 ‘평안함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 성령, 평안 이 세가지가 예수님의 고별설교의 핵심부분입니다.

원래의 프로그램대로 청빙문제가 원만하게 진행 되었다면 오늘의 이 설교가 제가 일산교회의 담임목사로 하는 마무리 설교였을 것입니다. 이 마무리설교를 예수님의 마무리 설교로 하려고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성탄절 설교가 남고 그야말로 12월 말 주 마지막 주일설교가 남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준비할 때만하여도 청빙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앞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어제 이 청빙문제가 다 마무리 되어서 결국 원래의 프로그램대로 제가 설교를 마무리 하게 되어 갈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자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사는 법, 3은 ‘평안함을 유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설교의 맨 마지막 말씀을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16장 33절로 마무리하십니다. 보세요. 주께서 이렇게 설교하신 설교 이유가 곧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그런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평강과 희락, 이것이 여러분들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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