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경공부-이미지-2.jpg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말씀과 찬양.png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29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화평이 답입니다.

본문 :

본문 : 왕상 12:6-11

예수님이 탄생하시자 천사들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벌어진 그 틈을 메우기 위하여 오신 화평의 메시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평화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영원히 저주받아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구원하시려고 평화의 사도, 화평의 사도로 이 땅에 내려 오셨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성경 에베소서는 예수가 누구인신가를 다루는 책입니다. 그 중에서 2:12절 이하는 이 평화의 예수님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입니다. 14-16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화평하게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보훈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복이 있는 자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된다는 엄청난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의 인생에서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산상보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화평이 답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평화를 만들고 화평을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평이란 이루기가 무척 힘든 과정입니다. 또 화평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순간순간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렵게 이룬 화평과 평화를 허무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야말로 십년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간단하게 허물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이 화평의 관계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듯이 남북이 평화로 공존하고 화평의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현실입니까?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평화를 만들고 쌓기란 너무너무 어렵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류사회에서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보냅니다. 인류사회가 가진 상 가운데 최고의 상이 노벨상입니다. 그 가운데서 평화상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상으로 평가를 합니다. 노벨평화상, 듣기만 하여도 설레고 감동하는 상입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사람들을 그렇게 귀하여 여기고 축복하는 일입니다. 주님도 화평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복을 주신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건 정말 엄청난 복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까? 화평케 하는 자, 이 세상에 화평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그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라라고 가르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화평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그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평화와 갈등, 갈등과 평화 속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이게 세상사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평화를 선택하면 평화가 다가옵니다. 갈등을 선택하면 갈등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선택하십니까? 문제는 선택입니다. 이스라엘을 분열로 몰고 간 르호보암 왕이 우리에게 잘 교훈합니다. 결론입니다. 화평이 답입니다. 평화가 답입니다. 화평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화평을 심읍시다.

1. 화합이냐 갈등이냐?
4절,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 왕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제4대 왕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 초기에 아주 중요한 선택의 고비가 다가왔습니다. 솔로몬 왕이 서거하자 그 동안 왕과 대립관계였던 여로보암과 부하들이 새 왕 르호보암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안합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고 르호보암의 마음을 타진합니다. 이제 갓 왕이 된 르호보암에게 선택의 갈림길이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 과연 어떻게 대답하여야 이들을 제대로 이끌어 가고 국가를 다스려갈지의 고비였습니다. 

이 때 왕이 선택한 방법입니다. 
5절,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어린 르호보암 왕이 지혜롭게 대답하였습니다.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는 말입니다. 당장에 어떤 말을 하고 대답을 하기보다 갔다고 3일 후에 다시 오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3일 동안 기도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어린 왕이 지혜롭게 대답한 말입니다. 크고 작은 갈림길에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이게 바른 대처방안입니다.

인생에는 크고 작고 간에 이러한 고비의 갈림길들이 있습니다. 그 갈림길에서 화합을 선택하느냐, 갈등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화합을 선택하면 그 결과로 평화와 화평을 누리게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과 아름답게 조화롭게 살아 갈 수 있지만 그러나 갈등을 선택하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도 갈등하고 이웃들과도 소리가 나고 갈등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갈림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화합을 선택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합이냐 갈등이냐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이든지 선택하기란 쉽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고 전개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잘 선택하여야 하며 특히 평화와 조화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갈등을 취하면 하나님과도 갈등하고 이웃과도 엄청난 갈등의 삶을 살기 마련입니다.

그 3일 동안 르호보암은 대책을 세웁니다. 우선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함께 모셨던 노정객들과 의논하였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라고 물었습니다. 경험이 많고 경우가 바른 그들은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제안합니다. 왕이 먼저 낮추고 겸손하게 다가가서 ‘내가 여러분들을 섬기겠나이다’라고 대답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정말 왕에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란 경험담을 제시하였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응답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왕은 이번에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전혀 다른 대처방안을 세시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라고 앞의 노인들과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냅니다. 요즘 말로는 초장부터 잡아야 합니다, 제대로 맛을 보여야 하고 길을 들여야 잘 잡아 갈 것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자 아직 전혀 국정경험이 없었던 르호보암 왕은 그만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왕은 지혜 많은 노인들의 충언을 묵살하고 어리고 경험이 없는 그야말로 야생마 같은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화평은 멀리하고 갈등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 지금까지 개국 이래 아브라함으로부터 천 년간을, 사울 왕으로부터는 120년을 이스라엘이라는 단일국가로 이어오던 나라가 남북으로 두 나라로 나눠져 그만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둘로 갈라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르호보암의 순간의 선택이 자기의 조국 1천년 단일민족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둘로 나뉘어 갈라지게 하였고 계속하여 전쟁하고 전투하는 그런 관계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자기의 국가를 남북으로 갈라지게 하고 둘로 나눈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정말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을 잘 해야 하는데 그걸 잘못한 결과입니다. 좋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있지만 잘못 선택하면 정말 잘못 가게 되고 후유증도 많아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화평을 이루고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냥 아무렇게 쉽게 선택해 버리면 그건 아주 곤란한 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잘 선택하고 잘 판단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결과도 안정됩니다.

그에게만 이런 선택의 갈림길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런 선택의 갈림길이 있고 고비가 있습니다. 이때에 두가지의 속삭임들이 있습니다. 화합이냐 갈등이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고비가 있고 제게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화합을 선택할 것인가, 갈등을 선택할 것인가는 바로 당사자의 선택의 몫입니다. 평화할 거냐? 갈등할거냐는 그 선택의 결과입니다. 화합을 선택하면 평화가 오지만 갈등을 선택하면 갈등이 찾아옵니다. 갈등은 불행을 가져오고 갈등은 여태까지 누리던 아름다운 행복마저도 송두리째 뽑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선택의 순간에 평화를 선택하고 조화를 선택해야 제대로 인생의 길을 아름답게 걸어갈 수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있을 때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화평을 선택해야 합니다. 공연히 힘자랑한다고 갈등을 선택하면 의외로 그 후유증이 크고 지불할 댓가가 많아집니다. 힘이 있다고 갈등을 선택하고 이웃과 담을 쌓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건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입니다. 화평하려면 상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의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화평이냐 갈등이냐 그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할 것들입니다. 히12: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롬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2. 화평을 선택하려면 댓가가 필요합니다. 
7절,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르호보암 왕의 질문에 대한 어른들의 대답입니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만약 그렇게만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는 대처방안입니다. 바른 대처방법입니다. 전재조건입니다. 댓가입니다. ‘왕이 먼저 하실 일입니다’입니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입니다. 그러면야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라고 확신하며 조언하였습니다. 화평이란 막연히 오는 결과가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댓가가 필요합니다. 그 댓가는 왕이 먼저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전제조건이 바탕이 되면 분명히 백성들은 왕을 평생 동안 섬길 것입니다라는 강조점입니다. 한마디로 댓가를 지불하세요입니다. 이렇게 화평이라는 열매는 댓가를 지불하고 얻는 열매입니다.

언젠가 읽은 한 글귀가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낮은 섬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그래도’입니다”라고. 아마도 이 문구의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래도 자신을 낮추고 사는 사람, 그래도 겸손한 사람, 거기서 평화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을 내려야 하고 섬겨야 화평을 심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을 원하시나요, 평화를 원하고 화평을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그래도’ ‘그래도’ 자신을 죽이고 ‘그래도’ 자신을 내리세요, 그래도 자신을 낮추세요, 그래도, 화평을 선택하세요, 그래도여야 그에게 화평도, 평화도, 조화도, 더불어 하는 일에도 그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화평은 댓가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하고 의견이 강하였던 르호보암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화평을 선택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조그만 것에 다 자존심이 상하고, 조그만 일에 자신의 자존심을 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결코 화평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절대로 나는 못 굽혀, 죽어도 나는 못 내려, 내가 왜 먼저 섬겨, 그런 사람들은 이웃과 화평을 논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사고구조의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꺾였으면 꺾였지, 절대로 휘어지지는 않아’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내리는 댓가지불, 그래야 열매로 화평이 주어지는데 그러나 댓가지불이 안되면 화평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화평은 댓가를 필요로 합니다.

또, 선택의 순간에는 자신의 입장이나 유불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화합이나 화평이 가능해집니다. 르호보암 왕처럼 감정으로 대하면 화합하지 못합니다. 노인들은 충언은 정말 옳은 방안이었지만 반대로 어린 사람들은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라고 상대를 누르고 억압하고 무시하도록 권고합니다. 왕에게 으스대도록 만듭니다. 그러자 어리석은 왕은 ‘내가 백성들을 섬겨 어림도 없지, 나는 전갈로 다스려야지’ 라면서 자기의 댓가지불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왕이 된 르호보암이 자신을 먼저 내렸더라면 역사가 달랐을 터인데, 그런데 그걸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 꼬이고 접혀 버린 것입니다. 

1956년 남미의 에콰도르 열대 우림 한 지역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20대의 청년 선교사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수개월 동안 외다니 부족의 언어를 배우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경비행기로 식품과 의약품과 옷가지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경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려서 와다니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한지 5일째 그들의 소식은 끊어졌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그들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을 찾던 사람들은 해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총이 있었으나 발사되지 않았고 그들은 죽었던 것입니다.

선교를 떠나기 전 어린 아들은 아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빠 만약 와다니족이 아빠를 공격한다면 아빠는 총을 쏠건가요?” 그 때 아빠는 아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총을 쏘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단다.” “그럼 아빠 딱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꼭 네 엄마처럼 말하는 구나 그게 뭔데?” “만약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약속해 주세요.” “무슨 말?...” “와다니족 언어인데요. 브아..비아..눔바. 나는 당신의 진실한 친구입니다”라고 말하세요. 

그렇습니다. 짐 엘리엇은 공격해 오는 그들에게 총을 쏘지 않았고 죽어가면서 “브아..비아..눔바. 나는 당신의 진실한 친구입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라이프지와 타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며 분노했습니다. “이게 무슨 낭비인가? (What a waste)” 한 기자가 짐 엘리엇의 아내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녀는 그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낭비라니요?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야 꿈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아내 다섯 명은 자신의 어린 아이를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느 날 와다니족 추장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5년 전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다시 오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와다니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짐 엘리엇을 죽인 청년은 와다니족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와다니족의 추장이 빌리 그레함이 주도하는 한 예배에서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죽인 그 사람들을 오히려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분노와 속상함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은 결과입니다. 화평은 이렇게 자신을 내려 놓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화합을 선택하면 자신도 평화를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까이 일하던 직장의 동료가 갑자기 말도 안하고 몹시 냉랭한 태도를 보이자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무척 곤란하고 갈등이 생기더랍니다. 직장 동료의 그러한 태도가 가시처럼 마음에 상처를 주고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려 애를 쓰곤 하여도 계속 그 일이 마음에 쓰이고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더랍니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깨닫게 하시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오해가 있다면 풀리게 하여 주셔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그에게 찾아가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는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말씀이 떠 올라서 용기를 내어서 찾아가서 마음을 열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하고 덮어 달라고 말했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 동료가 하는 말이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서운한 것도 아니라 집안에 힘든 일이 있었다며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그들은 둘이서 같이 그 일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하였답니다. 그리고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져서 편하게 일하는 관계가 되었답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내리고 먼저 찾아가고 사랑과 인내의 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열고 상대방에게 다가갔을 때에 소중한 관계회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화평은 이렇게 자신을 내리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승리자들인 것입니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겨라 주가 돌보시리 /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3. 선택은 간단하지만 결과는 무척이나 큽니다. 
16절,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왕을 도와 주던 노인들의 많은 경험을 들어 평화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경험도 없이 자기와 함께 자란 어린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백성들을 무겁게 채찍하는 정책을 채택하였습니다. 화합을 버리고 갈등을 선택한 르호보암 왕입니다. 왕의 선택의 결과는 곧 바로 나타났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백성들이 왕의 선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친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순간의 선택이 결국 아브라함의 나라, 이삭의 나라, 야곱의 나라, 다윗 왕의 나라, 솔로몬 왕의 1000년 나라를 남북으로 나누어 르호보암의 유다와 여로보암의 이스라엘로 둘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화합을 멀리하고 갈등을 선택하고 나니까 드디어 갈등으로 갈등으로 이어져 버렸습니다. 화합은 평화를 가져오지만 갈등은 당연히 갈등을 가져오는 법입니다. 이렇게 르호보암의 단순한 선택은, 간단한 순간의 선택이 그 결과는 엄청난 것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간단한 선택에 가장 큰 비극의 결과를 가져온 사건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선택입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간단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저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런 선악과를 따먹은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고전15:22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렇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사망이 들어오고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 그걸 참지 못하고 따 먹은 결과입니다. 참으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망쳐버린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낳아 주리라는 말씀까지 듣고 하늘을 보라 그리고 큰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아내의 몸종인 하갈과 잠을 자고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랬다가 눈물로 그를 광야로 내어 보내야 하였고 그 결과 이스마엘이라는 후손을 낳게 하고 결국 오늘의 이 세계는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이삭의 후손으로 쫙 갈라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주난민도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간단한 선택의 결과로 지금도 이 세계는 테러, 자살 폭탄, 전쟁, 핵 등, 온갖 공포와 갈등이라는 무지무지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에서의 팟죽선택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쉬운 선택은 감정이 가는대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나쁜 그대로 선택하고 기분이 좋으면 좋은 그대로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골치가 아플 일도 없습니다. 머리 썩힐 일도 없습니다. 감정이 가는 대로 기분이 내키는 그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를 못합니다.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내 감정이 가는 그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동물적인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분 나쁘면 신앙이고 채면이고 뭐고 다 접습니다. 그리고 감정대로 해 대기도 하고 만나기 싫다고 얼굴도 안보고 그럽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제대로 안됩니다. 그 자신의 감정은 해소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일은 풀려지지 않고 꼬이고 꼬이고 그럽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가끔 보면 화를 불같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 자기는 이래도 뒤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뒤끝은 없는지 몰라도 감정이 간다고 그대로 다 쏟아 버리면 상대는 어떻게 됩니까? 자기는 시원할지 몰라도 그걸 그대로 다 받은 상대의 감정이나 기분은 어떻게 되느냐 그 말입니다. 끝까지 늘 같은 말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감정을 그대로 다 쏟기 전에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방을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내는 화가 사람들 사이를 갈라지게 하고 화평을 깨어버리게 되어집니다. 선택은 간단하지만 그 결과는 정말 엄청나게도 합니다.

서로 공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평화가 주어집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를 영세중립국이라고 합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와도 평화를 가지고, 어느 나라와도 결코 전쟁을 하지 아니하겠다라고 선포를 한 나라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비록 조그만 나라이지만 그들은 평화를 유지하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누가 평화를 가지냐? 마음을 넓히고 자신을 내리고 내가 먼저 다가가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손을 잡고 말하고 눈을 쳐다보면서 대화를 하고 그렇게 다가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 사람이 평화를 만들고 조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모든 분들이 다 그러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최근 제주도에 온 예멘국민들의 난민사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앞장 서서 기독교가 이들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복잡한 사건입니다. 최근에 기독교 모 단체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간단합니다.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범위내에서 해답을 찾자는 의견입니다. “이슬람 신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수 인류의 종교임에 틀림없지만, 이슬람의 정교일치의 특성상 자신들의 종교만을 주장하여 모든 생활영역에서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실체”인 것이 문제입니다. 즉 그들은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보기 때문에 우리사회와 갈등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슬람 난민의 문제는 그들이 비이슬람국가에 들어와 분리하고 게토화, 즉 바꾸려 해서 갈등과 분쟁을 확산시키기보다, 차라리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OIC, 즉 이슬람 협력 기구 57개국 내에서 인도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즉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바꾸려 하거나 혹 그들이 개종하면 때로는 살해위협과 사회격리를 받은 경우가 많으니 그런 위협이 없는 나라로 가서 자신들의 종교를 유지하고도 사는 게 인도적 방안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번에 제주도에 온 사람들도 예멘에서 온 정치적 난민이 아니라 말레이지아에서 온 취업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다시 이슬람국인 말레이로 돌려보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주무비자입국은 우리 정부가 국경을 개방한 것 같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부당하게 난민을 유인하는 제도입니다. 1970년대부터 한국 근로자들이 중동건설현장에 체류할 때, 우리의 문화를 포기하고 이슬람 사회의 규범을 존중해야 했고, 그들의 실정법으로 형사처벌을 받기까지 했고, 우리 대통령도 방문했을 때 히잡을 썼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 국민이 이슬람국에 무비자로 갈 수 있는가, 마음대로 종교 활동과 선교를 할 수 있는가, 상대국의 사회문화적 규범과 사회통념을 무시하고 분리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렇게 만들었다는 잘못입니다. 어디든지 서로 공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평화가 주어집니다.

4.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마18: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누구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조그만 것들을 못 풀고 계속하여 매고 매면 그는 그 매는 것에 늘 매여 버립니다. 풀어가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도 풀고, 가정에서도 풀고, 이웃과도 풀고, 교회에서도 하나하나 풀고, 직장에서도 풀면서 가십시오. 묶고 어렵게 하고 꼬이게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묶지 말고 풀면서 하나하나 해결하여 가면서 살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이고 우리가 풀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해결되고 하늘의 복이 평화의 복이 내려오고 하나님도 미소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먼저 하늘을 향하여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평화해야 합니다. 그 길은 나를 내려 놓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내리고 나를 무릎 꿇려야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라고 겸손하게 손들고 나오고 겸손하게 엎드리고 경배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하늘을 여십니다. 은혜로 내려주십니다. 축복으로 내려 주십니다. 이 길이 신앙의 첫걸음이요 은혜의 첫걸음이며 축복의 첫걸음입니다. 하늘이 열려야 평화가 오고 은혜가 오며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내가 풀면 하나님도 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묶으면 하나님도 묶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하여 풀고 다가가고 열어가야 새로운 사람이 시작이 되고 역사가 나타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르호보암이 풀지 못하고 묶어버리니까 평화가 묶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엄청난 진리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무게를 실어서 하신 권면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제에게 원망들을 들을 것이 있다면 그걸 먼저 풀고 놓아주고 그리고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의 마음에 그 어떤 것 그것을 묶어 놓고 꽉 붙잡고 있는 것은 없나요? 그걸 놓아 버리세요. 해방시켜 주세요. 그러면 내가 편하고 내가 해방이 됩니다. 이게 은혜받는 원리요 이게 평화의 원리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풀면서 살도록 합시다. 화평이 해답입니다. 예수님은 경고하시기를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풀어주세요. 풀고 사세요. 평화를 선택하세요. 화평을 세우세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말 화평이 해답입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아멘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맺음: 갈등이냐 평화냐? 그건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서 매순간 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화평을 선택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다. 거기에는 댓가를 드려야 합니다. 댓가는 작지만 결과는 엄청납니다.

1. 화합이냐 갈등이냐?
2. 화평을 선택하려면 댓가가 필요합니다.

3. 선택은 간단하지만 결과는 무척이나 큽니다. 
4.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