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경공부-이미지-2.jpg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말씀과 찬양.png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Aug 19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

본문 :

본문 : 롬 12:1-2

우리가 지금 드리는 이 예배, 예배가 무엇이냐? 여기에 대한 정의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배를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아바드’(abad)로 표현하는데 이 말의 뜻은 ‘일한다’(work), ‘노동한다’ (labor), ‘섬긴다’(serve)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또 신약의 헬라어로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프로스쿠네오’(proskuneo)인데 이 말의 뜻은 ‘손에 키스하다’, ‘무릎을 꿇다’, ‘허리를 굽힌다’라는 뜻으로 이는 예배자가 자신의 몸을 꿇어 엎드리는 외부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신, 구약에 나타난 예배에 대한 단어를 종합하면 예배는 주관적인 경험인 내적인 마음의 태도 즉 경외, 존경, 경탄과 객관적인 행위인 외적인 행동의 엎드림, 섬김, 절함의 결합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현대어의 영어로 예배란, ‘worship’이라는 단어로 앵글로색슨어인 worth-ship을 줄인 말입니다. 이 말은 ‘가치를 어떠한 대상에게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단어는 ‘예배 대상에게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경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최상의 존재인 예배대상자에게 예배자가 최상의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려드린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구약에서의 제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한 제도로 희생제사를 통하여 대속의 모형을 보여 주신 것인데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장과 희생물을 통하여 예배하였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외서는 지금까지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한 제사가 예수님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직접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만남이며 대화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 후 인간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하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예배는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편에서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예배입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로 표현하는 예배입니다. 또 다른 예배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생활을 통하여 드리는 일상의 삶의 예배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드리는 그 제사가 제일 귀하고 중요한 가치를 가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어서 드린 제사 이후로는 신약에서는 예배자들이 일상의 삶을 통하여 드리는 예배가 귀중한 예배가 됩니다. 이 두가지 예배가 다 살아 있어야 제대로 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정확하게 표현하고 소중하게 알려주는 말씀이 요한복음 4장과 오늘 본문인 로마서 12장의 말씀입니다. 요4장은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포괄적인 예배말씀이라면 오늘 본문은 예배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 로마서 12장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예배가 무엇이며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아주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안내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세밀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예배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 한 이란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예배자로 자기의 고국 이란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이 이슬람국이어서 어쩌면 자기가 예배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란에 가서 하나님을 전하고 예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리얼리티, 현실의 야기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동호회 같은 모임이 아닙니다. 구경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마음 편하라고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그 예배를 드리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입니다.

 

1.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여기서 정확하게 할 것은 우리 예배의 주체, 즉 예배의 대상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나 교회 같은 인간의 어떤 단체가 아닙니다. 예배의 주체, 예배의 대상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제사를 드리려 하자 하나님의 응답하셨던 것같이 하나님이 주체자이십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대하7:1). 하나님이 솔로몬의 그 예배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의 대상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 만남을 통하여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예배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자기가 드리는 그 예배를 받으시는 예배의 대상자입니다. 예배의 대상자는 사람이나 인간의 그 어떤 것들이 결코 아닙니다. 예배자들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예배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며 예배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배를 드리는 순간은 아주 아주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예배하는 자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예배하는 자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애굽에 살다가 광야로 나왔습니다. 왜 나왔습니까?

출3:18절,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예배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출애굽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이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를 받으시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내 보내신 것입니다. 예배자로 세우려고, 예배드리게 하시려고, 누가?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려 교회로 온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함이며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함을 믿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려 오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오고 그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그 하나님 앞에 서고 그 하나님을 경배하러 온다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선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면 예배자들의 생각부터가 확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 이게 예배입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엄중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예배 대상자이십니다.

 

그래서 시100편은 기록하기를,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예배자의 엄중함입니다.
  
성경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배를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에 예배자리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면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예배로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흐뭇해하시는 예배, 그런 예배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예배의 대상이시고 예배를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이 보셔서 흐뭇해하시고 만족해하시며 기뻐하시는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드리고 섬기고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우리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시며 받지 아니하시는 예배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1:11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봅니다.

사1:11,12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마당만 밟는 예배, 악을 행하는 예배,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이 거부하시겠다고 미리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그러한 예배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가 우리들의 예배를 유심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실 그런 예배가 없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받으시기에 곤비하시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와 전혀 반대로 하나님이 못 견뎌하시며 거부하시는 그런 예배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예배자들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예배자들이며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심각한 말입니다. 정신을 차려서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서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우리의 예배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에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거부하시고 배척하시는 그런 예배자들이 되어선 안된다는 경고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지금보다 더 진중하게 드려야 할 것입니다. 준비하고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른 자세로 잘 갖추어서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도 진중하게 하구요, 찬양도 진지하게 하구요, 말씀도 진지하게 듣구요, 주의 만찬도 진지하게 참여하구요, 헌금도 훨씬 더 진지하게 하구요, 회의도 진지하게 하구요, 자치회 모임도 진지하게 하구요, 예배는 사람들이 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호회 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지금보다 훨씬 더 전심으로 드리고 훨씬 더 진중하게 드려야 합니다. 준비하고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레1:3절,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계4: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시고 흐뭇해하시는 그런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할렐루야!

 

3. 거룩한 예배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말씀은 예배자의 상태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오는 자는 어떤 자여야 합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거룩한 자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요소 중에 거룩성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들, 이게 한 마디로는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소입니다. 이 거룩성이 빠지면 그 예배는 결코 예배다운 예배가 될 수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배자에게 엄중하게 요청하셨습니다.

마5:23,24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예배자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흠이 없는 예배자, 회개하고 정리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서는 예배자, 형제들에게도 원망들을 일이 없는 예배자, 그런 예배자가 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즉 거룩한 예배자로 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자는 먼저 예배의 대상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서 그리고 예배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께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양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님 성 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빛난 영광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볼 수 없도다
거룩하신 이가 주님 밖에 없네 온전히 전능하신 주로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예배가 되려면 먼저는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거룩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배자가 거룩하려면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일찍 와서 엎드려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며 거룩함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체온이 36.5도인데 모든 사람이 그 기본체온을 유지하여야 하듯이 거룩함도 기본적으로 유지하여야 하는 수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거룩함의 수준, 하나님 앞에 예배자는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래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과 설교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찬양하거나 사람의 편에서 찬양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찬양하고 그분의 십자가를 찬양하고 그분의 대속을 찬양하고 그 엄청난 보혈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의 설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찬양하고 십자가를 찬양하는 영광설교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사람에 대한 인본주의가 앞서면 안됩니다. 그러면 강단이 인본주의로 흐려집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시는 분문입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떤 예배자로 서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는 말은 흠이 없다는 말이며 구별되다는 말이며 완전하다란 의미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눈으로 보셔서 과연 우리는 흠없는 거룩한 예배자인가? 혼합됨이 없는 깨끗한 자인가? 철저한 회개로 정말 깨끗한 예배자인가? 하나님은 성회와 함께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시고 견디지 못하신다고 하십니다.

 

미6:6,7,8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4. 살아 있는 예배자.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예배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살아 있는 짐승을 몰고 와서 제사장이 잡아서 죽은 제물을 태워서 예배하였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는 예배자들의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인 것입니다.

 

산 제물이 되려면 예배자들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예배자들의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얻은 참된 기쁨이 살아 있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 주신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감사가 살아 있어야 하고 새생명으로 인하여 얻은 찬양이 살아 있어야 하고 천국 백성이 된 감격이 살아 있어야 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된 살아 있는 생명력으로 인한 감격으로 정말 살아 있는 예배자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생명력이 넘쳐나 흘러야 합니다. 아무런 기쁨도 없는 예배, 감격도 없는 예배, 살아 있는 생명력이 전혀 없으면 죽은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죽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우리 하나님은 피곤해 하십니다, 그래서 지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산 제물로 드리는 산 예배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 몸을 거룩하고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을 구별하고 제대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정신과 능력모든 것을 제대로 잘 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연합함이 아니라 이 세상을 역행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 마음도 몸도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을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변화를 받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 몸도 그렇고 공장도 그렇고 들어가는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IN PUT대로 OUT PUT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마시고 똑 같이 즐기고 그러다가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엄청난 잘못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잔뜩 IN PUT하고서 하나님의 것으로 OUT PUT하려면 안 됩니다. 원리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하게 IN PUT하십시오. 그리고 주일 예배에서 그 IN PUT한 그대로 OUT PUT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일주일 내내 세상의 것으로만 IN PUT하셨다면 성령의 것으로 OUT PUT할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자인 우리의 눈과 귀가 아주 중요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듣느냐,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즉 IN PUT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OUT PUT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듣는 대로 생각하고 보는 대로 사고하기 마련입니다.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고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보는 것도 무척 가려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주일에 외서 엎드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나간 일주일을 만약에 그렇게 살았다면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반듯한 예배자들로 다듬어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다듬고 정리함으로 다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덮으면서 다듬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모든 생각에서 나의 지난 행동까지를 다 덮고 덮어야 합니다. 그리고 찬송하여야 합니다.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죄인 중의 죄인이요 부족한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 하나님께, 그런 나를 택하여 주시고 사랑하시며 은혜 베푸심을 생각할 때 감격하고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감격의 예배가 눈물로 표현되고 기도로 표현되고 감사로 표현되고 찬양으로 표현되고 헌금으로 표현되고 그래야 합니다. 이게 살아 있는 예배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둥둥 떠 다닙니다. 그러나 산 물고기는 살아서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류를 따라서 떠 다니면 안됩니다. 사람들의 소리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면 안됩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죄인 중의 죄인이요 부족한 나를 구원하여 주신 그 하나님께, 그런 나를 택하여 주시고 사랑하시며 은혜 베푸심을 생각할 때 감격하고 감격하면서 드리는 그런 산 재물의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맺음 :
지금까지 못했어도 이제부터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그런 예배를 드리지 못 했다면 이제부터 그런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한 주간의 예배를 살아 있는 예배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흡족해 하시는 예배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예화 / 어릴 적의 제사자들.

 

1.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3. 거룩한 예배
4. 살아 있는 예배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