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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Sep 02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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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본문 :

본문 : 삼상 16:6-13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하다가 보면 앞에 비치는 모니터에 지금 자신이 타고 가는 비행기의 비행에 대한 여러 상황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그런데 장거리 비행하는 고도, 즉 높이가 10,000미터 이상입니다. 10,000미터이면 10km 이상의 높이입니다. 그 높은 곳에서도 지금 어디 정도 가고 있습니다, 그게 다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에 가면 태평양 바다만 내려다 보여 망망대해입니다만 유럽으로 가면 아래가 내려다보이는데 지금 중국을 지나갑니다, 몽골지역입니다, 러시아 어느 지역입니다. 국가가 나오고 지역명도 나옵니다. 정말 10,000여 미터 높이에서도 내려다보면 그 아래 지형이 환하게 다 나옵니다. 세월 좋아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하나님도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다 내려다보시고 계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내려다보신다고 기록합니다. 성경 시편 121편을 보면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데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며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높은 곳에서 지켜보시는 우리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17편).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그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뜻까지도 다 아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눈동자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깊이 감격합니다.

하나님이 높은데서 보십니다. 하나님이 내려다보시다가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마치 1만 미터 높이서 날던 비행기가 어느 지역을 보고 알아보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의 눈에 이새의 아들 다윗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마음에 쏙 든다 그 말입니다. 정말 만족하시고 흡족하시고 어쩜 이런 안성맞춤이냐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행13:22절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 그래서 쓰시려 하는 사람,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얼마나 마음에 드셨기에, 도대체 무얼 보셨기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게 정말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어떤 면을 유심히 보시고 평가하시고 판단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습니다. 부지런히 찾으십니다. 직접 쓰시고 데리고 일하실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부지런히 찾고 또 찾으십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찾기 위하여 살펴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을 찾아서 함께 일을 하시려고 열심히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나시고 그리고 감동하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 가신 분이 두 분이 계십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시대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별로 한 일이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무두셀라를 낳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은 들림을 받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엘리야나 에녹이 같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한 엘리야만 치지만 하나님은 다 같이 인정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업적으로 찾지도 보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1. 사람의 기준, 하나님의 기준
사울 왕에게 실망하신 하나님이 사울을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왕을 세우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선지자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언제까지 그를 위하여 슬퍼하겠느냐?”라고 책망하시며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그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미 한 왕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하신 말씀대로 준비하고는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제사를 드리며 이새의 아들들을 다 청하고 그들 중에서 한 아들에게 기름을 부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6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이 보기로는 큰 아들 엘리압을 보니 키가 훤칠합니다. 용모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는 ‘아 하나님이 이를 보셨구나 이가 하나님이 지명하신 그 왕인가 보다’라고 기름을 부으려 합니다. 그는 ‘과연 이가 맏이로구나, 역시 역시야’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맏이는 역시 맏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사무엘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의 보는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상대의 용모, 키, 모습 그런 외적인 것들을 우선으로 보기 마련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용모, 키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미 큰 키의 사람 사울 왕도 갔고 실패하였습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속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면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인 상태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용모를 봅니다. 키를 봅니다. 겉모습을 봅니다. 세상 말로는 학벌을 보고 경제력을 보며 지위를 보고 높이를 보고 미모를 봅니다. 이뤄 온 흔적을 봅니다. 그리고 판단합니다. 이게 사람들이 보기 쉬운 판단기준입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기준은 실패하기 쉬운 판단기준입니다. 외적인 모습을 보고 겉으로 드러난 것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보고 판단하고, 수치를 보고 드러나 성장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실패합니다. 그러다가 일을 어그러뜨리고 그래서 일을 그르칩니다. 손해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안경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이게 아니다라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교회도 동일합니다. 어느 교회가 담임목회자를 청빙한다고 광고를 하고 신청을 받았는데 지원자가 83여명이 왔더랍니다. 그런데 그 중에 3명 빼고 80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들이더랍니다. 목사가 반드시 박사여야 할 필요는 있습니까? 목사가 반드시 얼마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게 있습니까? 정말 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할 목회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중생한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목사로 확실한 소명을 받고 그 확신을 가진 사람, 주의 종으로서 할 일이 정확하게 분명히 알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 타고난 은사를 개발하여 성도들과 호흡할 사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이런 것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외적인 것들은 이왕이면 가진 것이야 좋지만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말씀입니다. 약2:1절 이하,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 중심을 보시고 내 심령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하나님께 제대로 잘 보여지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다윗처럼 그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속을 보고, 내면을 보고, 중심을 보는 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면을 더 중요시하고 우리도 내면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2. 자기 일에 열심한 다윗
그렇게, 그렇게 첫째가 지나갑니다. 둘째 역시 지나갑니다. 셋째 역시 지나갑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들이 다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이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11절,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지금 이새의 집에서는 다윗의 형들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테다라고 잔득 기대하고 기다리며 행사진행중입니다. 서로가 왕이 되려고 잔득 기대를 가지고 사무엘 선지자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야말로 얼굴을 들이밀고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엄청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다윗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진행형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입니다. 아버지 이새가 말하는 그 막내는 8째 아들 어린 소년 다윗입니다. ‘막내’라는 말은 단순히 순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약자’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대 밖의 사람인 다윗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도, 형제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도 별 가치를 두지 않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왕의 자리에 전혀 안 맞는 사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국의 설교자 찰스 스윈돌은 “우리가 원하는 아름답고, 성공적이고, 능력이 있고, 매력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변화 시킨다. 그 과정이 바로 다윗의 이야기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다윗은 지금 양을 치고 그 양을 돌보며 들에서 자기가 맡은 그 일에 정성을 쏟으며 충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 다윗이 남았나이다 입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입니다. 
 
하나님이 만나서 좋으신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는 그 사람은 바로 성실하게 자기의 일에 열중하는 다윗입니다. 맡겨진 일에 충실한 사람, 세상이 뭐라고 하더라도 그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 그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남들은 왕이 되려고 머리를 싸고 덤비는데 그저 묵묵히 자기의 일만 열심히 하는 다윗입니다. 그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기저기 찾아가지 않은 다윗입니다. 나를 써달라고 이력서를 들고 다닌 다윗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다윗을 보셨습니다. 열심히 자기의 주어진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다윗,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묵묵히 맡겨진 일에 불평하지 아니하고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가 하나님이 찾는 사람입니다. 주위에 보니 형들이 없어요, ‘아니 이 형들이 일을 않고 어디 간 거야?’라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다윗은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뒤로 하고 묵묵히 감사로 일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라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집니까? 왜 알아주지 않느냐고 불평이 올라옵니까? 열심히 일하는 장면을 우리 하나님이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걸로 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마25:21절,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맡겨진 일이라면 그것이 비록 적은 일이라도 충성하는 자가 붙잡히고 그들이 승리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는 자를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충성하는 자를 축복합니다.

3.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눈이 빼어난’ 것은 ‘눈이 반짝임’을 말합니다. 눈이 흐릿하지 않습니다. 반짝 바짝 빛나는 사람입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란 그 ‘얼굴이 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경건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모세처럼 아들다웠습니다. 행7:20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하나님이 보셔서 이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눈이 아름다운 것은 그 내면이 아름답기에 그 아름다움이 겉으로 나타나고 드러난 것입니다. 얼굴이 아름다운 것도 내면이 선하여서 드러난 상태입니다. 어린 다윗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요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셔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바로 이렇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중심에 자리를 잡은 사람, 하나님의 뜻을 그 중심에 품은 사람,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이끌고 인도하시고 그 하나님께 붙잡혀서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아름다운 사람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그런 다윗을 우리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그가 비록 저 들판에서 혼자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그가 비록 형들과 같이 그 복된 자라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보셨고 그를 부르셨고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명하셨습니다.

“얼굴이 아름답더라”
다윗은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얼굴이었을까요? 요즘 연예인처럼 동안이었을까요? 아니면 깎아 만든 배우 같은 미남이었을까요? 어떤 얼굴이었기에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얼굴은 내면이 표현되는 장소입니다. 그 얼굴이 편안하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그리고 은혜스럽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얼굴에 은혜가 담기고 평안이 담깁니다. 얼굴에 원망이 담기면 얼른 은혜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제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짜증내지 마랑야 합니다. 마귀가 틈타는 통로입니다. 감사로 담고 은혜로 담도록 합시다. 그야말로 “은혜 아니면 살아 갈 수가 없네 호흡마져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손을 잡고 일을 맡기시고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은 어렸지만 뭘 제대로 알고 보는 사람입니다. 세상 말로 뭐가 뭔지를 제대로 보고 알고 구분하고 분간하는 사람입니다. 조금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거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셔서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이 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여도 영적인 거장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고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용히 자기 일에 불평없이 그저 감사로 열심하는 다윗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리고 것이 얼굴에 눔에, 삶에 다 드러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시기 축복합니다.

4.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은 이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자격입니다.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람, 즉 성령이 붙잡힌 사람, 이것이 아니 유일한 자격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자격입니다. 하나님도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서 하나님께 붙잡혀서 일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롬8:9,10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여 있으면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롬8:14).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우리는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은 바로 하나님께 붙잡혀서 일을 하게 됩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 잡혀서 번뇌하고 고생할 때에 성령충만한 다윗이 가서 왕을 도와줍니다. 수금을 타고 위로해 주니까 사울 왕을 붙잡았던 악령이 떠나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울 왕이 상쾌하여지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사람 다윗을 하나님이 붙잡고 쓰신 것입니다. 
 
곧 이어서 다음 장인 17장에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쟁이 나타납니다. 골리앗을 만난 다윗은 그 앞에 나가면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고 선포하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물맷돌로 그를 처 죽였습니다. 역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려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여집니다.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누굴 들어서 사용하시는 아버지이십니까? 성령의 사람입니다.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여호와의 영에게 감동된 자를 하나님이 들어서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엄청난 거인 골리앗 앞에 갔을 때도 하나님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무너뜨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물맷돌, 그것이 그의 손에 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도하셨습니다. 복 중의 복이 이런 복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시는 복,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이런 복을 누리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맺음 : 
애플의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이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정말 성공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1955년에 태어나 2011년 췌장암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 정점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하고나서는 기쁨이라고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부, 돈이라는 것은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병석에 누워 내 지난 삶을 회상해 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은 내면이 잘 정리된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원망과 불평하기보다 감사와 안정으로 자기의 일에 성실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뭘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윗처럼 세상이 뭐래도 은혜로 살아가고 감사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우리 하나님은

1. 사람의 기준, 하나님의 기준
2. 자기 일에 열심한 다윗
3.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
4.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다윗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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