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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an 01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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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월 초하루에 할 일

본문 :

본문 : 스7:6-10

2017년도 1월 1일 금년도 첫 주일입니다. 성경의 땅 이스라엘에는 이미 지난 작년 10월에 2017년도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음력을 사용하여서 한 해의 첫 달이 9월 하순이나 10월 초순에 시작되고 그 해의 첫날을 ‘노쉬 햐샤나’라고 부르는데 ‘노쉬’는 ‘머리’란 의미이고 ‘하샤나’란 ‘해’ ‘년’이란 의미로 정월을 의미합니다. 이 노쉬 하샤나에는 관공서에서도 대개 4,5일간은 쉬고 많은 사람들은 회당에 가고 그런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쉬 하샤나, 즉 1월 1일, 즉 정월 초하루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신앙적으로, 국가적으로 쉬면서 한 해를 믿음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유대력에는 지금의 유대력과는 달리 우리의 태양력으로는 3, 4월이 한 해의 첫 달로 이 달을 니산월이라고 합니다. 이 니산월의 14일이 바로 유월절로 지키며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우리나라에 음력과 양력이 있듯이 이스라엘에도 이렇게 성경의 달력이 있는가 하면 음력으로 사용하는 노쉬 햐샤나도 있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노쉬 하샤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즉 음력중심으로 독특한 달력을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이미 2017년이 3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력과 음력이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해의 첫날로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며 국가공휴일입니다. 또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3일의 연휴를 하면서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쉬고 기념하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양력이든지 음력이든지 간에 정월 초하루, 즉 1월 1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만 생각하고 그대로 쉬기만 하면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정월 초하루를 어떻게 생각하고 지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의 시작이 어떻게 가느냐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월 초하루를 더 깊이 생각하고 의미있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도 성장하고 그래야 영적으로도 더 전전하고 그럽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이 설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날이 되어야 1년에 한번 옷 한 벌씩을 부모님이 사다 주셔서 그 옷 입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발도 사 오셔서 그걸 신었고요. 그래서 정월 초하루를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몸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옷을 소매를 접고 바지를 접어서 입고 신나서 동리에 나가서 자랑하고 그러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 멋진 아름다운 날들, 낭만이 깃든 그런 우리들의 정월 초하루의 어린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 해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불렀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내 마음대로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왜 불렸습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르셨고, 우리를 필요하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왜 불렸습니까? 주의 일을 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정월 초하루를 맞이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신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유대인들이 정월초하루에 한 일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것도 퍽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개역성경에는 1월 1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한글성경에는 ‘정월 초하루’로 기술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정월 초하루는 구약성경에 단 3회 기록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그날 정월 초하루의 의미를 찾고 그날에 유대인들이 한 일들을 찾아보고 그리고 우리가 할 일들을 찾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정월 초하루에 할 일들’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이 정월 초하루를 제대로 새기면서 은혜로 이 금년을 맞게 되시기 바랍니다. 정월 초하루에는

1. 신앙을 결단해야 합니다.
9절,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B.C. 458년,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에스라 일행 약 1700여명이 유대인들의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로 귀환을 실행합니다. 바벨론제국이 바사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바사의 고래스왕이 집권하여서 1차로 유대인들을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왕인 아닥사스다 왕이 집권하여서 그 유대인들에게 또 한 번의 귀환 허가를 합니다. 왕으로부터 귀환 명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에스라를 증심으로 그들이 살고 있었던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조국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B.C. 458년 1월 1일, 즉 정월 초하루의 일입니다.

에스라 일행 1700여명에게 있어서 정월 초하루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벗어나서 조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지긋지긋한 바벨론 포로를 정리하고 떨쳐버리고 그리고 일어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그 첫날이 바로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원전 458년의 정월 초하루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날입니다. 에스라에게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역사적인 그런 날입니다. 이방지역에서 일어서 떨치고 나오는 날입니다. 불신지역에서 나오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서려 있는 유대 땅 이스라엘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1월 1일, 정월 초하루는 새 삶을 향하여 일어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을 결단하고 나가는 날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날의 모습입니다. 더 이상 바벨론이라는 이방지역, 불신의 지역에서 머무르지 말고 이제는 벗어나야 제대로 신앙을 세우고 삶을 세워갈 수가 있습니다. 이방우상들이 득실거리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신앙으로는 그 척박한 땅, 이방인의 땅 거기서 벗어나는 날이 결단의 날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찬양하고 마음대로 기도하고 마음껏 예배하는 그런 지역으로 그런 환경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삶을 살고 그래야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신앙은 떠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떠나면 새 길이 열립니다. 불신에서 벗어나고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상지역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좋은 신앙은 벗어나서 결단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바벨론이라는 익숙한 지역, 살기가 편안한 지역, 지금까지 아무런 영적 고민 하나도 없이 그저 먹고 살고 지내기만 하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익숙한 내 삶에서 떨치고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자신의 편안한 삶, 익숙한 그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탕자가 그 곳에서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갔다가 아들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믿음의 바탕이 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이건 보통의 노력이나 자기 희생이 없으면 가능하지 못한 삶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면 먼저 자기를 내려야 합니다. 자기를 벗어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과 육적인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던 그 길에서 하나님 앞으로, 신앙의 길로, 성경의 말씀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환원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어려움을 감수하고 바벨론을 떠났습니다. 좋은 신앙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넘어갈 단단한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경험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막연하게 기다리고만 있으면 성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모험에서 성공이 오고 은혜가 주어지고 축복이 주어지는 법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와야 예루살렘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이 어두움의 세력에서 이기고 극복하여야 합니다. 넘어가야 합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묶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고 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정월 초하루에 우리의 만성적인 안정의 좌석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그 대열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2. 정결한 삶을 결심해야 합니다.
스10:16-19절,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를 인하여 수양 하나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긴 시간이 걸려서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 일행이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정결예식입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까 남았던 유대인들이 신앙의 삶이 엉망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서 잡혼자가 되어 있었고 신앙적으로 다 타락하였고 이방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난 유대인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들인데 이런 그들이 신앙적으로는 온전히 타락하여 엉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에스라는 그런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자 그런 이방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다 조사하여서 하나하나 정리하였는데 그게 바로 돌아온 다음 해 정월 초하루에 마쳤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월 초하루는 정결예식을 위한 준비를 마친 날입니다.

1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민족의 타락의 현실을 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통곡하였습니다. 울며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민족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우리가 이토록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그가 자복하여 기도하자 그 기도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하나 몰려 들었고 그들은 마침내 “심히 통곡하매”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우리가 잘못하였다는 통곡입니다. 잘못하였다는 통곡, 민족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통곡입니다. 이런 에스라의 통곡은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도 정월 초하루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고 깨끗하게 살려고 부단히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그를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우상들을 내 버려야 합니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차지하고 있는 편리함 위주의 삶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그 무엇을 떨쳐 내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 무엇, 그것을 내려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결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려고 결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정월 초하루에 우리가 할 일들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응답입니다.
10:2-4,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에스라의 기도와 결단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참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선한 결단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따랐습니다. 백성들이 함께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신앙은 그 안에 있는 부패한 것들, 하나님을 떠난 불신의 것들, 이러한 것들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내 보내야 신앙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를 세워가던 자만심을 내어 보내야 합니다. 아멘이 되지 않았던 내 불신도 내 보내야 합니다. 교만도 내 보내고, 자만도 내 보내고, 태만도 내어 보내고 그리고 오만도 내어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 무엇들은 다 내어 보내야 하고 그래서 우리 속이 바뀌어져야 하고 변하여야 하고 그래야 신앙이 생깁니다. 그래야 새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2).

오늘날 우리가 빼앗긴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심령을 살려줄 유일한 대안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면서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께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탄식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이것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기독교인들 정치지도자, 경제지도자들이 나와야 하고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교회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걸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 한국교회는 무릎을 꿇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정말로 기도하고 엎드리는 것을 잃어버렸고 그리고 또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가 좌표를 잃어버린 배와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도자인데 우리의 미래세대인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왜 이 시대는 1천만 명이나 촛불을 들어야 합니까? 어린아이들까지도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야 합니까?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였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고 제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하여서 그런 것입니다. 이 부끄러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애국입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우리 민족이 다시 회복되는 유일한 길은 주님이 우리 민족을 다시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나서야 하고 그리고 우리 교회가 다 같이 나서야 하고 한국교회가 나서야 하고 그리고 이 땅의 온 성도가 거룩하신 소명을 회복하고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국교회에 주신 아름다운 유산은 기도의 무릎이었습니다. 그 무릎을 회복하려는 결단이 정월 초하루에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정월 초하루에 기도의 무릎을 회복하려는 결단이 세워지면 그 결단이 우리를 살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되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8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의 제물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서 있는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아니 그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새해에는 화목의 제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강력하게 도전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히12:14절).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정월 초하루에는 선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죄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아멘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살아가기로 선한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정월 초하루에 할 일들입니다.

3. 바른 예배를 결단해야 합니다.
대하 29:17절,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 그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정월 십 륙일에 이르러 마치고”

히스기야 왕은 나이 25세에 유대의 왕이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왕이 되자 맨 먼저 한 일이 성전수리와 종교개혁입니다.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취임한 그해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라고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이 버린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백성들을 모아 성결케 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깨끗케 하고는 제사장을 세우고 성전인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힘써서 정리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말로만 아닙니다. 사람을 세우고 제도를 세워서 그것이 잘 굴러 가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개혁은 말이 아니고 구호가 아니라 실제여야 하고 나의 삶에서 표현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배를 세워가기로 결단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히스기야 왕은 정월 초하루에 신앙회복운동을 일으켰습니다. 3가지를 실시합니다. 우선은 성전을 세우고 정리하였습니다. 우선 히스기야 왕은 백성들이 놓아버린 신앙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리하였습니다. 우상단지들을 기드론 시냇가로 가지고 가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는 줄기차게 성전을 정리하고 또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 있었던 더러운 우상들을 다 끄집어 내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였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시작하여 정월 십육일까지 그 일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성전정화운동입니다. 그 운동을 16일간이나 실시한 것입니다. 이게 히스기야 왕이 정월초하루에 실시한 일입니다.

성전은 예배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장소가 제대로 정리되고 깨끗하게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의 예배장소는 깨끗합니까?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만나는 그 신앙의 장소는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는 장소입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장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런 장소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소중하고 긴급한 일입니다.

두 번째, 정월 초하루에 한 일은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결단을 독촉한 일입니다. 17절,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하기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정월 초하루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에, 정월 초하루에 결심으로 나타나야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아무런 결단이 없으면 마치 자동차를 몰고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도로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로 갈지 그 방향을 정하여서 잡지도 아니하고 그리고 무턱대고 나가자 그리고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가면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월 초하루에는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선한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그 결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성결하게 사는 일입니다. 정말로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간에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가기로 결단하여야 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리고 아멘하고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잃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강하게 명령하셨고(레11:45) 베드로 사도도 벧전1: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거룩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정월 초하루에 우리 모두는 이 한 해를 정말 지금껏 보다 훨씬 더 거룩하게 살려고 다짐하고 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히스기야 왕은 예배를 세우기 위하여 제사장을 세웠고 절기를 바로 세웠습니다. 제사제도를 세우기 위하여 필요한 두가지는 제사장을 세우는 일과 절기를 함께 세우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 제도의 확립은 곧 그 제사가 지속되는 힘이었습니다. 바른 제사제도, 바른 신앙제도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습니다. 그런 제도의 확립에서 제사가 제대로 잘 지켜지고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세워가기 위하여서는 나를 하나님 앞에 바른 제사장으로 세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세워 주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제대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다운 제사장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른 예배자로 세워져 가야 합니다. 이것이 엄청난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예배를 반듯하게 세워가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세워가는 일, 그것은 나에게 가장 귀한 일입니다. 예배 성공자가 인생성공자라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예배에 성공하면 그는 인생에 성공하지만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합니다. 왜 우리가 인생에서 자꾸만 힘들어 가느냐? 예배를 제대로 세워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예배 자리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예배를 잘 세워가는 예배 성공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금년 1년 동안의 예배를 어떻게 세워갈지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세워가는 정월 초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맺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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