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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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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Sep 23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저가 나를 시원케 하였느니라

본문 :

본문 : 고전 16:17-18

지난 주는 온 국민들의 마음이 시원하였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우리 남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평양선언이란 합의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발표문을 보면 핵문제, 평화조약문제, 남북경제협력문제, 이산가족문제 등 그 동안 남북의 막힌 문제들을 아주 시원하게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정상의 부부들이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백두산에 올라가서 손을 맞잡고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었던 모습이 정말이지 온 국민들이 시원하게 느꼈던 주간이었습니다. 저도 백두산에 몇 번 올라가 보았는데 늘 중국 쪽에서 올라가면서 왜 우리 산을 우리나라에서 못 올라가고 남의 나라에서 올라가야 하느냐고 퍽 아쉬웠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올라가는 걸 보고 무척 마음이 기뻤습니다. 남북한의 두 정상이 백두산 정상에서 손잡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막힌 가슴이 훤하게 뚫려지는 듯 하였습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평양합의처럼 우리나라가 핵이 없는 나라가 되고 6.25전쟁이 이제 휴전 65년 만에 종전선언이 되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남북교류가 되어서 평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듯합니다. 6.25후 68년 간이나 나눠진 전쟁상처들이 하나하나 치유가 되고 남북이 함께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간다면 정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그 회담을 지켜보면서 정말 온 가슴이 확 열리는 것 같은 시원함이 몰려들어 오더라구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남북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남북문제가 공동발표문처럼 잘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합니다.

 

금강산 날씨가 정말 화창하였던 것처럼, 금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한 해였는데 그런데 이제는 이 한반도가 언제 더웠느냐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아침 저녁입니다. 정말 시원, 시원한 가을입니다. 요즘은 신앙생활하기도 좋고 기도하기도 정말로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하나님이 운행하시고 돌려 가시는 역사의 수레바퀴나 계절의 수레바퀴를 사람들로선 아무도 말리지도 못하고 이의를 달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원망을 한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역시 역사와 계절은 우리 하나님이 직접 돌리신다 그 말입니다.

 

이번 주는 추석 주일입니다. 내일이 추석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향으로 시골로 내려갔고 거기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벌써 지난 주에 내려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오늘 새벽예배를 드리고 시댁으로 가서 일해야 한다고 아까 새벽예배 후에 제가 탄현역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시골로, 지방으로, 또 부모님께로 가는 성도님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디서든지 반드시 예배드리고 그리고 명절을 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일 예배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명절이든지 휴가를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일산교회 성도로서의 품위를 잊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행동하며 휴가를 즐기고 명절을 지내셔야 할 것입니다. 예배자로 선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의 전도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말 도움을 주었고 어떤 사람은 정말 힘들게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본분에는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칭하는 그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그들은 전도를 도왔고 힘과 용기를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귀한 사람들입니까? 막힌 것을 뚫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로 하여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감동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매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매인 것을 풀어주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전도에서 늘 도와주고 에너지가 되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피조물인 우리는 조물주이신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원하게 하라, 이것이 성도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여러분들과 우리는 하나님을 시원하게 하고 이웃을 시원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짜증나게 하면 안 됩니다. 창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합니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창11:5-6). 하나님이 무척 불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답하여 못 견디신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으며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짜증나시게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내자’ 하면서 자기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이 불편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도토리 키를 재듯하면 하나님이 안타까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원스러운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이요 요셉이요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으로 몰아가시더라도 언제나 ‘아멘’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불만하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뜻과 같지 않은 데도 아멘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데도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 순응하는 사람들입니다. 겨울이면 겨울대로 아멘하면서 열심히 살고 여름은 여름대로 아멘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시원하게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창세기를 보면 노아가 하나님의 막힌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드린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다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러나 창조섭리를 이어가시기 위하여 몇 명은 남기셔야 했습니다. 그 방법이 방주를 짓는 일이었고 그를 노아에게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노아는 온갖 조롱과 비판속에서도 그 일을 든든히 해 냅니다. 그에겐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였습니다. 마침내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자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셨습니다. 이렇게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 사람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선지자 요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나서를 보면 니느웨 12만 명이 그들의 죄로 인하여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심판하여 그들을 다 죽이기로는 사랑의 하나님이 나무나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즉 시원하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받은 선지자 요나는 갈등하다가 죄악의 도성 니느웨라로 가기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결국 바다에 던져졌고 다시 돌아서 명령을 따릅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12만 명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멸망에서 구원하게 한 것입니다. 요나,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드린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을 아주 시원하게 해 드린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합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감동하셨습니다. 이 대답이 너무너무 마음이 시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엄청나게 칭찬하셨고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마16:17,19). 베드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속이 시원하게 해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황금률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마8장에는 병든 신하를 둔 한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신하를 고치러 가겠다고 그러시니까 “주님, 주님이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내 집까지 가실 것 없습니다. 내게도 신하가 있는데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나이다. 그러니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다 고쳐질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의 말을 합니다. 백부장의 이 말에 대하여 주님은 정말 속이 후련하여 시원해졌습니다. “그래 이스라엘 중에 이만큼 나를 시원하게 해 준 자가 없다. 내가 고쳐 주마.” 그렇게 고쳐주신 것입니다. 정말 말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사에서 보면 하나님과 다툼을 벌렸던 나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애굽, 블레셋, 앗수르, 로마 정권, 가까이는 독일의 나치, 이태리의 뭇소리니 정권, 일본의 군국주의, 공산주의 정권, 지금 중국의 시진핑 정권, 북한의 김정은 정권 등이 하나님을 상대로 다투고 반항한 정권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다투면 하나님은 무지무지 답답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에 막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다툰 모든 나라들의 결과는 처참하게 되고 실패한 정권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다투고 있는 정권들은 그 백성들이 처참하게 살고 있지 아니합니까? 하나님은 경배하고 섬기는 대상이지 싸우거나 다툼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다투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멘하고 경배하며 순종하여서 하나님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2.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
딤후3:1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의 사람들은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공익을 중시하거나 이웃을 중시하기보다 나라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대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며 상대방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내게 유익이 되면 윤리도 버리고 신앙도 버리고 행동하고 내게 도움이 되면 선택합니다. 이게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웃을 시원하게 하라고 하나님은 가르치십니다.

17,18절,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바울사도가 이름은 든 사람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그들은 바울 전도팀을 돕고 지원하며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웠던 인물들입니다. 바울전도팀이 전도하면서 모자라고 부족하고 필요한 것들이 대단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부족함을 하나하나 채워주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걸 들고 지금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이웃의 부족함을 알고 채우는 사람들, 도움을 주는 사람들,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메워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게 바울의 칭찬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의 부족함을 도와주는 사람들, 남의 부족함을 조용

히 채워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귀한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을 도와주고 상대의 부족함을 메워주려는 사람은 그를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남의 약점을 파고들고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가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내 이웃의 약점을 메워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바울사도의 칭찬대상들입니다.

 

한동대 이야기를 쓴 “갈대상자”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의 도움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때로는 몇 천 만원씩, 때로는 몇 억원씩 또 때로는 수 십억원씩을 보내주어서 그 답답하던 학교재정을 해결해 나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간증문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성도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가 꽉 막힌 것 같은 어려움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누군가가 나타나서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그 때에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기십니다. 때론 하나님이 그런 일의 해결을 원하시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아니하여 일이 막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답답하게 되는 것이지요. 

 

성도는 하나님도 시원케 해 드려야 하지만 사람들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을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워낙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시대이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배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자신의 유익을 뒤로하고 손해를 감수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좀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손해를 보지 아니하겠다고 생각하면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안 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예수정신은 아닙니다. 예수정신은 손해를 보고 알면서도 뻔히 손해를 감수하는 정신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손해 보는 일을 선택하십시오. 이웃 사이에서도 좀 손해를 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면서 상대를 시원하게 하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기어코 이기려고만 하면 그 관계가 냉랭하여지고 껄끄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해가 될 것 같아도 더러 하나님께 맡겨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때로는 뻔한 손해라도 감수하고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손해 보면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교회생활도 그렇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크면 반드시 메아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면 안됩니다. 교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 누구냐? 잘 모르면서 너무 용감한 사람입니다. 뭘 모르면서 열심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웃이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상처 받으면 조용히 말도 없이 떠나버립니다. 이 교회 아니어도 다른 교회도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로서는 새벽마다 기도하고 사랑을 쏟아도 갈 때는 정말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리고 알고 봉사하여야 합니다. 지나치게 열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목소리를 너무 크게 높이면 반대쪽에서는 상처가 나기 마련입니다.

 

살다 보면 내가 지금 해명하지 아니하면 손해를 당하고 억울해지게 될 것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감정을 참지 못하여 쏟아 놓으면 내 위치나 입장이 세워지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손해되고 하나님께도 마이너스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많은 손해를 받아도 참고 하나님 앞에 맡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십니다. 이미 알고 계시면서도 그 참는 장면을 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보시면서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시고 그런 사람이 기도하고 구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3. 하나님을 시원케 하려면?
하나님을 시원케 해 드리고 이웃을 시원하게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건

 

1)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웃이 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상대를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자여야 합니다. 잘 아는 자여야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이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이 지난 달 8월 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에는 동성애와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고 또 차별금지법으로 타종교에 대하여 비판을 금하게 하는 등의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법으로 정하는 독소조항의 들어 있습니다. 인권을 내세우는 정부가 대다수 국민의 인권은 억압 침해하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국가의 힘을 동원함으로써 앞으로 엄청난 사회적 변혁을 예고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대통령이 남북회담을 하고 한미회담을 하며 밖으로 하는 외치는 잘하는 것 같은데 안으로 하는 내치는 이게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7년, 2010년, 2013년도에 이미 3번에 걸쳐서 국회입법안에서 무산됐던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훈령인 ‘국가인권기본정책’으로 시행하겠다고 국무회의에 통과를 시켜 버렸습니다. 이에 온 한국의 기독교가 반대하고 저항운동,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정부는 헌법에 기초한 양성평등을 무력화하고 성평등, 즉 동성애를 옹호하며 동성애자들을 정부가 나서 보호하고 지켜주겠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동성간의 색스를 즐기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건전한 성윤리와 가치를 정부가 나서서 송두리 채 뽑아버리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으며, 장차 동성애와 동성혼까지 합법화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밖에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법은 우리의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일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동성애, 동성결혼,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에이즈(HIV), 페미니즘, 양성평등, 성평등, 젠더이론, 성 주류화,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퀴어신학,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이슬람, 무슬림, 할랄, 이단 등에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정말 정신을 차리고 두 눈 바로 뜨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마치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NAP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 온 예멘사람들에 대하여 우려의 의견을 내면 인권차별한다고 잡아갑니다. 이제 앞으로는 아빠 엄마도 없이 부모1, 부모2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는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하는 일입니다. 만일 정부가 이를 시행하고 관련법을 제정할 경우 한국교회는 순교적 각오로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여 기필코 막을 수 있어야 할 일들입니다. 나라를 위하여서도 그렇고 기독교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정말 이 정부는 기독교를 우울하게 하고 국민들을 우울하게 하는 정책을 계속하여 시행하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맡은 교회의 일이 그 무엇입니까? 그 직분을 통하여 시원스레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시원스레 해결하고 해결되는 것을 보시려 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일을 맡고서는 힘들어 하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고 그러면 하나님이 답답해 하십니다. 내가 맡은 일을 가지고 제대로 하지 아니하여서 하나님을 답답하게 하고서 그 하나님께 내가 복 받고 은혜를 받으려 하면 이치에 맞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시원스레 일을 하는 것을 보시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너무 쫀쫀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요한데 하나님은 궁색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남아도는 것이 시간인데 하나님의 교회는 일손이 모자라고 기도할 사람이 없도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 추수하는 날의 그 무더운 날에 얼음냉수 같다, 이건 정말 시원한 음료일 것입니다. 추수군이 그 얼음냉수를 한 모금 마치면 온 폐부가 시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시원하게 해 드리는 충성스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이뤄드리는 성도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되시고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2)먼저 다가가야 됩니다.
우리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원하시게 하고 주님을 시원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그 말로 상대를 시원스럽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도 시원하게 됩니다. 너무 꽁하며 좀스럽게 살지 맙시다. 너무 넣어두고 또 새기고 또 새기고 그러지 맙시다. 시원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눅10:5-6절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축복의 말, 은혜의 말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지고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라는 의미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먼저 다가가고,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다가가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고, 이게 내가 먼저 다가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도 세상에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먼저 다가가서 그리고 축복의 말, 은혜의 말을 사용하여서 그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성자 프란시스가 구원 받은지 얼마되지 않은 때입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를 본 순간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 편은 다가가서 손잡고 기도해 줘야지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은 나환자로부터 병이 전염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의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두려움의 마음이 이겨 나환자를 그냥 지나쳐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의 다른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시고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는 마음에 생긴 부담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나환자를 그냥 지나쳤는데 그것이 잘못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왜 그를 그냥 지나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그가 너무 더럽게 느껴져서 그 병이 점염될까봐 그랬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 더러운 나환자보다 나으냐? 너는 이전에 그 나환자보다 더 더렵혀진 죄인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했단다.” 그 순간 그는 나환자보다 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었던 자신에게 주님이 찾아와 사랑으로 받아주셨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나환자에게 돌아가 그에게 입 맞추고 축복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의 기막힌 사랑의 순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다가가고 내려가고 그리고 섬기며 이웃을 시원케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명절입니다. 우리는 내 옆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족에게로도 내가 먼저 가다가 섬겨야 합니다. 내 친척에게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다가가면 길이 열립니다. 다가가면 마음이 열립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면 시원하게 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시원하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맺음: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은 답답하시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원스럽게 하는 성도입니까? 여러분은 이웃을 답답하게 하는 이웃입니까? 시원스럽게 하는 성도입니까?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얼 원하시는지를 물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다가가야 합니다.

 

나 때문에 상했던 마음들이 환하게 펴지고 시원스럽게 만들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원케 해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십자가에서 달려 희생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시원하게 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음으로 우리들의 교회를 시원하게 하고 우리들의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저희 부모들이 등목을 하시면 ‘아이고 시원하다, 아이고 시원하다’ 그러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저를 보시고 ‘아이고 시원하다, 아이고 시원하다’ 그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제목입니다. “그가 우리를 시원하게 하였나니” 시원하게 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2. 이웃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
3. 시원케 하려면 먼저 할 일은?
1)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2)먼저 다가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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