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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May 14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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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녀들에게 옳은 일
본문 :
본문 : 엡6:1-3
1960년대 이후의 현대사회를 Post Modern 시대라고 하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말이 바로 ‘Me Generation’ 즉 ‘자기 중심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에서 자기가 중심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Me Generation’ 시대의 특징은 ‘3무의 시대’라고 합니다. 즉 무관심한 시대, 무책임한 시대, 무감동한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남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도, 책임도 지려고도 하지 아니하고 피하고 외면합니다. 또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남들의 일에 대하여 감동을 받지도 아니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의 3무의 시대를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의 태도를 특징하는 영어 표현이 바로 ‘Don’t Care’입니다. 돈 케어, 즉 ‘난 몰라’입니다. 요즘은 부모 자식 간에도 ‘Don’t Care‘입니다. 형제간에도 ’Don’t Care‘입니다. 난 몰라입니다. 서로 떠넘기면서 난 몰라라고 외칩니다. 이웃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Don’t Care’ ‘난 몰라’입니다. 웃기는 말로 돈 즉 Money는 Care하지만 이 ‘Don’t Care’는 간섭하지도 아니하고 참견하지도 아니하고 오로지 그저 ‘난 몰라요’입니다. 이 말이 소위 포스트 모던시대를 사랑가는 사람들의 자세를 압축하여 함축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두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다고 전해내려 오는데 하나는 금강산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공경의 미덕이라고 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기를 “한국이 전 세계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사람들의 효도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부모공경의 미덕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버림당하거나 천대받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모 공경은 부모님을 높여드리고 기쁘게 해드리며 생활을 보살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제일 되는 계명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을 나누면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들입니다. 5-10의 6가지 계명이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인데 그 중에 첫번째 계명인 제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말은 부모공경이 인간관계의 가장 우선되는 계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늘 기억하고 실천하라고 십계명 5번째 계명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공경은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가지는 윤리 중에 가장 우선되고 제일 중요한 계명이기에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으려면 부모도 잘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완벽한 자식’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완벽한 부모'를 요구합니다. 혹시 부모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본받을 게 없다면, 반면교사로 삼아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부모에 대한 불만을 이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령 다소 헤아린다 할지라도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난 뒤에 마음 아파합니다. 어떤 부모도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내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고, 내 생활이 여유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없습니다.
효도는 모든 사회도덕의 기초가 됩니다. 부모공경은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됩니다. 이 기초가 없으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순복할 때 가정의 질서는 바로 세워집니다. 부모 공경은 신앙의 첫 열매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의 첫 열매가 바로 이 효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이 있다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돈이,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과 정성,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성경대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시대의 자녀들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옳은 것들 이것들을 잘 알고 지켜내길 기대합니다.
1. 자녀에게 옳은 일
1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에게 옳은 것이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정당한 일입니다. 자녀로써 제대로 인생을 사는 일입니다. 주님의 선포입니다.
출20:12절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안타까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왜 공경해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입니다. 구약 신21:18절에는 만약에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처형토록 하라고 강조할 만큼 강하게 부모를 따를 것을 명령합니다. 바울사도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딤전5:8). 이렇게 성경은 부모공경에 대하여 여러 번 강조하고 명령합니다.
왜 부모공경을 가르칩니까? 성경은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부모님이 우리를 낳으시고 길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로써의 자격을 완벽히 갖춘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거의 모든 부모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사랑은 갚을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값없는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은혜를 떠올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다 돌볼 수가 없어서 이 땅에 아버지를 두기로 작정하셨다”라고. 그러므로 아버지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이 대신하여 가가 가정에 자녀들에게 보이는 하나님이신 부모를 두신 것입니다. 부모를 통하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라고 그래서 두신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자녀들은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여야 하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은 바로 이런 경험의 장입니다. 사랑의 아버지를 통하여 사랑의 가정을 경험하게 되고 사랑의 어머니를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여야 합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도 “부모는 바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하늘의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데 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계신 분이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오 길러주신 분이시며 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보이는 세계에서 부모만큼 우리를 사랑하는 그 어떤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으로 나의 부모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온 부모들의 탄식 섞인 글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자조적이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현실을 대변하는 함축적인 글 인듯하여 여기 옮깁니다.
애완동물 병 나면 가축병원 달려가도 늙은 부모 병 나면 그러려니 태연하고,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하나같이 키웠건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스레 여겨지네.
자식 위해 쓰는 돈은 아낌없이 쓰건마는 부모 위해 쓰는 돈은 하나둘씩 따져보네.
자식들의 손을 잡고 외식함도 잦건마는 늙은 부모 위해서는 외출 한번 못 하도다.
제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 싫은 표정이네.
제 자식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기침가래 불결하여 밥 못 먹네.
과자봉지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 부모 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을 모르도다.’
인터넷에 떠도는 ‘5번은 간다’라는 글 내용입니다.
시골에 사시는 한 아버님이 서울 아들집에 잠깐 오셔서 며느리 전화하는걸 보시더니 신기해 하셨다
2번을 누르니 딸이 받고, 3번은 남편이, 4번은 파출부 아줌마가 받았다. 아버님은 며느리가 예뻐서 '너는 없냐?'고 묻자, '전요 1번요. 전화가 많이 와서--- 호호호' 며느리 없을때 손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몇 번이냐?' '음 --- 5번' 지극 정성으로 키웠건만 파출부 한테도 밀리다니! 아이고 지덜 행복하면 됐지 .......강남 터미널에서 시골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3번아 잘 있거라. 5번은 간다.!! ^^
이게 요즘의 우리네 세상에서 어른들이 당하는 일반적인 현상들입니다.
세계 102개국 4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였더니 그 결과로 1등이 Mother, 2등 Passion, 3등 Smile, 4등 Love로 나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1위입니다. 아버지는 순위에 없어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어머니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요 대상이요 단어라는 결과입니다. 어머니는 부드럽고 자식과 소통을 잘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자식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아픈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하고 듣기만 하여도 자녀들에게는 어려울 때 힘을 주는 엄청난 존재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자녀축복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그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둘째 아들인 야곱은 자기의 아버지를 정말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의 기도를 받기를 귀하게 여겨서 마침내는 아버지의 어두운 눈을 기화로 축복기도를 받고 그가 받은 그 기도 그대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보통 사람들인 우리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위하여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 그대로 실행하시고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의 기도하는 그대로 성취된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그 축복의 기도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먼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하면서 그 아버지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은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창27:29절,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아버지 이삭의 기도 그대로 그들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일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만민이 야곱을 섬기고 열국이 야곱의 후손에 굴복하였고 그리고 야곱은 형제들의 주가 되었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야곱에게 굴복하며 살았고 그의 형 에서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정말 아버지 이삭이 한 축복 그대로 그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된 우리는 자녀들 앞에서 바르게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투시자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계시자라고 들었습니다. 부모된 나를 통하여 내 자녀가 하나님의 바라보고 경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 하늘의 하나님이 이러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느끼고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배우게 하는 부모가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다운 제대로 된 대리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학대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데 그 가해자 가운데 36.1%가 ‘아들’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자기 아들에게 아버지가 어머니가 매를 맞고 살아간다는 기막힌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아들만 아니라 배우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15.4%, 딸(10.7%)과 며느리(4.3%)도 있었습니다. 학대의 유형은 언어 및 정서적 학대(40%)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신체적 학대(24%), 방임(18%), 경제적 학대(11%)순이었습니다. 이는 노인들을 을 때리고 구타하고 그러는 학대입니다. 학대 발생 장소는 가정이 85.8%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아주 나쁜 말로 하자면, 자기 부모를 욕하고 때리는 '후레자식'이 우리 사회에는 제법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한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욕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복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야단하십니다. 자녀들은 자기의 부모님을 하나님을 대하듯이 대하여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부모님)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부모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이는 하나님격인 자기의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부모공경에 대한 가르침은 효도와 더불어 무서운 경고도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거역하는 자, 욕하는 자에 대한 엄한 징벌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창조의 질서이며 영적인 질서입니다. 동시에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레20:9).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자녀들아 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왜요? 내 부모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모들을 잘 받고 섬기기 바랍니다.
한자의 孝자를 보면 老자와 子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아들 자 위에 늙을 노자입니다. 즉 아들이 늙은 부모를 위에 두고 있는 글자입니다. 효도란 젊은 아들이 늙은 부모를 받드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효도인 것입니다. 부모를 받들고 늙은이들을 받들고 그게 효도입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에게는 부모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자녀들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듯이 먼저 보이는 부모님을 높이고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부모가 비록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아니하여도, 내 부모가 나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여도, 내 부모가 이웃 친구의 부모만큼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어도 그래도 내 부모님은 나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약속이 있는 첫계명
2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공경은 자녀들에게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자녀들이 복을 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릴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정말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하는 길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길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부모공경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복달라는 기도는 열심히 한다, 은혜받겠다고 예배는 부지런히 드린다 그건 안 맞다는 이치입니다. 먼저 할 일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그래야 그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잘되고 장수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이 축복의 통로요 부모가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공경은 내가 축복을 받는 길이요 방법입니다. 축복이 보장된 약속입니다. 이 보장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보장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확실하게 그것을 보장하셨습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이렇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장수의 약속, 이 약속의 성취의 채널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통로가 막히면 안됩니다. 통로가 확 열려 있어야 복이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복이 오는 통로를 잘 청소하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내가 잘 소통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위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나에게까지 그 통로를 통하여 잘 내려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내 부모는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축복의 통로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가 믿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에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이 보장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들 야곱을 축복하면서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말합니다(창27:2,3). 아버지 이삭은 자기의 아들을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자식을 축복할 수 있는 축복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아버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에 따라서 아들 야곱을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축복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복을 내리십니다. 부모가 축복하는 그 축복대로 자녀는 복을 받습니다.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의 실태는 어떠합니까? 현재 대한민국 독거노인의 인구는 몇 명일까요? 아직 독거노인에 대한 실태조사가 체계적으로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는 없지만 2016년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장래추계 인구ㆍ가구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독거노인의 수는 약 144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전체 가구 수의 18.6%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구 5가정 중에 1가정이 바로 홀가정, 독거노인이라는 통계입니다. 그렇다면 독거노인의 인구는 매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을까요? 2015년 통계청에서 발표로는 매년 약 0.25%씩 독거노인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늙은 우리의 부모들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지라도 자녀들은 가끔은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고 웬만한 여유와 형편만 된다면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가 좀 더 고생되고 좀 더 희생을 하더라도, 그래도 내 부모들을 함께 모시고 생활할 수 있으면 최상입니다. 아니라면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보고 돌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내 부모가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쓸쓸할까, 얼마나 서운한 마음일까, 얼마나 속이 상할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더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고 그래야 합니다. 이게 효도하는 자녀들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어쩠든 부모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흘러 보내는 통로입니다. 다른 말로는 또 자녀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복은 부모를 통하여 내려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통로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면 그 복은 자녀에게로 그대로 가고 자녀는 부모가 빈 그대로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주에 헌아기도를 했습니다. 2부 예배를 드리면서 한 살 되는 어린 아이들을 부모가 안고 앞에 와서 제가 축복의 기도를 하고 모든 성도들이 아멘하면서 헌아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아직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이지만 축복의 기도를 받고 하나님께 그의 사람을 맡기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은 엄청난 복 가운데 복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아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축복'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축복을 하는데요. 자녀의 생일행사 가운데 최고의 절정은 축복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고 성인식의 절정 역시 랍비와 부모, 이웃들이 모여서 어른이 되는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축복을 누리다가 축복으로 끝나는 삶입니다.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손주들이 헌아기도를 받는다고 새 옷을 헤서 입히고 그리고 기도를 받도록 합니다. 우리도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자녀들에게 그 축복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라고 자녀들을 위한 축복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 부모는 이렇게 자녀들을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의 내용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위대하십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을 두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자녀에게 복을 두시고 지키시기를 원하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이 복을 사모하며 자녀들에게 이 복을 빌어야 할 것입니다.
3. 보장된 약속
3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 공경에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가장 정확한 약속이 보장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약속있는 첫계명”이라고 표현합니다. 부모공경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이 약속되어 있는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공경에는 하나님이 주실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도 그렇고 신약에도 그렇게 약속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모공경입니다.
여러분, 잘되고 장수하시기 소망하십니까? 녹용을 먹는다고 장수가 보장이 되는 게 아닙니다. 운동한다고 다 건강한 게 아닙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양심의 가책이 없어야 건강합니다. 수없이 반복해도 여전히 가치 있는 말씀인 예수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려면 정확한 약속이 보장되어 있는 그 약속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 보장된 약속이 뭡니까? 바로 지금 말씀 드린 대로 부모님께 공경하고 순종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잘되기를 원합니까? 오래 살기를 원합니까?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무엇으로써 우리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그렇습니다. 그러면 보장하시고 가르쳐 주신 그 성경말씀 그대로 하면 성취됩니다. 본문대로 하면 됩니다. 어떻게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입니다. 오케이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약속하셨고 확실하게 보장하셨습니다. 이대로 우리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입니다. 그대로 하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의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겨야 하는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모는 결코 여러분들이 이기고 극복하려는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한마디로 하면 내가 섬기고 공경하고 내가 받들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함부로 말하고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높여야 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분께 기도를 받고, 그분께 축복을 받고, 그분으로 하여금 하늘의 은혜의 강물이 축복의 강물이 흘러 내려오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어떤 나이 드신 가정에 늘그막하여 낳은 외동아들이 있었습니다. 장가를 보냈습니다. 아들이 이것저것을 하다가 잘 안됩니다. 어느 날은 부모를 찾아와서 집을 담보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여서 조그만 연립주택을 갖고 살고 있는데 그걸 담보하겠다는 것입니다. 상의 상의 고민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나가서는 다시는 그 부모를 찾지 않았고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예 복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성경은 축복받은 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 홍수이후에 9장에서는 노아가 술 취한 장면이 나옵니다. 오랜 홍수에 지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 벌거벗고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본 맏아들 함이 밖에 나가서 흉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겉옷을 가지고 들어가 뒷걸음질 쳐서 그 하체를 덮었습니다. 노아가 술을 깨고 이 사실을 알고 함에게 저주를 합니다. 그리고 셈을 축복하고 야벳을 축복하였습니다. 창9:25절,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창9:26-27절,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아버지 노아가 선포한 그대로 함의 가문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후손이 되었고 셈과 야벳의 가문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복된 사람들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셈, 함, 야벳이라는 노아의 3자녀들의 효도와 불효도가 그들의 후손의 영원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할 때 그 자녀들을 수만 대에 걸쳐서 복을 받습니다.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서야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섭니다. 최고의 교육과 유산이 있다면 효도를 가르치는 것이고 부모공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룻은 홀로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자기 어머니로 지극정성으로 잘 섬겼습니다. 그랬다가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다윗의 할머니가 되는 엄청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 효도를 하나님이 갚아주신 것입니다. 무슨 댓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할 일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하여야 할 일이기에 한 것인데 하나님은 그걸 귀하게 여기시고 그에게 엄청난 복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성도가 되려면 부모마음에 맞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된 것은 그의 부모 마음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최고의 효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효자가 되시려고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마3:17). 이삭은 죽는 자리에까지 순종하였던 효자입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나무번제단에 올려지기까지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랬다가 한 해에 100배의 수확을 가져온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효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맺음:
자녀들에게 옳은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옳은 일입니까?
1-3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