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Nov 27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예수님의 당부
본문 :
본문 : 눅10:29-37
어떤 분이 이 다음에 우리가 천국에 가서 보면 사람이 제대로 온전히 천국에 오지 못하고 귀만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는 얘길했습니다. 이유는 많은 크리스챤들이 설교를 통해서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그러나 그 들은 말씀들을 실천하고 순종하며 살지를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들은 귀는 천국에 왔는데 그 들은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 몸은 천국에 가지 못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듣고 수많은 성경이야기와 하나님의 뜻은 알고 이해를 하였는데 이를 실행하고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을 빗대어서 풍자하는 안타까운 조롱의 말들입니다.
실제로 알고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거리 중에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의 거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머리로 알고 깨달은 그것들을 가슴으로 실천하고 개인의 삶에 적용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걸 삶에 실천하고 실행하면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진리를 들은 대로 실행하며 살아가기가 무척이나 힘이 드는 것입니다.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깨달은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세상에서 제일 긴 거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무척 힘이 든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배운 대로 순종하며 살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진리를 들은 그대로 삶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그대로 살아내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이 드는 세대요 일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믿는 그대로 살아가기가 힘들고 어려운 세대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살고 아무렇게 살려면 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믿고 잘 믿고 믿은 대로 일상의 삶에서 살아가려니까 그래서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로버트 풀검이 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란 책을 우리는 압니다. 이 책 1권에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하며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대학이라는 산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유치원의 모래 상자 속에 있었다면서 저자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한 내용입니다. 즉 사람은 배운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내용의 목차를 보면 무엇이든지 나눠 가져라. 페어플레이를 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라는 등 지극히 초보적인 것들로 쓰여진 내용의 책입니다. ‘배운대로 산다’ 이 말이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른 바 선한 사마리아 예화를 들려 주시는 주님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마음을 담아서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당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는 참으로 의미있는 당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의 부탁, 즉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으로 잘 들으시고 그렇게 삶을 살아내기를 축복합니다.
1. 찾아오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이유로 이 자리에 오셨고 그리고 예수님 앞에 찾아오셨습니까? 가자고 하는데 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오셨습니까? 갈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가자고 하니까 ‘아이고 잘 됐다’ 그러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거기 가면 사람들도 많고 그리고 그들을 만나서 손해볼 것은 없다 그래서 오셨습니까? 아니면 억지로 그야말로 억지로 오셨습니까? 가지 않으면 관계가 끊겨지니까 그래서 오셨습니까? 아니면 여기에 영생이 있다고 믿고 오신 것입니까?
29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여기 한 사람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 보세요,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하여,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잘 보이려고 온 것입니다. 대단한 꿍꿍이를 가지고 찾아오신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묻고 질문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고 뜻이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바른 생각으로 와야 합니다. 나 자신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찾아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궁극적인 문제에 먼저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 풀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문제는 오직 예수 앞에서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내 문제의 궁극적인 문제를 가지고 해결자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 해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로, 잘못된 야심으로 찾아오면 만나지도 못하고 설혹 예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자신의 진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모든 인류를 초대하시고 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려 하십니다. 그 수고와 무거운 짐, 이것을 가지고 고생하며 헉헉거리지 말고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풀려집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요6:68).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 안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 앞에 나왔다가 근심하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막10:20절 이하에 보면 그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진지한 대화가 거듭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랬는데 맨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22). 분명히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과 대화하고 많이 배웠는데 그런데 슬퍼졌습니다. 청년의 얼굴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근심하며 돌아서 갔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 나아 왔는데 그리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는데 그런데 그 결과는 슬퍼졌고, 근심이 가득하였고, 그리고 근심하며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게 그 상황입니다.
최근에 한 기독교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교인 3명 중 1명은 출석 중인 교회를 떠날 의향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떠나되 아예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그 3분지 1 중에서 또 3분의 1이라고 합니다. 왜 교회를 떠나려고 할까라는 질문에는 △교육·훈련 부족(11.5%) △예배 문제(11.15%) △지나친 전도 강요(10.9%) △거리가 멀어서(10.8%) △목회자 문제(10.8%) 등을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인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분명한 한가지는 예수를 만나고 배우고 그리고 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은 참된 진리를 찾으려고 하고 바른 길을 찾아 다닙니다. 그런데 참 진리는 오직 예수 안에만 있고 복음 안에만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영생을 찾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습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란 없습니다. 지나치게 상처받고 문제 삼고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안에 살고 은혜안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안에서 참된 평안과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의 긍극적인 이유여야 합니다.
2. 가르치시는 예수님
자신을 찾아 온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 예수님은 차근차근 알아 듣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알아 듣고 잘 이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르치시기 전문가, 교육의 모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교육의 대가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오면 배우고 깨닫고 그리고 고쳐집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새사람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초청하시고 그리고 가르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님의 분명한 생각은 와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모습이 바로 산상보훈입니다. 그 가르치심이 저희 바리세인과 같지 아니하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놀라운 하늘의 권위를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눅4:31, “예수님이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놀랐습니다(마22:33). 그 가르치심이 이때까지 들어 보지 못하던 권세와 위력을 지닌 가르치심이었습니다. 그 만큼 잘 가르치신 예수님이셨고 그리고 그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배우고 예수님께 배워야 하고 배워도 잘 배워야 합니다. 다른데 가서 긍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안됩니다. 인생의 긍극적인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그 어떤 분도 없고 그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우리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께 배우기 전에 먼저 전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먼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멍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