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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25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에수를 만나 경배한 사람들

본문 :

본문 : 마2:1-12

메리 크리스마스.

 

통계청이 12월 19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본> 집계에 따르면, 한국기독교가 불교를 제치고 종교 인구 1위에 등극했습니다. 기독교는 전체의 19.7%(967만 6천명)로 1위를 차지했는데 불교는 15.5%(761만 9천명), 천주교는 7.9%(389만 명)로 발표하였습니다. 2005년에서 2015년까지 총인구가 270만 명 증가하는 동안 기독교 인구는 123만 명 증가했고 불교는 297만 명(-7.3%), 가톨릭은 112만 5천명(-2.9%) 감소했다고 합니다. 지역적으로 기독교는 수도권, 충청, 호남에서, 불교는 영남에서 강세였습니다. 개신교 비율이 가장 높은 시도는 전북이 26.9%로 1위를 차지했고, 서울 24.2%, 전남 23.2%이었고 반대로 부산· 경남 지역 개신교 인구는 10%대 초반에 그쳤고 울산, 대구, 경북지역에서 기독교 보급률이 아주 미약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세가 엄청나게 하향이라고 염려하고 늘 기도하여 왔는데 이번 조사로는 이외의 결과가 발표되어 조금은 당황하였는데 여기에 대한 기독교 자체의 분석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우선은, 아마도 10년 전인 2005년의 조사가 잘못된 듯하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이번 조사에 아마도 가나안 교인들, 즉 교회에 안 나가는 교인들과 이단들이 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응답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요즘은 기독교 이단들이 엄청난 속도로 그 세를 확산화고 잇는 중이라 그들도 포함되었으리라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어쩠든지 간에 기독교 인구의 수가 약 1천만 명이나 된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만큼 한국교회는 전도하고 또 열심히 살았다는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처음 경배한 사람이 바로 이 동방박사들입니다. 본문은 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동방이란 페르시아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요 이들은 별을 연구하는 요즘말로는 천문학자들입니다. 전통적 해석으로 동방이란 페르시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800km의 거리입니다. 돌아서 오면 약 1,200km나 된다고 말합니다. 그 먼 거리에서 박사들이 열심히 하늘을 보고 연구를 하다가 어느 날 그들에게 큰 별이 나타나더니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인도하던 한 큰 별을 따라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멀리멀리 걷고 걸어서 마침내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와서 이 땅에 내려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습니다.

 

이제 보세요.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이렇게 예수를 찾아 경배한 박사들이 있는가 하면 그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과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그 예수를 몰라서 경배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로 내려오신 그 예수님을 발견하고 경배하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걸 발견도 못하고 경배하지도 못하고 아니 도리어 그 반대로 예수를 죽이려 하고 그랬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니 동방박사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그 예수를 만나고 그리고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였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찬송가 116장은 동방박사 세사람이란 찬양입니다. 동방박사 세사람 귀한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따라 왔도다. 그렇습니다. 그들 세사람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 등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건너 별따라 와서 예수를 경배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제목이 “예수를 만나 경배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예수를 만나고 아름답게 경배하는 성탄절을 맞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만나면 됩니다. 만나서 경배하면 됩니다.

 

1. 하늘이 열린 사람들입니다.
1,2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지금부터 2천 년 전, 유대 헤롯 왕 때에는 정말로 하늘도 캄캄하였고 땅도 캄캄한 시절이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하나님은 아무런 계시를 내리시지 아니하시고 조용히 침묵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침묵기요, 묵음기였으며 신구약 중간기였습니다. 계시가 없는 시대, 하나님의 역사가 멈춘 시대, 선지자가 없는 시대, 그런 시대는 그야말로 암흑기인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유대인도 아닌 동방박사들은 하늘이 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 땅에는 악한 헤롯 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헤롯 왕의 악한 행정을 인하여 온 나라가 캄캄하였고 암흑이었습니다. 하늘이 캄캄하고 땅이 어두운 그 시대에 그런 암흑기에 동방박사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열심히 별을 연구하던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동방의 박사들에게는 하늘이 열렸습니다. 한 큰 별이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멀리 멀리 찾아간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당시의 헤롯 왕이나 대다수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하늘이 열리지 않았고 닫혀 있었습니다. 그저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 예수를 알 수도 없었고 찾아서 경배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늘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닫히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소식들이 차단되어 버렸습니다. 하늘의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하늘이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고 하늘의 변화를 알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사울 왕 때에 늘 곁에서 가르쳐 주었던 사무엘선지자가 죽자 사울 왕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 발생하여도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서도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 왕에게는 하늘이 닫혔고 계시도 없어서 단지 캄캄하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하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고 전투를 걸어왔습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렸습니다. 그때 사울 왕의 고백입니다.

 

삼상28:6절,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절망이란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이게 절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되어야 하고 찬양하면 응답되어야 하고 예배하면 응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꿈으로, 우림으로, 선지자로 그에게 대답하시므로’ 이렇게 대답하시는, 그러므로 하늘이 활짝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동방박사들은 12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들처럼 시대가 아무리 어두워도, 나라가 아무리 어두워도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들을 인도하는 하늘의 별을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바라보는 하늘이 활짝 열리길 축복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질 근본적인 복입니다. 하늘이 환하게 활짝 열리는 축복을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2. 제대로 된 삶을 살아 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헤롯 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 찾아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당신들이 왜 왔느냐?”라고 물었고 박사들은 “우리는 귀한 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귀한 왕이 탄생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궁에서 태어날 왕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2절,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의 상대역은 바로 헤롯과 그 일당들입니다.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고? 그러자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결과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헤롯은 자기가 현재 유대의 왕인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난다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라고? 그래서 소동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왕이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의 욕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권력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연구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5,6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구약 미가서 5장의 기록입니다.

 

귀한 분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헤롯 왕은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자기의 자리를 넘보는 그 어떤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였다는 소식으로 이해하였고 그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죽이려고 시도합니다. 자리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헤롯은 태어날 왕을 두려워한 나머지 두 살 아래의 어린 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머니의 강보에 쌓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갈릴리 나사렛에 머물게 됩니다. 헤롯은 정통유대인이 아닙니다.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서의 후손인 그가 로마의 시민권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유대 분봉왕이 된 사람입니다. 언제나 정통성이 없었던 관계로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엄청난 토목사업을 벌리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여 주고 그랬던 사람입니다.

 

헤롯은 권력욕을 이루기 위하여 어린 아이들을 죽인 아주 잔인한 사람입니다. 권력욕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아기 예수를 만나지도 못하였고 경배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헤롯에 비하여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서 멀리 멀리 예수를 경배하기 위하여 별 따라서 길을 간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산 사람들과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달라지게 됩니다. 목사가 권력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로가, 집사가, 권사가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라는 권력, 장로라는 권력, 그런 권력들을 다 내려놓아야 예수를 제대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배할 수가 있습니다. 돈이라는 권력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걸 내려놓아야 제대로 된 세상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권력욕 버리고 예수를 잘 만나고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지시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 권세,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을 제대로 반듯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3. 귀한 예물로 예수를 경배하였습니다.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이 드린 3가지 예물은 당시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예물들이 아닙니다. 귀하고 값진 예물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하여 그 멀리에서부터 그런 귀한 예물을 준비하여 가지고 찾아가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물을 드리면서 예수를 아름답게 경배하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드리며 믿음으로 화답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어로 ‘예배하다’라는 말의 단어는 ‘샤하(shchah)’이며 신약에서는 이를 ‘프로스퀴네오(proskyneo)’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절하다’ 또는 ‘무릎 꿇다’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아바드('abad)’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는 ‘섬기다(serve)’에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배하다’란 ‘하나님께 절하며 무릎을 꿇으며 섬기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물을 드리며 아기예수께 무릎을 꿇었고 절하였고 섬겼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예배자로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값진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 경배드리는 자들입니다. 누가 보배로운 사람들입니까? 아기 예수를 만나서 경배하며 무릎을 꿇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귀한 사람들입니까? 경배의 대상자를 제대로 알고 만나고 그리고 찾아가서 예배하며 무릎을 꿇는 그들이 값진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일산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서 페르시아의 박사들처럼 귀한 보물을 드리면서 제대로 무릎을 꿇고 제대로 경배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무엇을 경배를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80%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자기의 귀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려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지금도 이리저리 찾아 헤매고 다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고 경배드리는 여러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고 그리고 그분께 황금을 드리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너무나 값진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여러분들과 제가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모시고 살아간다는 사실, 이것이 너무나 값지고 보배로운 선택이었음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구조사에서 기독교 인구수가 다른 종교의 인구수에 비하여 월등히 많아졌다는 정부발표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분께 귀한 예물을 드리며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단순히 우리의 형제자매의 수가 늘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사는 천국백성들의 수가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 귀한 보배합을 열어서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며 경배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아기 예수께 드릴 귀한 보배합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 보배합을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엎드려 경배하며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경배하고 찬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게 크리스챤의 길입니다. 보배합으로 예수를 만나서 드리는 성도, 그런 성도들이 다 도시기 축복합니다.

 

4. 다른 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꿈에 나타나셔서 동방박사들에게 그 헤롯을 만나지 말고 돌아서 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2절,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그들은 여기까지 왔던 그 익숙한 길로 고국에 돌아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갔습니다.

유럽으로 간 무슬림 난민들 가운데 개종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무슬림 난민들이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고, IS가 서양 세계를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위해 유럽으로 스며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동의 혼돈, 의심, 불확실성에 놓인 난민들 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이 건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북유럽에서만 현재 수만 명의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있으며, 이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간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이스의 난민 센터 외에 유럽의 여러 곳에서 수천 명의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있다. 베를린의 한 교회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약 1,200명의 무슬림들이 개종했는데 이들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무슬림 세계에서 또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분명히 다른 길로 돌아서 자가의 나라로 간 사람들입니다. 세상 길을 가다가 그대로 가면 안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중심으로 살면 안됩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과 내 판단 중심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권력욕에 잡혀서 살았고 지금까지는 명예중심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 묻혀서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며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분명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게 크리스챤이 세상 사는 방법입니다. 다른 길로 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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