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경공부-이미지-2.jpg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말씀과 찬양.png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n 11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에덴을 지켜라

본문 :

본문 : 창3:1-8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다 마치신 후에 하신 창조소감은 창1장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 그대로 3위 1체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다 계획 그대로 실행하셨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환상적인 작품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창조가 심히 좋았던 것입니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는 평가이며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시19편은 그 창조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감상문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창조세계라는 창조예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시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그곳에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잘 관리하며 살도록 지침을 하나하나 내리셨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관리자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차지하고 다스리는 자”로 명을 받고 에덴동산에 살면서 그 일을 감당하며 살도록 위임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관리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엄청나게 주신 복을 주셔서 복 받은 복의 담지자였습니다. 창2:8,9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이렇게 에덴동산을 맡아서 관리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창조가 창세기 2장까지만 유효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창세기 3장으로 넘어가면 그 아름다운 창조세계에 뱀이라는 간교한 존재가 등장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들의 조화로운 세계를 아주 흩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뱀이 아담과 하와를 만나고 나서고 깨어져 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만남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고 그리고 전투에서 반드시 이겼어야 하는데 그런데 불행하게도 져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그 에덴에서 쫓겨나서 유리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덴을 지키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비극이고 불행한 일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5: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역시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라고 기록합니다.  

에덴동산이란 축복의 동산이요 즐거움 낙원이란 의미를 가진 행복동산입니다. 그런데 그런 축복과 은혜, 즐거움과 행복의 동산에서 에덴을 지키며 자손만대를 누리면서 살아갈 주인공들이었는데 그만 그들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에덴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에덴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동산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에덴은 싸워서 지키는 것이었고 간수하고 아름답게 관리하여야 할 동산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잘 싸워서 지켜야 하는 동산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각자에게 주신 에덴이 다를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이 에덴을 잘 지키고 가꾸고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에덴을 지켜라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1. 마귀를 대적하여 이겼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자신들이 에덴의 관리자라는 위치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에덴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관리하며 지켜야 하는 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그 에덴동산을 잘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실패합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무엇보다 그들은 그 마귀를 잘 대적하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를 대적하는 그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행복의 동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어처구니없게도 하나님이 만드신 그 즐거움의 동산 에덴동산에 뱀이 존재하여 있었습니다. 뱀은 곧 사단이요 마귀입니다. 그 사단이 나타나서 에덴동산의 주인공들인 아담과 하와를 공략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단의 뱀의 작전과 공략에 인간대표인 아담과 하와가 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합니다. 

“에덴동산에도 뱀이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동산에도 뱀이 있다 그것입니다. 그 에덴에 마귀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담과 하와를 공략하였고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그들은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는 어디에도 있습니다. 피조세계에는 그 어디에도 마귀가 숨어서 도사리고 있고 끊임없이 피조물들을 유혹하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대적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사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동서남북 어디에든지 이 마귀가 다 도사리고 대기하고 우리를 유혹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마귀의 작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기록합니다(벧전5:8). 심지어 우리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잔득 웅크리고 엎드려 있습니다(창4:7). 이것이 마귀의 특성임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에덴에 살더라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대비할 것은 마귀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를 삼키려고 대기하고 엎드리고 살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요? “근신하라 깨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근신하여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위를 잘 살피면서 주의하고 언제라도 기회만 있으면 나타나는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덴을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하와에게 나타난 뱀은 슬며시 인간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하와가 잘 들을 수 있도록, 기분 좋은 소리로 다가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며시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1절,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장면에서 우리 조상 하와는 강력하게 대응하였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음성이요 부드러운 소리로 다가왔다고 하였어도 그랬어도 대항하고 쫓아내었어야 했습니다. 마귀는 대항자이지 흥정자가 아닙니다. 이걸 하와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그만 마귀와 대화하고 흥정하고 응답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 곁에 슬며시 다가오는 마귀를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반드시 실패하고 마귀의 전략에 넘어가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치열하게 마귀를 대항하여 싸웠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단을 대하여 강력하게 응전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마16:23).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예수님처럼 응전하지 못하고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에덴을 잘 지키려면 마귀를 대항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대항하여 치열하게 영적전투를 하고 싸우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마귀를 쫓아내고 자기를 지키고 에덴을 지켜 내어야합니다. 40일 간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마귀가 나타나서 계속하여 배 고프지 떡 만들어서 먹어라, 산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엎드려 절해라 라고 계속하여 다가오고 기웃거릴 때에 예수님은 줄기차게 마귀를 대적하셨고 싸우셨고 쫒아내셨으며 마침내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호통하였습니다(마4:10). 이 마귀와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자 그 결과로 마침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 이렇게 된 것입니다. 에덴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마귀를 잘 대적하여야 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였습니다. 

중동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의 아랍나라들을 상대하여 끊임없이 전투하고 응전합니다. 그리고 자기나라를 지켜갑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귀와의 영적전투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엊그제가 6월 6일 현충일이었습니다. 나라를 억압한 일제를 대항하여 잃어버린 조국을 찾으려고 싸우고 싸웠습니다. 6.25동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한국군 15만 명, 미군 4만 명이 죽어가면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싸웠습니다. 이렇게 싸우고 싸워서 지켜낸 대한민국이요 이 나라의 자유입니다. 그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 현충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에덴을 지키려면 반드시 다가오는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말을 걸고 응전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아예 집안에 들이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항하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물리쳐야 하는 대상입니다. 치열하게 응전하여야 합니다.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마세요, 절대로 신사적으로 대한다고 그래 그래 하지 마세요, 자칫 잘못하면 지고 말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패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대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물리쳐야 합니다. 에덴에도 마귀는 있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하여 마귀와 싸우고 승리하여야 합니다.  

2. 자신과의 혈투에서 이겼어야 했습니다.
에덴동산을 잘 지키려면 아담과 하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싸움에서 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여야 하고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뭐냐? 자신과의 영적 싸움의 과정입니다. 에덴을 지키고 누리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지혜롭게 싸우고 반드시 이겨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싸움에서 이겼다면 우리는 오늘도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을 것이며 오늘의 이 세상의 우리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만드시고 맡겨주신 그 에덴동산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붙잡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 삶으로 살았어야 하였습니다. 

1)분명한 고백이 있어야 승리합니다.
2절,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 장면에서 하와는 이렇게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우리가 먹든지 만지든지 하면 반드시 죽는데” 그랬어야 합니다. “죽을까 하노라”가 아니라 죽어요, 심판받아요, 절대로 먹어서도 만져서도 안되요 그랬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을까 하노라고 허들프리하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당하고 자신과 싸움에서도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죽을까 하노라’는 살짝 의심을 섞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럴지도 몰라라는 의미입니다. 마13장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빌리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과 같습니다. 의심은 마귀가 밭에 살짝 뿌려놓은 가라지와 같습니다. 그 가라지가 곡식과 같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도 살짝 살짝 의심이 들어가고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아멘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우선,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정확하게 아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너희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면 그대로 아멘하고 먹지도 만지지도 처다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아예 고개를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기고 극복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기억하시고 그 책임을 묻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절대로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아멘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살을 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아멘하고 그리고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그럴 책임과 의무만 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가 아닙니다. 죽는다여야 합니다. 죽는다 죽어, 그러니 그대로 아멘해야 한다입니다. 이게 성도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약속에는 아멘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뭐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존재들입니다. 참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요8:31,32절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보장하셨습니다. 진리안에 참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아야 하고 진리는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뭐냐? 자기를 지으신 그분 안에서 가지는 만족함, 이게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필요한 한계요, 그 안의 넉넉함이요 만족함입니다. 

2)약점을 알고 대처해야 승리합니다.
의심을 넣는 뱀의 작전에서 하와는 그만 유혹을 받고 영적 전투에서 실패하였습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불신하게 만들어 갑니다. 만일 선악과를 따서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우쭐댐이 하와를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그만 넘어간 것입니다. 

4,5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것은 전적으로 마귀의 작전이었습니다. 마침 하와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의심반 믿음반의 대답을 하자 뱀이 이를 놓치지 아니하고 하는 말입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의 이 작전에 하와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너희가 죽는다고? 아니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도리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의심하게 만들었고 우쭐하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교만하게 충동하였습니다. 하와는 그만 그 마귀의 작전에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말, 그 교만이 사람들의 마음의 그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숨어 있는 교만함, 그 교만함이 어떤 마음입니까? 옘48:29절에는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라고 합니다. 교만이란 자고함, 오만함, 거만함입니다. 즉 자고란 자기가 높다라는 마음의 상태를 말함입니다. 이런 마음을 잠16: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5:5). 잠22:4절에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만함이란 자기만 이라는 생각입니다. 타인은 안돼, 그러나 나만 되 이게 오만함입니다. 거만함도 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게 교만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교만에서 지키는 사람, 그가 에덴동산의 행복을 누릴 자격자입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충동하여도 끄떡없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 그가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막8:3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보세요,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 이게 다 자기의 교만을 꺾는 일에서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교만하면 이게 안됩니다. 내가 잘났는데 나를 부인하라고, 이게 안됩니다. 내가 살았는데 나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이게 절대로 안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둘러싼 교만을 내려야, 그래야 겸손해지고 그래야 에덴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면 따르겠어요, 해야 합니다. 주님 명령이라면 당연이 아멘합니다여야 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에덴을 지키는 겸손한 신앙입니다. 

3. 우리는 마귀의 작전을 알아야 에덴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1)혼자 있을 때 마귀가 접근하였습니다.
뱀은 아담이 없고 하와만 혼자 있을 때에 접근하였습니다. 마귀의 작전은 혼자있는 사람들을 잘 활용합니다. 혼자 있다는 것은 누구와 같이 있지 아니하고 떨어져 나와서 혼자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하와는 아담에게서 떨어져 나와 혼자 있다가 마귀를 만났고 그리고 유혹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상태에 처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물리적으로 사람들과도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하여”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리의 뒤에 처져 있는 개체는 힘센 짐승의 밥이 되기 쉬운 법입니다. 가족들도 가능하면 같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도 같이 있어야 합니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도우면서 살아야 마귀를 이깁니다. 마귀의 침범을 막고 이기고 극복합니다. 

교회생활도 가능하면 같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 여럿이 같이 더불어서 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오 성도는 그 몸되신 교회의 각 지체입니다. 지체는 서로를 돕고 세우고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중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지체로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예 생활을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 교회는 연령별로 자치회가 구성이 되어 있는데 그 연령에 따라서 같은 세대가 같이 모여서 서로는 나누며 기도하는 협력지체가 되어 가는 것이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되신 우리 주님의 교회를 바라보시는 깊은 뜻입니다. 

자치회에서 같이 기도하고 목장에서 같이 나누고 기도하고 그리고 목회자들과 같이 나누고 기도하고 그렇게 삽겹줄로 묶고 연결하여 교회생활하면 마귀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마귀의 접근을 차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굳게 하나되어 기도하고 뭉치고 지체로 세워가야 잘 설 수 있습니다. 

전4:11,12절,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귀가 얇은 하와에게 접근하였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쳐다보았습니다.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유혹은 쳐다보다가 받게 되고 그리고 내 속으로 들어옵니다. 하와는 그 선악과를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걸 쳐다보다가 그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하와가 그걸 쳐다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만 유혹을 받고 그만 시험에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귀가 얇은게 문제입니다. 맨탈이 약한 게 문제였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귀가 얇고 사단의 꼬임에 귀가 얇아서 넘어가고 넘어지고 실수하고 그럽니다. 예수님처럼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이단은 네 집 문 안에 들이지 말고 문밖에서 내 쫓으라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기고 극복하고 넘어가게 되는 법입니다. 

세상 살다가 귀가 얇아서 당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걸 이기고 넘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장 많은 두 경우가 바로 허영심과 공명심입니다. 귀가 얇아서 당하는 많은 경우가 바로 물건을 사는 경우입니다. 이 물건 정말 좋습니다, 그러면 그게 눈에 들어오고 눈에 들어 옵니다. 그러면 가격이 이 정도인데 사지 그러면서 삽니다. 혹시 여러분, 귀가 얇아서 집에 별의 별 것 다 사 놓지는 않습니까? 또 공명심입니다. 나는 저 정도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어, 할 수 있어, 능력이 된단 말이야, 이런게 공명심입니다. 이 공명심 역시 귀가 얇은 사람들에게는 유혹의 마중물입니다. 

미국의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유혹이 몰려 오는 상황에 대처할 ‘비상 전략’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성경은 우리에게 유혹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우리가 유혹을 받지 않도록 예방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성도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유혹받을 때를 대비해 비상사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갑자기 유혹적인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다면 즉시 다른 프로그램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채널을 바꿔야 한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도가 사업상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나 성적인 유혹 등 유혹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런 자리에 서게 된다면 일단 그 자리를 빠져 나오라, 그 유혹과 이렇다 저렇다 변론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아무리 변론을 잘한다고 하여도 만약에 그들과 변론을 한다면 항상 잃고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질 때 대처할 비상계획을 세우기 위해 ‘오늘 시간을 내어 달라’고 유혹에 저항하지 말라면서 그저 유혹에서 도망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릭 워렌 목사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을 망설일 때 이미 불순종하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크리스천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말씀하실 때 ‘생각 좀 해 볼게요’라고 대답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런 종류의 권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자녀가 부모님의 요구에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에 직면했을 때, 그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일보다 먼저 가능하면 재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옳은 해답입니다. 

4. 실수하고 난 뒤가 더욱 중요합니다.
함께 에덴을 지켜야 할 아담과 하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합니다(12). 마귀에게 지고 나니까 가족까지 잃고 이웃까지 잃습니다. 마귀의 작전에 하나같이 말린 것입니다. 

맺음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에덴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에덴의 관리자들입니다. 그 에덴을 잘 지켜내어야 에덴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에덴을 지키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에덴은 치열한 투쟁의 결과로 지켜집니다.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자신과도 싸우 지켜내어야 합니다. ‘에덴을 지켜라’ 에덴동산의 관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