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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24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약점을 하나님께 드려라
본문 :
딤전1:12-17
전도를 하다가 보면 사람들 중에 자기가 죄가 많아서 교회에 못 나가겠다고 말하고 이 다음에 죄를 청산하고 나서 좀 깨끗이 살아가 그 때에 나가겠다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믿음을 가지는 것은 죄 없는 사람들이 갖는게 아니라 죄가 있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마치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갈 필요가 없고 병이 든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이 이상이 있을 때에 병원에 찾아가듯이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고 결점이 있고 그래서 구원이 필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신앙을 찾게 되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에게 관심을 주고 계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문제가 있고 허물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눅5:31,3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있고 약점이 있고 문제점이 있는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냄새나는 구유를 통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의인의 예수가 아니라 죄인의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세상을 심판하시려 하지 않고 흠많고 문제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점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희망인 것입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을 끌 힘도 없는 호흡 곤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 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이 말에 용기를 가진 약점 투성이 그 아들은 그 후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미국의 26대 대통령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약하디 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그 엄청난 약점들을 극복하고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성경에도 보면 우리 인류는 약점에부터 시작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 그는 바로 약점을 가진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범죄하고 숲속으로 숨어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점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아담아 아담아”라고 부르셨고 그리고 그를 다시 불러서 인류의 조상이 되기 하셨습니다. 위대한 조상,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주셨던 그 이름 야곱, 그도 엄청난 약점투성이 인물입니다. 부모를 속이고, 삼촌에게 거짓말 하고 속이고 형의 것을 빼앗고 그렇게 일생을 산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얍복강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는 약점을 넘어서 위대한 이스라엘이란 인물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사람을 쳐 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린 요즘 말로는 살인자입니다. 그런 그가 40년 동안 깊이 명상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살았다가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스라엘 민족 200만 명을 데리고 출애굽을 실시하여 40년 간을 광야에서 이끌어 간 정말로 위대한 역사에 둘도 다시 없을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에 모세는 자신의 약점을 알고는 여러 차례 거절하였습니다. 도저히 지도자로서는 부족하다고, 자기는 그 일을 할 인물이 아니라고, 그런데 하나님이 야단을 하시면서 부르시자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고 살인자의 약점을 넘어 민족의 지도자로 나섰고 마침내 민족의 위대한 인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약점을 잘 이용하였던 모세입니다.
위대한 바울도 본문을 보면 엄청난 문제점을 가진 부끄러움을 지닌 약점의 사나이였습니다. 그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고 할 만큼 문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 쓰임을 받아서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극히 부족하고 모순투성이인 우리를 선택하셔서 위대한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런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약점을 가지고 그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난 성격과 허물과 실수로 얼룩진 생애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점을 하나님께 드려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약점들을 어떻게 활용을 하고 살아갑니까?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약점을 이기고 넘고 극복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12,13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엄청난 과거를 고백합니다. 약점투성이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자신의 약점, 부끄러운 과거를 숨김없이 다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행실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하나하나 다 고하고 토하고 드러냅니다. 이게 사도바울의 강점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약점 속에서 태어나서 약점 속에서 살다가 갑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도 그러하였고 심지어는 우리 주 예수님도 약점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의 기도에서 이렇게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이게 뭡니까? 내 약점이 있다, 그걸 피하고 싶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게 뭐요? 그게 십자가 지는 것이었고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러 세상에 오셨건만 그러나 그 십자가를 피하고 지지 않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런 약점을 받으셨고 그대로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 다윗에게도 약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그는 여러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사람을 죽였던 장군이었습니다. 그게 그의 커다란 약점이었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그는 충성스러운 부하 장군 우리야를 전장에서 야비한 방법으로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취하는 범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체없이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셨고 그런 다윗을 엄청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잘못을 깨닭은 다윗은 즉각 무릎을 꿇고 엎드려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점을 인정하고 처리하는 다윗을 받아주셨고 그리고 그를 다시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 자신의 약점을 잘 처리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가장 흠이 많고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미가 아주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성미가 급하였는지 예수님께서 인자가 이제 곧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자 그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주여 결코 그런 일이 주님 일어날 수가 없나이다”라고 마치 자신이 결제라도 하듯이 말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발을 씻기려 하시자 그 때도 “주여 이건 말이 안됩니다. 내가 씻겨야지요. 결코 제 발을 씻지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주님이 “내가 네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그러면 너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거야” 그러시자 바로 말하기를 “주여 제 발만 아니라 제 몸까지도 씻겨 주세요”라고 요청합니다. 성미 급한 베드로, 약점투성이인 베드로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나중에는 법정에서 재판받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은 예수님을 도무지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한 비겁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공로나 실수로 너무 잡혀 있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의 화려한 성공에 붙잡혀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그 성공을 되새기면서 화려한 그날에 잡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에 너무 집착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가 자신이 아니라 그 옆에 잇는 사람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 신세야’ 그런 남편, 그런 아내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들, 뿐만 아니라 내 아내의 약점들, 내 남편의 약점들도 모두 다 수용하고 포용하고 그리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정상적인 약점처리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를 솔직하게 내려 놓으라, 이게 중요합니다.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의 약점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으면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에 다 일등이 되고 다 최고가 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몇가지, 아니 한 가지에만 일등이 되든지 앞서든지 하여도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인정하기가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놓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자녀를 가진 부모들이라면 우리 아이만큼은 학교 공부는 당연히 최고여야 하고, 또 피아노도 잘 쳐야 하고, 거기다 태권도도 잘 해야 하고, 또 컴퓨터도 잘 해야 하고, 노래도 잘 불러야 하고, 모든 방면에서 잘 해야 하고 1등 해야 하는게 너무 많습니다. 장성한 자녀라면 직장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결혼도 멋지게 잘해야 하고 또 이뻐야 하고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그래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속이 상하고 그래서 기분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피아노를 이자매처럼 잘 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노래를 저기 저형제처럼 잘해서 최고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운동을 프로 선수처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공부를 잘해서 sky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그 말입니다. 그렇게 다 잘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다 잘하지 못해도 좋아요 그걸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는 일에 감사하고 그것에 열심히 하고 그러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내 약점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점을 숨기려고 더 크게 반응하는 게 사람입니다. 단순히 그래 이게 내 약점이야 그러고 인정하면 되는데 그걸 감싸고 숨기려니 그게 문제가 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쿨하게 인정해 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 인정이 안되니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 감싸야 하고 더 덮어야 하고 그럽니다. 그러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일들이 더 커지게 됩니다.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미국역사에 오점을 남긴 한 사람 오스왈드(Oswald), 그는 약점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그대로 살다가 간 인물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에서 실패한 여인입니다. 그가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세번째 남편과도 이혼하고 자식에게 사람은 믿거나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탈되었고 부정적인 성향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공격적인 성격이 되어 패싸움으로 고교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이사는 22번이나 하였고 12번 전학을 다녀야 하였습니다. 결국 학교중퇴를 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불명예 제대를 합니다. 그 후 결혼하였지만 아내는 차라리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그를 밀어냈고 쫓겨난 그는 밤새도록 술을 마십니다. 그는 절망감에 휩싸여 그만 밖으로 뛰쳐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숨겨둔 총을 꺼내들고 얼마 전 취직한 회사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1963년 11월 22일 시계바늘이 막 정오를 넘어가려는 순간, “탕!” 그렇게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하였습니다. 수많은 약점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약점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산 한 사람의 행동이 엄청난 비극을 저지른 것입니다.”
약점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우리들의 인생이 달렸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나의 그 부족함, 나의 약점,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다스리는 자가 고쳐지고 변화되고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그 약점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인생이 달렸습니다. 15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렇게 고백하고 인정하고 맡깁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주님 우리 구주 예수라
부족하지만 약점투성이이지만 그래도 나를 영접하실 그분께 인정하고 그대로 수용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2. 하나님은 약점을 위임하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문제많은 약점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렇게 고백하고는 다시 말합니다.
14절,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자신의 약점들을 다 고백하고 맡겨 드렸더니 도리어 하나님이 다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완전한 자들을 찾지 않으십니다. 완전한 인간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내어 놓는 사람, 즉 하나님께 위임하는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그게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는 약점 투성이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까?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인물입니까?
저는 아주 깊은 산골시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는 중학교부터 나와서 도회지에서 공부를 하였구요. 방학이 되면 언제나 시골로 가서 소를 먹이고 풀을 베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로 자랑할 것이 없어요, 남들보다 특별히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또 많이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 배경도 없고 자랑거리도 없고 그래요.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저 고맙고 정말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다, 은혜로다 그래요. 생각하면 늘 부족하고 늘 모자라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 솔직하게 고백하기를 이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가집니다.
역사를 보면 좀 부족한 사람들을 들어서 잘 사용하신 하나님이심을 발견합니다. 가장 위로는 우리의 조상 아담이 범죄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숲속에 숨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에 네가 왜 여기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하나님 앞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벗은 몸을 보았고 부끄러움 그 상태를 그대로 위임하고 내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와 대화하셨고 그리고 가까이 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부끄러운 약점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장사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데라는 앗수르 족속에 속한 사람으로 갈대아 우르는 달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지방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출신배경, 이것은 분명 자녀에게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아버지가 문제가 많았다 그러면 자식으로서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 앞에 내 놓고 위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아들을 주시지 않자 아내 사라는 조급해서 인간적인 생각과 수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기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품에 들여보내 자식을 보게 했습니다. 이것도 아브라함에게는 엄청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아내들끼리 문제가 되자 그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보냅니다. 지아비된 자로서나, 아비가 된 자로서 이건 말이 안되는데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그런 일을 행하여야만 하였던 아브라함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 앞에 내 놓고 위임합니다. 하나님은 약점을 다 내어 놓은 그 아브라함을 사용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하신 것입니다.
부모 때문에 부끄럽고 과거 때문에 부끄럽고 그래서 챙피하고 그래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런 사람들은 없나요?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녀들, 그건 그 용서하는 자녀가 복입니다. 그렇게 용서를 하지 못하는 자녀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나를 위하여 부모를 받아들이고 그분들의 약점을 그대로 용서하고 수용하여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그런 부끄러운 과거나 가족력, 그런 것들 다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세요. 맡기세요. 위임하세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맡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것들을 받으셔서 책임져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이런 찬송이 잇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그렇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가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숨길 것도 없습니다. 감출 것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약점도 강점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내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494장 찬송가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겨 주소서
아닙니다. 빈손이 아니라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그렇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가십시오. 내 형편 이대로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십시오. 우리 사랑의 아버지는 맡으십니다. 그리고 해결하시고 채워주십니다.
3. 하나님은 약점을 극복하는 사람을 더 축복하십니다.
15,16절,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인의 괴수였던 그 바울을 하나님이 참고 참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후에 영생얻는 자의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약점, 그 문제점, 그걸 하나님이 들어서 오히려 영생얻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바울의 입장으로서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약점을 극복하고 나니 영생얻는 자들의 본이 되도록 더 축복하셨습니다. 약점을 극복하고 나니 은혜를 더 주셨습니다. 축복을 더 주셨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게오는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그걸 극복하려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을 비집고 작은 키로 작은 다리로 나무 위를 열심히 올라 갑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삭게오야 네려오라. 오늘 내가 너희 집에 유하리니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도다”고 축복하셨습니다. 다리가 짧고 키가 작은 그가 그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그 뽕나무 위로 열심히 올라갔다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삭게오, 그는 이방인들이 사는 여리고성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금을 거둬서 로마정부에 바치고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불의 사람입니다.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질시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 취급을 못 받았고 오히려 이방인대우를 받고 살아야 했던 그런 인물입니다. 동족으로부터 소외 당하고 미움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치 나그네처럼 외로웠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삭게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가진 것들이 많이 있어서 큰 차를 타고 고급 외제차를 타지만 그러나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남들보다 훨씬 더 큰 저택에 살지만 그러나 외롭습니다. 든든한 직장에 들어가서 재미있게 살아가지만 그러나 왠지 모르게 늘 외롭고 힘이 들어갑니다. 소외감, 공허감, 고독감, 허탈감, 박탈감, 이런 생각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하다면 그들이 바로 이 현대의 삭게오인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 그도 정말 세상적으로 보면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는 약점을 오히려 공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라는 이 말은 바로 자기 자신이 부끄러운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있게 내어 놓은 말은 자기의 부끄러운 ‘내가 행한 모든 일’입니다. 즉 약점인 부끄럽기 그지없는 그런 자신의 과거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서는 그런 약점도 공개합니다. 도리어 극복합니다. 내가 행한 그 모든 일, 그걸 공개하고 그걸 드러내고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나에게 은혜를 주신 그 주님을 소개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낸 인물이었고 하나님은 그런 그 여인을 쓰셔서 복음전파에 활용하셨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적으로 어떤 약점들이 있습니까? 건강의 약점이 있습니까? 경제의 약점이 있습니까? 가정의 약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약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시고 있습니까? 그걸 잘 승화시키시기 바랍니다. 개발하시기 바랍니다. 극복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넘고 이기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문제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테러 때문에 공포입니다. 유럽은 특히 공포 속에서 나날이 살아갑니다. 왜 테러가 날마다 일어나고 왜 살인이 끊이지 않고 그럽니까? 그 마음에 분노가 쌓여서 그런 것들입니다. 억울하다 그겁니다. 약점들을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노가 가득합니다. 한마디로 이 분노의 영이 그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없습니다. 그러면 감사가 없습니다. 보면 볼수록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럽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분노의 영을 밖으로 다 내어 보내십시오. 우리 안에 감사의 영으로 가득가득 채우십시오.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한 없는 은혜로 가득 가득 채우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우리 안에 혹시 분노의 영, 억울함의 영들이 득실득실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감사와 찬송의 영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감사와 찬양의 영들로 가득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맺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