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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09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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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약속의 땅에 든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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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12:10-20
목회초년병으로 지방에서 교회를 섬기던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목회자가 미공군기지가 주둔해 있었던 소도시였습니다. 젊은 열정으로 닥치고 전도하던 그 시절에 한 젊은 여성이 전도를 받고 교회에 와서 등록을 하고 심방을 갔더니 그분은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새가족 심방초청을 받고 예배를 드리는 중에 기도제목을 내 놓았는데 한마디로 자기가 일하는 그 유흥업소가 사업이 더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업소의 영업이 잘 안되는데 더 잘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십사는 요청이었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드렸는지를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여인은 좀 다니다가 교회 다니는 일과 자기의 일이 제대로 연관이 되지 않는다고 신앙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집 바텐더를 하다가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새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이제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제대로 살아야지라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그만 두니 먹고 살아갈 일이 막막하였습니다. 일이 생겨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는데 백방으로 뛰어도 마땅한 일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기도하면서 일자리를 달라고, 제대로 돈 인생을 살게 해 달라고, 그 길을 열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도 직장을 잡기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 잠시만 눈감아 주세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단 살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던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이상합니다. 예수를 잘 믿으려고 이전의 잘못된 그런 일들을 포기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새롭게 출발을 했으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잘 되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보다 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의 도우셔야 하는데 기로고 일도 슬슬 잘 풀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어도 일이 잘 안되고 여전히 이전과 똑 같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고민하다가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면 그때 다시 올게요 하나님 죄송해요’ 그리고 어렵게 시작했던 신앙을 버리고 이전에 하던 일로 되돌아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복의 근원이시오 창조자이시기에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라는 인간의 태어나고 죽고 화를 받고 복을 받는 그 모든 일들을 다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가장 귀한 일로 여기며 우선으로 살아가는 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자녀된 우리를 마땅히 도우시고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만 전게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을 받고 75세 나이에 살던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약속 한 가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만 붙잡고 떠나 온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그리고 떠났다. 다 떠나서 가나안에 왔는데 그런데 거기에 기근이 온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왔습니다. 약속의 땅에 어떻게 기근이 올 수가 있습니까? 이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온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람에게 찾아온 이 고비, 우리 인생에게는 이런 고비들이 즐비합니다. 우리 인생의 약속의 땅에 찾아온 기근, 이 고비를 알고 슬기롭게 잘 넘겨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1. 약속의 땅에 든 기근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그 땅에 어디입니까? 영어로 그 땅에, “Now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in the land”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던 그 땅, 그 약속의 땅, 그 가나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가리고 하신 땅이요 약속의 땅인 그 가나안인데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인간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직접 말씀을 하셔서 큰 맘 먹고 가나안으로 갔는데 그런데 그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들었어요?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우리가 믿는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을 내리시려면 차리라 가라고 하시지를 말았어야 하는데 그런데 기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 먼 길을 고생고생하면서 이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그런데 이 땅에 기근이 들었어요, 그것도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이러니 얼마나 기가 찬 일입니까?
생각, 생각 끝에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내 사래가 너무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아내가 너무 예쁘면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여 가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때문에 아브람은 혹시라도 애굽 사람이 너무 이쁜 아내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고관들이 바로 왕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였습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갔는데 흉년입니다. 겨우겨우 피하여 이 애굽으로 들어왔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 아내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였습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야속하게 여겨질 때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이런 흉년을 만나게 하실 것이 무엇이람?
약속의 땅에 이렇게 흉년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고 약속해 주신 그 땅에 이런 흉년이 오다니? 왜 이런 흉년이 왔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여러분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흉년이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분명히 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셨는데 그런데 그런 약속처럼 되지 아니하고 왜인지 나에게 문제가 생기고 일이 꼬이고 자꾸만 문제가 발생하고 호미로도 못 막고 삽으로도 못 막아요. 그래서 보통 문제가 아니고 보통으로 머리가 아픈 게 아니예요. 그렇다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애굽으로 피난가야 해요. 이게 얼마나 이해가 어려운 난감한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현실적으로 약속의 땅에도 흉년이 옵니다. 약속의 땅에 가서도 어려움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아무런 대책도 없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면 그러면 일을 당하면 시련 속으로 들어가고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탄식이 가나안에 어떻게 가뭄이 오는 가라는 탄식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데 어떻게 시험이 오는가? 기도하는데 어떻게 시련을 끝이 없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험에 들게 되고 기도가 멀어지고 예배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스스로 가지는 시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속의 땅에 도 기근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오고 재난이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약속의 땅이라도 아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도 주시고 고통도 가져다주십니다.
찬송가 337장입니다.
1.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을까라는 의아심입니다. 내 작은 머리와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요, 납득이 안 가요? 그런데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고 나니까 일이 더 안되고 어려워지더래요. 차라리 믿지 않을 때가 더 편하고 좋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고난이라는 기근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 그 고난을 피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받자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있지만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말합니다(막10:30절).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딤후3:12절에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즉 신앙생활이라는 가나안에도 반드시 고난이라는 기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약속된 가나안에 가는 통과재료이요 필수과정입니다.
2. 내려가는 인생
11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가나안에 입성하였지만 그런 축복의 땅,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몰아닥친 흉년으로 인하여 기근이 들었고 그 기근으로 인하여 아브람은 어려움에 봉착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되어 아브람은 고민고민을 하다가 가나안에서 벗어나서 애굽으로 가려고 결심하고 드디어 그를 실행합니다. 아마도 많은 고민과 걱정으로 수많은 밤들을 새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결심합니다. 애굽으로 가자, 그리고 이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본문의 11절이,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정착하지 못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긴 하였지만 애굽으로 갔다고 해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아예 떠나는 불신자로 전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애굽에서 하나님을 따르자니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차라리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버렸다면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는데, 그리고 하나님은 믿는데 그런데 불신자들 속에서 살면 거기에 어려움이 있고 불편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었을 때, 즉 불신자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처럼 같이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속이기고 하고, 적당히 욕도 하고, 세상에서는 탈세도 하고 불법도 하고 그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들입니다. 주일 지키느라 희생하지 않아도 되고 그들과 같이 마시고 그들과 더불어 피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그들의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저 아래의 여리고로,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애굽에 이르자 더 불편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아내가 너무 이뻤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눈에 뜨이게 이뻤고 그게 애굽에서는 그 이쁜 아내를 차지하려고 그 남편을 살해하는 아주 이상야릇한 풍습마저 있었던 우상의 지역이요 마귀의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은 무서워졌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배고파서 왔는데 자기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아내 사래 그리고 조카들을 지키고 보호하여줄 그 보호막이 다 거둬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불안불안하였습니다. 이미 75세가 넘었습니다. 아내 사래도 60이 나이가 넘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예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아브람이 꾸며 낸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14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애굽으로 내려갔더니 자기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야 했던 남편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얼마나 치졸한 방법입니까? 내려갔다가 생긴 일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났다가 당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니까 그만 아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고 자신도 추한 꼴로 맞이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려가는 인생의 앞 길에 나타나는 현실들입니다. 축복의 장소를 떠나서 맞이하는 위기입니다.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내가 살기 위하여 아내를 위험으로 몰고 가는 정말 졸장부인 남편입니다.
사람은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합니다. 안 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내려갈 때에 잘 내려가야 합니다. 잘 내려가지 않으면 크게 다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렵고 힘들고 실제로 사고도 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에 훨씬 더 많은 일어난다고 합니다. 무릎을 다치고 무리가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파트 20층을 올라간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내려올 때는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타래요, 이유는 내려가다가 보면 무릎을 다치고 무릎에 무리가 더 심하게 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모든 것이 순조롭고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별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안되고 마음도 불편하고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더 잘 다짐하고 잘 세워가야 합니다. 부부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살다가 공연히 서로 간에 틈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말하는 것도 조심하여야 하고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기분이 상한다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면 안됩니다. 요즘은 핸드폰이 있으니까 얼굴을 안보고 의사를 표현하니까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막 쏟아서 눈에 올립니다. 그대로 표현하고 그대로 쏟아내면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내려 갈 때 잘하고 힘들 때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게 신앙인입니다.
인생도 같은 원리입니다.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고 출근하고 사업도 잘되고 그러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잘 될 때 잘하는 것은 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내려가는 인생일 때에 잘 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취업이 잘 안되요 직장도 힘들어요, 경제도 어려워요 건강도 힘 들어요, 인간관계도 힘들어요, 이 때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전도서 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인생에서 곤고한 날, 힘든 날에는 생각하면서 조심조심하며 내려가야 합니다. 이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평생을 잘 살다가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 가면 그 때부터 서로 간에 문제가 하나하나 나타나기 쉽다고 합니다. 힘있고 젊어서는 별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힘도 없어져 가요, 돈도 떨어져 가요, 그런데 고집은 더 세져 가요, 목소리는 더 커져가요. 그러면 그게 인생에서 내려가는 노년기에는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부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조심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노인이 되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 머리털이 자꾸 희어져 간다, 그러면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내려가는 길에서 조심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그 흉년을 믿음으로 대처하여야 했습니다. 자기에게 닥친 흉년을 정면으로 돌파했어야 했는데 피하고 피하려다가 문제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은 그저 내리막길로만 내닫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에게 닥친 믿음의 시련의 기회를 그대로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면으로 나서서 넘어가고 극복하려고 하여야 문제가 해결이 되어집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서 오자’ 그렇게라도 했어야 문제가 꼬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사기의 엘리멜렉도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고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내려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역시 ‘차라리 우리가 모압에 가서 양식을 사서 오자’ 그랬어야 합니다. 그랬으면 내리막길을 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를 피하지 않고 문제에서 정면으로 도전하고 넘어가는 길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서다.
결국 아브람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목숨의 위험을 느낀 그가 자기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둘러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위기로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문제에 봉착한 것입니다.
14,15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인지라”
결국 그들이 염려하고 두려워하던 그대로 일들이 전개되고 말았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안되려면, 일이 꼬일려면 염려하고 걱정하던 그 일이 그대로 현실에서 하나하나 전개되고 발생하여 갑니다. 욥의 고백과 같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이렇게 묘하게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런 일들이 내 현실에서 내 두 눈 앞에서 그대로 전개됩니다. 이게 미치는 일들입니다. 아브람에게 그대로 전개되고 말았고 결국 아브람은 그 이쁜 자기의 아내를 애굽의 바로의 왕궁으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기막힌 일들이 염려하던 그대로 전개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이런 불행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제발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피해 갔으면 하는 일들이 전개되지 않고 피해 가고 넘어가기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살아가지, 이상하게도 안 좋은 일들만 계속하여 만나게 되, 그러면 이게 곤란합니다. 불행하게도 아브람에게는 염려하던 그 일이 그대로 전개되었고 그가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아내 사래의 아리따움을 보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여서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이끌려 가버렸습니다. 제발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피해 갔으면 하는 일들이 전개되었고 피해 가지 못하였으며 넘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의 잘못한 대처가 가져온 불행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닥친 가뭄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었던 그때, 자신에게 다가온 그 위기에서 너무나 쉬운 길, 즉 가나안에서 벗어나 먹을 것이 많은 땅 애굽으로 가자 그리고 선택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딱 한 번의 결정적인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이 땡에 그냥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견뎌보자, 그리고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 오자,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음으로 대처할 생각을 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고 ‘흉년이네, 애굽에는 먹을 것이 풍성하데’ 그리고는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위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불행의 연속선상에 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런 상황에 우리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 현장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현장, 왕 앞에, 자신이 한 거짓말 때문에 벌어진 일들로, 그래서 엄청난 사건 앞에 그러나 빼앗긴 아내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너무나 무기력한 그 현장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정리하여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참담한 그 현장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고생을 하면서 순종하여 이 먼 길 애굽까지 따라온 사랑하는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참담한 아브람, 후회와 한탄으로 그 순간을 어쩔 줄 몰라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그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그리고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일이 되도록 만들어 가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개입하시는 아버지, 그 사랑으로 풀어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 아버지,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86:6,7절,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그렇습니다. 내 어려움에 개입하시는 아버지, 그 개입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개입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건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다윗의 왕이 되어서도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시40:2절,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이끌어 올리시고, 기가 막힌 수렁과 웅덩이, 우리 인생에 살아가다가 흉년이 들어서 이런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아브람처럼, 다윗처럼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기가 막히는 웅덩이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환난 날에 주께 부르짖으면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아멘, 할렐루야! 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람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섰습니다.
13:1,2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맺음: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옵니다. 하나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해도 여전히 어려움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 땡에 믿음으로 잘 대처해야 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1. 약속의 땅에 든 기근
2. 내려 가는 인생
3.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