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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an 29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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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베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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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대상4:9-10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의 이름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은 김영숙이라고 하는데 약 4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도 역시 김씨가 많아서 김정숙, 김정희, 김영희, 김영자 등 등이라고 하는데 주로 옛날 이름들입니다. 평생 부르고 불리면서 쓰는 이름이라 부르기에 편하다고 부모들이 지어 준 이름들입니다. 그런나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가장 많은 이름들이 남자아이는 민준, 지후, 민서가 많고 여자아이는 서연이, 서현이, 민서, 하은이 같은 이름들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모두가 다 아름다운 이름들입니다.
요즘은 우리 주위에서 자기의 이름을 바꾸어 개명하고 내 이름을 바꿨어요라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됩니다. ‘아니 자기의 이름을 자기가 자기 이름을 바꾸다니’ 라고 이상스럽게 생각하다가 보면 오죽하면 바꿀까라는 생각으로 이해를 하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려지던 자기의 고유명사인 그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 아쉽지 않을까라는 의아심도 갖게도 됩니다. 시대에 따라서 자신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향을 따라서 이름을 지어 개명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도 하고 그럽니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름의 의미보다 훨씬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이름보다 못 살아가는 사람들, 즉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름은 만복, 우주, 찬란, 이런 거창한 이름인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그런 경우의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는데 삶은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사람들의 삶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도 대개 의미가 담겨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 사라, 열국의 어미, 야곱, 발꿈치를 잡았다, 이런 의미가 담겨진 이름들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삶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름값을 하고 간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야베스, 그는 이름보다 훨씬 더 잘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야베스란 이름은 그 어머니가 지었는데 ‘고역을 만들다’ ‘슬프게 하다’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아이 낳을 때에 엄마가 정말 고생하고 죽을 고비를 넘어서 낳은 인물이었나 봅니다. 얼마나 고생하였으면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의미를 이름에 붙였을까요? 그런 인물이 또 있었지요? 라헬, 그도 베냐민을 고생고생하며 낳다가 그만 죽잖아요. 그렇게 애기 낳는 것이 수고로이 낳았던 시절입니다. 어쩠든 야베스도 그 어머니가 무척이나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 야베스, 고생의 대명사인 야베스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귀중한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간 인물 야베스입니다. 분명히 이름은 수고로이 살아갈 인물인데 삶에 대한 평가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라는 평가입니다. 멋진 이름인 것입니다. 정말 멋진 이름인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 ‘존귀한 자’라고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남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나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돈은 많지만 존귀하지 못하고 천한 자가 많습니다. 배움은 높고 위치는 높으나 남들에게 천한 자로 서 있는 자들도 의외로 우리 주위에는 많고도 많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야베스가 서 있는 위치가 오늘날 무척이나 우리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야베스는 존귀한 자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존귀한 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런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문이 본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도 잘 나타납니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멋지게 응답하셨고 그리고 야베스는 그걸 누리며 살았습니다. 야베스처럼 기도하고 그 기도를 응답받고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1.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10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그의 삶에서 받은 복은 그 하나님께 구하여 받은 복들입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기도의 열매로 받은 복입니다. 성경은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라고 합니다. 즉 구하여, 기도하여 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하기를 “나에게 복을 주시려거든” 개역한글성경은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입니다. 복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복을 구하여서 받아야 합니다. 동일한 이치입니다. 복을 받기로는 다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이 뭐냐? 사람들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 그것들이 복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주어지는 것들이 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복이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나의 노력과 애씀으로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을 넘어서서 주시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이 말은 복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복이 뭡니까?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게 복 중의 복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응답으로 받는 복, 이게 가장 큰 복입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이게 성도에게 약속된 제일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은혜받는 통로요 축복받는 통로입니다. 구하고 받고.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걸 받은 사람들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말하기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받았습니다. 이 믿음에서 만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할렐루야!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복은 차원이 높은 복입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는 복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복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는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내가 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복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나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나의 최고의 가치로 구한다면 그가 받는 그 복은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란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출판한지 1년 만에 33판이 찍혔습니다. 그 책의 내용들을 보면 존이라는 사람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천국에 가자 베드로 사도가 안내를 합니다. 친히 천국을 안내해 주며 이 방 저 방 열어 보이는데, 어떤 한 창고에 이르렀더니, 갑자기 베드로 사도가 깜짝 놀라면서 문을 닫고 안 보여주는 겁니다. "베드로 사도님, 그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거기에는 들어가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천국까지 와서 이렇게 감추기냐”고 하면서 더 보여 달라고 했어요. 베드로 사도가 "이곳은 당신이 안 보는 것이 좋겠어요." 합니다. 그러자 그는 더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보니 별의별 포장지로 싸여진 선물이 가득한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선물에 전부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겁니다. 섭섭한 생각이 들었어요. "베드로 사도도 다 나에게 온 선물인데, 안 보여주고..." 하면서 뜯어보았어요. 그 속에는 이 땅에 있을 때 그렇게 원하고 소원했던 모든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겁니다. 마음이 아팠어요. "왜 내가 이걸 못 받았지? 여기에 다 써놓았는데, 왜 그 응답이 나에게 도달하지 않았지?" 그래서 베드로 사도에게 따집니다. "베드로 사도님, 왜 이것이 배달사고가 났습니까?" 그러자, 베드로사도가 말하길 "그 이유는 자네가 달라고 요청을 안 해서 그래~ 하나님이 줄려고 다 싸놓았는데 달라고 요청을 해야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니까 자기의 이름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던 야베스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그가 가진 수고하고 힘들다는 이름의 야베스가 엄청난 하나님의 일군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름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환경보다 더 높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건보다 더 높은 사람을 사시기 바랍니다. 야베스의 기도로 인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인생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2. 지경을 넓히시고
10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경을 넓힌다는 것은 삶의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더 큰 영향력을 이웃에 미칠 수가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을 위하여 주여 제가 더 일하고 싶사오니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주십시요라는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책임, 기회, 영역, 여건 그런 것들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 많이 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감당하기 위하여 더 넓은 것들을 구하여야 합니다. 내 활동 영역의 지경도 넓혀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내 기도의 영역도 넓혀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나의 활동의 지경도 넓혀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내 생각의 영역도 지경도 넓혀 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 지혜의 영역도 넓혀서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여 주세요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나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관심의 지경도 넓혀주십사라고 기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기를 기도하고 구하여야 합니다.
세계선교의 문을 연 인물로 알려진 영국의 선교사 윌리암 캐리는 자주자주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도모하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구두 수선공을 하다가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되어서 교회를 잘 섬기던 그가 32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결단했습니다. 인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결심을 들은 아버지가 ‘미친 놈’이라고 반대하며 야단을 했고 그의 아내는 ‘여보 제발 인도는 안되요 우리 아이들도 생각해 보세요’라고 엉엉 울었고 그가 섬기던 교회는 훌륭한 목회자를 잃는다고 적극적으로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윌리암 케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도모하라는 생각으로 마침내 인도를 행하여 선교를 떠납니다.
그는 인도로 가서 가난하고 미신이 득실거리고 전염병과 질병이 창궐하고 수많은 고난과 파탄 속에 있었던 인도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부딪히면서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런 위대한 기도가 결국 인도에 복음전파의문을 열어서 비록 느리지만 그 수가 워낙 엄청난 힌두교 세력에 눌려 있었지만 그러나 그 미신의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는 문을 열어서 인도 선교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영국의 필립 브룩스(Phillip Brooks)목사님은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잠29:18을 영어 성경에 보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큰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큰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상상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꿈꾸며 생각의 지경을 넓히고 위대한 일을 생각하고 지경을 넓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큰 일을 하고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삼하3:1에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집이 흥해 가는데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져 결국 망해버린 이유는 사울의 좁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작은 일에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악신에 사로잡혀서 이리고 고생, 저리 고생, 고생을 하며 시달리다가 죽어 갔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위요 구국공신인 다윗이 무적의 적장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와 승리했을 때, 여자들이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라’고 하자 마음을 좁히며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다윗은 자기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울 왕을 하나님의 종으로 받고 그를 지키고 세우려고 마음을 넓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향하여 마음을 넓히고 지경을 넓힌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폭도 넓힐수록 좋습니다. 그것이 축복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9:6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넓혀서 그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면서 더 큰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롬11:35,36절,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아멘입니다. 우리가 미리 드리면 그러면 하나님이 갚으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걸 경험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늘 마음을 좁혀서 바둥바둥 거리지 말고 미리 드리고 넓혀서 드리면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넓히고 인색하시지 마시고 아멘으로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경을 넓히세요.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을 벗어나.
10절,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야베스는 어렵게 어렵게 탄생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이 없이 자기의 노력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이 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지치고 말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한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이것을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가진 복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어야 하였고 그리고 그걸 기도로 요청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많든지 많지 않든지 자신이 가진 복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복을 무너뜨리고 빼앗아 가려고 기회를 찾고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아 헤매듯이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악한 존재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마귀의 노림을 잘 알고 충분히 대비하여야 하고 사단의 간계를 미리미리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투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자였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경을 넓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그 복을 누리고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은혜는 반드시 잘 지키고 간수하는 자에게 그 은혜가 은혜되고 축복이 축복이 되는 법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완전하고 영구적인 복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번 받은 그 복이 영원히 지켜지고 유지되어 가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잘 지키고 보존하고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받는 것보다 지키는 자가 더욱 복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고전10:12).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야베스가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잘 지키고 세워가야 하고 간수하며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자들입니다. 주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주의 손의 도우심을 기대하십시오. 그래야 제대로 설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돕는 가장들이 있고 도우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잘 되는 사람들은 접시에 넘어져도 뭐가된다는 말들이 잇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애굽에 팔려 갔다가 그 고생을 하면서 자기의 정결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감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갔으니까 왕의 술맡은 관원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 하여서 2년 뒤에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전옥이 ‘왕이시여 제가 감옥에 갔을 때에 용하게도 내 앞의 장래를 말한 죄수 한 사람을 만났는데요, 진짜 용하게도 그 사람이 나에게 말한 그대로 되었더이다. 왕이 그를 한 번 만나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게 요셉의 애굽의 총리가 되는 계기였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의 손으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사람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금년 내내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란을 면케 하시는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4. 근심이 없게 하소서
10절,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세상에 근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에게 근심이 가득하고 근심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근심도 근심 나름입니다. 세상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뼈를 깎는 근심이 있기도 하고 그냥 견딜 정도의 근심이 있기도 합니다. 어쩠든 세상에는 근심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세상 근심은 거의 없고 영적인 근심만 가득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근심에서는 멀고 영적인 근심은 짊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자세히 보면 가정마다 근심없는 집들이 없습니다. 남들에게 말 할 수가 없는 근심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집집이 근심이 가득하고 속앓이를 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주시지는 않으시는 듯합니다. 신앙적으로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하는 일들이 좀 부족합니다. 직장이나 하는 일들이 잘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신앙에 소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완벽하게 다 주시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이 세상사는 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근심없이 살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사인 것 같습니다. 근심없이 살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심을 믿는 것입니다(잠10:22).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저에게 근심없는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명절 중의 대명절인 설날중입니다. 어떠하였습니까? 정말 근심없이 그저 감사 감사 그런 중에 명절을 지내고 있나요? 아니면 무언가 한숨을 쉬면서 한탄을 하면서 그러고 지나고 계시나요? 남편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아내를 보면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혹 자식을 보면 원망도 나오고 한숨도 나오고 그래서 근심근심으로 잠을 설치다가 어제밤을 세고 그렇지는 않으셨나요? 긴장과 원망으로 명절 보내신 성도는 없으시나요? 괜히 명절만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시지는 않으시나요? 야베스처럼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또 드린 그러한 성도들은 있지 않습니까?
근심 가운데서도 바람직한 근심이 잇습니다. 주를 위한 근심입니다. 주님 나라를 위하여 하는 근심입니다.
고후 7: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하는 근심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이런 근심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근심이 전혀 없다면 그건 성도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런 의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에게는 의식들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의식, 복음에 대한 의식,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의식, 이런 것들이 제대로 반듯하게 서 있어야 그게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제대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진리에 맞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의견이 성경적인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잘 가고 있는지를 유심히 기도하며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근심을 가진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이런 근심으로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고 은혜에 이르는 성도들의 이해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맺음 :
야베스는 이름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기도가 멋진 사람입니다. 그의 기도는
1.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사람.
2. 지경을 넓히시고
3.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4. 근심이 없게 하소서
야베스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