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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02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본문 :

본문 : 창: 12:1-9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하셨음을 실망하셨고 마침내 그들을 에덴에서 쫒아내고 남자에게는 땀을 흘리면서 노동을 해야 먹고 살아가도록 하셨고 여자에게는 아이를 잉태하는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시던 하나님 또 실망하십니다. 아담 이후로 10대 손인 노아시절에 이미 온 땅에 죄악이 가득하였고 하나님은 더 이상 지켜보고 게실 수만 없었습니다. 마침내 온 땅을 물로 심판하셨는데 40일간 위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아래 땅에서 물이 솟구쳤고 온 땅이 물에 잠겨서 40일간 지나게 하신 노아홍수 심판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때에 노아와 3자녀의 부부 등 모두 8명만 구원을 받은 참으로 엄청난 노아홍수를 겪게 되었습니다.

노아홍수를 실행하신 하나님은 몸씨 마음이 불편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게 무지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9:12,13).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도 비만 오면 뜨는 무지개는 곧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전체로는 구원하기 어렵겠다, 이제는 한 민족을 택해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펼쳐나가야겠다는 방법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신 것이 히브리민족이요 그 히브리민족의 대표로 아브라함이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그를 통하여 믿음이란 매개체로 만나야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실행하셨습니다. 그 실행이 오늘 본문으로 읽은 창세기 12장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이 인류구원을 다시 시작하시고 역사에서 펼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타고나면서 운동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훌륭한 지도자의 눈에 뜨이고 발견되면서 시작되듯이 아브람 역시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으면서부터 그의 인생을 제대로 시작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람은 75세에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결코 적지 않은 75세라는 나이에 인생의 결정적인 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온 인류 중에서 유일하게 믿음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우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정말 위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부르심을 받고나서는 더 이상 아브람이 아니었고 마침내는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은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순간부터 아브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전환점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아브람의 전환점은 바로 우리의 전환점들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우리도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새로운 달력이 넘어가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에서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합니다.

1. 하란에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게 오늘 본문입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그러나 하나님은 이보다 훨씬 전에도 아브라함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아브람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미리 아셨고 그리고 인도해 오셨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행7:2-3절,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에 있기 이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이미 그를 아셨고 그리고 그를 인도하셨고 그리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란에 있는 지금 하나님은 그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다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7:12). 에벤에셀, 여기까지 우리 하나님이 도우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백성들의 한결같은 고백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벤에셀, 에벤에셀, 에벤에셀의 우리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우리가 사는, 지금 사는 이 땅,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으로 옮기셨느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이런 신앙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왜 우리를 여기로 옮기셨을까요? 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실까요?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확실히 고백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알았고 섬기면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선 자리를 확고하게 한 그런 사람입니다. 우상의 지역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아브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지역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것만 있으면 어떤 자리,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상의 지역과 도시에서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런 상황의 우상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만나셨고 그리고 그들을 부르셨으며 그들에게 친절히 명령하셨고 그리고 그들이 옮겨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지역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믿지 않는 불신자의 가정으로 결혼하여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또 타종교권의 사람들을 만나서 결혼하는 그런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하면 믿는 사람끼리 결혼을 하여야 하지만 그러나 이왕 그렇게 되었다면 그렇게 선택하였다면 그렇다면 그 이방지역에서도 하나님은 계시고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고 지키시고 세우십니다. 그리고 꾸준히 역사하십니다.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명령하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는 명령입니다. 아브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런 명령을 받았습니다.

1)부르심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역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은둔하여 살고 있었던 그가 믿음이 조상이 되고 역사의 흐름에 등장하게 되었고 또한 그에 맞는 엄청난 호칭과 함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부르심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의 역사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보시고 부르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셨다, 이건 사건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 이건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이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때가 바로 그 인생의 새벽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그게 인생의 새벽입니다. 돌아보십시오, 언젠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때가 여러분의 인생역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아오셨다면 그건 정말 불행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의 개인 역사에서 개입하셔서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에 뜨였다, 거기서부터 역사가 기록되는 시점입니다.

엡2:12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때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부르시고 이제는 변화시키셨습니다.

엡2: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를 그렇게 가깝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그런 관계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로 부르셨고 그리고 구원역사의 시작을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떠남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야 가능합니다. 잘 있는 아브람을 선택하셔서 다른 지역의 인구수를 채워주시려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타지역에 가서 바보처럼 이방인들에게 주눅들어 가면서 살라고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었습니다. 그걸 하라고 부르심입니다.

그건 바로 아브람에게는 그게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었고 축복의 근원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제 이를 위하여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떠남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떠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떠남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를 따르려는 무리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8:34절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부인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역시 떠남을 요구하십니다. 자기를 떠나고 세상을 떠나고 따라오라고 가르치심입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불신의 자리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 자신을 최고라고 믿고 따르는 나만 복음, 내가 복음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의 자리, 세속주의의 자리에서 떠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인본주의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떠나야 기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명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아브람처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합니다.

3)믿음
5절,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믿음의 조상답게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떠났고 그리고 가나안에 입성하셨습니다. 아내와 조카와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기에게는 이방 땅입니다. 낯선 지역입니다. 타지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가나안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히11: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람은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갔다는 그 말 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순종하셨고 마침내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 밖에는 더 없습니다. 그래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여러분, 아멘이 잘 안되는 자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자리에서도 아멘하여야 합니다. 이게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여행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람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환영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포악한 가나안인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
2,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자기 땅에서 정말 근심없이 안정되게 잘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람을 하나님이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아브람은 그 명령을 따라 자기가 여태껏 잘 살고 있었던 지역을 떠날 차례입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은혜요 복입니다. 정처없이 떠나야 하는 아브람에게 복을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그야말로 놀라운 복입니다. 단순히 오래 살게 하겠다, 재물을 주겠다, 건강하게 하겠다 그런 정도의 보장이 아니라 특별하고 엄청난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너로 하여금 한 민족의 시작이 되게 하겠다, 그 민족이 복된 민족이 될 것이다, 동시에 수많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는 보장의 약속입니다. 이 복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정도의 복의 수준을 훨씬 넘는 엄청난 복이요 신령한 복입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출발하는 출발점에 선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을 보장하십니다. 그 복은 바로 그를 축복하는 모든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를 저주하는 모든 자에게 저주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엄격한 보장입니다. 이는 마치 복이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요즘말로 하면 무한대로 현금을 찾아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넘겨주신 것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만 아니라 저 세상인 천국에 가서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특권과 은혜와 그리고 축복을 안겨 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하였습니다(엡1:3). 

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런 엄청난 복을 주셨을까요?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아브람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단지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고 떠나게 하셨고 그리고 아브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순종하며 살기로 굳게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시고 그리고 책임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붙잡혀서 순종하며 살기를 굳게 결심하면 하나님은 그를 책임지시고 축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면 하나님은 그를 놓아 줍니다. 대신에 은혜도 축복도 임하지 않게 되어집니다. 이게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지식도 잇고 학벌도 있고, 재능도 있고 물질도 있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갖추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가두어 두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며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와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걸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모험입니다. 신앙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없는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7:29-31). 이렇게 사는 자세입니다. 이유는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지 아시나요?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아무 것도 버리지 아니하고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가진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그대로 돈 있는 그대로 살고 학벌이 잇는 사람은 그 학벌을 그대로 자랑하며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건강한 사람은 그대로 자기의 건강을 자랑하고 그러면 결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버리지 않는데, 내려 놓지 않는데 어디에서 역사가 나타나고 어디에서 성령이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던지고 희생하고 나눠야 그런 교회에 하나님의 존귀한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면 그가 복을 받고 아브람을 저주하면 그가 저주를 받는 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통하여 복을 얻고 누린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왜요? 그가 철저히 믿음으로 세워질 것을 우리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사용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세상통치의 방법입니다.

일반적인 방법 누가 복을 빌면 그 비는 그대로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아브람이 누굴 위하여 축복하면 그에게 복이 임하고 만약에 반대로 아브람이 누구에게 저주하면 그 저주가 그대로 임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방법은 반대로 누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내리시고 또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에게 저주하겠다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방법이요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주의 종인 저는 더러더러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목사인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반듯하게 서서 있기만 한다면,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서 있기만 한다면, 우리 주위에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도 되고 반대로 화를 당하게도 될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서서 있고 교회가 반듯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한다면, 그러면 주의 종들을 돕고 또 교회를 돕고 세우고 기도하고 협력하면 그는 복을 받고 형통하여 가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기독교가 어떠니, 교회가 어떠니, 목사가 어떻니 라고 야단하고 핍박하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야단을 받을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입니다(엡1: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이라는 것이 그저 이웃과 행복하게 친밀하게 잘 지내는 것만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이웃에게 전달되고 쏟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나 자신에게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나를 통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이웃에게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이 축복의 통로기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에게 축복의 통로여야 합니다. 출애굽기 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러분들이, 제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이웃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런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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