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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Jul 30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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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브라함의 예배시험
본문 :
본문 : 창22:16-19
직장에 다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시험을 준비하여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입사를 통과하여서 잘 다니고 열심히 일하면 되지 또 무슨 시험이냐고 하지만 시험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또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을 치고 중학교 입시도 시험치고 고등학교, 대학을 시험을 치고 그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시험을 치고 시험을 칩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합격하고 통과하여야 학위도 취득하고 더 높은 영광스러운 자리로 올라가고 그럽니다. 여기서 성공하면 그의 인생은 더 낫고 아름다워지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그 인생은 더 아름다운 미래를 얻기가 어려워지고 인생도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시험성적이 올라가고 내려간다고 하여서 반드시 그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삶에서 정말 판가름 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 평가되는 모든 시험은 학교가 가르쳐주고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을 인정받고 확인하는데서 그치는 일입니다. 물론 이 시험으로 인생 삶의 질이 바뀌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건 거기까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입니다.
시험 중에 정말 잘 치러야 하는 시험이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시험은 최고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아무나 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만 치루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하고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하지를 못합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시험이요 믿음이 사람들이 치게 되는 값비싼 시험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험을 아브라함은 예배에서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로 드려라”라는 예배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예배 시험을 정말 아름답게 통과하여서 멋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류역사의 시작에서 첫번째 비극은 가인과 아벨의 형제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배시험에서 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형과 아우가 같이 예배시험을 보고 하나는 통과, 그리고 하나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아니하시고 동생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가인이 자기의 동생 아벨을 시기하게 되었고 결국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는 일로 발전되었습니다. 예배의 문제였습니다. 잘못 드린 예배가 인간 세상에 최초의 살인을 가져오고 가정의 비극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엄청난 비극은 예배로 인하여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 예배 시험을 잘도 통과를 하였습니다.
1. 아브라함이 받은 예배시험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 세상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 그의 삶에 임재하시고 다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열납된 제사를 드린 아벨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가인은 마음도 저주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욕망에 이끌려 비극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성공실패는 바로 예배의 문제입니다. 예배시험의 통과가 관건입니다.
예배의 성공이란 항상 예배함에 성공함입니다. 우리는 무시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야 하고 또 제대로 정해진 예배도 잘 드려야 합니다. 또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예배를 기쁘게 열납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임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셔선 스랍천사처럼 겸손과 경외함으로 열심히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예배에의 성공은 진지하게 준비된 예배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자가 되길 원합니다. 가정에 성공하고, 신앙에 성공하고, 교육에 성공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추구하는 어떤 일에 성공하고, 목회도 성공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성공은 인생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와 같이 인생에 성공하지 못하면 가장 불행합니다. 우리의 수없이 많은 노력은 성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도 실패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공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성공할까요? 오늘 저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진정 성공하려면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의 성공자만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도 성공자가 되게 해주십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참으로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예배의 성공자만 되면 인생에서 다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온 유럽을 차지하여 한세대를 풍미하던 나폴레옹의 참으로 의미 깊은 이야기입니다.
이 실화는 나폴레옹에게만 적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가인은 예배의 실패자였지만 아벨은 예배의 성공자였습니다. 그 결과 가인의 인생은 실패로 끝났지만 아벨의 인생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있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영원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배에서 성공하여 의롭다 여김을 받았고 축복의 근원이 되는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서 실패하게 되지만 예배에서 성공하면 그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예배의 성공자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지시 받은 장소에서 드린 예배
2절, “너의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드려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명령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언제나 예배 자세가 되어 있었던 터라 그대로 순종하며 나섰습니다. 예배에서 성공자가 되려면 항상 예배드릴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안식일과 특별한 절기 외에도 매일 하나님께 제사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두 번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상번제란 항상 드리는 번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마음속에서 예배하는 생활이어야 하지만 예배드리는 수효도 중요합니다. 한 주간에 한 번으로는 부족합니다. 20세기 저명한 신학자 K. Barth는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2: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는 날마다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비록 오늘처럼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아니더라도 날마다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날마다 그의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항상 있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오늘의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12:1절,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셨는데 이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지시할 땅을 모리아 산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서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지시할 땅인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니엘서 9장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나와서 성도를 박해할 것이 예언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박해하느냐? 그 핵심이 성소를 훼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예배만 못 드리게 하면 자기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펄젼은 “많은 원수가 있어서 제단의 불을 끄려고 한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성경의 나무를 더하고 기도의 바람을 보태어 제단의 불이 영원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에 등한히 하는 것은 마귀의 작전입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고 항상 예배하여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예배 시험은 단순히 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죽고 사는 제사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로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간 아브라함입니다. 이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가는 중입니다. 죽고 사는 제사였다는 말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 자기가 지고 간 장작더미 위에 결박당하여 올라가 희생하여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결박을 당하십니다. 이삭을 죽이려다가 살려 놓으셨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다시 내려 살리셨습니다. “네 씨로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시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는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것이 예배 시험이다’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 같이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치르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함께 하나님의 예배시험을 치고 점수를 얻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배라는 시험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라는 과목의 시험을 얼마나 순수하게, 거룩하게 잘 치고 있는지를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고 살피며 계시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점수는 내가 죽고 예수로 살아야 얻을 수 있는 점수입니다. 이 점수가 나올 때까지 내가 죽어야 합니다. 이 점수가 나올 때 역사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가 잇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인정받는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복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알아주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으면 영적으로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예배자, 여기에서 복의 근원이 되는 신비를 알게 됩니다.
3. 아브라함의 준비된 예배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이 말을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이 치른 예배시험에서 아브라함의 예배는 언제나 준비가 된 그런 예배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예배 명령에 따라서 그대로 준비된 상태로 나서는 아브라함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준비된 예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된 사람의 예배가 필요하고 그런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예배가 준비된 아브라함은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바로 예배의 장소로 나아갔습니다. 언제, 어디서 하나님의 예배시험이 주어져도 언제나 아멘하고 일어설 수 있는 이렇게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도 항상 준비된 제사였습니다. 구약 제사장들은 한 번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오랫동안 자기를 거룩하게 하며 준비합니다. 그러다가 예배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순정하여 예배로 들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한 주간 앞서 들어가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를 준비합니다. 일상의 모든 삶들이 다 예배인데 무슨 준비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정한 예배를 위해서는 항상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한 주간 동안 온 성도들이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시간에도 일찍 나와서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오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다 함께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예배순서 진행을 위하여 정위치에서 봉사함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마다 기도부대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예배 시작 1-2시간 전에 교회 기도실에 와서 예배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런 교회는 부흥은 물론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도 1부 예배를 드리고 나면 2부 예배 전에는 기도로 준비하는 장소여야 합니다. 이처럼 외형적인 목표가 아니라 가장 은혜로운 교회를 목표로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쓰시는 교회가 될 것이고 마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강력한 요새가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 도시, 교회가 위치한 이 지역에 비가 정말 엄청나게 많이 왔습니다. 딱 예배시간 시작 전에 특히 많이 왔다고 합니다. 교회 정문 앞에 차에서 내리면서 흠뻑 젖어야 할 만큼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주 예배에는 성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그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주에 한 집사님을 심방해서 들었는데 그 집사님은 매일 1시간 반 차를 운전하여서 우리 예배에 오신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비가 와서 2시간 운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예배는 2절, “너의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드려라.”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이런 예배자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렸던 모리아 산이 지금의 예루살렘의 성전터입니다. 아브라함이 선 자리가 거룩한 자리였던 것처럼 예배하는 공간도 거룩하게 됩니다. 예배하면 그 공간도 영적으로 거룩해집니다. 신령한 예배를 자주 드리면 예배하는 공간까지도 은혜로운 장소가 되어 악령은 떠나고 훈훈하니 성령의 역사가 강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이 아닌 때도 그 자리만 오면 은혜의 훈훈함을 느낍니다. 기도 많이 한 장소에 가면 기도가 잘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예배시험을 잘 준비하여 예배시험을 잘 치르시기 바랍니다. 잘 준비된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하면 하나님이 후한 점수를 주십니다. 성도들은 예배드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예배는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준비된 예배를 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신앙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배시험을 잘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의 예배시험 통과
10,11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예배를 드리려 하자 하나님은 그 장소에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예배하는 장소에 임재하셨습니다. 아직 예배를 다 드린 게 아닌데 그런데 하나님이 예배시험의 통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의 예배시험에 “통과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드리는 모리아 산의 예배에 우리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배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듯이 이런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이 사람들만 행위하는 예배라면 그 예배는 실패하는 예배입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예배가 아니라 공연입니다. 그곳에는 공허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공허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시험도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반드시 우리 하나님의 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성령의 불로서 임하십니다. 그 때 우리 영혼이 그 손의 어루만지심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고 살아나고 그 품안을 체험합니다.
아벨의 제단과 가인의 제단의 차이점은 가인의 제단에는 하나님의 임하심이 없고 아벨의 제단에만 임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는데 신령이란 성령으로 드린다는 뜻으로 예배가 율법의 형식이나 의식적 예배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간절함도 없이 늘 하던 대로 모여 흩어지는 식의 성의 없는 예배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성령의 임재와 인도가 함께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부부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박 집사 자동차가 에쿠스로 바뀐 것 보았어요?” 라고 묻자 남편은 “못 보았는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아내가 “어느 성도님 부인이 입고 온 옷이 밍크코트인 것 같아요 그것 보았어요?” 다시 남편이 “아니 몰랐어” 그러자 다시 아내가 “그러면 오늘 설교할 때 목사님 넥타이가 조금 삐뚤어 진 것 보았어요?”라고 질문하자, 남편은 “설교 듣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하나도 못 봤다고 하니까 아내가 열 받아 남편에게 “그러면 오늘 성가대 찬양하던 이 집사 입술 립스틱으로 진하게 칠한 것 보았어요?”라고 물어보자, 남편은 역시 “그것도 못 보았는데”라고 대답합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아내는 “아니, 당신은 예배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을 하나도 못 보았어요? 예배 시간에 잠만 잤어요?”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눈을 가리워서 눈물만 났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배시험을 잘 치르는 예배자입니다. 남편은 예배를 잘 드렸지만 아내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 예배의 구경꾼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드린다는 것은 예배가 이단적인 요소로 드리는 게 아니라 진리의 예수님이 증거 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단의 교주가 예수님 자리에서 영광을 받는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도 우리가 예배하는 주일날 같은 시간에 찬불가를 부르며 예불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그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령과 진리 안에서 열심히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찾아오십니다.
맺음:
하나님은 자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예배를 통하여 시험하십니다. 누가 준비된 예배자인지를 살피십니다. 누가 예배시험을 잘 치르는 자인지를 우심히 살펴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예배시험을 잘 통과하여야 합니다. 이 시험에서 통과하면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지지만 그러나 이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들은 다 이 예배시험을 잘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예배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임재하였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예배에서 성공하지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예배를 보시고 드디어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니까 놀라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되고 예배 성공자가 모든 것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은 예배 하나에 달려 있다고 믿어도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희망도 예배에 달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으십시다. 예배하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우리 모두 항상 예배하고, 예배를 준비하고, 하나님이 임하시는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 받으시고 우리 영혼이 살고 모두가 사는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 놀라운 운혜의 축복이 바로 예배 성공자에게 주어진 복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이렇게 예배에 성공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