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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Nov 06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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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아름다운 섬김
본문 :
본문 : 막14:3-9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내 시선, 즉 자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중심으로 살아간다면 그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의 생각으로 이웃이 불편하지 아니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방면으로 판단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이웃이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도구일 것이지만 그러나 이웃 중심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이웃을 위하고 이웃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이웃으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시선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시급히 회복하여야 하고 반드시 회복하여야 할 인생의 과제는 바로 하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일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그 것은 무엇일까라는 우리 하나님이 바라시는 희망, 그 시선을 찾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 일들을 이루고 성취하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영적상상력을 갖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영적인 상상력을 동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상상력이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한 이해이며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이의 관계를 영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와 기대를 이해하는 상상력입니다. 이 영적상상력을 회복하면 영적인 시선교정이 이뤄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의 신앙이 영적으로 펼쳐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렇게 하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관하여 기록한 글이 신약성경 앞부분의 4권인 복음서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3년의 행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이 복음서 4권의 책에 다 기록된 사건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건은 한 권에만 기록된 사건도 있습니다. 왜 어떤 예수님의 사건은 모든 책에 다 기록되어 있고 왜 어떤 사건은 한권에만 기록되었을까 생각하면 아무래도 비중의 차이일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기로도 같은 사건이 모든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건 그만큼 귀중한 사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여러 사람들이 다 비중있게 다루고 기록하였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향유 기름을 부은 사건은 신약복음서의 4책에 다 기록된 사건입니다. 아마 그 만큼 그 사건이 소중하고 교훈적이며 진리가 내포된 사건이라고 이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사건과 같이 동일한 사건으로 4복음서에 공히 다 기록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책마다 그 사건을 설명하면서 저자들이 이를 바라본 시선의 차이에서 각자가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복음서에 다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주님의 표정에 대하여 인상이 깊었다든지 제자들의 받은 은혜가 깊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어쩠든 이 기름부음 사건은 몇 안 되는 4복음서에 다 기록된 사건 중의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심지어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말씀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이처럼 칭찬하신 사건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녀의 섬김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섬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소리 없는 섬김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여인은 예수님께서 식사하시는 데에 조용히 와서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렇게 조용히 와서 아무런 이야기도 아니하고 예수님의 머리에 그 향유를 깨트려서 부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섬긴 섬김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섬김의 특징은 아무 말이 없이 단순히 봉사만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주인공 여인에 대한 기록을 하면서 마태복음에서는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마가복음에는 한 바리새인 집에 식사자리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기름을 부었다고 기록하고 마가복음에는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데 한 여자가 행하였으며 요한복음에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 나사로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 잔치자리에서 마리아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기름 부은 여인은 마리아이고 장소는 베다니 시몬의 집이며 나사로 집과는 가까운 이웃으로 보여 집니다. 바로 나사로의 집 근처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은 식사를 하고 계셨고 그 시간에 이 마리아의 기름부음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기록에는 어느 곳에도 사건의 주인공인 마리아의 말이 한마디도 기록이 없습니다. 아무리 살펴도 4복음서 어디에도 마리아의 말은 단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사건을 보고 마리아를 힐난하고 예수님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시면서 사건이 전개되는데도 마리아는 끝까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들이 퍼붓는 핀잔에도 아무런 대답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주님의 엄청난 칭찬에도 함구하고 끝까지 자기의 일만하면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섬긴 사람입니다. 오로지 자기의 할 일만 열심히 하는 마리아였습니다. 그 여인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자기를 핀잔을 하든지, 원망을 하든지, 심지어는 욕설을 퍼 붓든지 어떻게 평을 하든지 전혀 대응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하면서 오로지 한 마음으로 자기가 할 일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을 모두 다 탕감하였다면 누굴 더 사랑하신 것이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를 돌아보시면서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라고 직접 칭찬하십니다(눅7:44-47).
마리아의 섬김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감동시킨 섬김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어떤 섬김이 아름다운가요? 아름다운 섬김은 남들의 불평에 대하여 응답도 없고 반응도 없고 원망도 없고 오직 자기의 할 일만 열심히 하는 섬김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하였던 이유는 그가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리아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자기 오라버니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서 절망적이고 기가 막혔던 그 가정에 새로운 감격과 기쁨을 되찾게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이웃에서 모시니 너무나 신이 났고 너무나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아니하고 단지 기름을 부으면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멸시의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아니하였고 누가 뭐래도 반응하지 아니하면서 오직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섬김이란 바로 이런 섬김입니다. 사람들의 엄청난 칭찬에도 조용히 대응하는 마리아, 반대로 사람들의 쏟아지는 비난에도 조용히 침묵하며 대응하는 봉사, 이런 봉사가 진정한 봉사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방송하고 동네방네 소리내고 그러지 않습니다. 남들의 비난에 부당하다고 언제나 그대로 맞대응하고 반응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남들이 비난을 퍼붓든지 그저 말로 반응하든지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그저 조용히 자기의 할 일만 하는 그런 멋진 사람입니다. 이런 봉사가 아름다운 봉사요 이런 섬김이 바로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리아가 이 귀한 향유를 준비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 1푼도 기여하지 아니하였던 사람들이 이제 참견하려고 입방아를 찢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 비싼 향유를 소비하느니, 차라리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낫겠다느니 그러면서 자기들의 주관대로 판단하고 비난을 퍼 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주님을 섬깁니다. 마리아는 요즘 말로 ‘너나 잘 하세요’ 그럴 수 있었을 터인데 끝까지 침묵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시는데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칭찬해 주셨고 그들 앞에서 세워 주셨지만 마리아는 거기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아니합니다. 꾸준히 침묵하며 자신이 하여야 할 일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섬김의 모습이며 바른 봉사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두기만은 너무도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많고 때로는 다 쏟아내 놓고 남들 앞에 과연 어떤 상황인지를 다 알리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버선목을 뒤집듯이 다 뒤집어 보고 파 해쳐 보고 싶기도 하고 마치 국회에서 하는 것처럼 청문회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덮어두고 조용히 처리할 때에 더욱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가슴 속에 묻어 두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마리아의 섬김, 침묵의 섬김이라 더욱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이사야서 53:5-7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섬김의 자세입니다. 주님도 이렇게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섬김, 말없이 섬기는 것이요, 소리없는 봉사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섬김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을 낮춘 섬김
눅7:38절,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봉사합니다. 이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섬김이었습니다.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뒤로 와서 조용히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옥합을 깨트려 붓고 그리고 그 귀한 자신의 머리털로 씻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이 그림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감히 눈물이 그렇게 흐를 수 있기는 하며 또 자기의 머리털을 가지고 남의 발을 씻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또한 어떻게 그 발에 입을 맞추는 그런 섬김을 가능하게 됩니까? 한없는 눈물, 머리털로 상대의 발을 씻음, 남의 발에 입을 맞춤, 오로지 그 대상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런 섬김을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자신을 한 없이 낮추면서 섬긴 봉사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모래가 많고 바람이 많아서 먼지가 많은 곳입니다. 당시의 유대 사람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그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는 누구든지 자기 집에 들어오면 문 앞에 발을 씻도록 물을 내어 놓고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런 대접도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던 것 같습니다(눅7:44).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런 대접조차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발은 깨끗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한 여인이 와서 예수님께 그런 눈물의 섬김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인은 그토록 자신을 낮추면서 주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여인에게는 머리털이 남자에게는 수염이 바로 그의 기품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장 고귀한 것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귀한 여인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낮추면서 섬겼다는 증거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는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드러내고자 하는 자세임을 알게 됩니다. 즉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입니다. 우리는 나를 낮추고 주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내가 높아지면 주님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가 낮아져야 주님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我死主生 我生主死”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를 내리고 주님을 높여 드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정신이 그리스도께 칭찬 받는 봉사자세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위하여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우리 하나님, 그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이런 고귀한 일에 여러분들이, 제가 시간을 절약하며 섬기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운동하는 데는 시간을 내고 사람과의 약속에는 시간을 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주저한다면 그건 제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여러분들과 제가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3. 눈물의 섬김
눅7:37,38절,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마리아의 두 번째 섬김은 눈물의 섬김이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는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마리아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고 하였으니 정말 대단한 눈물의 섬김을 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까요? 본문은 그녀를 설명하기를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마리아는 귀신이 들렸던 사람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귀신에 사로 잡혀서 그 귀신이 가자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온갖 부끄러운 일을 다 하면서 지냈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이 떠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정말 기적같은 경험을 한 여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하였겠습니까?
또 한 사건은 마리아의 가정에 가장이었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가정으로 돌려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절망적이었던 가정이 완전히 웃음으로 바뀌었고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인하여 마리아는 주님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너무 감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쏟아지는 감사의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없는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거기에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여서 그저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흐르고 또 흘렸습니다. 그래서 그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게 되었고 마리아는 그 눈물로 젖은 예수님의 발에 자기의 입을 맞추고 자기의 머리털로 씻고 준비한 향유를 부어 주님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여서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르면 그게 축복입니다. 그럴 때에 진정한 섬김이 가능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이관데 주께서 나를 이토록 후대하시나이까?”라고 기도하였던 시편 8편의 기자 다윗은 정말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다윗은 고난이 없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에게 쫓겨나서 도망 다니면서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살아온 날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다고 고백하였고 그런 믿음이었기에 멋진 찬양이 가능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나는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그 많은 값비싼 향유를 준비하여 주님께 드리면서도 우쭐대거나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렇게 주님을 섬길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영적 시선을 갖게 되면 모든 것이 감사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삶의 모든 것을 돌아보면 모든 게 다 은혜입니다. 은혜로 생각이 들고 은혜를 갚아야지, 은혜에 보답하여야지 그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사람을 살립니다. 눈물은 그 사람의 속 내면의 모든 찌꺼기들을 다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은 사람의 내면을 정화하는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눈물은 사람의 정신만 아니라 영적인 찌꺼기까지 씻어 내는 효력을 지닌 위대한 세정제입니다.
마리아는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야단하는 어떤 사람들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혼내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개념치 않았습니다. 자기를 비판하고 못 살게 구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에게 은혜를 주신 그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감사하여 눈물이 쏟아지고 쏟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로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오면 목사만 보입니까? 아니면 성도들만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돌아오는 것은 상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은 보이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만 보인다면 상처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불완전한 사람들이나 교회가 아니라 그 불완전한 교회를 주관하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셔야 합니다. 영안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교회 안에 가득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시고 나를 구원하신 그 주님을 바라보시기 축복합니다.
눈물은 또한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아무리 돌덩이 같이 단단하고 굳은 마음도 흘리는 눈물 앞에는 약한 법입니다. 아내의 눈물에 남편의 마음이 녹아집니다. 부모가 흘리는 눈물에 아무리 바위덩어리 같이 굳은 자녀라도 흐물흐물 감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흘리는 눈물에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감동하십니다. 내가 눈물로 섬기면 그만 감동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살립니까? 눈물입니다.
이렇게 눈물은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우리 가정을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며 우리 민족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고 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여 있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요 눈물의 기도입니다. 눈물이 우리 공동체를 살리게 되는 특효약입니다. 눈물로 하는 봉사야말로 주님을 감동시키며 눈물은 그 자신도 바르게 세워가는 힘이 있습니다. 눈물의 봉사를 주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힘을 다한 섬김
8절,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깨트려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1데나리온은 한사람의 일당이라니까 이 향유는 약 300일 일당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돈으로 약 3,000만 원 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가치입니다. 이 여인은 그런 가치의 향유를 다 부어 섬겼습니다. 이 돈은 그 여인의 소유한 가치의 전부라고 봅니다. 그는 그런 가치를 따지지 아니하고 주님께 다 드렸습니다. 나를 살려 주신 그 주님, 내 가정을 세워주신 그 주님, 그래서 드려도 아까지 않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섬김, 이것이 바로 여인의 섬김입니다. 따지지 아니하고 모두 주님께 드리는 그런 힘을 다한 섬김, 주님은 그걸 가장 귀하게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의 섬김에 대하여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섬기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섬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로 힘이 들지도 어렵지도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정해 놓은 그 한도 안에서 섬기도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한계를 모두 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드려 섬기는 섬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한없이 섬기는 사람입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사람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섬기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섬겨 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정하여 놓고 살아갑니다. 예배도 딱 요기까지만, 헌금도 요기까지만, 기도도 요기까지만, 다 정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인본주의일 수가 있습니다. 보세요,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가르치십니다(마22:37,38). 내가 정해 놓은 요기까지, 더는 절대로 못해 그런 요기를 뛰어 넘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내게 힘 주시는 대로 섬기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섬김은 힘을 다한 섬김이었고 그래서 주님은 그 섬김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봉사하고 헌신하다 보면 원래의 계획보다 더 많이 섬겨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주님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사람은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시험에 들 수도 있게 됩니다. 어쩌면 연약한 여인으로 마리아는 일생을 모아서 준비하여 왔던 그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아무런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며 섬길 수 있었던 믿음은 바로 그의 한없는 주님사랑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부의 두렙 돈의 헌금을 칭찬하신 주님이십니다. 향유가 귀했지만 예수님보다 더 귀하지는 않았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그 귀한 향유를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이 여자의 사랑함이 많으니라”고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섬기는 자리에 있습니까? 무언가를 헌신을 요구 받는 자리에 있습니까? 너무 많이 계산하면서 살면 주위에 사람이 없고 주님도 멀리 계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헤아림으로 우리도 헤아림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적어도 주님께 대한 섬김에 있어서는 마리아처럼 풍성하게 섬길 수 있을 때에 “사랑함이 많다”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 시시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의 섬김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하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다할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섬김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맺음:
한 여인의 섬김은 온 방안에 향기로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 곁으로 다가와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아내고 그리고 향유를 깨트려 주님께 부었을 때에 금세 그 향유의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그저 주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가치를 따지지 아니한 섬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주님을 대하던 그 아름다움이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충성된 사람들도 귀합니다만 더 귀한 것은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 인격의 향기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는 법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섬김을 보시고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섬김을 고스란히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주님을 섬김에서 진지하게 다가간다면 주님은 그 섬김을 다 받으십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너무 고마워서 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희생으로 자신을 모두 바치며 섬기는 그런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진지하게 주님을 섬기십니까? 오늘 주님 앞에 칭찬받는 섬김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이처럼 영적 상상력이란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매일 계산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그렇지 아니하고 나타나 잇는 현실 그 뒤에 잇는 힘을 보면서 살아가고 섬기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상상력이 회복되면 현실을 넘어서 섬길 수가 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섬김이들이 됩시다.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