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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May 07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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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신앙의 명문 가정을 이루라
본문 :
본문 : 룻3:1-13
역사의 아이러니란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보면 고려 말 우왕 시절에 이성계는 왕이 명나라의 위협으로부터 고려를 지켜라고 평안도 압록강 변으로 군대를 보냈는데 그 군대의 장수인 이성계가 군대를 돌려 회군을 하고 그리고 고려의 우왕을 퇴위시키고 충신 최영 장군도 유배를 보내고 그리고 권력을 잡아서는 고려를 문닫고 이씨 조선을 세웟습니다. 그래서 B.C.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왕씨(王氏) 34대의 고려를 문닫게 하고 나라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씨가문에서 이씨 가문으로 바꾸어서 이성계는 조선의 초대 태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조선이란 이름은 우리나라 저 북에선 나라의 국호로 사용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니 이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630여년 전의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선택하여서 세우신 히브리 민족은 한마디로 여호와 신앙의 혈통을 이어서 세워진 선택받은 선민이요 거룩한 성민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신앙 그 하나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형제라도 배척하였고 심지어는 부모였어도 배척하였던 것이 바로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처들어 가서 이기고 승리하면 그 백성들을 다 몰살시켜라, 진멸하라 그랬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사울 왕 같은 이는 결국 명령불복종으로 하나님의 언약세서 배제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바로 이런 나라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중요하였고 그 선민의 혈통이 중요하였으며 그 중심이 되는 여호와 신앙이 중요하였던 그 이스라엘의 신앙의 정통역사에서 완전히 이방나라에서 살았던 나오미가 등장하고 룻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역사의 중요한 상속자 역할을 잘 감당하고 그를 통하여 다윗가문이라는 신앙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멋지게 이어갔습니다. 참으로 궁금하고 의아한 일입니다. 순수성, 정통성, 이런 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게 가능하고 그게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면들입니다. 지금도 성경은 그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모암의 여인 룻이라는 인물, 그는 자기 민족을 벗어나서 이방인과 결혼하여 온 여인입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일찍 죽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시어머니를 섬깁니다. 그러던 그녀가 선민 이스라엘 혈통의 위대한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의 상속자요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성취되었습니다. 룻4:16,17절,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이렇게 모압여인 룻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쓰임을 받게 되었고 그들은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룻의 조국 모압이란 나라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몹쓸 짓을 하고 낳은 아들 이름이요 그 족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여 낳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역사에서 영원히 배척받은 족속이었는데 그 나라 출신의 여인 룻이 히브리민족의 적통,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의 할머니 그것도 이스라엘의 국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이 그들을 이런 신앙의 명문가정으로 세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룻과 같은 우리들을 통하여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기를 기대하십니다. 보잘 것 없어도 그래도 하나님은 붙잡으시고 인도하시며 저희들을 통하여 아름다운 신앙의 명문가정들이 계속하여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명문가정을 이루는 인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나오미, 이 시대의 룻, 그리고 이 시대의 보아스가 나타나기를 오늘도 엄청나게 기대하십니다. 이제 이 가정의 달 5월에 여러분들과 제가 바로 모두 이렇게 멋진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일산가족 모두가 다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시기 축복합니다.
1. 나오미 신앙
나오미는 룻의 시어머니입니다. 다윗왕가 다윗왕의 증조모라는 엄청난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룬 바탕에는 바로 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지대한,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좋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좋은 며느리가 세워졌고 신앙의 명문가정이 세워진 것입니다. 나오미의 신앙을 봅니다.
1절,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멋진 말입니다. 어쩌면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개념에서 시어머니라면 자기의 며느리를 어떻게 일을 시킬까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데 지금의 이 나오미의 말은 그게 아닙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우선 며느리를 딸로 부릅니다. 요즘 그런다면서요? 아무리 잘해도 며느리는 며느리지 딸이 아니라고? 그래서 며느리와 딸이 다르다고? 맞습니까? 그런데 여기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를 아예 딸이라고 부릅니다. 자기의 자식이란 의미이겠지요? 나오미는 룻을 “내 딸아”라고 합니다. 그만큼 믿고 이해하고 딸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신앙의 명문가정은 이렇게 좋은 가족들의 관계를 가진 가정입니다.
그리고 다음을 보세요.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복되게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복되게 한다라는 말이 의미가 깊습니다. 이게 뭡니까? 내 며느리를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하겠다는 이런 생각이 귀한 생각입니다. 잘되게 하고 바르게 하고 인생승리자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걸 내가 너를 위하여 나서서 하겠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겠다는 귀한 생각입니다. 이런 결심이 신앙의 명문가정으로 만들어 가는 힘입니다.
자식을 바르게 이끌고, 제대로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하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부모 이런 부모가 자식을 복되게 하는 부모입니다. 여기서 우선 중요하게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대할 때에 그저 내 뜻에 꼭 맞도록만 대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식은 그 자신의 앞길이 있습니다. 그 자식이 가진 나름대로의 하늘의 뜻이 잇고 그 계획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그걸 바로 보고 그 길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입니다. 자녀를 복되게 하는 일, 그게 부모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녀를 복되게 하는 일, 그것이 부모의 사명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부모가 제대로 된 부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녀를 잘 가르쳐야 하고 제대로 인도하여야 하는데 때로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려면 그걸 잘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냥 내 자녀라고 내 새끼라고 그 편만 들면 안됩니다. 정확하게 보고, 잘 보고, 때로는 냉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녀가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고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그런 자세로 서야 따라가는 자식들이 바르게 알고 제대로 따라가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 부모는 자기 자식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로 가게 만들어 주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룻에 대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그 뜻을 이루어 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대한 우리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이것이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자식을 둔 부모는 그걸 읽고 알고 그를 이루어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가족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그것을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모든 자녀는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고 그들을 향한 하나 하나의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걸 제대로 이루어 주어야 명문가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부모된 우리는 우리 자녀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걸 잘 이루어지도록 가르치고 돕고 지원하고 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명문가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3:18절,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나오미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룻에게 말합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자 그 말입니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밖으로 그냥 뛰어 나가자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일하실 터이니 우리는 그걸 기다리고 그걸 보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히심을 보자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보고 알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먼저 나서고 내가 먼저 불평하고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기다라는 신앙, 이게 좋은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이 뭐냐,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가디리자 그걸 보고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 일하심을 믿고 보면서 기다리는 명문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룻의 신앙
다윗 왕가의 증조모가 된 룻은 무엇보다 인생의 고빗길에서 그때그때마다 선택을 멋지게 한 장점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모압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국제결혼을 하고 이스라엘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이 죽어서 다시 결혼의 희망이 없는데도 시어머니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신앙을 모압의 그모스 신앙에서 히브리인의 여호와 신앙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선택하여 마침내 신앙의 명문 가정을 이룰 충분한 조건을 갖춘 인물입니다.
룻1:16,17절,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그야말로 멋진 룻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신앙고백도 이런 멋진 신앙고백이 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결심을 가지고 어머니를 따라 나선 룻이기에 그런 멋진 며느리가 되었고 그리고 멋진 신앙인이 되었고 그리고 다윗왕의 중조모라는 정말 엄청난 역사적인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룬 룻이 되었습니다. 내 고백이 세워져야 합니다. 내 고백된 바탕에서 인생을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룻에게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룻의 장점은 자기가 서야하는 그 자리에 정확하게 섰다는 점입니다. 룻은 국제결혼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편에 섰습니다. 남편이 죽었어도 홀시어머니인 외로운 나오미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힘도 없는 그 시어머니를 따라서 고국을 떠나고 고향을 떠나서 낯설고 물설은 베들레헴까지 따라가는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자기가 서야하는 그 자리, 바로 보아스의 옆 자리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정확하게 서는 사람, 바로 룻이었습니다.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려면 자기가 가까이 하여야 하는 사람을 잘 알고 파악하고 그리고 그와 가까이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즉 멀리할 사람을 멀리하고 가까이 할 사람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이게 자기를 잘 지키는 길이요 자기를 세우는 길입니다. 괜히 엉뚱한 사람을 옆에 두었다가 손해보는 사람들, 공연히 잘못된 사람 옆에 섰다가 온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사람은 가까이 해야 하는 대상과 멀리해야 하는 대상을 잘 알고 그걸 잘 지키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걸 잘 알고 그렇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룻에게 있어서는 바로 보아스를 가까이 하여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하고 옆에 두고 아니 평생 그 옆에 사는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편에 서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누구와 가까운 편들이 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강력하게 외칩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의 편에 서리라”라고 결단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결단의 외침이 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이사야는 온갖 고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다니엘은 감옥에 갇히면서도 사시는 하나님, 능력의 살아계신 그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 편에 서고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결단의 사람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편에 설 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과 함께 믿음의 명문가정을 이루어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욕하고 비판하였어도 에스더는 끝까지 믿음의 사람들의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한 말이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의 편, 기도하는 사람들의 편에 섰다가 그는 드디어 아하스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고 대제국 바사의 국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온 이스라엘 민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해 낸 에스더, 즉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사람 편에 서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가장 강하게 붙잡고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그들 편에 서야 합니다. 그들과 보조를 함께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 가시고 일하십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5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할 일을 하나하나 가르쳤습니다. 룻은 그 말을 듣고 그리고는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아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입니다. 아멘이 사람을 명문가정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멘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아멘하는 사람이 복입니다. 아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멘하여야 잘 됩니다. 어렵다고 평생을 가도 십일조헌금에 대하여 아멘 못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그렇게 살아갑니다. 평생을 가도 바빠서 늘 시간을 못드리고 시간드리는 일에 아멘하지 못하면 그대로, 그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룻처럼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그래야 하나님도 아멘하십니다. “그가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그래서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멘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반대하고 내가 맞서고 그러면 하나님도 그를 대하여 맞서십니다. 그게 사울 왕이었고 그게 다윗 왕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아멘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심을 후회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의 가르침에 대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고 자기가 생각하기 좋은 대로 행동하다가 “내 생각에는” 그러다가 하나님은 그를 보시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삼상15:11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아멘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에게 계획하신 신앙의 명문가정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명문가정을 제대로 이루려면 그 가정의 구성원들이 룻처럼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그래야 합니다. 그게 축복이요 그게 은혜의 길입니다. 룻 보세요.
6절,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말로 아멘하고 행동으로 아멘하는 사람, 그가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내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신앙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말로 명령대로 행하고 행동으로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멘이 그토록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룻처럼 말로 아멘하고, 행동으로 아멘하고, 삶으로 아멘하는 그런 성도들이 다 되셔서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워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보아스의 신앙
보아스는 명문가정에서도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게 룻을 만나고, 나오미를 만나서 명문가정의 혈통을 이었습니다.
4:21,22절에는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라는 엄청난 신앙의 명문가문을 이루었습니다. 보아스라는 평범한 사람, 그가 이런 엄청난 일을 이룰 수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을 세심히 잘 살펴보면 보아스의 인물됨이 하나하나 나타납니다.
우선 보아스의 신앙은 좋은 선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선택은 책임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미 보아스는 모압에서 가난하게 돌아온 고부들인 나오미와 룻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이삭을 줍던 룻에게 자기 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도록 배려하였고 자기 종들에게 일부러 이삭을 많이 남기도록 명령하였으며 열심히 줍는 룻에게 먹을 것, 마실 것도 주었고 또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줄 것들도 챙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아니한 사랑의 배려를 열심히 하였던 그런 인물입니다.
좋은 인물들이 누구냐? 배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며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입니다. 도움을 준 그늘이 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 중에 이 보아스가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면서도 불만하지 않습니다. 도움의 뒤를 더 얻으려고 하지도 아니합니다. 그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특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마음, 그것은 예수정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내가 목이 말랐을 때에, 내가 배가 고팠을 때에 돌아보았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 작은 소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배려는 예수정신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8절,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잠언19:17절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고 하셨습니다(잠28:27). 내 힘을 약한 사람에게 도와주고 그들에게 베풀어 주고 그들을 일으켜 주는 일에 쓴다면 그게 정말 복중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위에 정말 내가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은혜 받을 기회라고 믿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요청합니다(9).
그러자 보아스는 자기도 기업을 무를 자이지만 그러나 자기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그에게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하라고 말해보고 그가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 다음의 순서자인 자기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여 줍니다. 이 말은 가난한 여인 룻의 청을 충분히 들어주고 부탁을 받아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도 충분하게 자기의 뜻을 전달합니다.
이렇게 보아스는 아주 생각이 주밀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형편을 충분히 배려하고 그리고 그에 맞게 대책을 하나하나 세워주고 만들어서 줍니다. 상대를 정말 그의 형편에 맞도록 충분히 도와주었던 사람입니다. 그게 정말 멋진 사람의 멋진 모습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의 입장이나 형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일반적인 대개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형편에서 생각하고 말하기란 정말 쉽지 아니한 일입니다. 그게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입니다.
복받는 사람들이란 내 곁의 사람들의 그들의 필요를 미리 알고 충분하게 배려하여 주는 사람입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셔 한글을 창제하셨습니다.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라 문자와로 서로 사맛지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들이 이르고저 할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펴지 못하니라. 내 이를 어였비 여겨서, 어엿비 여기는 것이 뭐요? 이게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하여 아주 신중하고 바른 자세로 산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여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그는 아주 신중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합니다.
그는 자기도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자이지만 그러나 자기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음을 알고 그리고 아침이 되자 그에게 기업 무를 책임의 순서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다음의 순서자인 자기가 기업 무를 책임을 맡아서 이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을 다 받아들이고 맡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내 순서가 왔다고 일을 다 하면 때로는 그 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다고 그 차례를 다 쓰다보면 안됩니다. 때가 되었다고 그 때가 왔다고 다 말하고 다 사용하면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7:29-31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보아스처럼 일을 세밀하게 만들고 다듬고 그리고 지켜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가 일하는 때를 기다리다가 그 결과를 보고 자기 때가 와서는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순리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얹어 두는 사람입니다. 마침내 보아스가 자기의 때가 되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 움직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일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다립니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기대하고 신뢰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보아스의 신앙자세입니다.
맺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