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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23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신앙과 불신앙

본문 :

본문 : 창16:3-10

우리 주위에서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말 엉뚱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정말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할 수만 있으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무던히 믿음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데 생각대로 안 되는 경우도 더러 더러 봅니다. 믿음대로 산다, 믿음을 잘 지키며 산다, 좋은 믿음으로 산다, 이게 정말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목회 초년병이던 20대 초반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 30대의 신앙 아주 좋은 자매님으로 교회살림을 거의 도맡아서 돌보시던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늦은 나이에 마음고생을 하며 함께 기도하던 분이셨습니다. 믿는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싶은 간절한 기도와 열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애를 태우던 분이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저는 군에 입대하였고 헤어졌는데 그 뒤로 군에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전도사님, 제 결혼을 위하여 아무리 기도하였어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가정에서 재촉하는 걸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서 안 믿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뒤로의 소식은 그 분이 결국 결혼하였는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경우 제가 아는 한 자매 중에서 예수 잘 믿는 그야말로 믿음 좋은 분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분들은 그에게 ‘저 자매는 꼭 목회자 사모가 되어서 주를 위하여 봉사하면 좋겠어’라던 그 시절의 믿음 좋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혼처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은 혼기를 다 놓치고 그리고 지내다가 어렵게 뒤늦게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엉뚱하게 전혀 상상과 다른 모습으로 그 시절의 그 도시의 유명한 주먹과 결혼을 하였고 결국은 남편의 반대로 신앙생활도 못하고 수십년을 지내다가 얼마 전에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도 이런 문제는 많습니다. 부모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혼자서 믿음을 가지며 바르게 열심히 살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결혼이 제대로 안되는 남녀들을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흔히 봅니다. 자기는 꼭 결혼을 하고 가정을 잘 지키고 살고 싶은데 나이는 들어가고 기회는 자꾸 줄어가고 주위의 친구들은 하나하나 결혼하여 가고 나만 남는 것 같고,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정도 모르고 자꾸 언제 결혼하느냐고 재촉하듯이 물어 오고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그리고 자꾸만 초초하여 가고 이러다가 정말 혼자 사는 게 아닌가 라며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안 믿는 부모님이 “너는 하나님 잘 믿는다면서 왜 결혼도 못하냐?” 그러면 좌절감마저도 들구요.

오늘 읽은 본문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아브라함 하면 우리의 신앙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신앙의 영원한 모델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살아가던 삶이 아름답고 좋아야 하였는데, 그런데 그가 산 삶은 그렇게 생각처럼이나 잘 살다가 간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아이를 가지고 낳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기가 없었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문제로 인하여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던 삶입니다. 당시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축복과 거리가 있다고 해석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아기가 없어서 당하는 심적인 고통, 이건 아브라함도 이겨내기 어려운 그런 힘이 들었던 고통이었습니다.

1. 믿음과 고통
고통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믿음이 좋으면 고난이 없느냐? 아니 믿음 좋은 사람에게 왜 고난이 다가 오느냐? 이런 질문을 우리는 쉽게 하고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믿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기도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그런데, 그런데 왜 고난이 와야 하고 당해야 하느냐? 이것이 영원한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데, 아니 바로 앞 장인 15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런데 왜 그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아기가 없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까? 이게 질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아보시려고 가진 기회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크기를 알아보시려고 그걸 달아 보기도 하십니다. 우리의 행위를 달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하나님이 직접 확인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 각자의 믿음의 크기를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사무엘상 2:3절입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잘 준비되었는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으신 게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믿음의 크기를 알아보시는 방법은 시험을 통해서 알아보십니다. 평소에는 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지 별로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다가 시험이 던져지면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믿음이 평가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다가온 시험은 그 자신이 가진 믿음의 크기를 평가하고 달아보시는 기회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평가하고 내 믿음을 달아보는 기회라고 믿어야 합니다. 평소에 보기로는 정말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시험 당할 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가 가진 믿음의 크기와 모양을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1,2절,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아브라함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엄청난 축복이 분명 있었는데도 현실에서는 그 축복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네가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축복하셨는데도 그런데 그 축복의 이후에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흘러 갔는데도 아직도 이루지지 않았고 여전히 아브람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더 이상 아무런 작은 구름조각을 비춰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란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람을 불러서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분명하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 죽은 자도 살려 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신데, 그러한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런데 하늘의 별처럼 후손들을 많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으로서는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갑갑하였겠습니까?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만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들이 다 잘 풀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세워가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믿어도 여전히 어려움은 따릅니다. 기도하여도 여전히 문제는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여도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고 그리고, 그리고 아픔도 있고 고통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아멘입니다.

2. 그래서 낸 꾀(?)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고 세월은 자꾸 가고. 아브라함으로서는 참기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그리고 지쳐만 갔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은 더 이상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어떻게 하라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시기만 하셨고 그리고 무정한 세월은 10년이나 흘렀습니다.

2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남편에게 한 말입니다. 사라의 방안은 여종을 통하여 후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이게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던 시대였고 일반적으로 많이 시행되던 그런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님의 약속과는 배치되는 방안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딴 사람도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아내가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아내의 제안에 따라서 남편 아브람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실행합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무래도 하나님의 뚜렷한 응답이 없다고 생각한 아브람은 초조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차에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아내가 낸 방안을 마지못해서라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내의 제안을 덥석 받아 실행한 아브람은 엄청난 실수를 떠안아야 하였고 그리고 그게 엄청난 가시로 두고두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정도를 걷지 않고 곁길로 가고 사도를 걸은 것입니다. 인간적인 잔꾀를 내고 그 꾀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브람에게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로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관한 일은 사도를 쓰면 안됩니다. 생명에 관한 일은 명확하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이루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일은 정확하게 계획을 하시고 그리고 그대로 실행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분명하게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애굽의 바로의 아내가 되자 긴급조치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시고 그리고 사래를 구출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창13:16). 그런 하나님은 확실하게 아브람에게 사래를 통하여 역사하실 것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실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또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님이 분명하게 약속하신 것들은 하나님의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일은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역사하실 그 때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그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꾀를 쓰고 머리를 쓰다가 내 방안을 찾고 기대다가 보면 그 결과는 그게 하갈이 되고 그게 이스마엘이 되고 그게 가시로 남아 일생에서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가져오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5절,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놀라운 일이 전개되어 갑니다. 아브람과 하갈 사이에 곧 잉태하는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잉태한 몸종 하갈이 큰 기침을 합니다. 이 모습에서 아내 사래가 견디지 못하여서 한 말입니다. 사래는 평소에 남편 아브람을 ‘주’라고 주인이라는 의미로 호칭하던 아내입니다. 요즘 말처럼 오빠정도가 아닙니다. 여보도 아닙니다. 그저 ‘주’라고 부르던 정말로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래가 자기 남편에게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라고 ‘당신’이라면서 대들었습니다. 인간적인 잔꾀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게 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이들의 부부사이에 까지도 엄청난 화를 불러 왔습니다. 감히 아내 사래가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라고 따집니다. 덤빕니다. 이렇게 부부의 관계가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은 아름다웠던 인간관계까지, 부부관계까지 어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축복의 근원입니다. 그의 아내 사래는 평생 남편을 존중하며 살아오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며 최대한의 아름다운 관계를 가졌던 그 부부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금이 가고 부부사이에도 이렇게 아름다웠던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통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안 통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통해도 내게는 안 통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남들은 대충 커닝을 하여도 되는데 나를 발각됩니다. 남들은 이중장부를 해도 잘 넘어가는데 나는 그게 문제가 됩니다. 남들은 자동차를 과속하여도 안 걸리는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속도위반 통지서가 날아옵니다. 남들은 그렇게 술 먹고 운전해도 되는데 내가 술 한 잔 하고 오다가 음주위반 단속에 용케도 걸리고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나만 미워하셔’ 그러지 말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잔꾀가 안 통하는 게 도리어 은혜입니다.

3. 불순종의 결과
아브람과 사래의 불순종에 관련된 사람이 여종인 하갈이고 그리고 그 결과로 하갈이 곧 잉태하였습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나서 아내가 남편에게 대들면서 그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자 아브람이 사래에게 대답합니다.

6절,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문제가 일어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이미 곁길로 간 아브람에게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대답이 바로 읽은 말씀입니다. 아내에게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입니다. 이 말은 아브람이 가장의 위치를 내려놓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아브람은 사래의 마음을 흔들지 않고 그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일이 묘하게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사래는 그 하갈을 학대하고 하갈은 광야로 도망갑니다. 일이 정말로 묘하게 꼬여만 갔습니다. 

여러분, 일이 꼬여 가면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문제를 들고 나가고 나가서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풀리고 그래야 하나님이 도움이 시작되고 간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시작됩니다. 아브람처럼, ‘당신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하면 자기가 할 일을 포기하고 가장의 책임을 그만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제대로 서지 못하니까 아내가 덤빕니다. 여종도 도망 가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제각기, 제각기 콩가루 집안입니다. 어쩌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에게 이러한 상태로 전락하여 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세상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4. 하나님의 개입
8,9절,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이렇게 하갈이 도망가고 문제가 된 것 같으니 그렇게만 된다면 하갈에게서 아이를 갖게 한 사람이 사래 아브람인데 이게 말이 안됩니다. 만약 이대로 하갈이 광야에서 굶어서 죽거나 짐승에게 물려서 죽게 되기라도 한다면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심각한 상처가 생깁니다. 이들은 복의 근원이 아니라 저주의 근원이라는 오명을 써야 할 판입니다.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야말로 일이 엉망으로 꼬이고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그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 지쳐있고 억울해 하는 하갈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정하게 묻습니다.

8절,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은 상담의 귀재이십니다. 하갈에게 다정하게 물으시며 그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셨습니다. 하갈이 엄청 분노하고 화가 나 있을 때에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런 질문은 하갈이 ‘아 내가 사래의 종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기회였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엄청 화가 났을 때에 그 화를 누그러뜨리고 진정시키며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여호와의 사자의 질문에 대하여 하갈이 대답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그녀는 분명 지금 사래를 피하여 도망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이 대답이 맞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도망가는 하갈에게 그가 취하여야 할 길을 세심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9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나님은 하갈을 찾아가셔서 위로하시면서도 그가 다시 돌아가서 주인 사래에게 복종하기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모든 관계들을 다 정리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갈은 그 길을 따라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생각대로 살아간다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내 생각을 꺾고 내 기질을 꺾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말씀의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 생각이 있고 내 뜻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더 우선적으로 따르고 그리고 그 뜻에 복종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자기의 기질을 접고 꺾으면서 아멘하는 데서 좋은 신앙이 시작됩니다. 나는 그걸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야, 그런다면 그걸 받고 아멘으로 응해야 할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길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내가 열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개입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야 나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이 잘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 거기서부터 흥클어진 실타래가 하나하나 풀려갑니다. 이게 하나님이 자녀들의 삶입니다.

맺음 :
믿음의 조상 아브람에게도 자식을 기다리는 것은 참기 어렵고 힘든 문제였습니다. 여러분들과 저에게도 참기 어려운 힘든 일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려운 문제를 통하여 내가 신앙인으로 서는지 불신앙인으로 서는지를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참기 어렵고 힘든 기회, 그 기회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이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회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람과 사래도 분명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있었고 그들은 그걸 받았는데도 그런데도 그들이 자식을 기다리며 10년 세월을 지나면서도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가 오기 전에 우리가 이미 지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은 확실히 때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대처하는지를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삼상2:3절).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으로 대처하는지 불신앙으로 대처하는지 우리의 행동을 살펴보시고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평가에서 우리 모두는 신앙으로 살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합격의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갈림길에서 모두모두 신앙으로 대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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