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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Aug 26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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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울이 주는 교훈
본문 :
본문 : 대상 10:7-14
사람들에게 오른손, 왼손 두 개의 손이 있듯이 우리 하나님께도 손이 둘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한 손은 우리 인간구원을 위하여 쓰시는 손이요, 다른 한 손은 인간 역사를 위하여 일하려고 사람들을 붙잡으신 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의 한 손은 구원받은 인간들을 붙잡고 계십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라고 찬송하듯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손은 우리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천국으로 인도하여 가십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꼭 잡고 계시는 손을 가끔은 놓는다는 믿음과 결코 놓지 않으신다는 두가지 기독교 구원에 대한 주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잡으신 손은 절대로 안 놓으신다는 믿음은 칼빈주의 신앙이고, 그래도 사람들이 도망가고 세상으로 가 버리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그들을 잡은 손을 가끔은 놓으신다는 믿음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한 손이 있으십니다. 그 손은 사람들을 붙잡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일하시는 손입니다. 역사를 이끄시는 우리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천지창조처럼 단지 말씀으로만 다 이끌어 가시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구원을 위하여 잡으신 손과는 달리 일을 위하여 사람들을 붙잡은 손은 가끔은 그 손을 놓아버리시기도 합니다. 대개는 꼭 붙잡고 일하시지만 그러나 ‘이건 도저히 아닌데’ 라고 판단이 서시면 때로는 그 붙잡으신 손을 놓아버리십니다. 이게 인간의 편에서는 버림받은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누가 멋진 인물입니까? 평생을 하나님 손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 정말 멋진 사람들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이 호렙산에 친히 강림하셔서 열심히 양을 치고 있었던 모세를 부르셨고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40년간을 그를 붙잡고 출애굽을 실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목동 다윗을 보셨고 그 어린 다윗을 붙잡고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셨습니다. 모세처럼, 다윗처럼 자기 온 삶이 하나님께 붙잡혀서 살아간 사람들, 그들이 정말 멋진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하나님께 붙잡혀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손에 잡힌 사람들, 하나님이 마음대로 쓰시는 인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런 멋진 사람입니다.
두 주전 유럽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은 그 동네에는 웬 문신을 한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놀랐습니다. 독일은 비교적 보수적인 국가였지만 스페인은 정말 무시무시하다고 할 만큼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습니다. 자기들의 몸에 새긴 문신들, 주로 동물, 아름다운 꽃들, 이상한 그림들, 사랑하는 이성의 얼굴, 글씨 등 무지무지하더라구요. 그리고 코를 뚫고 배꼽을 뚫어서 박은 피어싱이 유행이구요. 문신이나 피어싱이나 모두가 자신을 그 무엇인가로 표현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또한 사람들 앞에서는 어떤 사람들로 표현되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울 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이 붙잡고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손을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순간을 리얼하게, 야박하게, “사울이 죽은 것은?”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으신 이유는 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일생을 표현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무엇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되기를 원하십니까? 인생이란 하나님께 붙잡힘입니다. 사울이 주는 교훈입니다.
1. 범죄하면 손을 놓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붙잡으신 것은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겸손하였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붙잡고 40년 간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 붙잡으신 손을 놓으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깨끗한 믿음, 죄를 멀리하고 깨끗하게 갖춰진 믿음,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들의 깨끗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믿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대로 살아가지 못하여 하나님께 범죄를 하였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죄를 범하였기에 사울도 죽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죄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목표로 가지고 똑바로 가야하는 인간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죄'라고 말합니다. 죄가 무엇이냐 성경이 가르칩니다.
흔히 죄란 네가지가 아닌 것이라고 합니다. 죄(罪) 四 = 非입니다.
1)불신의 죄
요16: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죄가 가장 크고 잘못된 죄입니다. 불신이 가장 큰 죄입니다.
무얼 믿지 아니합니까? 두가지, 우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음이 죄입니다. 엄연히 존재하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음이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믿지 않음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일하심을 불신하는 사람, 그들이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 즉 불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누굴 쓰시냐? 어떤 인물을 쓰시냐? 우선은 믿음이 반듯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반듯하게 믿는 사람, 그리고 역사하시고 상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 그들을 쓰십니다. 믿음이 흐릿한 사람은 붙잡고 쓰시다가도 그 붙잡은 손을 놓으십니다. 불신앙의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손을 놓으십니다. 왜요? 일이 안되게 때문입니다. 같이 동행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아무리 앞이 캄캄하여도 하나님을 믿고 나가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손을 붙잡고 쓰시며 사용하십니다. 믿음의 사람, 이게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2)불의
요일5:17절,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불의가 죄입니다. 그렇다면 ‘의’(義)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고백이며, 하나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경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절대 의존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갖는 관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구세주 예수 안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을 때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자가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입은 자들은 성결과 의로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같은 삶은 곧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의롭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불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성립되지 못함을 말합니다. 모든 불의가 죄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함은 다 죄의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고 지내야 하는데 이게 안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통로가 막혔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이 막혔다, 그러면 그게 불의의 상태에 놓여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서 열심히 왕의 일을 잘 감당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내가 왕인데, 내가 이 나라의 최고 실력자인데, 그러면서 다가오는 모든 일들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시켜두고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게 불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손을 놓으신 것입니다.
찬송가 446장입니다.
1.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2. 내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 주 함께 있으면 저 마귀 힘없네
3.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관계를 불투명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관계에 오물이 끼이거나 녹슬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돗물이 흘러 나오는 수도관에 녹이 끼이면 녹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관이 깨끗하면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경외하며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절대 의존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제 그걸 다 놓쳐버렸던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의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3)불법
요일3: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계명을 어기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건 죄를 지으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갑니다. 무얼 따라서 살아가야 하느냐? 물론 세상 법도 지키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대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주일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나가서 살 때에는 다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기독교 망신을 주고 그럽니다. 천국문을 막고 그럽니다. 그게 내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걸 우리 하나님이 불편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을 배운대로 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강단을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따라, 진리따라, 율법따라 평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잊고 내 감정이 앞 세워지고, 말씀없이, 강단없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 그게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사울왕을 붙잡고 계시던 하나님은 그 손을 놓으셨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범죄하면 하나님이 손을 놓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그 손을 놓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잡으신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더 하나님 앞에 다가가고 다 가까이 가고 가야합니다.
4)불선행
약4: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한 일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그게 죄입니다. 그게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돌보아야 하고 분명히 다가가야 하는데 그걸 알고도 횅치 않으면 그게 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서 지금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걸 보고 그대로 지나칩니다. 당연히 다가가야 하고 당연히 도와야 하는데 그런데 그대로 지나칩니다. 이게 불선행입니다. 이게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서 약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서 힘이 되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라고. 그런데 그걸 외면하고 자기 중심으로만 열심히 살아 간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 것입니다. 분명히 나에게 선을 행할 능력도 있습니다. 선을 행할 기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행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외면한다 그건 분명 죄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칩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선행이 죄입니다.
2.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울왕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습니다. 자기를 붙잡고 계시며 붙잡고 일하시는 하나님과 상의하며 일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13,14절, “사울이 죽은 것은...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울이 주는 교훈 두번째는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던 일입니다. 한마디로 엄청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울을 잡고 계시던 그 손을 놓으셨습니다. 이게 비극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성도는 무슨 문제이든지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실제로 삼상28장을 보면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의 위기가 다가오자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신접한 자를 찾아가서 엔돌의 여인에게로 가서 물었습니다. 신접녀를 찾아서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묻습니다. 신접한 여인은 이전에는 왕이 우리를 다 죽이더니 무슨 올무를 놓으려고 오느냐고 하며 핀잔하고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사울은 더욱 하나님의 대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요즘도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도하기보다 점장이를 찾고 굿하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레위기에는 점하는 자를 만나면 돌로 치라고 까지 가르치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라도 이상한 철학에 마음 빼앗기고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믿고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걸 기대하십니다.
그 모습이 히스기야 왕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와서는 편지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바로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펴 놓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왕하19:14절,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리고 아룁니다. 의논합니다.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그러면서 하나하나 아룁니다.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게 보시고 여기시는 장면들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앗수르를 교란시켜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스라엘은 그 전투를 고스란히 이깁니다.
그 뒤에도 이사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히스기야 왕을 찾아와서 이제 왕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또 벽을 향하여 울면서 하나님께 하나하나 아룁니다. 그러한 히스기야를 하나님이 귀하여 보시고 도우셨습니다. 왜요? 하나님께 의논하였으니까요. 하나님께 물었으니까요. 하나님은 그걸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귀하여 보십니까? 의논하는 자를 귀하게 보십니다. 반대로 아무런 의논도 아니하고 아무런 대화도 아니하면 그건 정말로 무시하는 걸로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꼭 맞는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흔히 부모에게 딸과 며느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여러가지가 구분이 있겠지만 딸은 부모에게 수시로 허물이 없이 자주자주 연락하고 대화를 하지만 며느리는 필요가 있을 때에만 연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딸보다 훨씬 더 잘하는 며느리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며느리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딸이 되시기 바랍니다. 며느리 같은 성도, 필요할 때만 겨우 대화하고 찾아가는 성도가 아니라 딸처럼 수시로, 무시로 나가가서 대화하고 의논하는 그러한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손을 붙잡고 40년 간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데 이제 그 붙잡으셨던 손을 놓으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14절,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왕의 자리를 사울에게서 받아서 이제 다윗에게 넘기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왕 자리도 넘어갑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권력도 넘어 갑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우리 인생의 생명도 마감됩니다. 만일 우리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만일 우리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는 이 손을 놓으시면.... 모든 것이 다 풀립니다. 놓여집니다. 다 떠납니다. 다 정리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주님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을 분명하게 잡고서 확실하게 꼭 잡고 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가시는 천국입성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수22:5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약4:7,8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맺음 :
사울이 주는 교훈은
1. 범죄하면 손을 놓습니다.
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불신이 죄입니다. 불의가 죄입니다. 불법이 죄입니다. 불선행이 죄입니다.
2. 묻지 아니하면 손을 놓습니다.
14절,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3.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14절,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을 분명하게 잡고서 확실하게 꼭 잡고 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가시는 천국입성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히6:11-12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