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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Oct 23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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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사르밧 과부의 기적

본문 :

본문 : 왕상17:8-16

하나님은 11월 20일 추수감사주일을 일산교회 기적의 날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날은 우리 일산교회가 생명구원을 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 드리는 날입니다. 지금까지는 1년 농사의 열매인 아름다운 과일들을 갖고 와서 드렸고, 야채와 곡식들을 드리며 추수감사주일예배를 드렸지만 이번 금년의 추수감사주일에는 영혼들을 추수하여 모시고 와서 옆에 앉혀 놓고 예배를 드리는 영혼추수감사주일로 지킨다 그런 의미입니다. 영혼추수감사주일, 멋있는 슬로건입니다. 그런 정말 멋진 금년도 추수감사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자, 해 보자,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동기부여 등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누구나 하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섭니다. 그러면 절반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면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일들이 됩니다. 그래서 전도가 되고 그래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11월 20일은 일산교회 기적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산성도 모두가 일어나서 기적을 일구는 금년도 추수감사주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이일을 행하는 감사주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적이 뭐냐?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 성취되는 것, 그게 기적입니다. 꼭 무슨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자가 벌떡 벌떡 일어나고 그런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그 일이 쉽게 풀리고 이뤄지고 성취되는 그게 기적입니다. 일산교회 기적도 사실 생각하면 쉽지 않는데 그런데 그게 되어요. 그게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이 언제, 이번 11월 20일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교회 낮예배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달성이 될 것입니다. 나타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그리고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적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는 주님이 직접 기적을 베풀어 주셨지만 일정한 기적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기적들입니다. 이런 기적들은 기적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힘을 쓰고 그러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지난 주에는 예루살렘 성 안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중증환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병이 나앗는지, 어떻게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함께 기적의 공식을 찾아보았고 그리고 우리도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구약에서 엘리야 시대에 일어난 사르밧 과부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보통 때에 나타나는 기적이라기보다 어렵고 힘들고 그야말로 불비한 그런 상황에서 기적은 잘 나타납니다. 엘리야 시대 당시는 그들이 살았던 유다에는 수년간의 가뭄으로 온 땅이 메말라서 먹고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혹독한 가뭄이 온 것입니다. 자연히 곡식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먹을 것이 없는 그런 안타까운 시대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대접하였다가 그 가뭄이 끝나기까지 물통에 마실 물이 이어졌고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계속하여 채워졌고 기름통에 기름이 끊임없이 채워지는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르밧 여인이 겪은 놀라운 그 기적을 유심히 분석하고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일정한 기적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들이 기적을 만들고 기적을 창출하고 그리고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에겐 불가능하지만 믿음을 가진 성실한 사람들은 그걸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하시도록만 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기적의 주인공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그 기적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기적의 사람들,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사르밧 여인이 경험한 기적을 보면서 기적의 요인들을 살펴봅니다.

 

1. 자기 설득이 우선되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먼저 기적을 경험하고자 하는 그 사람, 자기 자신이 자기 설득, 자기 결심이 먼저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을 경험하려면 먼저 자기를 설득하고 자기의 결심이 반듯하게 따라야 합니다. 기적을 일구어 가려면 이런 자기 설득, 자기 확신, 이것이 기적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그 어떤 일보다 우선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기적은 가능합니다.

 

보세요. 이 사르밧 여인에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의 사람 엘리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2절,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9절,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엘리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이 기적을 일구어 나갑니다. 보세요, 마침 그 찰라가 어떠한 찰라냐 하면 이 여인이 자기 아들과 마지막 물을 마시고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으려는 그런 찰라입니다. 모든 희망이 끊긴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기가 막히는 그런 순간입니다. 이런 불행한 시간에 만나는 서로는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엘리야 선지자가가 와서 하는 말이 기가 막힙니다.

 

10절,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절,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러는 비참한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13절,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고 독촉합니다.

 

사실 여인으로서는 선지자의 어떤 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선지자라는 사람이 현실 파악을 못해도 이렇게 못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년간의 가뭄에서 알 것을 다 알 사람인데도 막무가내입니다. 이해가 되지 아니하고 전혀 상상도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마실 물을 달라,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 그 떡을 내게 먼저 가지고 와라는 등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선지자라는 사람이 이제 마지막 한 끼니를 먹고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가서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그들을 위로는 하지 못할망정, 그들에게 하는 말이 정말로 기가 차는 말이었습니다.
 
이 때에 이 말을 들은 여인으로서는 정말 기가 차는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분명히 선지자라고 하였는데 이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로 안 되는 노릇입니다. 마지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게 경우에 벗어나도 유분수이지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 순간에 여인은 선택하여야 하는 정말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들을 것인가 배척하고 못들은 척하고 말 것인가? 그런 기로였고 선택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이 때에 여인은 바로 자기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래 선지자의 말을 따르자라는 결단, 그 결단이 필요하였고 그녀는 그렇게 결단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중요한 한가지, 이렇게 무슨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은 바로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이해도 되지도 아니하고 납득이 되지도 아니하여도 그리고 상식적으로 도저히 맞지 아니하지만 그런데, 그녀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즉 자기를 우선 설득한 것입니다. 그 설득이 일을 하나하나 진행되어 가고 기적으로 만들어져 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설득, 이것이 기적의 첫걸음입니다.

 

만약 엘리야가 이 여인에게 순간에 그토록이나 수년간 진행되어 온 지독한 가뭄을 뻔히 알면서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또 그가 가지러 갈 때에 그를 불러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는 그 시에 그가 한 말처럼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는 이 말을 계속하여 하고 또 한다면 아무런 기적도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고 하였을 때에 이해가 되지 아니하고 전혀 상상도 안되는 이야기인데도 그대로 자기를 설득한 여인입니다. 그랬더니 역사가 일어났고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바로 자기 설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자, 그 말씀에 아멘하자 그리고 받아들이자, 거기서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하면 아담이 되고 하와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자, 아멘하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찬송가처럼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는 자기 설득, 아멘, 이것이 믿음의 시작이요 기적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나 기적은 자기 설득, 자기 확신에서부터에서 시작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하자, 기적을 만들자 그러면 꼭 반대생각이 살짝 싹이 트고 못된 생각이 우리들에게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게 가능하기는 한기여? 이게 정말 될 수 있는 거여?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의문적인 생각들이 솟아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다고 전도가 되? 그런다고 기적이 나타나?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좀 더 나가면 아니 교회는 질적성장이 우선이지 뭐 맨날 숫자성장, 교회성장 그려, 무슨 전도, 전도 그래, 교회가 맨날 그런 말만 하는지 몰라, 그러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건 자기 설득이 안되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기 설득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자,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다, 이 전도가 하나님의 소망이요 바램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아멘으로 받고 아멘으로 믿고 아멘으로 자기를 차분히 설득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그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 가뭄 속에서도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적은 사르밧에서 나타난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에 다 잘 나타나는 법입니다. 정말로 어렵고 정말로 힘들 때에 기적이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이게 진짜 기적입니다. 이런 어려움에서 도움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돕고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절망적일 때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그때에 나타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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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에서 룻은 자기 시어머니가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할 때에 굳은 약속을 말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강력하게 자기 결심을 말합니다.

 

결국 이런 결심이 그들 시어미를 감동시키고 나아가서 가지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그 결심이 결과로 나타나 것입니다. 룻기4:16절,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기4:18-22절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뭐요? 나오미의 확실한 자기 설득의 결과입니다. 자기 설득이 기적을 가져 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만 아니라 일반 생활에서도 성도들은 자기 설득을 잘 하여야 합니다. 좋은 방면으로 자기를 설득하고 신앙적인 방면으로 설득하고 그리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파괴적인 생각을 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자기를 끌고 가면 파멸로 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설적이고 신앙적인 방면으로 자기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설득, 믿음의 사람들답게, 하나님의 사람들답게, 기도하는 사람들답게 자기를 잘 설득하시기 축복합니다. 

 

2. 이웃설득이 중요합니다.
기적의 두번째 요소는 바로 이웃설득입니다. 이웃을 설득하고 함께 하나가 되어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13,14절,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의 이 말을 들은 여인이 가서 한 행동입니다.  

15절,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이제 한 끼 식사량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걸 아들과 같이 먹고 이 마지막에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그 찰라에 이 엄마는 아들을 설득하였습니다. 뭐라고 했겠어요? 저 엘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우리가 믿자, 우리가 그렇게 대접하자, 그렇게 말합니다(13-14절). 이게 신앙입니다. 이게 기적의 요인입니다.

 

죽어가는 사랑하는 자신의 외아들에게,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아니 남의 먹는 것, 아니 선지자가 먹는 것까지 빼앗아서 아들에게 가져다 먹여야할 엄마의 입장에서 이런 말이 가능한 말입니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할 말도 아니요 엄마가 해서도 안 될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엄마는 아들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적은 이웃을 설득하는 일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여인이 가서 아들에게 이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이것을 마지막으로 먹고 같이 죽어야 하는 기막힌 가뭄의 현실인데 이나마 선지자라는 양반이 와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서 나로 먹게 하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건 그만큼 그 아들을 잘 설득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사르밧 여인은 먼저 자기를 설득하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들을 설득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기적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이게 능력의 바탕입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웃설득을 잘하지 못합니다. 남편설득을 못하고 자식설득을 못합니다. 남편설득을 못해서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야 하고 자식설득을 잘 못해서 자식이 제 길로 가버리는 걸을 지켜보고 애만 태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신앙, 자식의 신앙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접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입니다. 왜요? 설득이 안되니까, 설득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포기하고 그래서 접어 버리고 그럽니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사르밧 여인이 겪은 기적은 자신과 아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서 일궈낸 기적입니다. 사르밧 여인 혼자서만 엘리야의 말대로 했다가 나타난 기적이 아니라 여인과 아들과 함께 모녀간에 일군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동의 기적이라는 성격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서 하는 일도 많지만 그러나 여럿이 공동으로 하고 만들어 가는 기적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길입니다.

 

이번의 11월 20일 추수감사절의 일산교회 기적의 날도 공동으로 같이 엮어 가야 합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우리 모두가 같이 엮고 만들고 세우고 일구는 기적이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원하십니다. 너희가 다 함께 만들어 가렴, 그리고 같이 경험하렴, 그리고 그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는 너희들이 신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기를 바래, 기적을 만드는 멋진 일산교회가 되렴, 그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을 두 귀로 확실하게 듣고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놀라운 하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웃설득을 위하여 나서기 바랍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들어도 설득당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설득하려고 나서세요. 함께 기적을 만들자고 설득하세요. 한번 두 번 들어서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들어야 설득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이웃을 줄기차게 설득하여야 그들이 이 기적의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르밧 여인이 자기 아들을 설득할 때에 얼마나 간곡하게 설득하였을까요? 그런 간절함, 그런 간곡함 이게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기적을 함께 일궈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 기적의 요소입니다.

 

3. 하나님을 설득하였습니다.
기적의 요인 마지막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설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설득이란 하나님이 감동받으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감동하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감동하셔야 크든지 작든지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16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감동하시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감동하십니까? 그토록 처절한 가뭄, 마실 물이 근원부터 다 말라서 도저히 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먹을 양식이라곤 가뭄 때문에 더 어떻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 지독한 가뭄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흉년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런 말도 안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왜요? 도저히 순종이 안되는 자리에서 순종하였구요, 도저히 복종이 안되는 자리에서 복종하였구요, 도저히 순종도 복종도 안되는 그런 자리인데 그런데 순종하고 복종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거기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기적을 낳는 믿음입니다.

 

이 여인처럼 성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감동하시게 해야 그래야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감동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 하나님의 감동의 결과로 나타나시는 반응, 그게 사람에게 나타나면 기적이 됩니다. 그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게 기적입니다. 기적은 그렇게 하나님을 감동시킨 그런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니까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킨 다니엘 같은 사람, 느헤미야 같은 사람, 엘리야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바로 성경입니다. 사람을 봅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감동하십니까?
1)우는 사람에게 감동하십니다.

 

2)땀을 흘리는 사람에게 감동하십니다.

 

3)간절한 사람에게 감동하십니다.
눅18장,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을 말합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이게 간절함에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맺음 :
젖먹는 새끼 송아지 두마리를 집에 두고 법궤를 끌고 벧세메스를 향하여 울면서 가던 암소가 젖을 떼어둔 그 송아지들로 인하여 울고 울고 울면서도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아니하던 그 어미소처럼, 열심히 열심히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사는 그런데서 일어납니다. 역사는 그런 순간에 일어납니다. 사르밧 여인은 엄청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먹을 음식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혹독한 가뭄이 끝나는 순간까지 마실 물이 계속하여 공급되었습니다. 먹을 양식의 창고가 마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르밧 여인이 일궈낸 기적은

 

1. 먼저 자신을 설득한 결과입니다. 신앙은 자기 설득입니다. 자기 설득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2. 이웃을 함께 설득한 결과입니다. 신앙은 이웃과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웃설득의 달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설득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에 감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적으로 보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르밧 여인의 그 혹독한 가뭄에서 물통에 마실 물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마실 물이 쉬임없이 공급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그 여인의 그 혹독한 흉년에서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공급되었던 것처럼, 기름통에 기름이 쉬임없이 공급되었던 기적처럼 여러분들의 일생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름이 마르지 않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그치지 않는 공급의 기적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금년도 11월 20일 추수감사주일에도 우리 모두가 우리각자들이 수확한 영혼들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올려드리는 추수감사주일, 일산교회 기적의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기적의 역사가 우리교회에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사르밧 여인의 기적을 오늘 우리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삶에서, 신앙에서,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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