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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Jul 22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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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하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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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눅15:22-32
외국인이 우리사회를 들여다보고 하는 진단 중에 우리의 커다란 문제점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에게는 고소고발 사건이 너무나 많고 걸핏하면 재판으로 가서 재판이 너무 많다는 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일들도 법으로 끌어 가서 법에서 다투고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는 없다고 합니다. 어떤 한 판사는 하루에 180명에서 120명 정도의 아이들을 재판하였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아이당 3분, 3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컵라면 재판이라고 한 답니다. 컵라면 끓이는 시간이 3분이어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다툼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비화하고 사소한 부부의 일들도 법정으로 가서 해결하려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재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일이 너무 많아서 참 힘든 시대입니다. 요즘은 유치원의 아이들의 일도 부모가 법정으로 끌고 가고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소한 놀이가 시비가 되어 법에서 판결하고 그러는 시대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갈등들로 가득 찬 사회입니다. 웬만하면 데모하고 웬만하면 촛불을 들고 그럽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건 사건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입니다.
재판하니 솔로몬의 재판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지혜로운 솔로몬이 나타나서 이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을 결정적으로 지혜롭다고 한 세기의 재판, 지혜로운 재판을 보면 간단합니다. 열왕기상 3장에 기록된 창기들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솔로몬에게 어느 날 갓 태어난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도저히 해결이 안 납니다. 그러자 왕이 의견을 냅니다. 칼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라고 판결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한 여인이 만류합니다.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라고. 그런데 다른 한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그걸 보고 살려 주라는 여인이 진짜 그 아이의 엄마라고 판결하고 아이를 그 여인에게 줍니다. 무엇이 그렇게 판결하게 하였습니까? 그 판결의 키는 바로 사랑,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요 열쇠입니다. 우리 사ㅣ호의 복잡한 일들도 사랑이 부족하여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랑이 문제 해결의 답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집나간 아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아버지 집에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비유는 관련된 사람들의 엄청난 생각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해석이 중요하고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차이는 이 생각의 차이, 사랑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간극입니다. 아버지는 기쁨의 잔치를 하고 아들은 속이 상하여서 화를 내고 아버지께 불만을 폭발합니다. 그리고 그를 해석하는 일들이 기록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합니까? 그리고 여기서 보여주는 가장 큰 진리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면 그 사람의 내면에 무엇이 바탕으로 깔려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증폭시키려는 속상함이 있느냐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랑이 담겨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해답입니다.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사랑의 위대한 힘을 함께 찾아봅니다.
1. 사랑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이들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팩트, 사실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멀리 떠나 버리고 그리고 그 재산을 다 허비하고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서 아버지와 큰 아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반적 사고로는 이 둘째 아들의 그 행위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상황입니다. 아주 괘씸하고 속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해석이 다릅니다.
22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의 해석은 간단합니다. 아들이 돌아왔다 이겁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사랑한다 이겁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요, 집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사랑한다는 말이요, 사랑하니 둘째의 잘못이 다 용서되고 사랑하니 다 받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집나간 아들, 그가 다시 돌아 올 때에 거지요,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아들이요, 아버지를 멀리 멀리 떠났던 불효자이지만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지금 그게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도 그는 엄연한 내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상황을 보니 불쌍한 아들입니다. 집 나가서 죽도록 고생하고 마음고생을 하다가 돌아온 사랑하는 둘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사랑하니 다 용서가 됩니다. 사랑하니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고 다 받아들여집니다. 문제가 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반가운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니 그대로 아들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힘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사랑이라는 원리로 살아가라고 정해 주셨고 그렇게 가르치셨으며 그리고 그 사랑의 실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이게 기독교진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르칩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돌아온 아들이 말합니다.
21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얼굴이 있지요,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였으니 뭐라고 말하겠어요? 얼굴이 있지요, 그야말로 낯짝이 있지요? 도저히 아버지께 아들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당연한 사람의 체면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닙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사랑이라는 안경을 끼고 보니 아무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입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들이 다 용서가 됩니다. 사랑하면 다 이해가 되고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누구와의 관계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까? 그게 마음 한 구석에 계속하여 자리하고 있어서 쓰립니까? 왜요? 간단합니다. 사랑하지 못해서입니다. 누가 미워요? 그를 생각하면 속상해요? 용서가 안 되어서 그럽니까? 그건 다름 아닌 내 안에 사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부족함입니다. 사랑하면 다 용서가 됩니다. 사랑하면 다 해결이 됩니다. 사랑하면 다 씻어져 잊혀집니다. 그런데 잊혀지도록 노력하지 말고 그것으로 가슴 아파하지 마시고 내 안에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그 사랑을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해결됩니다.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사랑하면 해결됩니다. 사랑이 힘입니다.
사1: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을 키우는 노력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 나에게도 이 사랑을 담아주세요라는 기도입니다. 사랑이 해결의 힘입니다.
2. 돈보다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돈, 재물, 물질입니다. 돈이 얼마나 요긴하고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 집안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멀리멀리 아버지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곳으로 떠나 버리고 그리고 그 재산을 다 허비하고 탕진하고 돌아왔습니다. 빈손으로 거지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일반적 사고로는 아들의 그 행위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상황입니다. 아주 괘씸하고 속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보십시오.
22,23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사랑하니 용서가 되었고 사랑하니 그가 잃어버리고 탕진해 버린,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그 재산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돈보다 사랑입니다. 이어서 따라오는 게 있습니다. 사랑에는 그 사랑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돈입니다 경비입니다. 그런데 그 경비가 그렇게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건 사랑의 비용입니다. 사랑의 경비입니다. 그래서 아깝지 않았고 그래서 도리어 감사할 수가 있었고 기쁨으로 그 경비를 지불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니 사랑의 경비를 충분히 지불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하니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먹고 즐기자고 하였습니다. 신나는 잔치를 벌였고 그리고 이웃을 불러서 신나고 흥겹게 즐기고 잔치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경비를 모르고 밭에서 일을 하던 큰 아들이 집에 들어와서 이 현장을 보고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종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듣고는 하는 말입니다.
“이 무슨 일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하는 질문입니다. 아니 동생이 온 것 같기는 한데, 재산을 다 허비한 그가 돌아왔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 무슨 잔치를 한다는 말입니까? 이게 도대체 난리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큰 아들로서는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상황이 도저히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무슨 일입니까?
그래서 그가 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28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이 동생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는데 그런데 또 돈을 드려서 잔치를 해요, 이게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하시는 이 일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노하여 그 자리에 들어가고자 아니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낭비하였는데, 이러다가 또 낭비하려고? 용서가 안 됩니다. 납득이 안 됩니다. 이게 큰 아들이 마음이 상한 것이요 화가 난 것이요 그래서 버티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는 돈이 무척이나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들이 일하고,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돈 때문에 살아가고 그럽니다. 때로는 돈 때문에 살고 죽고 그러기도 합니다. 이렇게 돈이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위력이 어마 어마합니다. 돈이 절대적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이게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랑하면 이 돈이 아깝지가 않아집니다. 아버지는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더 귀하였고 그런 아들이 돌아온다고 하니 잔치를 배설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돈보다 사랑입니다. 돈의 위력보다 사랑의 위력이 훨씬 더 크고 위대합니다. 사랑은 돈을 이깁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옛날이야기로, 두 형제가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횡재한 것입니다. 그런데 좋고 신나는 것도 순간, 서로는 아니 나 혼자였으면 이것을 다 내가 차지할텐데, 형 때문에, 아우 때문에 이걸 다 갖지 못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는 같이 길을 가는 옆에 있는 이 형제가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심하게 나아가니 속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그러다가 서로 제안합니다. 차라리 이걸 강물에 던져 버리자고, 그리고는 그 횡재한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니 이전처럼 형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집니다. 아우가 무척이나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러고 보니 돈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니 돈이 아깝지도 아니하였고 사랑하니 형제간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동생에게 속은 형 에서는 동생에게 복수하려고 절치부심하고 20년 세월을 보냈는데 어느 날 마침내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를 치려고 뛰어 나갔고 동생 야곱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이제 20년 만에 마침내 복수와 피비린내 나는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는 위기의 시점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하였던 힘은 바로 동생 야곱의 형에 대한 예우요 사랑의 화해 제스춰였습니다.
창32:13,20,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20,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약은 사람이지만 형에게 보내는 사랑의 재물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듬뿍 담아서 보내는 재물입니다. 화해 제스춰입니다. 이 화해의 재물에 담긴 사랑의 마음이 마침내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인 것입니다. 사실은 돈보다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이 돈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세상은 돈, 돈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힘이요 사랑이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돈, 재물, 물질, 이것들 보다 사랑의 마음이 인생에서는 더 큰 능력입니다. 사랑하면 돈도, 물질도, 재산문제도 넉넉히 이기고 극복하고 넘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돈보다 큰 힘이요 능력임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그 사랑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이길 수 없는 그 사랑 예수”
3. 사랑하면 다 해결됩니다.
지금까지 이 집에는 갈등구조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로서는 둘째 아들이 자기의 품을 떠나서 멀리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와 더 이상 관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단절의 상태입니다. 한 숨으로 보내는 세월입니다. 큰 아들로서는 열심히 일은 하는데 아버지의 관심은 집 나간 둘째에게만 가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문제의 주인공 둘째는 집을 나왔습니다. 더 이상 그 집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습니다. 소식을 주고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며 문제집안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 문제 속의 집입니다.
그런데 집나간 둘째 아들은 거지상태로 돌아왔고 이에 대한 아버지의 솔루션입니다.
20절,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측은히 여깁니다. 측은히란 불쌍히 여김이요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는 달려가서 끌어 안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입니다.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간단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집안의 문제를 풀어가는 아버지입니다. 문제의 해결책에 사랑에 있다고 믿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입니다.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이에 대한 아버지의 해결책입니다.
31,32절,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랑의 아버지는 첫째아들에게도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는 정확한 해석입니다. ‘아들아 절대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너의 눈 앞에 펼쳐지는 내 소유의 이 모든 것, 내가 가진 이 모든 것들, 이것은 다 너의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두려워 불안해하고 있는 둘째에게도 말합니다. 너는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내가 다시 너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잔치에 온 이웃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자는 말입니다. 신나는 말입니다. 이 전부는 사랑이 바탕 되어 풀어가는 아버지의 해결방법입니다.
여러분, 해석이 무엇입니까? 해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랑하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얼키고 성킨 이 집안의 이 갈등의 모든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됩니다. 법정으로 가면 됩니까? 재판하면 해결 됩니까? 그런데 아버지의 방법으로 다 풀렸습니다. 순식간에 하나하나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풀었고, 큰 아들의 불만의 문제도 풀었고, 탕자인 둘째 아들의 문제도 풀었습니다. 한 가지의 방법입니다. 사랑으로 풀었습니다. 이웃들과도 사랑으로 잔치하며 정리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원리로 정리하였습니다. 그 안에 사랑을 장착하니 모든 것이 다 정리 되었습니다. 사랑이 그 복잡한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랑이 문제해결의 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의 얼키고 설킨 모든 문제는 다 사랑의 부족함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사랑이라는 투자를 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문제는 문제가 문제 아니라 사랑이 없고 사랑이 부족하여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사랑하면 해결됩니다. 사랑의 치료를 하면 다 풀려집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이 사랑을 키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키우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르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형제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너무나 쉽게 풀리고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예수 정신, 예수 마음,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그 현상으로 보고 원망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도리어 내 안에 예수 정신, 예수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유심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살피면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계3: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 안에 예수 정신이 있으면 그러면, 그러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그 모든 문제들이 다 열리고 그러면 풀려지기 마련입니다.
요일3:16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도 용서하고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문제를 풀어가고 해결해 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알고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알고 알면 우리도 형제들을 사랑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을 제대로 모르니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면 얼마든지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사랑이 힘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얼킨 문제들이라도 사랑하면 해결 되고 풀려진다는 말입니다.
맺음 :
1. 사랑이 능력입니다.
2. 돈보다 사랑입니다.
3. 사랑하면 다 해결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