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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Oct 30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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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붙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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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렘20:7-13
지난 며칠 동안 우리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마비되어 얼어붙었습니다. 거론되는 당사자들은 물론, 대통령을 비롯하여 청와대, 정치권, 사회전반에 걸쳐서 지금 당장 우리 모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가히 '총체적 난국'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핵무기로 으름장을 놓고 있고, 그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하던 대기업이 휘청거리며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은 제2의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대통령은 회복불능의 상태에서 힘 빠지고 청와대가 검찰의 수색을 받아야 하는 정도의 정말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는 그야말로 난국의 시기입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에 서 있는 박대통령의 문제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보면 우리 국민들 그 누구에게도 이해를 구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차치하고, 그러나 단순히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대통령을 들여다보면, 대통령도 정서적 관점에서 한 인간이요 한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양부모를 모두 권총 사살로 잃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큰 친분을 갖지 못한 채 자신만 외로운 독신으로 남게 되었으니 분명 힘들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누구 하나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었을 것인데 그러다가 최태민씨를 만났고, 그가 죽고서는 그의 딸 최순실과 가까워져서 친자매처럼 40여 년을 지내면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서로 힘이 되다가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들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모두 초라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오래오래 자랑할 수 있는 대통령을 모시지 못할까 라는 한탄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또 사회 일각에서는 박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외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형편에서는 대통령이 자리의 중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한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가 그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었던 모든 짐들에서 해방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이비 교주인 최태민에게 미혹되어 진리 아닌 거짓에 속아 영적 분별력을 잃고 이리저리 끌려온 대통령의 행보가 아쉽고 안타깝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시편 40편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우리나라, 그 안에 타고 있는 우리는 그야말로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많은 말을 하고 또 말하기는 쉽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이 참담함을 나라를 위한 기도로 승화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위기의 때에 더욱 하나님 앞에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9월 9일 새벽 4시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 5층 건물 원룸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불은 삽시간에 건물을 덮쳤고 1층에서 잠자던 20대 청년 안치범 씨가 연기로 안하여 반바지 차림으로 건물 밖으로 달여 나와서 몸을 피합니다. 그러다가 불길이 건물에 계속하여 붙자 그는 다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사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잠자던 이웃을 모두 대피시켰지만 정작 안 씨는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습니다. 불이 난 이유는 같은 20대 한 남자가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 집에 불 질러서 난 불이었습니다. 결국 이 안치범 청년은 28세의 나이로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사고 11일 만에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T.V에 난 것을 보니까 안치범 청년이 가족들과 둘러앉아서 t.v를 보고 잇는데 사람을 구하다가 몸을 다치는 사건 이야기가 나오더래요. 어머니가 그걸 보다가 “얘 치범아, 너는 저런 상황이 되면 네 몸을 잘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안치범은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서 “아니 그때 그 위험에서 사람을 구해야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라고 도리어 화를 내더래요. 결국 그는 그 위기에서 정말 평소의 말대로 그렇게 살았던 용감한 사람입니다. 당시 원룸에서 잠자던 주민들은 그 시에 "불이야, 여기 불났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서 다 살았다고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은 다 구하고서는 자기는 살아나지 못하고 만 사람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렇게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정신으로 살다가 간 사람들은 의사자로 지정하고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들에게 보상금 2억 원과 의료 급여 등이 지원되고, 의사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은 그들은 정말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의사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찬송가 498장처럼,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죽음과 죄에서 건저내며
죄인을 위하여 늘 애통하며 예수의 공로로 구원하네.
저 죽어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저 죽어가는 자를 구원해 낼 영적 의사입니다. 사람을 구할 의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영적 의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그 모델로 한 사람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의 마음이 잘 나타난 구절이 바로 본문의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주께서 나를 권유하심으로
7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예레미야는 원래 선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억지로 그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셨고 예레미야는 결국 하나님께 져서 그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이기신 것입니다. 이기셔서 그 선지자의 일, 즉 하나님의 말을 받아서 전파하고 선포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심으로 그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는 그 사역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갈등, 밀고 당기고 하는 이 갈등과 씨름, 이 갈등에서 우리 하나님이 이기셔서 내가 이 일을 맡았습니다. 주께서 나를 권유하셔서 우리는 이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여러분들과 저는 이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는 선포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온 세상에 전하고 알리는 선포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기셔서 내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는 선포자로 삼으셨다, 그걸 믿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기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를 이기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를 분명하게 하고 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이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결코 하나님을 이기려 하지 마시고 그냥 져야 합니다. 지고 하나님이 맡기시면 아멘,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그대로 아멘,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시면 그대로 아멘, 그게 가장 제대로 된 사명자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이 잘 나오는 사람, 아멘에 습관이 된 사람, 그들이 복입니다. 왜요?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그렇습니다.
나를 이기신 우리 하나님이 나를 권유하심으로 나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유로 된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란 말로 순교자라는 뜻이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기고 세우신 진정한 뜻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시는 의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복음의 증인입니다. 이사야 43장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를 ‘참되시고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계3:14). 예수님은 그 생애를 통해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진실을 이 세상에 증거하신 참된 증인이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증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를 이 세상의 참된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이는 바로 우리를 향한 땅 끝까지의 지상에서의 구원의 완성을 가리킵니다(행1:8).
7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세상의 증인으로 세워진 존재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이기셔서 우리가 증인된 신분의 사람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 견딜 수 없나이다”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 사명자가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반대의 길, 즉 생명의 길이 아니라 사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게 눈에 들어 옵니다. 마치 집에 불이 나서 활활 타오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 안에서 코를 골고 편히 자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죽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우리가 세상을 보니 세상 사람들이 그대로 자고 있다가는 다 죽어 지옥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만 두면 지옥가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예언자의 적나라한 고백입니다. 예레미야의 고백의 백미입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된 예레미야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박해를 피하려 도망가고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 주신 그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을 하기만 하면 그 마음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고백입니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영어 성경으로는 “내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아서 그 불이 나의 뼈를 사른다”는 말입니다. ‘주의 말씀이 그 사람의 심장 속에서 불같이 타올라 뼛속까지 타 올랐습니다’란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이겨서 일을 맡겨 주신 사람, 즉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의 거짓 없는 진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레미야의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고 저의 고백이 되고 우리 모두의 진심어린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나고 그래야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그건 그대로 두면 그들이 곧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불이 난 것을 보고 그대로 두면 곧 불이 타게 될 것이요 그리고 그걸 그대로 두면 곧 불이 그들을 다 삼켜버리고 말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안됩니다. 이대로 있으면 불에 타서 죽는다고, 불길이 곧 타 올라온다고, 위기라고, 어서 피하라고 내가 가서 외치면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깨워야 합니다. 그들을 구하여 내야 합니다. 왜요?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고백입니다.
우리 마음에 생명구원의 불길이 활활 타서 붙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전도의 불길, 영혼구원의 불길이 훨훨 타게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불입니다. 태우는 불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성령의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냉랭하여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로, 성령의 불로 태워가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살아납니다. 그래야 생명운동이 살아납니다. 그래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해야 정말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포구 서교동 5층 건물 원룸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시간에 불은 삽시간에 건물을 덮칩니다. 먼저 피하여 나온 청년이 뒤돌아보니 자기가 기적적으로 구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두고 불을 지켜보기만 하면 그 건물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은 다 타 죽어요. 그야말로 위기예요. 그야말로 순간이예요, 정말로 찰라예요, 그때 그 청년은 불타는 그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방마다 초인종을 누릅니다. “불이야, 여기 불났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릅니다. 왜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불타는 심령 때문입니다. 이 불타는 심령이 결국 잠자던 사람들을 구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불타는 심령이 작용해서 그렇게 살려 낸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이 불타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죽어가는 영혼을 바라보면서 견딜 수 없어서 안타까이 부르짖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합시다.
찬송가 500장입니다.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우리의 가까운 형제이니 이 생명줄 누구가 던지려나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너 빨리 생명줄 던지어라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보아라 저 형제 빠져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라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3. 비방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10절,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자신에 대한 주위의 음모와 핍박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친한 친구들도 예레미야의 타락을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필연적인 과정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복음을 외치면 반대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비방의 세력들도 다가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세력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복음의 반대세력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은 그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낙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 비방하는 소리를 넘으려면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야말로 불이 타 올라야 합니다. 내 안에 불이 있으면 누가 뭐래도 이기고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내면에 불이 붙어서 그런 일들을 다 이기고 극복하였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 사랑에 대한 열정, 신념에 대한 열정, 건강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어떤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다 이기고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 복음에 대한 열정을 주셨다는 확신과 믿음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도 극복하고 이길 수가 있는 내적인 능력, 세상적인 언어로는 내공이 쌓여지고 갖춰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안에 먼저 불이 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영적인 은행의 잔고들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방식에 따라서 자산이나 죄를 축적하기도 하고 저축하기도 합니다. 정직이나 결단력, 용기, 믿음 등은 좋은 자산들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한 확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며 나를 도우시고 나를 대신하여 싸우셔서 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여호와 닛시의 믿음, 이러한 영적 잔고들은 나에게 어떤 반대나 어려움, 시련들이 다가와도 반드시 내가 이기고 극복하게 하는 영적인 에너지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의 목소리에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주변의 반대나 스스로 느끼는 실망감으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으면 ‘나는 원래 이 모양 이 꼴이야’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너무 못 났어’ ‘너무 약해’ 그러고 말면 나는 너무나 처참한 사람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 앞에 잇는 반대세력에 나를 무릎 꿇게 하고 나를 꺾어지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복음전파라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에 우리를 헌신에게 하셨습니다. 주변의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주변의 비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 내면에 더욱 큰 하나님으로 이기고 극복하는 영적인 에너지들을 갖고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주변의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곧 더할 수 없는 좋은 길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닫힌 문 앞에 이르렀습니까? 일이 재대로 풀리지 않습니까?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합니까? 마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제물로 드리려는 아브라함처럼, 기가 막히는 그런 현장에서 안타까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아브라함에게 우리 하나님은 바로 뒤에 수양을 준비하셨던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를 당한다면 오히려 복음이 왕성하게 펼쳐지는 길목에 섰다는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이 꼬여도 더 좋은 길로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반대가 있다고 주저앉지 마시고 다가올 복을 걷어차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가난해도 위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못 배웠어도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이어도 자기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위대할 수가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은 예수를 많이 나타낸 사람입니다.
<순교자의 열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80여명의 순교자에 대한 기록물입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예수를 부르다가 죽어 갔습니다. 숱한 고난 속에서도 비겁하지 않고 떳떳하게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보여주고 간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고 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인격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다른 세상처럼 보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복음의 반대자들, 핍박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베드로, 야고보, 바울, 도마 등 많은 사도들이 그렇게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전하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복음 앞에서는 반드시 대적자들이 있지만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걸 넘고 넘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전한 사람들입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향한 섬김이
나의 삶의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4. 최후의 승리자들
복음 전파자는 최후의 승리자들입니다. 마지막 승리자는 복음의 전파자들입니다.
11절,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그렇습니다. 복음전파자는 최후의 승리자들입니다. 지금 이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으나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승리자로 밝혀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스데반은 매를 맞고 돌에 맞아서 죽었으나 그러나 그 스데반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에게 전하여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날린 향기는 2000년 역사에서 교회를 생동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꾸준히 전달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죽었으나 그가 전달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가 읽고 그리고 오늘 이렇게 설교에서 이 강단을 통하여 우리가 읽고 그리고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자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복음전파자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반드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복음이 이깁니다. 진리가 이깁니다.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복음은 메이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2장 9절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아멘입니다. 아멘입니다. 복음은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자도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상황이 많이 힘드시지요?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영혼을 구원하고 또 우리 나라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해 내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맺음:
여러분들이나 저나 멀지 않아서 천국에 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 뭐하다 왔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하나님 앞에서 뭘 자랑거리로 내어 놓겠습니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 자랑할 수 있는 것, 그건 오직 한가지입니다. 생명구원, 영혼구원, 즉 전도한 생명들입니다. 돈을 드리겠어요? 명에를 드리겠어요? 오직 영혼을 구원한 그것 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돌아보세요. 우리 주위에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잇습니다. 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저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야말로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죽음과 죄에서 건저 내며’라고 노래하여야 합니다.
가슴이 뜨겁고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저의 심령에 불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가슴에 복음의 불, 성령의 불이 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활활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