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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Oct 09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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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벧엘의 서원

본문 :

본문 : 창28:10-22

지난 주는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해안을 훑고 지나가서 제주, 부산, 울산 등에 특히나 엄청난 피해가 났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대개 10년 만에 한 번씩 큰 태풍이 온다는데 금년에는 다행히 남쪽에만 지나갔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혀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복구하는 노력들이 빨리 결실하여서 일상이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보통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악재로 작용하여서 일생을 힘들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계기란 게 잇기 마련입니다. 우연히 어떤 모임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누굴 만나고 그리고 그 길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경우입니다. 그게 좋든지 반대의 경우이든지 한 사건이나 만남이 그의 평생을 결정하게 하고 그 삶을 판단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던 그 유명한 구레네 시몬은 평생 십자가와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 그 유명한 평양 깡패 김익두는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갔다가 당시의 스왈렌 선교사가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라며 전해 주는 전도지를 받아서 코를 풀고 땅바닥에 던져 버렸고 그리고 집에 갔는데 가서 계속 그 말이 들려오더래요, 잠을 자려고 해도 그 말이 들려오고 꿈에서도 그 말이 들려오고 그러더래요.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교회에 갔는데 가서 보니 그렇게 편안해지더래요. 그리고 나니 그렇게 귀에서 끝나지 않던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라던 그 소리도 끝나고 그리고 잠도 잘 자고. 그렇게 해서 평양의 김익두는 예수를 믿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리고 목사가 되었고 그리고 부흥사가 되었고 그리고 그렇게 한 시대를 이끄는 영적 거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스왈렌 선교사를 만난 것,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라며 전해 주는 전도지, 그걸 코를 풀고 땅바닥에 던져 버렸던 그 사건이 계기가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고 그리고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도 그런 경우는 무척 많습니다. 그 중에 특히 야곱은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야곱, 그는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서 형 대신 장자축복을 받고 배고픈 형을 상대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야곱이 분노한 형을 피하여 고향 브엘세바에서 떠나 밧단아람에 사는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려고 나섰다가 루스라는 한 지역에 이릅니다. 지치고 곤하여 잠을 자려고 돌을 가져가 베개하고 잤는데 그 밤에 하늘이 열리는 한 사건을 경험합니다. 이른바 벧엘의 사건입니다. 벧엘의 사건은 바로 사닥다리가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야곱이 경험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이 경험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까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렸습니다.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가 자리하고 자던 그 자리에서 하늘에 까지 사닥다리가 세워져 있고 그리고 그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이 사건이 야곱의 평생을 이끌어 가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른바 벧엘의 서원입니다.
 

1. 찾아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10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아버지를 피하고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그 밤에 나타나셨습니다. 실패한 그 밤에 하나님을 만난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고 낙심하여 잇는 사람들을 찾아가 주시고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낙심하여 하룻길을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할 때에 찾아가셔서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시면서 다시금 일어나서 일을 할 사명을 맡겨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찾아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애굽 사람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어서 멀리멀리 아라비아 광야 시내산까지 가서 목축을 하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부르시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아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실패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시고 그리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 새벽에 그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가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러고 있니?”라고 책망하시지 않고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라”라고 하시면서 낙심한 그들을 위로하시고 다시금 만나주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낙심한 사람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찾아가시고 만나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과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즉 해석하기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견디기가 어려운 인생의 길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에 인생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 인생을 달리 해석할 때에 최고의 은혜를 위한 통로가 될 수가 있습니다. 탕자는 정말 고통의 나날들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그 자신이 생각을 달리하고 힘들었지만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그 아버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다가갔을 때에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고 그리고 축복의 길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인생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이 혼자서 도망가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 루스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나 주셨습니다. 그 삶이 허무하고 두려움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절박한 시기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그런 기회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이렇게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야곱처럼 이런 벧엘의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벧엘에서 서원하고 믿음을 세워가는 특별한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루스에 머물지 마시고 벧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루스는 자연 그대로, 내 가진 그대로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 지금까지 있던 그대로입니다. 변화받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루스에 머물러 있으면 은혜가 없습니다. 그 루스가 변하여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믿음의 서원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벧엘의 서원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16,17절,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무엇보다 두려워집니다. 무서운 마음,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그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바로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들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계신 곳 없이 어디서든지 다 계시고 어디에든지 다 일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그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너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와, 인생과는 전혀 다른 지존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선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당연히 두려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아시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시편 139편에는 다윗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다 아시는 존재 앞에서는 두려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실제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살펴보셨고 나를 아십니다.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아시고 심지어는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환하게 다 익히 아시며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세밀하게 다 보시고 아십니다. 그러니 그 엄청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정말 두려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 그러면 반드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그리고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제대로 알면 믿으면 당연히 두려워지는데 전혀 알지 못하니까 아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요? 전혀 두려워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루스땅에 계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화가 나서 자기를 죽이려고 기를 쓰고 있는 형 에서를 피하여서 혼자서 가고 또 가고 달리고 또 달려서 루스지역에 도달하였는데 그리고 피곤하여 잠을 잤는데 그곳에 바로 무소부재하신 우리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셨고 야곱과 대화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야곱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서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리고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안 계신 곳 없이 다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어디든지 다 계시고 다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다 보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심지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무서운 분입니다. 두려운 분입니다. “그 앞에 경외하며 떨지어다”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서 11:22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과 제가 바로 우리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언제나 어전의식, 왕 앞에 서 있다는 의식, 하나님이 준엄하신 분이시라는 사실, 이걸 분명히 알고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이 어전의식을 확실히 가지고 살아  간다면 그러면 생각이 분명해지고 확실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행동이 분명하고 달라집니다. 삶이 분명하고 달라집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신다,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 하나님이 나를 지금도 보고 언젠가는 나를 이대로 심판하실 것이요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3.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17,18절,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잠이 깨어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후회같은 탄식을 합니다. 깨어보니 바로 거기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즉 예배장소요 천국 가는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유명한 벧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고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제단을 쌓는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주일의 첫날 예배도 귀히 여기고 생활의 예배도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 공예배를 귀히 여기는  사람은 일상의 생활로 드리는 예배도 귀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예배를 귀하고 소중하게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아무렇게 생각하고 소홀히 하고 그 예배를 세워가지 않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못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그들은 반드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그 시간이 소홀하다, 예배를 귀하게 여겨지지가 않는다 그건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는 사람이 못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창세기 2:3절에는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며 거룩하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영적인 복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니라 믿는 사람만 받는 복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성공하고 부요하고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세우고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그런 복을 넘어서 거룩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배를 세우면 평안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내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참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쉼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세우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옘29:11).

제단을 쌓고 예배를 세우면 거룩해 집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세우고 쌓고 그리고 예배자가 되니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단을 쌓은 벧엘 사건 이후에 그 야곱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가 밧단 아람 외삼촌 집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 야곱에게 늘 축복하셨고 그리고 야곱이 머무는 그 집에도 엄청난 복을 안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야곱에게 아내를 주셨고 자식을 주셨으며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가축들을 주셔서 재산이 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주일을 공일이라고 부릅니다. 공일은 빈공자(空) 공일입니다. 빈 날입니다. 불신자들은 공일에 빈 사람들입니다. 쉬는 날이라고 먹고 마시고 그러다가 비고 빈공자 빈 날입니다. 공일이라고 술 마시고 피우고 그러면 그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주일이라고 주님 앞에 나아고 예배하고 거룩한 날이라고 주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하고 제단을 쌓는 자들은 하나님ㅂ이 그들을 거룩하게 복주십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시는 날이 바로 이 주일날이요 예배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예배가 반듯하게 자리하고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제대로 세워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게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4.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는 바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이제 자기가 평생에 살면서 행할 3가지를 서원하여 결단합니다.

20-22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만약 우리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평생을 두고 반드시 행할 3가지, 그 중에 첫째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세울 것입니다’라는 서원을 하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나이다’라고 이 세가지를 서원하여 약속합니다. 이 3가지 서원은 야곱이 평생을 두고 행할 3가지의 신앙생활의 방향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자신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굳게 결단하는 기도를 드렸고 그걸 하나님 앞에 서원하였습니다.

벧엘을 경험한 사람, 즉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이렇게 신앙의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만난 그 하나님 앞에서 ‘저는 앞으로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서원, 즉 확고한 신앙의 결단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건 신앙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대화하고 그 앞에 자신을 세운 사람은 이런 확고한 신앙의 결단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대로 된 신앙인의 자세요,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번에 부흥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강사님을 통하여 예비하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확실하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내 눈에 희미하다가 아니라 내 눈에 분명하다, 내 눈에 확실하다라고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신앙의 분명한 방향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단하고 그리고 신앙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루스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벧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루스는 자연 그대로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지금까지 있던 그대로입니다. 변화받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희미한 신앙,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신앙, 그 루스에 머물러 있으면 은혜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하고 그리고 벧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한 단계 업그래이드 되는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내 약한 신앙의 문제들, 아직도 루스의 야곱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고 말한 것처럼 하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경험되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세울 것입니다’라는 서원, 즉 예배를 살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나이다’라는 고백처럼, 하나님 앞에 드리고 바치는 일에 분명한 방향을 세우고 그런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확실한 방향을 정하고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굳게 결단하는 그리고 서원하는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구체적으로 나 자신이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번에 은혜를 받고 그걸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화받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레마의 말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준비하며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고치고 교회를 고치고 그리고 바르게 세워 가시기 바랍니다. 히4: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멘입니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날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들과 날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입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든지 자기 자신의 소욕을 채우고 그 소욕을 달성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란 존재, 그 자기가 그 인생의 주인이요 중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자기의 생각이나 바램을 꺾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면서 살아갑니다. 벧엘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성취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과거에 대하여 죽은 자요 욕심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 죽은 자로 고백하고 예수와 함께 미래로 향하여 나가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신앙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고 앞으로 전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십니다(마16:24,25). 벧엘을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은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와 함께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따로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곧 죽는 것이요 사망으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와 함께 살아야 의로워 집니다. 예수와 함께 살아야 행복합니다. 예수와 함께 살아야 영생이 보장됩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살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시부모와 함께 살려면 내가 죽어야 하듯이, 자식들과 같이 살려면, 며느리들과 하같이 살려면 내가 죽어야 하듯이 그렇게 예수님과 같이 살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은 만큼 예수님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천국을 바라보고 신앙의 삶을 결단하고 그리고 그 결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벧엘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맺음 :
여러분은 아직도 루스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벧엘을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야곱처럼 신앙으로 살려고 서원을 하고 그리고 그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루스에서 벧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다 벧엘의 서원을 가지시기 승리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찾아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2. 하나님을 만나고는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3.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4. 신앙생활의 방향을 결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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