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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18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

본문 :

본문 : 딤후3:1-12

현대를 일컬어서 단절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런 단절로 인하여 우리 공동체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모하고 있는 중입니다. 소통이 잘되고 융화가 제대로 되면 쓰이지 않아도 될 천문학적인 비용들이 소통의 부재로 인하여 사용되고 낭비되고 그런 문제들로 갈등의 연속으로 경제도 질곡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단절을 넘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잇슈로 대두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 단절에는 먼저 언어의 단절이 있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젊은 세대에는 전해지지 못하고 또한 젊은이 청년들의 이야기가 어른들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심하면 남성들의 언어가 여성들에게 전달되지 아니하고 여성들의 언어가 남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아니합니다. 친구사이에서도 말이 서로 소통되지 아니하여서 일들이 발생합니다. 이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살면서도 지방마다 말이 다르고 세대 간에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다릅니다. 요즘은 특히 간결하고 줄여서 하는 말들이 많고 은어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화가 안 되고 말이 통하지 못하고 그래서 단절의 세대입니다. 말은 많은데 대화는 열심히 하는데 그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이 없는 세대입니다.

또한 가치관이 서로 단절된 세대입니다. 이제 이 사람에게는 옳다고 하는 일들이 저 사람에게는 옳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애국이라고 열심히 모이고 데모하고 열심히 외쳤는데 그런데 그게 도리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그런 일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애국이라고 일했는데 저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애국이 아닌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애국이 아니라 매국이 될 수도 있고 반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세대를 보세요. 정권이 바뀌면서 그 동안에 열심히 가치를 두고 실행하던 일이 다음 정권에서는 반대로 바뀌기도 하고 또 그 다음 정권에서는 뒤집어 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서로 이편과 저편에서 서로 절대로 옳다고 말하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면 이렇게 뒤엉키기 쉬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와 연세대학교에서 동성애자 총학생장이 당선되었습니다. 서울대총학생회장은 여성으로 자신이 레즈비언, 즉 여성동성애자라고 직접 밝혔습니다. 연세대 총여학생회장도,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모두 경쟁 후보 없이 동성애자들로 단독 출마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특히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은 신학과 학생입니다. 또 엊그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총학생회장이 선출됐습니다. 이제는 도덕적으로도 단절의 시대입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도덕이 완전히 달라요, 옳고 그름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일치를 볼 수 없는 엄청난 괴리와 단절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이 말세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말세에’ 라는 표현으로 그 특징들을 하나하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다면 이 말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런데 이번 주가 성탄절을 맞이하는 주간입니다. 말세와 성탄절, 성탄절과 말세, 생각하면 서로 상반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성탄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시대입니다. 그러하다면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과연 어떠하여야 합니까?

1. 말세의 특징들
오늘 본문의 말씀들을 살펴보면 이 시대 즉 말세의 특징들이 나옵니다. 말세의 특징은 우선,
1)인본주의(Humanism) 시대입니다.
1-2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이 모든 것들은 다 인본주의의 열매들입니다. 인본주의란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즉 인간주의를 말합니다. 인본주의의 반대는 신본주의, 하나님 중심주의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전부 인본주의의 특징들입니다. 그리고 인본주의 중심에 바로 자기중심주의 selfish가 있습니다, 즉 삶을 자기중심으로 사는 시대입니다. 말세에는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가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중심하여 생각하고 평가하고 살아가고 또 나, 즉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모든 일들이 나에게 이익이 되고 유익하면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지 그걸 선택하려고 합니다. 가장 큰 특징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이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인본주의와 비슷한 사상이 휴머니즘, 즉 박애주의입니다.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인종, 국적,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사상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기독교 정신인 것 같은데 그런데 반대정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문주의입니다. 인간성을 존중하고 문화적 교양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인본주의 시대여서 긍극적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세대입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그 여학생은 국내 최초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를 밝히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서 최근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내용을 포함한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두고 학내외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윤리야 어떠하든, 이 세대는 이렇게 원리나 기본에서 인본주의 시대요 자기중심적인 세대입니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2)세속주의 시대입니다.
말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세속주의(世俗主義, secularism) 시대입니다.
2,3절,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전형적인 세속주의입니다. 그들의 생활에는 미래나 내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여기가 중심입니다.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으로 원래는 중세시대에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인간사를 얕보고 하나님과 내세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었는데 이런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휴머니즘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세속주의가 나타났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문화적 성취와 자기 실현의 가능성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세속주의의 영향은 신앙을 반대하고 종교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고 믿음에 관한 것들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 서려고 노력합니다. 즉 종교는 우리의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생각들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종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시도합니다. 생각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삶이 그렇게 변하여 갑니다. 이게 이 시대의 특징이요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들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이런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게 이 시대의 특징들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물질주의(Mammonism)입니다.
2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물질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인류가 시작하여 살면서부터 지금까지 이 돈이 최고로 중요한 돈이 최고인 시대입니다. 아니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돈을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돈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람은 돈, 돈, 돈, 그러다가 돈다고 합니다. 이 말세의 특징입니다.

4)쾌락주의 시대입니다.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시대의 또 한가지 특징은 쾌락주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쾌락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쾌락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행복이고 사람의 행복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달성된다는 쾌락주의적 사고입니다. 미래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현재의 감각적, 육체적 쾌락을 강조합니다다. 그러다가 염세주의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쾌락주의는 순간적이요, 감각적적이며, 육체적 쾌락을 귀하고 여기고 생각합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요 미래보다 오늘 이 순간, 영원보다 눈에 보이는 지금이 귀하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인본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이 4가지의 사상이 이 시대 즉 말세의 특징들입니다.
2.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은
1)돌아서야 합니다.
5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정확하게 이 말세 성도들에게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돌아서라”입니다. 말세는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풍조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대로 같이 가면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그 세속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의 길을 가야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 하나님과 함께 가는 그 신앙의 바른 길을 가야합니다.

가던 길에서 멋지게 돌아선 사람이 바로 바울사도입니다. 그는 다메섹을 향하여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깨닫고는 바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평생을 자기가 만난 예수를 소개하면서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전형적인 한 케이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세속의 그 길을 가다가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는 바른 신앙적인 그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금년 1년 내내 인본주의로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이렇게 하나님보다 사람중심으로 인본주의로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자기가 언제나 중심이 되어서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자기중심주의입니다. 만약 그러하였다면, 그러하였다면 그 가던 길에서 확실하게 돌아서야 합니다.

세속주의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신앙이 필요하지 않다고, 내 삶에 하나님의 개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물질중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들입니까? 돈이 끄는대로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기도하다가도 돈, 예배하다가도 그저 일, 직장, 돈 그러면서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이 물질중심주의에서 돌아 서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쾌락주의로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지난 1년 동안 쾌락을 좋아하며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쾌락을 좋아하고 사하면서 그 쾌락을 따라 살면서 살아오지는 아니하였습니까?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고 행복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달성된다는 쾌락주의적 사고는 나에게 없습니까?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렇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제 길을 제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게 돌아서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찬송가 384장입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평생을 예수와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인본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에서 돌아서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경건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신앙이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내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내 삶에서 말로만 아니라 날마다 듣고 배운 말씀이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중심으로 살면 안됩니다. 기도에 능력이 따라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내 사람에 그 말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말씀 따라서 사는 사람, 그 사람이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서 나를 바꾸고 변화시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경건의 삶 그대로 살면서 그 힘으로 살고 그 노력으로 살고 그 바탕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능력, 경건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면 신앙생활에서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말만의 경건은 눙력이 사라진 경건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진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건이 하나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삶이 되고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가는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말만 아니라 신앙이 내 삶의 힘이요 능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제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3. 얀네와 얌브레가 아니라 바울처럼 살아야 합니다.
8절,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모세에게 출애굽을 하려고 무척이나 힘을 쓸 당시에 애굽의 두 마술사였던 얀네와 얌브레는 자기들의 마술기술로 모세를 거역하고 반역하며 출애굽을 방해하였고 그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에게 대든 사람들입니다. 결국은 실패하였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시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얀네와 얌브레입니다. 즉 말세의 성도들을 이 사람들처럼 진리를 대적하고 반역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처럼 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대한 반역자, 하나님의 역사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역사를 방해하고 일이 안되게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9절,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그렇습니다. 결국 그들의 일들은 탄로가 날 것이요 결국 그들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에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반역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어리석음, 자기 중심적이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일들은 마침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1년 간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복음전파에 유익한 인물로 살아오셨습니까? 혹시라도 모세를 대적하여 출애굽을 방해한 얀네와 얌브레는 아니었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자기들이 가진 얄팍한 마술을 무기로 모세를 대적하였습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그 무엇, 그것이 재능이든지 재물이든지 여유이든지간에 그것을 가지고 복음을 대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되도록 하여야 하고 복음이 널리널리 전파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그분께 감사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 정말로 정말로 복음이 확장되는 일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올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10,11절은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이 당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사건은 사도행전 14장에 잘 나타납니다. 바울사도의 제1차 전도여행에서 복음전파를 하다가 그는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맞아서 거반 죽었습니다. 그들은 돌로 바울을 쳐서 죽였습니다. 돌에 맞은 바울이 그대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쳐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그 바울을 찾아서 죽었구나라고 슬퍼하고 둘려 서서 울고 있는데 그런데 그 죽었던 바울이 부시시 살아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다시 일어나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행14:21,22절,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한마디로 복음을 위하여 엄청난 환란을 받고 고난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고 환란을 당하고 그래야 그게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환란을 당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전진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하여 줄기차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입니다. 이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의 대적자 얀네와 얌브레가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고난당하고 환란당한 바울처럼 살다가 가야 합니다.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전파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한 대적자 얀네와 얌브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잘 전개되도록 노력하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당하고 환란당한 바울처럼 살다가 가야 합니다. 이게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하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복음의 일군으로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얼마나 복음의 일군이 되셨습니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얼마나 박해받고 얼마나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까? 예수 때문에 손해보고 예수 때문에 갈등하고 예수 때문에 고통당하고 이게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바울은 그것을 가지고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복음이 확산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산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얀네가 되지 마세요, 얌브레가 되지 마세요, 바울이 되세요,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는 바울이 되고 바울같은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입니다.

맺음 :
우리는 이렇게 말세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말세와 성탄절, 성탄절과 말세, 이 두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갖게 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세시대에 살면서 그러면서도 믿음을 지켜가고 있으며 이제 곧 성탄절을 맞을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그리고 지난 1년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도전하셨습니다. 이 세대에 빠지지 말고 돌아서라고 말입니다. 로마서 12:2절 이하는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요 권고요 하나님의 분명하고 명확한 뜻입니다.

1. 이 세대는 분명, 인본주의 시대요, 자기중심의 시대입니다. 세속주의 시대요 물질중심주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쾌락주의 시대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은 우리이게 그 길에서 돌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기주의에서 돌아서야 하고 세속주의에서 돌아서야 하고 물질중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쾌락주의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말로만 경건하다 경건하다가 아니라 정말 경건의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3. 얀네와 얌브레가 아니라 바울처럼 살아야 합니다.
말세의 성도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복음의 대적자들로 살면 안됩니다.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박해를 받은 것을” 박해받고 살아야 합니다.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복음을 위하여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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