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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Sep 16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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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본문 :
본문 : 욘 3:1-10
시골친구 중에 한 사람이 어릴 때 예수를 잘 믿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신앙을 잃고 사회에 나와서는 신앙없이 직장 다니면서 제법 잘 나가며 폼 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는데 그만 목에 병이 나 버렸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고개를 좌우로 적어도 90도까지 180도 이상을 볼 수 있는 데 이 친구는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고개를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도록 되어 버렸고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 돌아와서 신대원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어서 목회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를 만나면 자기를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상에서 잘 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자기 목을 잡고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들었습니다.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지원하는 피지의 김선교사님도 과거엔 가족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걸 엄청 핍박하였던 강직한 성격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꽉 붙잡아서 신학을 하게 하시고 지금은 오지 피지에 가서 선교사로서 자기가 가진 그 모든 뜻을 다 접고 내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멋지게 쓰임을 받는 선교사입니다. 역시 ‘목을 잡고 이끄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의 왕자 모세의 인생을 돌아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굳세게 출애굽의 계획을 설명하고 설득하시자 결국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자기를 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맡기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200만 명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고 광야로 나가는 역사를 이루어 냅니다. 그야말로 40년 간을 성실하게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만 받으며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모세를 얼굴을 대면하여 아시던 자로 표현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기도가 너무나 유명한 기도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은 그 십자가라는 잔이 너무나 쓴 잔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그 쓴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강력한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뜻을 접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결단하였습니다.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라는 쓴 잔을 마셨습니다. 역시 겟세마네도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엄청난 고난의 과정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오르실 때에 그 현장을 구경하다가 붙잡혀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시몬도 자기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붙잡혀서 자기 뜻을 꺾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사람입니다. 만약에 그 시몬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행군은 고통은 더 하였을것인데 그런데 시몬이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 준 것이 주님을 돕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시몬의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을 도운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경력한 뜻은 인간구원입니다. 요6:39,40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이라도,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영혼구원은 우리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요6:40). 그렇습니다. 인간구원에 대하여서는 강한 뜻과 의지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실행하시려고 온 노력을 다 기울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내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은 생명 구원.
하나님의 판단으로 성경본문의 현재의 니느웨는 이대로는 안됩니다. 다 멸망시켜야 할 정도로 악한 민족들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으로 결코 용서도 안되고 결코 그대로 살도록 내 둬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를 용인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1:2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도저히 그냥 이대로는 두고 못 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악독이 내 앞에 내 앞에 다 상달되었다 입니다. 니느웨의 악독은 구약성경 나훔서 3장을 보면 그 도시는 피의 도성이었습니다. 피로 세워진 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웃나라를 공격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빼앗고 탈취하여서 세워진 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니느웨가 피의 도성이란 의미는 궤휼과 강포와 늑탈로 약소국가를 속이고 포악한 방법으로 빼앗고 남의 것을 빼앗고 착취하는 도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남의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악한 도시를 하나님은 더 이상 두고 보시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시려다가 이제 마지막 방법으로 요나를 파송하시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에게 가라, 외쳐라, 그 악독이 내게 상달되었느니라 입니다. 그래서 경고를 해야겠다, 그래도 안되면 그들을 결국 손 보겠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는 해줘야겠다, 그리고 판단하지 이십니다. 구원하시려는 의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가장 큰 사역이십니다. 인류 구원, 인간 구원이 가장 큰 일이십니다. 그 구원의 프로그램에 니느웨가 있었는데 그 니느웨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어느 지역을 구원하시려고 여전히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은 이 요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는 그 도성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가셔서 외쳐야 할 그 도성은 과연 어디입니까? 그곳이 일산입니까? 서울입니까? 부산입니까? 명절을 앞두고 여러분들이 가서 외쳐야 할 그 대상은 형제입니까? 처갓집 식구들입니까? 가까운 친구들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외쳐라, 외쳐라”입니다. 그 세밀한 우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은 다 구원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것도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구원받기를 기대하십니다. 죄에서 구원받고 심판에서 구원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벧후3:9절,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멸망당하지 않고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그 뜻을 품은 자들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구원할 뜻을 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누군가를 구원해야 할 뜻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사명자들입니다. 그걸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걸 정확하게 그걸 실행해야 할 사명자들입니다. 다가오는 명절에 이 사명자들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혼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그 사람, 그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의 뜻을 피하는 요나
그런데 요나는 그 뜻을 행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하나님의 맡겨주신 그 뜻을 성취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반대 방향인 다시스라는 지역으로 도망갑니다. 그러려고 배를 탔습니다. 마침 그곳으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요나는 그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배의 가장 밑창에 숨었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지를 모르리라 생각하고 깊이 깊이 숨어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모습을 눈뜨고 못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가는 그 도망자를 그대로 보시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배 밑에서 잠자는 요나를 제비 뽑히게 하셨고 그리고 그를 풍랑 이는 바다에 던져지게 하셨습니다. 뜻을 성취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원래 하나님의 뜻은 그 악독한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 정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니느웨는 악독이 가득하였던 도시였고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이제 도저히 그냥 이대로는 두고 못 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도시의 악독이 하나님께 그 앞에 상달되었습니다.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대로 넘어가기란 정말 불가능한 정도로 악한 다시스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요나를 급히 부르셨고 요나에게 가서 외쳐라 40일 후면 이 도시에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릴 것이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외치게 하신 것입니다. 내린 불이 이 도시를 싹 불사를 것이라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가 싫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조용히 직접 심판하시지 뭣 때문에 기서 전파하라고 하십니까라는 의문입니다. 사실 그 의문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면 그대로 심판하실 것이지 뭣 때문에 나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시냐 그 말입니다.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12영, 즉 12군단을 더 동원하실 수 있으신 분이신데 그렇게 직접하시지 뭣 때문에 요나더러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납득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도망 가는 요나입니다.
욘4:1,2절,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그 원래의 뜻을 거두시는 하나님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이 싹 정리해 버리시면 무척이나 좋겠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왜 그 본래의 뜻을 바꾸려고 하시는지 그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편하였습니다. 요나가 대들듯이 하는 말이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입니다. 말씀을 하셨으면 그대로 하시지 왜 또 뜻을 거두고 바꾸려고 하십니까라는 반문입니다. 이해가 안된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라는 대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피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인 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나를 굽히는 작업입니다. 나를 접고 아버지의 뜻을 의식하여 아멘하고 따르기, 이게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세례를 받을 때, 임직을 받을 때에 우리는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내 뜻대로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려는 그 뜻에 대든다, 이건 불가한 일입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그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찬송하구요, 그리고 정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라고 찬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사명을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고 아멘으로 나가는 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대면하여 나갔습니다. 몸이 나가고 신앙이 나가야 합니다. 아멘하고 나가야 하고 찬송하며 나가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이게 사명자들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명자들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거나 피하는 일들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아멘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아멘하고 삶으로 살아내어야 하는 게 사람들의 몫입니다. 더 이상 반항하거나 더 이상 불평하면 안됩니다. 이건 내 뜻과 일치하거나 말거나가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history는 his story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반응을 보세요.
욘4:3절,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는 이제 떼를 씁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게 도통 요나의 맘에 안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하건데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내게 나음이니이다” 이건 응석입니다. 이건 신앙도 윤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하였으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원하건데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음이니이다“ 이건 도대체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노래하여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이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을 내리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천천 숫양의 기름보다 더 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고 찾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응석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큰소리 치고 만용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다 보시고 계십니다. 쓸데없이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이런 소리하지 마시고 정말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생활하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어요, 그런 순종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런 좋은 신앙인들을 기다리고 찾고 계시며 그들을 손잡고 일을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려 하십니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시고 힘주시며 돌보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아멘이 성취보다 낫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그렇습니다.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게 바른 신앙입니다.
3. 기어이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3: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도망가는 요나를 찾아서 물고기 배속까지 내려 보내시고 그리고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기어이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일이 달린 생명구원에 대한 엄중한 일입니다. 그 중요한 일을 우리 하나님은 소홀히 취급하시지 않으십니다. 너무나 귀하고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어떠한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기어이 이루고 성취하여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요나를 부르셨고 그에게 다시스로 가서 심판의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걸 거부하고 멀리 멀리 도망을 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배 밑창에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사역을 피하여 가면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십니다. 계속하여 고집을 부리면 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그 일을 지속적으로 이끄시며 역사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마치 뒤통수를 잡고 달랑 들고 가시는 하나님이신 듯합니다. 에스겔 8장에는 하나님이 에스겔의 영혼을 뽑아 달랑 들고 유대상황을 보게 하였듯이 우리가 고집을 꺾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을 달랑 드시고 상황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구원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 ‘다시 가라’고 계속하여 명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기어이 생명구원, 영혼구원의 뜻을 성취하시려고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강격한 구원의 명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취하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윽고 요나는 다시 니느웨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3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요나입니다. 하나님은 기어이 그 뜻을 성취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하였습니다.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하였습니다. 왕과 대신들과 심지어는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않았고 회개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기어이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야말로 역사 history는 his story,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내 뜻과는 다르고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그 계획대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그걸 너무나 모릅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그래서 조급해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그래서 못 기다립니다. 적어도 영혼구원에 대하여선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고 그 방향대로 일방적으로 몰고 끌고 가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 내 뜻 이야기만 하지 마세요, 조용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뜻에 자기를 순종시키십시오. 이것이 신앙이요 이것이 하나님 중심이요 이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성도들을 찾고 찾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4.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
그러자 하나님이 하신 반응입니다.
10절,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결국 사랑의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한 그 진노의 뜻을 접고 거두셨습니다. 12만 명의 니느웨 사람들을 심판하실 그 심판의 뜻을 더 이상 갖지 아니하시고 이제 거두어들이신 것입니다.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확실하게 언급하신 것입니다. 요나 한 사람의 전도순종이 하나님께서 가지신 심판의 뜻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요나가 온 종일 니느웨 거리를 다니면서 ‘40일 후면 하나님이 이 도시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라고 경고하고 전파하였더니 온 도시가 사람에서 짐승에까지 잿더미에서 올라가서 회개하며 돌아온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심판의 뜻을 거두신 것입니다. 원래의 뜻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뜻은 그들의 악독을 보시고 심판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뜻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니느웨를 구원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한 이유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그 뜻을 돌리게 하였습니까?
요나가 자기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 앞에 고개를 숙이고 순종한 결과입니다. 순종하는 요나, 그 요나를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 그걸 귀히 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의 뜻을 접고, 자기를 내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순복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순종을 정말 귀히 여기시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원 뜻을 접으시기 까지 하시는 우리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래의 계획을 접고 돌이키실 만큼 사람들의 순종을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시고 받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모세나 바울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1;1로 섰고 그리고 말하자면 하나님과 담판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동안 백성들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내가 그들과 함께 가지 아니하겠다고 하시자 모세는 “내가 참으로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다면 함께 가셔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의견을 내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시며 “내가 친히 가리라”라고 뜻을 바꾸셨습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이 자기의 뜻을 내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의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구원의 길을 제시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받고 그 앞에 자기의 뜻을 내리고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거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이 가장 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원래의 계획까지도 내리시면서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시고 그들을 도우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토록 자기를 접고 자기의 뜻을 내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비록 도망자였지만 요나의 순종을 받으시고 니느웨를 구원하여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접으실 정도로 우리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제2의 요나, 제3의 요나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맺음: 우리는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의 뜻을 내리면서까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뜻을 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뜻을 내리고 순종하면 하나님도 때로는 그 뜻을 내리고 접으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아름다운 신앙은 이렇게 자기의 뜻을 내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때로 우리 하나님도 원래의 계획을 접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신앙인들은 내 뜻 너무 앞세우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며 묻고 찾아야 합니다.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강한 자들로 인하여 공동체는 생채기가 납니다. 요나처럼 결국에는 내 뜻을 내리고 하나님의 뜻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도 그 뜻을 내리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기도 하십니다. 뜻을 돌이키시는 사랑의 우리 하나님을 높여드리시는 신앙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제목: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은
1. 하나님의 뜻은 생명 구원.
2. 하나님의 뜻을 피하는 요나
3. 기어이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4. 마침내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