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경공부-이미지-2.jpg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말씀과 찬양.png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Feb 19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담다한 신앙인

본문 :

본문 : 요16:25-33

그리스도인의 세상 사는 법은 한 마디로 하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인생을 가만히 신앙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마치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행하여 가는 광야길 인생과 같습니다. 광야에는 온갖 시련과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기에 그들은 당당하게 전전할 수가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길에도 광야길처럼 자신과의 싸움도 있고 환경과의 싸움도 있고 세상과의 싸움도 있고 마귀와의 싸움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수많은 시련과 문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당당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선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뭐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기 죽지 말고 당당해야 합니다. 기죽고 어깨 처지고 힘이 없어서 축 늘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절대로 원하시지를 않는 삶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세상 사는 법을 성경은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장면이 바로 여호수아서일 것 같습니다. 수1: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바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이런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분명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약에서 하나님이 확실하게 제시하시는 말씀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에 다락방강화를 가르치시면서 선포하신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보좌에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육신을 입고 인간들과 함께 같이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서 같이 생활을 하시면서 고난을 받고 고통을 받고 마지막에는 그 고난의 정점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고난의 마지막입니다. 가장 치욕스런 일이요 가장 힘든 일입니다. 이 고난을 바로 앞에 두고서 말씀하신 주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강조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세상을 살아가신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환란을 당하여 당당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걸아가라고 주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도가 세상 사는 법, 그 세상의 길에는 고난이 있고 환란이 있고 시련이 있고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없다면 그건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생자요 버려진 자입니다. 좁은 길에는 반드시 고난과 고통이 따르고 환란이 따르고 어려움이 있기가 마련입니다. 그럴지라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의연하게 걸어가고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한 이러한 어려움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 좁은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성도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지만 좌절하거나 실패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기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승리하고 성공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당당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를 본문은 차근차근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그걸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26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우리가 세상에서 당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친히 사랑하십니다. “친히”란 현대인의 성경에는 “아버지께서 몸소 너희를 사랑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친히 사랑하셨고 몸소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몸소,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에 담대하고 당당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서 광야길을 거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당당하고 담대하고 어깨를 펴고 세상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백하시기를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확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32,33).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가고 반대하고 그랬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임마누엘이 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그리고 함께 하십니다. 그 임마누엘이 되시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런 축복,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이 바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는 당당한 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고백의 신앙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라는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 아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그러한 우리를 친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고 이게 믿음의 선순환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원리를 따라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신 그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친히, 몸소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그런 엄청난 사랑을 받는 대상자입니다.

어릴 때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건너 갈려면 마루가 놓여 있었는데 그걸 넘어가려면 무척이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끔 ‘얘야 쥐가 나와서 너 발뒤꿈치를 물지도 몰라’ 그러셨던 기억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그걸 건너 가려면 분명히 쥐가 기다렸다가 내 발 뒤굼치를 물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그 서너발만 가면 되는 안방 작은 방 사이를 지나기가 무척 겁이 났습니다. 이유는 분명히 쥐가 분명히 나를 기다릴 것이야라는 이상한 맹신을 기지고 있었습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들이 앞에 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거야 라고 맡기면 되는데 안되는 쪽으로만 자꾸 생각을 하고 연상을 하고 이상한 시나리오를 쓰면 안됩니다. 조그만 계산과 다르면 이건 분명히 문제야, 이건 분명히 일이 난거야 라고 자꾸만 자꾸만 생각하는 것, 이게 마귀가 가져다 주는 불신입니다. 내 계산과 다르면 걱정하고 한숨 쉬고 걱정하는 것, 이것도 불신앙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나를 지켜 주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아버지이셔 그렇게 하고 믿고 두다리 쭉 펴고 자야 그게 믿음입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친히 사랑하십니다. 아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을 알아야 하고 이 사랑을 직접 경험해야 하고 이 사랑을 직접 맛보고 느끼고 알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우리는 좀 더 차원이 높고 경험이 확실한 믿음의 세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과감하게 털고 일어 나설 수 있는 용기, 하나님과 분명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홍해를 건너는 경험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경험자,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주신 무기
당당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 살면서 이기고 극복할 무기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기를 일상의 생활에서 제대로 잘 활용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이기고 극복하고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1)내 이름으로 구하라
26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주신 무기 중에 첫번째 무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제자들의 문제를 직접 하나하나 해결해 주셨고 도와 주셔서 때로는 풍랑도 잔잔하게 하셨고 때로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산제한 문제들도 해결해 주셨고 때로는 귀신들리면 그 귀신들을 내어 쫓아주셨으며 아무리 중한 질병도 다 고쳐 주셨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 주셨던 주님이십니다. 예수 앞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다 해결하여 주셨고 고치고 바꾸어 주셨던 다시 말하면 어떤 일이든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이들도 다 해결하여 주신 만능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함께 하셔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14: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러나 이제는 다른 방법을 주셨으니 그게 바로 이제는 당당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구하겠다가 아니라 너희가 예수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직접 구하고 얻을 수 있다는 보장입니다. 바로 하면 된다는 보장입니다. 그래서 당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하여 당당하고 이기고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장된 무기입니다.

7살 손녀의 이야기
할머니 신기한 일이 있어요. 내가 유치원에서 놀이터 같은데서 아무도 안듣게 기도했데, 친구가 생기라고, 무섭지 않게 친구가 생기게 해 달라고. 그런데 친구가 생겼어, 그거 참 신기한 일이예요. 무서워서 기도했는데 친구가 생겼어요. 신기한 일이예요.

그런 것입니다. 기도가 무기입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잠언 15:29절,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야고보서 5: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는 역사를 가져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하늘의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며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어떤 시련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도의 무기를 잘 활용하면서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32절,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러 가면 지금까지 따라다니던 이 제자들이 다 떠나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무리 제자들이 떠나도 아무리 흩어져도, 버리고 배반하고 가 버려도, 그래도, 그레도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걸 믿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셔, 그래서 아멘입니다. 그래서 당당함입니다. 무서울 이유가 없고 기가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말입니다.

찬송가 325장입니다.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2.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 이름 증거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3.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 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지금은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를 지키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이 계시네 성령이 계시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계시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담대하고 당당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든든한 울타리이십니다. 성령님이 울타리가 되시고 방패막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불어와도 나는 끄떡하지 않을 수가 있고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유혹하고 있는 원수 마귀도 예수 이름 앞에는 꼼짝을 못하고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두려움도 이기고 극복하고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님이 무기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엄청난 힘입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이기고 극복할 것입니다.

요즘 특별검사가 엄청난 힘으로 이 나라의 비리를 캔다고 연일 T.V에 비치고 방영하고 그럽니다. 자세히 보세요. 붙잡혀간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 나와서 법정에 나와서 그 무서운 법정에 푸른 옷들을 입고 묶여서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옆에 양복을 입고 눈빛이 빠리빠리한 사람들이 사이사이에 어깨를 같이 하면서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다 유명한 변호사들입니다. 이 변호사들이 불려나온 그 사람들의 옆에서 하나하나 조목조목 일일이 변호해 주고 답변거리를 주고 그럽니다. 그들이 있어서 어떤 문제들 앞에서도 당당히 말하고 이유를 설명하고 그럽니다. 안 그러면 기가 죽어서 얼굴도 못들고 대답도 못해요. 그런 변호사들처럼, 우리에게도 일일이 변호사가 잇는데 그분이 누구라구요? 성령님이십니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6: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제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제자들이 다 떠나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당당합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승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이사야 54:4절,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1: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입니다.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불안하고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실패하도록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이걸 확신하여야 합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서 근심하지 마세요.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일부러 한숨 쉬면서 살지 마세요. 이렇게 사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무척 많습니다. 심지어 잘 믿는다는 분들이 더 그렇습니다. 세상일들이 기게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완벽하게 이가 맞고 정확하고 그래야만 잠을 자고 그래야만 다리를 펴고 그래야만 숨을 쉬고 그래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불신앙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못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성령님을 믿지 못하고 상황을 믿고 형편을 믿는 불신앙입니다. 믿고 맡기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준비하셨고 그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평안이 아니라 하늘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교육도 이렇게 시키고 그들의 삶도 이렇게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성숙한 삶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제 제자들은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는 알겠습니다. 주님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을 말씀하심으로 이제는 알겠습니다. 주께서 이전에는 비유로 하시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시던 주님이셨지만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당황하고 긴가민가하고 그랬지만 그러나 이제는 밝히 말씀하시니 이제야 제대로 알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런 근심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신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불안하던 제자들의 얼굴도 이제는 차츰차츰 펴지기 시작합니다. 더 정확한 신앙의 표적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계획을 더 많이 알고 더 상세히 알아가게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제자들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그래 이제는 알겠느냐? 이제는 믿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아직도 주님은 그들의 고백을 완전하다고 보시지는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심에서 확신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희미하던 고백이 분명한 고백으로 변화하여 가고 있음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이제는 믿느냐 라고 반문의 확인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마8장을 보면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주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건너갑니다. 그런데 그 갈릴리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는데 그런데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잠을 잔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라고 긴급요청을 합니다. 잠을 깬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인데 제자들은 죽겠나이다라고 발을 동동구르고 예수님은 전혀 요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믿으니까요? 그분은 이렇게 늘 가르치셨으니꺄요?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맡기고 의지하고 찰떡같이 믿고 그리고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4. 이미 이긴 영적 싸움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긴 그 영적 싸움을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이렇게 굴곡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걸 인정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그 길을 싸우며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아 이게 신앙의 굴곡이구나라고 알고 대비하는 게 좋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다 떠나고 뿔뿔이 흩어질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야 영원히 한 곳에 있을 수야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도 언젠가는 떠나고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영원히 몸을 담고 있을 수는 없고 언젠가는 떠날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옮겨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 자체가 이별을 준비하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락방 강화의 마지막 절이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미 승리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이상의 낙원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정말 우리가 꿈꾸는 그런 나라가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환란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님나라 건설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환란이 오면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함을 누리면서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환란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함을 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란을 이길 수 있는 또 한가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담대함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에 담대하면 승리합니다. 담대하여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이 승리하신 그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미 승리한 전쟁 안에서 전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입니다.

맺음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살면서 당당하여야 합니다. 담대하여야 합니다. 맹신이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보장입니다. 수1: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바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이런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분명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약에서 하나님이 확실하게 제시하시는 말씀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26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 하나님이 주신 무기
1)내 이름으로 구하라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2)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32절,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4.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의 평안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승리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