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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03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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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스리고 정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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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6-28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냐? 어떤 존재로 여기고 사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자기가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고 마치 엄청난 영웅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봅니다. 특히 이단의 시조가 그러란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교회의 교주는 자기가 곧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그가 죽자 이번에는 그 아내가 내가 재림주이다. 내가 예수다라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대단한 존재라고 영웅시하는 그런 엉터리들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하기만 하여도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여실하게 드러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반대로 자존감이 너무나 바닥이어서 공연히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 누가 나를 엄청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필요이상으로 반응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또 자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대개 성공하고 굳세게 그 자신의 길을 걸어가서 인생의 발자국을 남기고 간 사람은 자아상이 굳건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나 다윗 왕, 신약의 사도바울 같은 인물들입니다. 특별히 다윗 같은 경우는 사울 왕으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받으면서 쫓겨 다닙니다. 시69편 같은 데를 읽어보면 까닭없이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머리털보다 많다고 억울해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슬프고 슬프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원망을 넘어서 “내가 노래로 주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라고 자신의 믿음을 다지며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갑니다(시69:30). 어느 날은 자기를 죽이려고 온갖 노력을 하던 사울 왕을 죽일 그런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그러나 내가 누구냐? 나는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냐?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존재인데 이에 맞게 살아야지 그러면서 굳건하게 자기를 지킵니다. 한마디로 자아상이 반듯한 사람입니다.
자아상이 굳건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적인 어려움이나 고난에 부딪혀도 자기가 정한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끝내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그러하지 못한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발자국도 뒤죽박죽거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서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자기를 잘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들에게 엄청난 좋은 영향력을 미쳐서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그런 인물들이 가끔은 T.V 뉴스나 신문을 장식하고 카메라가 다가가 비추고 그 자신은 얼굴을 가리고 그런 장면들을 봅니다. 왜 그런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아상은 어떠하여야 합니까? 이게 또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기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3위 1체 하나님의 의논의 결과로 엄청난 의도와 계획에서 우리 사람들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스림의 명령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다 그 명령으로 현재 여기까지 살아오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분명한 자아상, 정체성에 대한 확실함, 이것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창조기사인 창1장의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신 창조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신 명령인 다스리라, 정복하라는 이 말씀에 합당하게 살면 그때에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평가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과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들로 살아가시기 축복합니다.
1. 에덴의 축복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들을 지으시던 당시를 보면 더욱 은혜가 됩니다.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움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좋은 것을 끊임없이 부어 주시려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실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보세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러분과 저는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역사 속에서 탄생하였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그런 특별한 인물입니다. 이게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입니까? 정말 감사하고 정말 감격스러운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의 확신을 가르치면서 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주님, 그분은 우리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확실하게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살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이야말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신 동산입니다. 에덴은 기쁨의 동산이요 희락의 동산입니다. 2:8,9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설하신 에덴동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야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에덴을 벗어나면 고난이 기다리고 고통과 경쟁이 기다려서 슬픔이 다가옵니다. 시련이 다가옵니다. 원망과 불평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에덴동산에서 살아야 재대로 사람을 살아갈 수가 있는 법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간 곳이 노아홍수를 겪고 다시 만난 곳이 시날평야입니다. 이 시날평야는 바로 자기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친 장소입니다. 내가 내 목표를 세우고 내 이름을 내고 내 뜻대로 살고, 그 모든 것이 다 내, 내가 중심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이렇게 시날평야는 실패의 장소요 바벨탑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실패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에덴에서 사느냐, 시날에서 사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정해두신 그 에덴동산에서 그 길을 따라서 삶을 살아갑니까? 아니면 바벨탑이 쌓여진 시날 평지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뜻을 펼치려고 노력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론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다스리고 잘 지키면 그곳이 바로 에덴입니다. 그러나 잘못 다스리고 잘못 지키고 살면 그곳이 바로 바벨탑을 쌓았던 그리고 심판을 받았던 그 시날평야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다스리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기쁨으로 살고 평화롭게 살아가면서 에덴의 명령을 잘 따라서 다스리며 사는 성도는 에덴의 성도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이런 에덴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다스리라는 명령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다스리게 하자”는 하나님의 제안입니다. 그 결과로 사람에게는 이런 다스리라는 명령이 주어져 잇습니다. 본래 이 다스림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 다스리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입니다. 십계명보다 먼저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통제한다’ ‘이끌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축복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나누고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나 때문에 주위가 복받고 은혜를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로 인하여 이웃이 복을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그리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는 정말 자기를 잘 다스리고 그 다스림으로 이웃을 잘 세웠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으로 일을 하면서 그의 집이 요셉으로 인하여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 요셉을 통하여 나아가서는 애굽 전체가 복을 받았습니다. 7년 간의 흉년에서 애굽은 극복하고 나라를 지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웃의 여러 나라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부자나라가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를 잘 다스린 사람 요셉의 영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남들이 자기에게 대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요사이는 정말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괜히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내가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 이게 이유가 되어서 그래서 화가 나고 상대를 해코지를 합니다. 이게 다 사회문제가 되고 이게 정말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냅니다. 뭡니까? 자기를 작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유아기적 감정에 잡힌 결과로 분석합니다. 자기가 큰 사람이면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데 상대방을 용서하고 품어주고 그러는데 내 그릇이 작으니까 상대를 품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앙탈을 부리고 떼를 쓰더라도 어른이 부모는 그걸 받아 줍니다. 그러나 바로 위의 형이나 누나는 그걸 받아 주지 못하고 싸웁니다. 왜요? 이게 내 그릇의 문제요, 내 감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행하는 것입니다.
감정 콘트롤을 잘 해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전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는 사회입니다. 출근길에서부터 자동차, 자동차로 서로 부딪힙니다. 복잡한 전철에서 서로 엉킵니다. 사무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엉킵니다. 온갖 것에서부터 다 얽히고설킵니다. 이게 현대사회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감정을 잘 콘트롤하고 정리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이걸 다스리지 못하면 폭발합니다. 자존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 이게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고 자신을 잘 지키고 다스려야 합니다. 평정심을 갖는 일,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감정 콘트롤에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인이요 에서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기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그걸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딱 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잘 모르시냐?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형 에서도 그랬습니다. 배고프다고 그걸 참지 못하고 그대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렸다가 동생 야곱에게 축복권을 빼앗겼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방성대곡을 하면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나에게도 그런 축복을 주세요”라고 아무리 아무리 울며불며 요청하여도 이미 때가 늦어 버렸습니다. 왜요?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시간을 잘 다스리는 축복을 누리시고 권세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 시간을 다스리지 못하면 역으로 그 시간에 억매이게 됩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합니다. 그 시간을 그냥 보내거나 죽이면 실패합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시간은 정말 삶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시간을 잘 활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조용히 하나님과 만나서 대화하고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걸 갖지 못하면 그 삶에서 은혜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시간을 다스리는 능력 이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두신 것입니다. 학개 2:8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질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거둬 가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물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라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 주머니에 있다고 내 맘대로 사용하면 잘 다스리는 것이 못됩니다. 물질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대로 잘 다스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물질을 더 맡기십니다.
지난 주에 어떤 교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에 참여하였습니다. 첫시간에 광고하기를 이번에 그 교회의 모 장로님께서 참여하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1천만 원을 내어 놓았는데 그걸 모든 세미나가 끝나는 그 마지막 시간에 추첨하여 1등 5백만 원, 2등 3백만 원, 3등 2명 1백만 원씩, 그렇게 주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틀간의 빡빡한 세미나를 마치고 그 마지막 추첨시간이 되었는데 그런데 제 마음에도 기대감이 오는 것입니다. 그저 3백만 원만 되면 좋겠다 그런 겁니다. 그러자 당첨되면 어디다 쓰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참 이상하더라구요. 등록하여 차고 다니던 그 명찰 뒤에 각자의 번호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명찰을 꺼내서 보니 제 번호가 333번인데 또 이 번호가 얼마나 좋아요, 3등 2명을 다하고 추첨하고 나서, 드디어 3백만 원 추첨합니다. 장로님이 ‘3백, 3십’ 그럽니다. ‘어머 이런 기적이’ 순간적으로 너무너무 신납니다. ‘오라 당첨이로구나 이런 기적이 나에게도 오다니!’ 그러는 순간 ‘7번’ 이러는 것입니다. 그 순간 옆 줄에 있던 한 분이 두손을 번쩍 들고서는 신나게 뛰어 나가는 것입니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기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3백만 원의 그 꿈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쌓아 올린 탐심에서 비롯된 재물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보람된 삶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안전과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탐심은 암세포와 같습니다. 암세포에게도 꿈이 있다고 합니다. 더 가지고 싶은 마음, 더 커지고 싶은 마음, 끝없이 퍼지고 싶은 마음, 이게 암새포의 꿈입니다. 암세포가 탐심을 품음으로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침내 그는 생명을 잃고 죽게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 심판에 이르는 병, 이것이 탐심의 실체입니다. 탐심을 더 많이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정직을 잊게 합니다. 재물을 정당하게 모으고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실력입니다.
잠4:23절, “무엇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다스릴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에덴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여기서 실패하고 난 뒤에 사람들은 쫓겨나 버렸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면 실패합니다. 하나님 명령보다 내 이름을 더 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보다 사단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에덴에서 쫓겨납니다. 그래서 자기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더욱 네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더하시는 은혜
29,3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림의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다스리는 은혜 위에 온갖 식물과 풀들을 주셨습니다. “내가 온 지면의 것들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들을 식물로 주노라” 그러시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을 것들, 사용할 것들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하시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속하여 더하여 주시는 그 뜻이 무엇이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깨닫고 바르게 받고 바르게 활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자꾸만 더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불의한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치와 방탕을 위하여 그 재물을 사용하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살이 찌면 영적으로 감각이 둔해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마음이 살이 찌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심하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떠납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신 것들, 있는 것들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직하게,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재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잇을 때에 동안에 약한 자들을 잘 돕고 세워가야 합니다. 내가 가졌다고 생각될 때에 못가진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하면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약자들 위에 군림하면 안됩니다. 어느 때든지 어떤 위치에서든지 그들과 아름다운 파트너가 되고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른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고 그들에게 관대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방이 흘릴눈물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더하심을 받아서 산다면 그걸로 나보다 더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너그럽고 베풀면서 나누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가 약자들에게 관대하길 바라십니다. 내 주위에 주리고 헐벗은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하나님이 나에게 채워주신 그 재물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그 재물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하늘에 쌓여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한 부자들이 다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갈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누리고 있는 허락된 부유함을 흘러 보내야 합니다. 재물은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망하게 되는 법입니다. 받은 그 재물을 더욱 쌓아서 잔고를 늘리고 자꾸만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자꾸만 자동차의 배기량을 늘리고 자꾸만 오락의 프로테지가 늘어가고 자꾸만 유흥비로 탕진하는 비율이 늘어 가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일보다 벽을 허물고 문을 열어서 물질이 흘러가게 하여야 합니다. 부유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대로 흘러 보낼 때에 더욱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유함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우리의 부유함을 사용할 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더 많은 것들을 부어주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하시는 하나님의 더하기 은혜로 가진 우리의 부유함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다스리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신진대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고여있는 댐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 물이 흘러가게 하시기 바랍니다. 막혀있는 대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영적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언제나 채우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내가 받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부자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크리스찬들의 약점은 무엇이며 교회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를 지으신 그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그분, 우리에게 날마다 더하시는 그분, 그분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바로 ‘내’ ‘나’가 목표입니다. 크리스찬은 개인의 삶도, 공동체인 교회도 자신의 야망을 비전으로 포장하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내가 중심이 되고 목적이 되어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달려가면 그 크리스찬과 교회는 실패합니다. 반대로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다면 그 그리스도인과 그 교회는 절대로 실패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방향이나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더하셨나?’ 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더 하신 그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공유할까? 어떻게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실행하려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이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끊임없이 공급하셨고 끊임없이 채워주셨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하나님을 목적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그 길에서 살아가려고 무던히 애쓰고 노력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망은 나에게 집중하고 비전은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야망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비전은 생명의 향기를 발합니다. 비전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이 되고 야망은 들으면 들을수록 거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벼락부자가 될까? 어떻게 하면 땅땅거리며 누리며 살까 이런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자세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 정말 관심가질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얼마나 더하셨는가가 아니라 내가 받은 하나님이 나에게 더하여 주신 그것은 어떻게 구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까를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보다 그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채우시는 하나님, 더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31절,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이전에는 언제 보시기에 좋았는데 이제는 보시기에 심히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권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가 서로 축복하세요. 나의 축복으로 내 남편이 복을 받고 은혜생활을 누리게 하세요. 내가 기도하고 비는 축복으로 내 아내가 은혜받고 축복받으면 그게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신나게 축복하세요. 그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복을 누리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세요. 그게 자녀가 누릴 복입니다. 그게 정말 엄청난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따리를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사랑보따리, 웃음보따리, 행복보따리, 기쁨보따리, 긍정보따리, 감사보따리입니다. 그런데 눈물보따리, 슬픔보따리, 고민보따리, 아픔보따리, 시련보따리, 고난보따리, 질투보따리, 이런 보따리만 잔뜩 가지고 다니면 안됩니다. 정말 요셉처럼, 바울처럼 사랑보따리, 웃음보따리, 행복보따리, 기쁨보따리, 긍정보따리, 감사보따리를 가득가득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보따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잘 다스리고 잘 정복하면 에덴이 될 것입니다. 잘못 다스리고 잘못 정복하면 그건 바벨탑이 되고 시날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에덴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맺 음 :
그리스도인들이 다스릴 것들을 잘 다스리고 정복하여야 할 것들을 잘 정복하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다스릴 것들을 잘못 다스리고 정복하여야 할 것들을 잘못 정복하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결코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반기에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다스릴 것들을 잘 다스리고, 정복하여야 할 것들을 잘 정복하여서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들, 심히 좋은 그리스도인들, 심히 보시기에 좋은 일산교회공동체가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계획 속에 이 땅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다스리며 살라고 명령하신 그 명령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렇게만 산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에덴의 사람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잘 세우고 지켜서 승리하세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모든 것들을 잘 지키고 세워서 우리 모두가 영적승리자들로 아름답게 에덴에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