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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ul 17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라
본문 :
눅14:15-24
제헌절
지난 봄에 저희 집 텃밭에 여러 가지 야채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고추, 상추, 쑥갓, 오이, 호박, 토마토, 심지어는 더덕도 심었습니다. 그런데 예년 같지가 않은 게 주위에 정원수들이 자라서 햇볕을 가려서 이 농사가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농사란 게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 놓기만 하면 싹이 올라오고 자라서 무성합니다. 그것들이 자라나는 것을 본다든지 또 이것저것 뜯어서 먹고, 남들에게 주고 하는 게 쏠쏠한 재미를 낳게 합니다. 역시 심으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또 열매를 맺고 그럽니다. 안 심고 그대로 두면 거긴 잎이 무성한 풀들만 가득하고 무성하고 볼품 없어지고 그럽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심고 뿌렸는데도 수확의 때가 되어도 아무런 열매가 없고 거둘 것이 없으면 무척 허전할 것 같습니다. 열매없는 농사란 헛수고이기 때문에 농부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더러 대단한 가뭄이 온다거나 때로 비가 와서 엄청난 피해를 본다거나 병충해가 휩쓸어 간다거나 해서 정말로 열심히 땀 흘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는데 가을 수확의 때에 노력하고 수고한 보람도 없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면 이런 황당하고 낙담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을에 가서 거둘 것이 없다면 정말 낙심되고 기가 막힐 것입니다. 수확할 것이 있어야 수확해서 먹고 살 것인데 그게 없으니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것은 바로 영적수확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열매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기막힌 일일 것입니다. 이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터인데 그때 가서 아무 열매가 없다고 미리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여기서 열심히 전도한 그 사람들이 이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열매들일 것입니다. 다니엘서 12:3절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날 사람들이 누굽니까?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한 전도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처럼 영원히, 영원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1. 복된 사람들
15,16절,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모든 사람들은 다 이 땅에 와서 살다가 갑니다. 그런데 복된 사람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어떻게 누리며 사냐, 가지며 사냐? 그런 것들로 결정되는 줄로 아는데 정말 복이 있냐 없냐를 결정되기는 여기가 아니라 그곳에서 결정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이 하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되다”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정말 복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들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그 사람이 복되다는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복된 사람들, 그들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상 받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혼인잔치에서 참여하는 사람, 그 하늘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의 만찬을 가르치시면서 확실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주의 만찬에 지금 여기서 시행되지만 그러나 이 만찬에 참여하는 그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참여하는 그날에 분명하게 초창한다는 그런 약속이었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막14:25절). 우리에게 주어진 분명한 확약이 있는데 그건 바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복된 약속입니까?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복, 성경적인 참 복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늘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그 자리에 초청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들과 저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된 혼인잔치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대하셨고 그리고 저를 초대하셨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복된 자리에 초대를 받은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감격입니다. 진정한 복은 여기가 다가 아닙니다. 거기입니다. 거기가 있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이런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SNS에 온 글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그렇게 탐이 나서 그 부부를 평양으로 납치하여서 우리 사회가 온통 난리였던 1980년대가 있었습니다. 여배우 신상옥, 최은희 씨 부부, 그 최은희 씨가 얼마나 예뻤으면 북에서 납치하여 데려갔을까요. 얼마 전에 신문에 났는데 그렇게 예뻤던 그 국민 배우 최은희 씨가 90세가 넘어서 고양시의 어느 요양원에 있다고 합니다. 그저 쓸쓸히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라구요. 그녀는 자식이 없어서 입양하여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도 결국 최은희 씨를 한 요양원에 그를 맡겨두었고, 허기야 친자녀들도 어쩔 수 없는데... 그 국민배우 최은희 씨가 마지막 희망으로 한 말이랍니다.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가수 김도향 씨가 부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장송곡으로 불러 달라구요. 이게 인생입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 그렇게 살다버린 내 인생을 /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유가 뭡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이걸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이걸 알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배설하신 큰 잔치에 초청받아 갈 터인데, 그런 희망으로 감격하며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그걸 모르니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천국잔치의 배설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하신 초청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에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될 복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저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2.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17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이제 때가 되어 주님은 초청한 사람들을 다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초청에 응하게 하셨습니다. 준비되었으니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열심히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며 때가 되면 직접 오시고 그리고 전면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외웠던 요14:2,3절에서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리고 말씀을 하십니다. 준비하시는 주님, 우리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실 그날 “그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나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히 준비되었나이다. 이제 오소서라고 하실 그럴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렇게 우리에게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초청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그 때에 신나게 옷을 입고 신을 신고 달려갈 준비를 갖춘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데리러 온 자들과 함께 그 혼인잔치 자리에 갈 사람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걸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미리미리 예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아멘하는 사람들, 이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어제 우리 장로님 댁에 딸이 결혼식을 하셨습니다. 몇 달 전에 결혼날짜를 잡았다기에 장로님께 “무슨 결혼식 날짜를 이렇게 멀리 두고 이렇게 일찍도 잡으세요?”라고 말했었는데 그 결혼예식 자리가 그렇게 하여야 잡을 수 있다고 그러시더니 그 날이 어제로 다가오고 지나간 것입니다. 결혼 날짜를 너무 일찍 잡았다, 결혼식장을 너무 일찍 예약하였다고 하였는데 그야말로 잠시잠간입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어제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다녀오셨고 저 독일에서 신부의 오빠 가족이 들어와서 축하하고 또 신부가 처음보는 이제 태어난지 몇 달된 조카도 그 멀리 비행기를 타고 와서 축하하였습니다. 시간이란 정하면 잠간입니다. 날자는 정하면 그야말로 잠간입니다. ‘오소서 준비되었나이다’라는 그날이 멀지 않아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온다 그 말입니다. 잠간이면 옵니다. 그걸 알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반기시는 우리 예수님, 신랑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손에 들고 나갈 등불 준비 됐느냐 그날 밤, 그날 밤에 손에 들고 나갈 등불 준비됐느냐? 여러분과 저는 바로 그런 인생입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다 와서 맞으라’라고 그럴 날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걸 준비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국민배우, 최은희, 김일성이가 탐내서 데려갔던 그런 미모의 여인,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런 그 여인, 그도 이제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이걸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못가요 모르면 준비하지 못해요 그래서 하는 말이 뭐라구요? 그래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보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후회로 인생을 마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요?
그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 가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이걸 아는 것, 이걸 준비하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그리고 “마라나다 아멘 주여 어서오시옵소서!”라고 주님께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정말 행복한 인생이요 이게 믿음의 인생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인생입니다.
3.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유대 사회에서의 잔치준비는 먼저 올 사람을 청합니다. 우리처럼 무조건 다 청첩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 올 사람들에게 청첩을 보내고 잔치 참석이 가능한 자가 얼만지 확실하게 점검하여서 그에 맞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잔치가 다 준비되면 약속된 사람들에게 종을 보냅니다.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제 오세요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초청에 가겠다고 꼭 참석하겠다고 응답하였던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그 잔치에 불참합니다. 그래서 잔치집 주인의 노를 사게 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은 꾸준하여야 합니다. 한번 결단하고 믿기로 하였으면 꾸준히 그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뒤돌아 서지 않는 것이 신앙생활에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왔다 갔다 하면 안됩니다. 힘들다고 뒤돌아가 가버리고 어렵다고 그만 두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들을 삼키려하고 할 수만 있으면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갑니다. 이게 영적인 싸움이요 영적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왜 핑계를 대고 왜 하나님과의 약속을 거부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뒤로 밀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분이셨는데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 아이라 우선순위의 저 뒤로 밀려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분과의 약속을 뒤로 미루었고 그러니 그분과의 잔치자리에 참여도 하지 않겠다고 그저 미안하다는 그 말로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약속이 우선이 아닙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우선이 아닙니다. 더 이상 천국이 우선이 아닙니다.
뭐가 우선인가요? 그들의 변명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 일치하게 사양하기를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전부 “나는” “나는”입니다. 이제 주인이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였는데 살다가 보니 그 하나님이 어디로 가고, 그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디로 가고 이제는 다 나, 나, 나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나, 나입니다.
신앙의 변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나,나가 중심이 되는 게 신앙의 변질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저 뒤로 밀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우리를 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탄식하며 통곡하여야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지금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전부 “나는” “나는”이었으나 이제는 바뀌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이 기다리신 다면 달려 가겠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이제 주인이 바로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이제는 다 나, 나, 나가 주인이었다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4.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본문은 우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셨고 우리는 그 잔치에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잔치 자리가 비었습니다. 주인이 노한 겁니다. 대단히 화가 난 겁니다. 그래서 야단하십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잔치자리를 채우라고 명령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실 하나님이십니다. 빈자리를 채우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노력하여 온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설교와 전도에 대한 여러 가지의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강력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강력하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가라, 가서 전하라.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가라는 명령입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로든지 가라는 것입니다. 동네로 가고, 들로 가고, 산으로 가고 가서 전하고 가서 데려오라는 명령입니다. 왜 잔치자리를 비워두냐는 안타까움입니다. 단순히 비워두는게 아니라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왜 잔치자리를 깨느냐는 원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라, 가서 권하고, 가서 데려오라는 명령입니다.
'전도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전도하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말하긴 하지만,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첫째, 나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런 확신이 없기 때문에, 구원의 감격이 없고, 결국에는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고로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령의 힘을 의지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확신이 없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까?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예수의 향기가 나고 믿음의 냄새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전도한다고 노력합니다만 매 주일 우리교회에 장사하는 전단지를 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전도(?)하는 것 같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물건을 팔기 위해서 물건의 질을 높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고객들이 너무 지혜로우니까 이제는 A/S까지 철저히 해야 물건을 팔 수 있습니다. 그만큼 파는 사람이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판매자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신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확신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복음전도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지 않습니까? 무엇을 나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소망이며, 나의 위로가 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나는 예수 믿고 이런 위로를 받았어! 함께 예수 믿자!’ ‘나는 예수 믿고 나서 내 삶의 큰 문제를 해결 받았어! 그러니 너도 문제 해결을 받기 위해서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나가자’ 이런 고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고백을 듣고 싶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은 물질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어하는 것만 같지만, 물질이 그들의 인생을 채울 수 없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순정적인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나 답장이 없으면 마음이 없거나 다른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받은 여인도 정말 그 남자를 사모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있던 차에 그런 편지를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여자도 곧 답장을 썼습니다. “좋습니다. 사실 저도 당신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언제 어디로 나와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그 편지를 오빠에게 부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남자에게서 소식이 없습니다.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의 외투 주머니에서 빛이 바랜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빠가 그만 깜빡 잊고 편지를 우체통에 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은 그 약속의 자리에 만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금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일에 너무 바빠서 우리들의 주머니나 가방에 있는 편지를 깜빡 잊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주님 사랑, 주님 은혜를 이웃에게 증거하며 소개하면서 나누면서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훌륭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영국의 죤 스타트(John Stott) 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원제는 “Guilty Silence, 죄스러운 침묵”인데, 저자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 가는 이웃에게 복음을 말해 주지 못하는 침묵은 죄에 해당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 하우스라는 신학자는 오늘날의 기독교인을 자폐증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자폐증에 걸렸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복음의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정말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여 못 견딜 정도의 참된 주님의 제자입니까? 이 시간 많은 분들이 이 전도에 대하여 많은 부담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한 때, 전 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기억하시겠습니다만 밴드를 지휘하는 월레스 하틀리라는 단장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된 부분이 많고 특히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지만 밴드를 지휘한 월레스라는 단장은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 화려한 배로 바다를 횡단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그 배에 탄 악장이었습니다. 모두들 침몰하는 배 위에서 다들 자신만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칠 때, 밴드의 단장은 죽음 앞에 내어던져진 그들을 위로합니다. 배가 점점 가라앉고 있을 때, 다른 멤버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월레스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홀로 남아서 이 장엄한 찬송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364장)’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은 살겠다고 자리를 떠났던 밴드의 일원들은 다시 돌아와 함께 연주를 했습니다.
저는 영화로 본 이 장면을 통해서 월레스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분 만이 소망이십니다. 그 분 만이 당신의 위로가 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물질만을 추구하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힘차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생의 참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 영원한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이 힘들 때 힘이 되시고, 슬플 때 위로가 되시고, 기쁠 때 그 기쁨을 더욱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예수 복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까지, 심지어 유황불이 떨어져 성이 망하는 그 날 아침까지, 성문에 서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전혀 변화되지 않는데, 왜 쓸데없이 날마다 외치고 계신가요?”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계속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나 자신이 세상과 똑같이 악해지지 않기 위해서, 죄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외치고 있는 이상, 나는 소돔 사람이 되지 않는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상, 세상 사람들은 변화를 받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결코 그들을 닮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외치고 있는 이상 나는 건재하다.”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내가 사단의 세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의해 지배되지 않기 위해서, 내 인생이 사단에 의해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복음을 증거해야만 합니다.
맺음: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15,16절,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때가 되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초대할 것입니다.
17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왜 그런가요? 나,나,나가 중심이 된 신앙의 변질 때문입니다.
빈자리를 보고 주인이 노합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라고 강력하게 야단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제 우리가 할 일들입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십시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