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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Feb 05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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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끝까지 믿음으로 화답하라
본문 :
본문 : 대하29:29-36
어느 중학교의 동기동창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매년 년말에 친교모임을 가졌는데 장성하면서 결혼적령기가 되자 하나하나 결혼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만 남게 되더랍니다. 같이 만나던 한 반의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나자 선택받지 못한 남녀 한명씩이 서로 얼굴을 처다 보다가 애고 우리만 남았네 우리끼리 합하자 그래서 그 둘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에 의하여 선택받는다는 사실은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정말 누군가에 의하여 선택을 받는다는 건 정말 신나고 좋은 일이요 행복하고 감격스런 일입니다. 반대로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일 수 있습니다. 롬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죄인이요 버림받은 존재요 마귀의 권세아래에 방치되어 있던 하찮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시고 그리고 우리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귀하고 귀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선택함을 받은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요 정말 신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역대하 29장 이하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13대 왕으로 아버지 아하스 왕의 아들로 25세에 왕으로 선택함을 받아서 29년간 유다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유다나라에 종교개혁을 행한 4명의 왕인 아사, 여호사밧, 요시아 왕과 함께 유다의 4대 훌륭한 왕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좋은 왕이었고 유다백성들에게도 아주 선한 정치를 펼친 어진 선왕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악한 아버지에게서 이토록 선한 아들이 태어난다 그 자체로만도 엄청난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따른 그런 복된 왕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확실히 남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요즘 말로 흑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래서 부모에게서 받은 것도 없고 남들보다 잘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배운 것도 없고 건강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원망하고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고 늘 안타까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주위에서 누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러면 괜히 나는 더 작아지는 것 같고 더 쪼그라지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원망스럽고 그래서 나 자신이 너무나 한스러워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참 곤란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히스기야 왕을 보세요. 요즘으로 치면 그도 영적으로는 흑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알 우상을 만들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였으며 이방 민족의 관습을 따라 우상에게 제사하였고 마침내 그 죄악 때문에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입을 받고 점령 당하여 백성들이 죽고 약탈의 고통을 겪었던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멋진 왕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능력도 인정을 받아서 위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왕입니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대하31:20,21절,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이처럼 히스기야 왕은 모든 것을 갖추고 소위 성공한 훌륭한 왕이었는데 그러나 끝까지 아름답게만 살다가 간 멋진 왕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인생의 마지막까지 선하게 아름답게 완주한다는 것이 이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토록 멋진 인생을 살면서 승리의 길을 걷던 히스기야 왕인데 그도 마지막 어느 순간에는 허튼 길을 걸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사람입니다.
32:25절,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끝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한 왕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여 보세요. 칭찬받고 열심히 살던 왕인데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책망으로 화를 자초하였다 그래서 진노가 온 나라에 임하였다, 그건 엄청나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건 평생을 아름답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참으로 통탄할 그런 일입니다. 히스기야는 평소에 강력하게 “그런즉 너희 조상들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와”라고 강조한 왕입니다(대하30:8). 그런데 막상 그가 잘못하여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였다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딴 사람도 아닌 왕 자신이 잘못하여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게 하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처음과 나중이 다른 이중적인 왕입니다. 안과 밖이 다른 이중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끝까지 믿음으로 화답하라’입니다.
1. “여호와 보시기에”
29:2절,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한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모든 길과 행실을 따라서 그렇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왕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사 왕, 여호사밧 왕, 요시아 왕과 더불어 유다의 4대 선왕으로 인정받은 왕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이렇게 하나님은 그들 모든 사람들을 보십니다. 세밀하게 하나하나 살펴보시고 평가를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하나 살피시고 제대로 지켜보신다, 그리고 평가를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걸 제대로 모르는데 하나님이 보시고 살피시고 평가하시고 그리고 그에 맞도록 일하신다, 갚아주신다, 이끄신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게 알고 생각하고 그리고 확실하게 믿고 그리고 나서 제대로 된 행동을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걸 잘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알맞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살피시고 지켜보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 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맞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멋지게 성공하면서 한 개인으로서, 지도자로서, 국가의 인도자로서, 국가의 왕으로서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였고 또 그렇게 살아간 사람, 이게 히스기야 왕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청소년들이 요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잘 생기고 멋진 남자 연기자와 예쁘고 날씬한 여자 연기자가 사랑하는 장면에다가 도깨비라는 귀신이 미래를 보고 사고를 막고 죽을 자를 살리고 이적과 기적을 행하고 거기에다 슬쩍 전생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아이들이고 아줌마고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착하게 만들고 전생을 믿어 버리기 만들어 갑니다. 여러분이 재미로 그런 것을 보는 것을 보지 마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빠지지는 말고 뭐가 옳고 뭐가 그런지는 잘 판단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타락해 버린다는 사실은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영혼을 죽입니다. 잘 생기고 멋진 귀신은 없습니다. 귀신은 그냥 더럽고 귀신은 선한 귀신과 악한 귀신이라는 게 없습니다. 귀신은 다 악합니다. 귀신은 선하게 아니라 단지 우리를 속일 뿐입니다. 공유라는 배우와 이동욱이는 누구나 빠질 수 밖에 없는 멋진 남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뜻과 상관없이 수많은 청소년들을 마귀를 미화하고 전생을 믿게 만드는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생은 없습니다. 귀신에게 잘 보이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보이려고 살아갑니까? 한번 물어봅니다. 우리 여성들은 말마다 화장을 하시잖아요? 화장하지 않는 분들은 거의 없을테지요? 아니면 씻기라도 하시잖아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시나요? 누구에게 이쁘게 보이려고 씻고 화장하고 눈썹도 그리고, 립스틱도 짙게 바르고 그러십니까? 누구에게 보이시려고?
어떤 정신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게 히스기야식의 생활입니다. 이게 멋진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제나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코람데오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반듯한 사람, 형통한 사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바른 인물입니다. 왕이 되어서도 제대로 왕다운 생각을 하고 나라를 이끌어 간 사람이었습니다.
대하 29:3-5,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왕이 되자마자 그는 우선 온 나라에 널리 펼쳐져 있는 자기의 아버지가 하였던 잘못된 신앙의 습관들을 고치게 하고 여러 적폐들을 차근차근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를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세워 갔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 행복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엄마로, 번듯한 직장인으로 저마다 그럴듯한 모습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는 깊은 고뇌와 고민들이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으로서 한 나라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그 자리에 올랐는데 그 귀한 기회를 제대로 국민들을 위하여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행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바르게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대선시기가 되면 여러 크고 작은 용(?)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나라의 대표가 되려고 나서고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럽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하여도 그 화려함 이면에는 히스기야와 같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뇌와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고 동시에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발표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히스기야처럼 생각이 발라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고 노력하여야 그가 바르게 서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 갈 수다 있다는 점입니다.
29:20,21절,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히스기야는 그의 생활을 바로 세웠을 뿐 아니라 자기가 다스리고 섬기는 그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나라를 제대로 세워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래서 자기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에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그 하나님께 이 나라를 도와주세요라고 도우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히스기야를 도우셨던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면서 제일 먼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고 여호와의 제단을 정리하고 수리하고 그리고 제사를 바로 세웠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세우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신앙을 먼저 세웠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지도자의 자세요 일을 밭은 자의 자세요 일할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우리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결단하면 먼저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하고 일정을 시작하는게 상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먼저 기도원에 가서 깊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를 돕고 세우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30:20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할렐루야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그리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도하는 백성들을 고치셨고 그리고 그들의 땅도 고쳐주셨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기도하고 엎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을 지키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셔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할렐루야, 정말 생각만 해도 엄청나게 신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는 응답하시고 고치시고, 할렐루야. 신나는 신앙의 선순환, 기도의 선순환입니다. 생각과 사고가 반듯한 사람, 삶이 반듯한 사람, 신앙이 반듯한 사람, 그들에게는 히스기야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기도하고 들으시고 그리고 고치시고.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계속하여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에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이 민족에게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다가 그 히스기야에게 나타난 일입니다.
사38: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앗수르의 장수 산헤립이 엄청난 대군사를 이끌고 처들어왔어도 기도로 이기고 나라를 위기에서 지켜낸 왕입니다. 그렇게 일을 잘하고 멋지게 나라를 이끌어 가던 그에게 병이 들었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던 이사야에게 가서 히스기야 왕에게 가르쳐 주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에게 닥쳐진 일은 조용히 인생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가르쳐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감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런데 반듯한 사람 히스기야입니다.
2,3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다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을 정리하였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심히 통곡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세워진 그에게는 죽음도 피하여 갑니다.
4,5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기적입니다. 그렇게 그는 15년을 더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반듯한 사람 히스기야는 반듯하게 산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그대로 드러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반듯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리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도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자신있게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응답받기를 축복합니다. 정말 멋진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의 모습입니다.
3. 형통 후의 문제점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끝까지 신앙으로 응답하고 믿음으로 응답하여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싶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이렇게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또 삶을 살아가야 하고 인생을 엮어 가야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게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그대로 끝나면 다르겠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은게 인생입니다. 광야길에는 오아시스 같은 엘림타운도 있고 쓰디쓴 마라같은 곳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겸손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벧전5:5).
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이게 문제입니다. 잘 되다가 그 형통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게 그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다가오고 그래서 실패가 다가옵니다. 우리 삶에 따라 다니는 역순, 즉 순리가 아닌 역리가 있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시련의 기회가 나도 모르게 야금야금 기어오고 다가오고 그럽니다. 히스기야는 그만 이 다가오는 교만의 마음에 자신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화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교만한 것이 어떤 것입니까? 히스기야 왕을 비추어 보면 잘 되고 형통하면 사람은 착시현상에 빠집니다. 내가 다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보답하려 하지 아니하고 그 영광을 자기에게로 돌립니다. 이게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내 힘으로 무엇을 이룬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힘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대표적인 교만입니다. 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고 거리낌도 없이 하는 일이 교만입니다. 교만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하나님이 없이 하는 일입니다.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은 교만하면 그런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게 하셨고 그리고 그 인생들을 구원하여 주셨는데 그러면 감사해야 하고 그러면 엄청 겸손하여야 하는데 그런데 교만하면 다 버리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다 겸손하여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정말 정말 어렵지만 훨씬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선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살아오던 그 스타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걸 바꾸고 새사람이 된다, 그리고 자기를 내려 놓는다 그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11:2)고 가르쳤고 잠언15:33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강조하여 가르쳤습니다(벧전5:5). 이만큼 겸손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기 바랍니다.
5. 의인들의 마지막
대하32:26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신앙생활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바로 뉘우치고 자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은혜받는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졌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그의 인생의 마지막까지 겸손하게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마지막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끝까지 겸손하게 살고 왕으로 겸손하게 일하다가 간 사람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화답한 인물입니다.
잠15:3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이렇게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앞잡이가 무엇입니까? 이끌고 인도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그 자신을 존귀로 이끌고 인도하여 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존귀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대하32:30,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하나님은 그 겸손한 왕에게 형통함을 주였습니다. 축복입니다.
대하32:33절,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
히스기야 왕이 끝까지 겸손하게 믿음으로 화답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그의 죽음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존경함을 표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은혜 주시고 사람들도 그에게 존경함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까지, 끝까지 믿음으로, 신앙으로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의인들의 마지막의 모습이요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히스기야 왕에게 형통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놀라운 은혜로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잠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맺음 :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화답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하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신앙의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람입니다. 아멘으로 인생의 길을 뚜벅뚜벅 걸으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