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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y 28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 가정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

본문 :

본문 : 아2:10-17

요즈음 인구절벽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또 듣고 하는 시대입니다. 지난 3월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의 수가 3만 2천 2백 명인데 작년 대비 13.1%가 내려가서 작년보다 5천명이 덜 태어난 수치라고 합니다. 금년도 3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전체 결혼의 수는 2만 3천 건으로 이것도 작년 3월의 같은 기간보다 6.8% 즉 1700건이나 엄청난 수치로 줄었다는 것이고 이런 결과가 저출산으로 이어져서 인구가 절벽을 이루는데 이것이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루는 데에 가장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1970년대의 10년 간에는 900만 명의 어린 생명들이 출산했는데 40년 뒤인 현대인 2010년대 10년 간에는 456만 명이 되고 그 뒤 40년 뒤 즉 앞으로 40년 뒤인 2050년대 10년에는 310만 명이 출산한다는 수치입니다. 그러니 이 인구절벽은 80년 사이에 3분의 1로 줄어져서 앞으로 곧 우리나라 인구의 40%는 65세 이상의 노령층이고 20%는 미성년자여서 20세-64세까지의 노동인구가 전체의 40%로 이 40%가 나머지 60%를 부양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곧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절벽이 심한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통계청과 행정자치부가 작년 8월에 우리나라의 가구 관련 통계자료를 발표했는데 1인 가구 세대주 736만 명으로 전체 가구 수의 27.2%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4가정 중에 1가정이 1인 가구라는 통계입니다.

이러한 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선 경제활동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어서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위축되어 생산력 저하와 소비의 축소로 인하여 경제발전이 둔화되는 일이 가장 큰 일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산업현장에 일할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령인구가 적어서 학교교육이 위축되어 교육, 의료, 복지서비스, 사회기간사업의 축소로 다가오고 군인, 경찰 등을 모집하기도 어렵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반대로 고령화로 인한 연금의 부담, 노인의료비 확대, 복지확대로 인하여 재정 부담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재앙들이 곧 다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또 염려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머잖아서 이슬람화가 되리라는 예측입니다. 우리는 출산율이 1.17명으로 2부부가 평생 낳는 아기수가 1.17명인데 이슬람은 8명씩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머잖아서 우리나라도 이슬람화가 되어간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 가운데 하나는 또 이토록 어려운 가운데 이뤄진 가정들이 알게 모르게 하나하나 자꾸만 파괴되고 무너져 가고 있다는 아픈 현실입니다. 가정이 파괴된다, 무너진다, 이보다 심각한 일들이 없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고 현상들이 있는데 그 중에 큰 이유가 바로 졸혼한다, 이혼한다는 현상들입니다. 이미 우리가 다 알듯이 3가정이 결혼하면 그 중에 1가정이 이혼한다는 현실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 수치는 자꾸만 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또 하나님 앞에서도 이건 제대로 가는 게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극복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기록한 아름다운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시입니다. 솔로몬왕이 술람미라는 한 여인을 사랑하여서 쓴 글인데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소상하게 나타내 주시는 그런 비유의 글입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이 이 아가서의 중심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가정에 가정을 허는 작은 여우가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하나님은 포도원 같은 우리들의 가정이 아름답게 하나님 안에서 예쁘게 잘 지켜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가정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어릴 때 가장 무서웠던 동물이 바로 이 여우였습니다. 여우는 사람들을 헤치는 동물입니다. 여우란 동물은 아주 교활하고 영특하기로 소문난 동물입니다. 불리하면 굴에 잘 숨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채구도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굴에 숨으면 그 여우를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럴 때는 연기를 피워서 그 연기를 굴 안으로 넣으면 그러면 여우가 못 견디고 튀어 나옵니다. 어릴 적의 기억입니다. 사람들을 헤치는 여우, 가정을 허무는 여우, 이제 그 여우를 잡으러 가도록 합시다.

1. 가장 커다란 여우는 ‘자기 중심’이란 여우입니다.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황에서 가장 커다란 여우는 바로 자기 중심이란 여우입니다. 남녀가 혼자서 따로 따로 살다가 서로 합하여 같이 한 가정을 이루면서부터 혼자는 없어지고 둘이 됩니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갈등이 문제되어 일어나는 점들입니다. 가정생활에서의 가장 큰 대명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제는 함께, 같이, 더불어 하는 연합입니다. 부부는 더불어 살아야 제대로 가정을 이루며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까지 오래 동안 혼자서 살던 ‘나’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나 자신 안에 이 ‘나’라는 자아가 너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으면 ‘함께’ ‘더불어’ ‘연합’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생활 안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성경 창세기 2:24절에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한 몸은 단순히 우리들의 육체만 아니라 하나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부부는 이제 더 이상 ‘나’라는 자아적 존재가 아니며 둘이 각자가 아니라 그 둘이 합해져서 ‘하나’여야 한다는 연합의 말씀입니다. 이 연합 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가정에 이런 진정한 하나가 이뤄지지 못하면 거기에 교활하기 그지 없는 여우란 놈이 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분명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하나이지 못하고 둘입니다. 개체의 하나가 그 사이에 여우처럼 일어납니다. 교활한 여우는 화만 나면 꼬리를 감추고 개인주의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얼마나 잘 나가던 인물인데, 내가 여기서 이렇게 낮추고 맞춰야 하고 이러게 살아야 해, 못 살겠다는 자존심이 머리를 살짝 듭니다. 그러면서 충돌합니다. 그러다가 갈등하고 그러다가 한바탕 일어납니다. 이게 내 안에 숨어든 자아라는 여우입니다.

다니엘 시대에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내린 “모든 사람이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는 금령을 어겼다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분명히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는데 그런데 왕이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부부도 분명 두 사람인데 보이지 아니하는 또 다른 나 하나가 더 있는 것입니다. 그 ‘나’ 하나가 바로 우리 부부사이 안에서 도사리고 있으면 그게 여우요 그게 가정을 허무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부부 사이에는 ‘나’라는 절대적인 그것, 그 ‘나’라는 여우를 잡아내야 하고 그 자아를 정확하게 잘 허물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나’와 ‘너’가 합하여진 ‘우리’여야 합니다. 이렇게 ‘나’가 합하여 ‘우리’여야지 여전히 나는 그대로 살아 있으면 그게 가정을 헤치고 허무는 교활한 여우가 됩니다. 정말로 건강한 자아상은 나와 우리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정하고 그리고 위치를 잘 하여야 제대로 된 ‘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기를 축복합니다.

‘나’가 강한 사람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고 가정을 이뤘는데도 여전히 나라는 자아가 그대로 살아 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상대를 괴롭히는 일입니다. 서로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결혼한 부부에게 하시는 명령도 있습니다.

고전7:3,42,절,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결혼한 부부는 몸도 자기 생각대로 살지 말고 오히려 부부가 상대에게 몸을 맡기라고 가르칩니다. 내 몸이니 내가 결정해서 살거야 그게 아니라는 권면입니다. 그만큼 상대를 중심으로 살도록 하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하고도 여전히 내 것, 내 중심, 이것이 결혼한 가정의 여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부부에게 있어서도 내 부모, 당신 부모가 구분되고 내 형제, 당신 형제로 구분됩니다. 그건 잘못하는 나 중심입니다. 그러면 내 집, 처갓집, 우리 집, 당신네 집, 시댁, 친정집 이게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내가 번 돈, 당신이 번 돈, 이것도 정확하게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 것, 네 것, 구분하고 따지다 보면 내 안에 여우 몇 마리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합니다. 그러면 좋은 부부가 되기가 힘들어 집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라는 여우를 몰아내야 합니다. 나 중심, 나 먼저, 나 만, 이런 나를 하나하나 몰아내어야 그래야 좋은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집중하여야 합니다. 내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이 약점이고 무엇이 그를 힘들게 하는지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고 그래야 부부가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여 집니다. 그리고 서로의 약점을 돕고 지켜주고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를 이해해 줘’ 그러면 서로 간에 연합이 어렵습니다. 좋은 가정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세워주려고 노력하는 데서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연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가정에서 ‘나’라는 여우를 몰아내어야 그 가정이 잘 세워질 것입니다.

2. 또 다른 여우는 열등감의 여우입니다.
사람들의 속 내면에는 크고 작은 열등감들이 다 있습니다. 내게는 하나도 없다, 그러면 그건 빈 말입니다. 다 있습니다. 유형이 다르고 크기가 다를 따름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나니까 처가에서 제게 키가 커서 좋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우리 집 형제들 중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인데 처가에 가니까 크데요, 그런데 지금은 저에게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이 다 반듯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그리고 주위를 리드하며 살고 있어요. 자녀들도 잘하고 신앙도 똑 바르고 그래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하듯이 키가 문제가 아니구요 신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문제는 전혀 열등감을 가질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부족함이 열등감일 수가 있습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열등감으로 작용하여서 경제문제만 나오면 어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학력이 열등감입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가 열등감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약점이란 다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약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크든 적든 약점이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걸 이겨야 하고 그걸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의 배우자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문제들을 잘 극복하도록 응원하고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가정을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어 달 전 대심방을 하다가 회사를 경영하는 한 집사님 회사 사무실에 가서 예배드렸습니다. 그 날 따라 여러분들이 같이 대심방 예배에 참여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해가 질 즈음에 회사 옆의 밭에 하나 둘 몰려가서 냉이를 캔다고 캐는데 이장로님이 냉이를 많이 캤다고 신나게 자랑을 하였는데 그걸 보던 한 여집사님이 “장로님 이건 냉이가 아니예요 못먹는 것이예요” 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 그래요. 나는 폐차만 잘하면 되요” 그러시는 것입니다. 순간 그 말이 무척 우습게 들리면서도 깊이 있게 울렸습니다. “나는 폐차만 잘 하면 되요” 그렇습니다. 나물 모르면 어때요, 냉이인지 풀인지 모르면 어때요, 폐차만 잘하면 되지요, 폐차장 사장인데, 폐차만 잘하면 되지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냉이인지 잡초인지 몰라도 됩니다. 때로는 먹는 것인지 못먹는 것인지 구분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할 그것, 그것만 정말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정답인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쓴뿌리들이 거둬져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이 쓴 뿌리가 있으면 그에게는 자긍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쓴 뿌리는 엄청난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그 쓴뿌리들을 하나하나 몰아내어야 하고 고쳐야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왜 쓴뿌리들이 나오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대방이 인정해 주지 않아서 생겨나는 좌절이요 절망감들입니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받은 소외감, 상처들, 자라면서 받은 자존감의 상처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심리적으로 그대로 남아서 침전물, 즉 찌꺼기가 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내 약점을 걸고 파서 얘기하면 여우가 됩니다. 그런데 내 아내가 그 약점들을 들춰내고 긁으면 그게 상처에 덫이 나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니, 남편이란 자가 이럴 수가 있어?’ ‘아니 아내가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힘들어 하는 그걸 말하고 꼬집어’ 그렇게 되면 여우란 놈이 살짝 고개를 들고 설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집에 여러 마리의 여우들의 활동이 활개를 칩니다. 그래서 가정을 허무는 것입니다. 우리의 포도원, 우리들의 가정을 허무는 그런 여우들을 잡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상대의 약점들을 노리고 파 헤치고 그걸 들춰내고 그렇게 하였다면 진심으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내를 이기는 남편, 그게 뭐가 대수입니까? 내 남편을 이기고 넘는 아내, 그게 무엇이 잘하는 일이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부는 이기고 넘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섬기고 돕는 대상입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여우가 들어 있다면 어서 어서 몰아내십시오. 연기를 펴고 그 안에 숨은 여우들을 다 내 몰고 그리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 가시기 축복합니다.

로마서 15:1절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 부족한 점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마땅히 그리해야 합니다. 남편이 애내 약점을 감당학고 아내는 남편이 가진 약점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는 연합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축복입니다.
 
15: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약점을 감당하면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서로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내 남편의, 내 아내의 약점이 이거야, 그걸 도와 주어야 부부입니다. 그걸 내가 감당해야지, 그래야 합니다. 상대의 기를 살려주고, 용기를 주고 약점을 내가 맡아 주고, 그러면 서로가 기쁘게 되고 그러면 가정이 세워집니다. 다시 한 번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입니다.

3. 또 다른 여우는 어둠을 향하여 가는 여우입니다. 
여우란 동물은 죽은 짐승의 시체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진 동물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사람들의 무덤을 잘 파헤칩니다. 시체를 파서 먹으려 하는 못된 습성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상대방의 결점들을 파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 내고 파 헤치고 공개하고 그리고 그걸 즐기려는 아주 나쁜 마음들입니다. 이게 여우의 습성입니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조심할 것들은 남편은 아내의 친정 즉 처가 이야기를 나쁘게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들은 자기의 친정에 대한 평가절하 하는 이야기를 가장 싫어하고 못 견뎌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결혼하고서는 처가에 대하여선 언제나 긍정적인 표현을 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그걸 나쁘게 표현하고 말하면 그게 제일 문제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결혼한 아내가 시댁에 대하여 역시 좋게 말하고 좋게 대하여야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고 그걸 이야기하고 평하기로 하면 그 가정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결혼을 하고 나면 남편은 처가가 좋아야 하고 아내는 시댁이 좋아져야 제대로 가는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마치 룻의 표현처럼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처럼 되어야 잘하는 고백입니다(룻1:16). 시댁이 좋아져야 하고 처가가 좋아져야 합니다. 모두가 다 내 집이고 내 부모여야 제대로 되는 결혼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한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을 말하면 안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약점을 잡으면 안되고 아내는 남편의 약점을 말하거나 잡으면 안됩니다. ‘당신은 공부를 못해서 그래, 그걸 공부라고 했어,’ ‘당신은 아버지가 없어서 그래,’ ‘어머니가 없어서 그래,’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그래’ 이건 결정적인 약점을 걸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는 서로의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그런 말을 듣고도 그대로 넘어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여우가 썩은 사체를 찾아내려 하듯이 상대방의 약점들을 하나하나 캐 내려고 하면 그런 부부는 결코 온전하게 부부생활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부부는 상대방의 약점에는 눈을 감아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피하고 넘어서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약점이 한 둘이 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걸 덮어 가고 그걸 묻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장점을 말하고 칭찬하면서 가야 그래야 유지됩니다. 이렇게 하는 부부가 그 관계를 잘하는 부부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연애시절에는 두 눈 똑 바로 뜨고 상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나서는 한 눈을 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헛점이 안 보이이고 약점이 가려집니다.


4. 나의 사랑, 일어나서 함께 가자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게 가정입니다. 가정은 일어나서 함께 세워가는 것이고 가꿔가는 공동체입니다. 이 가정을 허무는 여우 그놈을 이제 반드시 잡아 내어야 합니다.

 

바램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 뿐입니다


가정은 부부가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합니다. “함께” 평생을 함께 가는 서로여야 합니다. 결코 따로 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여우가 틈을 탑니다. 저 높은 곳에 같이 가야 할 사람 그대 뿐입니다. 부부가 함께 그대 뿐으로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게 가정입니다. 이게 부부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을 아름답게 키우고 가꾸고 세워가도록 합시다.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맺음 :
가정은 부부가 완전한 연합을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허무는 여우를 잡아내야 그 가정이 잘 서서 갑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가정을 허무는 여우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 ‘자아’라는 여우입니다.
 2. ‘열등감’의 여우입니다.
 3. ‘어둠을 향하여 가는’ 여우입니다. 
 4. 나의 사랑, 일어나서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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