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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Sep 30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부르심을 입은 자들

본문 :

본문 : 롬8:28-37

K-pop 한류의 위세가 우리나라를 넘어 동남아를 넘고 드디어 전 세계에서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룹 BTS, 방탄소년단만 하더라도 미국 빌보드 챠트 1위, 경제적 가치는 2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한류의 최첨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였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뜨거웠습니다. 연설을 한 리더가 RM이라고 알려진 김남준이라는 24세 친구로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를 나온 일산동구출신이라고 합니다. 그의 연설에서 “저는 방탄소년단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그저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말해 주세요.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세요. 저는 한국 서울의 바로 옆에 있는 일산이라는 작은 지역 출신의 아티스트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많은 흠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저 자신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천천히, 그저 조금씩 사랑하려 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그의 연설은 한 마디로 하면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명확하게 하라는 강조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연설한 RM 자기도 비록 초라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고 가꿔나가니까 되더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환경을 보고, 여건을 보면 바로 절망하지만 그러나 그 절망을 넘어 자기를 아끼고 가꿔가다가 보면 반드시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또 좋은 일들이 준비되어 있고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바로 앞에 절망이라는 상황이 오더라도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나가면 이기고 넘어가고 극복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상황을 오히려 절망으로 몰고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바로 자기 확신이요 자기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어린 다윗을 보면 답을 발견합니다. 어린 그가 위대한 말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는 담대한 말로 골리앗을 이깁니다. 그에게는 놀라운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이라는 확신, 그 확신이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승리한 자산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어떤 존재라고 여기고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자기 확신, 이것이 바로 서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합니다. 확신이 없어도 무슨 확신을 가지고 사느냐, 어떤 생각에 잡혀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발걸음이 달라지고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확신에 차 있느냐 확신이 없느냐는 인생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입니다. 이렇게 확신은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겐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 어떤 확신들이 여러분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확신이 신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질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삶의 질도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갖는 믿음의 핵심교리를 가장 잘 제시하고 있는 책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반지로 비유한다면 로마서는 반지의 보석에 해당하고 그 중의 8장은 보석의 중심부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만큼 로마서는 중요하고 또 그 중에서도 8장은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며 우리가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하면 본문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여기에 방점이 있습니다. 자기 인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며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 즉 구원받은 자입니다. 정확합니다. 확실합니다. 이게 내 안에 확실하게 인식되어 있고 믿어지고 있다면 그러면 다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자’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1.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본문 본 절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알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얼 알아요? 무얼 알고 있어요? 여러분은 무얼 알고 저는 무얼 알고 있고 또 우리 공동체는 무얼 알고 있어요? 그게 무엇이예요? 그 내용입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연속 절이 이에 대하여 해석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입니다. 이걸 우리가 알아요?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서 선, 아름다움을 이루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다 합하여서 궁극적으로는 다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보장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은, 어떤 불리하고 어떤 어려운 일들이 그 앞에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다 다스리고 운행하시고 이끄시는 우리 하나님이 다 믹스하셔서 섞어서 마지막에는 선하게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 주신다는 보장입니다. 아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며 선하신 왕입니다(옘10:10).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일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마침내는 아름답게, 선하게, 좋은 길로 우리에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에게 어떤 일들이 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재료로 하여서 가장 좋은 것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록 지금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도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마침내는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름답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 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제 확실하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를 불러 구원하여 천국으로 가게 하여 주시는 우리 하나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그렇게 확실히 믿고 아멘으로 살아가시기 축복합니다.

 

2.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오늘의 말씀은 “그런즉”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즉은 앞의 상황과 연결되어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앞의 상황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확인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아무리 우리가 약하다고 할지라도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입니다. 못한다는 확신입니다. 불가능하다는 확신입니다. 엄청난 은혜요 말로 할 수가 다 없는 축복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순간 순간 엿보고 노려보지만 그러나 결코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왜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마귀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 내 곁에서 나를 도우십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세상에서 마귀와 싸우고 전투하는 영적 전투장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범죄하고 때로는 흐트러지는데도 그걸 아시고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것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쓰러질 때에 붙잡아 주시고 부족하여 주님과 저 멀리 떨어져 갈 때도 우리 곁에서 우리를 세워주셔서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시고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면서 기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이 정말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고 고생합니다. 그러나 그 온갖 어려움에서도 이기고 극복하여 마침내는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욥의 믿음을 보시고 욥의 중심 마음을 보시고 욥을 사랑하시고 끝내는 더 엄청난 복으로 그를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합니다(욥42:11). 그랬더니 욥기서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정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정말입니다.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이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이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마치 보험의 계약서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듯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이러한 항목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적자가 없다는 확신입니다. 아멘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까요. 그래서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가 없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는 자기 확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입니다. 다윗처럼 전장에 나갈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물맷돌을 준비하면 됩니다. 그 물맷돌, 하나님이 주시는 물맷돌, 그게 필요합니다. 골리앗에게로 나갔던 소년 다윗은 그 확신과 그 물맷돌을 갖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힘입니다. 이게 구원받은 사람들의 능력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아멘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다가와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면 대적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해할 수 없는 확신, 정말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러한 확신 그 확신이 바로 구원받은 우리 안에 또 있습니다.

 

32-33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다면 그보다 못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반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나님께 요구하십니까?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그 무엇을 아끼시겠느냐는 반문입니다. 구하면 모든 것들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은 우리인데 그 나머지 우리가 요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은 아깝게 생각하시지 아니하시고 다 주실 수 있는 그런 분이십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이러한 확고한 보장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감격입니다. 감탄입니다.

 

3. “누가 능히 정죄하리요?”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감히 우리를 송사하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시고 구원하여 주신 이들은 아무도 송사할 수도 없고 아무도 정죄할 수도 없고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니까요, 그러므로 누구도 그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송사하지도 못합니다. 이게 구원받은 자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재판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에 한 가지는 누가 변론을 맡느냐 하는 것입니다. 변호사에 따라서 재판의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변호사가 필요하고 그래서 전직 유명한 관리를 고액의 보수를 주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상황을 아주 잘 끌어서 유리하게 만드는 기술자들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변호해 주시면 다 들어 주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가 능히 우리를 송사할 수 있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송사하고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한다는 말입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도 그럴 수가 없다는 확신입니다. 비록 내가 부족하여도, 내가 모자라도 나를 다 아시고 성령님은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마침내는 승리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다시 33절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되 간구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누가 능히 우리를 정죄해요?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해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7:25절은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살아서 간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강력하게 옹호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감히 우리를 송사하리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그분의 변론을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이 놀라운 은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너를 도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처럼 절망하면 안됩니다. 더 이상 우리 스스로를 스스로 비하하거나 우리 스스로를 자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학하거나 비하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도우시는 예수님을 비하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이신 그 주님, 이 땅의 모든 무릎이 주라고 고백하며 높이는 그 예수 그리스도, 그분, 그분이 바로 나의 편이시며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나는 이토록 하나님의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4.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구원받은 자에게는 누가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내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려는 칼도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확신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 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믿음에 선 자들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부족하고 모자라고 연약하여 불완전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완전하여서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완전하신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를 놓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겐 이러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리오?”라는 반문입니다. 못 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고요.

 

요10:28-29절을 보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한쪽에선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고 다른 한 쪽에선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자가 없으며 송사하지 못하고 대적하지 못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공개적인 선언입니다. 그럴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라도 있으면 나와 보라는 공개적인 단언입니다.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합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예배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1:9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확실하게 밝힙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렇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가는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성령님이십니다. 오늘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입니다.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넉넉히 천국 가게 하십니다. 누가? 성령님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러한 존재입니다. 사망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즉 죽는다 해도 우리를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내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못하고 현재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못하고 장래에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며 다른 아무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지 못한다는 선언입니다. 36절의 말씀처럼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습니까? 그러나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넉넉히 천국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총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서시길 원하십니까?

 

최후의 승리자는 바로 우리입니다. 어떤 우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그런 우리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우리가 이기되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무슨 힘으로 이것이 가능합니까?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입니다. 우리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이기되 넉넉히 이깁니다. 적의 공격이 아무리 많고 능해도 우리가 이겨서 우리가 정복자가 되고 우리가 승리자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개선장군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진 믿음에 서 있어야 합니다.

 

맺음:
저는 지난 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아들이 오후 4에 행신역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는데 가니 미리 예매한 열차표가 있어서 유유히 차 타고 부산 갔습니다. 2일 후에 다시 부산역에 가니까 ktx 열차가 우리를 태우고 대구까지 넉넉히 데려다 주었습니다. 다시 오후에 동대구역에 가니까 미리 예매한 차표가 우리를 태우고 일산까지 데려다 주어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미리 예매를 했더니 모든 게 하나도 차질없이 하나하나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주고 쾌적하게 여행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미리 예매한 덕분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끌고 보호하시고 넉넉히 승리하도록 보장하여 주십니다. 할렐루야! 무엇이 보장되어 있습니까?

1.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 “누가 능히 정죄하리요?”
4.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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