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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Oct 07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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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본문 :
본문 : 눅13:10-17
지난 주 수요일 개천절 날에 성도님들과 국내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의 재암리교회와 서울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공원묘원을 다녀왔습니다. 재암리교회는 일제 때인 1919년 3.1운동의 불길에 경기도 수원에 번져오자 재암리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일제가 주민들을 재암리교회당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서 23명의 주민들이 죽은 순교지와 독립운동이 함께 서린 정말 기독교 순교의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양화진에는 이 나라의 선교와 개방과 개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외국인분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민족혼을 일깨웠던 개화기의 선교사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6.25라는 남북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6.25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56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고 합니다. 참전 16개국으로 우리를 도왔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당시 국민소득이 3000달러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가난하고 못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 두고두고 내려온 우리 말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고 목구멍이 포도청, 입에 풀칠 한다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게 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다가 마침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서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고 목이 터져라 불렀던 기억도 납니다. 먹고사는 일이 지상의 과제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하나님이 보호하사 이 민족의 살 길이 열렸는데 1960년대 초에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파견이 실시되어 외화를 벌어 오는 길이 열렸고 월남 전쟁으로 우리나라 참전이 또 외화벌이 기회였고 특히 본격적인 외화벌이는 중동의 개발로 인하여 인력수출이 되면서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어서 우리에게도 이 묵은 과제였던 먹고 사는 일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극복하여 왔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회복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오늘의 우리 민족의 지상의 과제, 묵은 숙제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남북이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일 것입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역시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이 숙제를 풀어가는 것 같아서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 곧 상상도 못할 남북간의 평화무드가 조성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남은 숙제는 동서화합, 이념간의 갈등의 조화 등일 것인데 함께 하나하나 풀어가고 해결해 가야 할 묵은 숙제요 과제들입니다. 여러분들과 제게 그리고 우리 민족 앞에 놓여진 묵은 문제 문제들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골든벨이라는 장학퀴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멘트가 귀에 남습니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선정된 100명을 대상으로 50문제를 풀면서 그 제시된 문제를 다 풀어서 더 이상 문제가 없이 내가 남으면 골든벨을 울리는 것이고 제시된 50문제를 다 풀지 못하여 문제가 남으면 골든벨을 울리지 못하고 탈락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과연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의 치열한 싸움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의 싸움입니다.
민족뿐만 아니라 개개인들에게도 이러한 문제는 있고 때로는 캄캄한 현실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개개인에 따라서 느낌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내 문제를 내가 다 이겨서 내가 살아남느냐 아니면 내가 문제 앞에서 쓰러져서 산적한 문제들만 남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문제가 남는 인생을 살아갑니까? 아니면 문제를 다 이겨서 내가 살아남는 인생들입니까? 이것이 우리 인생이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1. 오직 은혜
10,11절,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18년 간이나 꼬부라진 허리로 고생하며 살아가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회당에 누워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 주님이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그 여인을 발견하셨습니다. 여인이 어떻게 그 곳에 오게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하여튼 그 여인 앞에 우리 주님이 다가가셨습니다. 열심히 사람들을 가르치시던 우리 주님은 그 여인을 보고 긍휼히 여기시며 안수하시고는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셨고 그 결과 여인은 곧 허리를 펴고 일어나 정상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18년의 아픔에서 해방되어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너무너무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말이 그렇지 18년이나 그렇게 되어 꼬부라져 있었는데 주께서 고쳐 주셨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감격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격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18년이나 미결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였던 그 무엇이 무엇입니까? 그게 죄의 문제이든, 건강의 문제이든, 사업이든, 인간관계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만약에 있다면 이 시간 주님께서 다가가 해결하여 주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이 관여하셔서 고치시고 해결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전15:10절, “나의 나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그 여인을 그렇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고쳐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맞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입니다. 이런 고백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 축복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삶에서 이런 은혜가 넘친다, 그것은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간증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입니다.
그런데 회당을 관리하던 회당장이 그 현장을 보면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분을 내며 시비합니다. “일할 날이 엿새나 있는데 왜 하필 안식일에 이렇게 사람을 고치느냐고? 안식일에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불만하였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 회당장은 박수칠 자리에서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해야 할 자리에서 속상해 하는 사람입니다. 엄청나게 기뻐해야 할 자리에서 불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감사하여야 할 자리에서 힐난하면 안 됩니다. 축제해야 할 자리에서 재를 뿌리면 안됩니다. 영광을 돌려야할 자리에서 투덜거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회당장은 왜 이런 안식일에 그 일을 하였느냐고 예수님께 이유를 물으며 따지고 덤빕니다. 은혜가 없으면 그렇습니다.
문제는 은혜입니다. 은혜가 있으면 다 수용합니다. 은혜가 있으면 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은혜가 있으면 다 수용이 되고 다 은혜가 되고 다 아멘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은혜가 없으면 조그만 것들도 이상하게 꼬여지고 불만이 되고 속이 상하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따져야 하고 혼 내야 하고 지적해야 하고 터트려야 합니다. 정말 별 일이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자주자주 눈에 걸리고 귀에 걸리고 그리고 시험에 들고 그럽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은혜가 없는 탓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은혜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신앙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은혜가 넘치면 다 이해되고 해결이 됩니다.
어떻게 하여 이 여인이 고침을 받았습니까? 가만히 보세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안식일에 그 회당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그 자리에서, 그 시간에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18년 간이나 꼬부라져 있었던 그 무시무시한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여인이 주님을 찾아 다녔다거나 주님이 여인을 찾아 나섰다거나 가서 그를 데려오라고 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을 나누는 장소인 회당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삶, 영적인 결핍, 심령의 상처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대로 탄식하면 앉아 버린 사람이 아니라 그런 몸, 그토록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갈망하며 거룩한 장소에 왔다가 주님을 만났고 만났기에 고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만났고 그래서 은총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은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묶은 문제가 해결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문제가 풀려집니까?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문제 속에서도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회당까지 찾아 나왔고 거기서 주님을 만나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고전15:10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입니다. 은혜가 모든 것을 풀어줍니다. 정말 은혜 아니면 살아 갈 수가 없네 호흡마져도 다 주의 것이니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구원 받으며 /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주시하시는 주님
12절,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회당에 오신 예수님은 18년 질병에서 꼬부라져서 일어서지도, 걸어가지도 못하던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유심히, 유심히 주시하여 보셨습니다. 이상하게 그 여인의 그 누워있는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이게 복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뜨인 사람이 복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서 들어가고 나가던 사람들을 보시던 예수님은 한 랩돈 곧 두 고드란트를 헌금하던 여인을 보시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물끄러미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눈에 들어 가면 일이 시작됩니다. 칭찬하시든지, 고치시든지 사용하시든지 하십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나고 그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게 노아고, 그게 아브라함이고, 그게 모세이고, 그게 다윗입니다. 그게 여러분들이시고 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온 사람, 예수님이 주시하여 보시는 그들이 정말 복입니다.
여인을 보시던 주님은 그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안수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인류를 저주에서, 멸망에서,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주시고, 건지시기 위하여 임마누엘로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 문제를 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아무리 힘을 모아도 사람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내 문제를 내 자녀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고, 내 부모에게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누구도 해결하여 줄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많고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마음과 달리 그렇게 한계를 가진 것이 인간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살펴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건지시는 손입니다. 우리를 일으키시는 손입니다. 모든 저주와 불행과 실패의 메임에서 풀어주시는 구원의 손이십니다. 38년 된 병자도 예수님이 일으키셨고, 열두 해를 혈루증에 걸린 여인도 건져 주셨고, 430년 동안 애굽의 바로의 쇠사슬에 있는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보시고 때가 되어 건져 주셨고, 요셉을 감옥에서, 욥을 온갖 고통에서, 모르드개를 억울함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세리 마태를 죄에서,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을 죄악과 불행에서 건지시고, 막달라 마리아를 일곱 귀신에게서 건져내신, 예수님은 지금도 모든 인류를 누구든지 하나도 남김없이 개인이나 국가나 가정을 건지기를 원하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의 질병은 18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누워서 지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18년 동안이나 누워서 지내야 했다면 어쩌면 거의 포기하고 불치의 병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만큼 긴 시간입니다. 어쩌면 여인은 날마다 한숨이요, 날마다 탄식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그녀에게는 어두운 미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유란 생각도 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평안이란 사치스러운 꿈도 꾸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평생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우리 주님은 주시하여 보시고 다가가셔서 안수하여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절망하고 있을 우리들을 유심히 지켜보십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에 빠져 버리지 말고 눈을 들어서 우리를 도우시려는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을 도우시려는 하나님께로 향하기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시되 구원하여 주시려고, 손잡아 주시려고 하십니다. 일으켜 주시려고 보고 계십니다. 그게 임마누엘입니다. 그게 성육신입니다. 우리가 혼자서 못 일어난다, 그러나 주님이 다가오셔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때때로 뒤돌아 보면 여전히 계신 주님이십니다.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라고 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살피시고 도우시려고 주시하고 계십니다.
힘들고 지치고 낙망하고 그런 환경에서 고생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졌고 왜 내가 이런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합니까? 라고 원망하고 계시는 분들은 계시지 않습니까? 찬양처럼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어쩌다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졌느냐고, 아니 이 고난이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느냐라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람 사는 데는 언제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왜 이렇게 힘들고 문제의 끝이 보이지 아니하느냐 라고 원망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보세요.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시고는 그대로 지나치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동정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히43:15). 우리를 보시고 동정하시고 도우시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시고 때로는 같이 아파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아 힘들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주님도 함께 내 이 현장을 유의하여 보시고 계신다, 그러면서 같이 아파하신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주님이기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바냐 3: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계시면서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그분이 여호와가 우리의 가운데에 계시다니, 감격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니 감격입니다. 그분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다니 정말 감격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다니 정말 기적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할렐루야!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우리를 가운데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니다.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그런 주님이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선언하시고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고생하던 여인은 허리를 쭉 펴고 일어납니다.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모두 이렇게 우리 주님의 만져주심이 필요합니다. 안수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심이 필요합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할렐루야! 이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힘 드십니까? 나를 주시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이 나를 주시하고 바라보시고 계심을 굳게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주시하시는 주님, 그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 묵은 문제의 해결자 주님
15,16절,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의 말씀은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18년 간이나 고생하였는데 그걸 풀어 줘야지입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3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인생에서 무언가에 묶여서 고생하도록 만들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고생하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근심하며 살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해결되고, 아픔은 나아지고, 묶임은 풀려지고 이게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치신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여서 여인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고통을 당하여서 고생하여도 아무도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하였는데 우리 주님을 만나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능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37). 예수님은 나의 힘이요 능력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권력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입ㅂ하셔야 제대로 풀리고 해결이 되고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기차에 올라타고 가는데 훌륭하게 보이는 신사 한 분이 옆에 앉으셨습니다. 신사가 그 옆에 있는 청년을 보니 얼굴이 긴장되어 있고, 새까맣고 불안해서 모양이 정말 너무 추했습니다. 그래서 한참 가다가 신사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아, 불안한 게 뭐 있나?” 말을 안 합니다. “같이 가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봐.” “아이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한다고 되나요?” “괜찮아, 이야기 한번 해봐.” 그러니까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는 회사에 근무를 하다가 어머니가 너무 편찮으셔서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어찌 잘못하여 회사 공금에 손을 좀 댔대요.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자기 위에 있는 과장이 알고 이걸 이용해서 하수인으로 쓰고, 매수해서 계속 부려먹더니만, 하루는 회사 비밀문서를, 그 정보를 빼 가지고 남의 회사에 넘겨주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이 과장이 자기를 데리고 밤에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들어가서 경비원을 만나 가지고 경비원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그만 그 과장이 경비원을 때려서 경비원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과장은 붙잡히고 자기는 도망을 쳤는데 이 붙잡힌 과장이 모든 죄를 자기한테 다 전가했다는 거예요. 자기는 하나도 안 그랬는데, 그 놈이 다 그랬다는데 지금 와서 오리발만 내민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수배를 당했는데 지금 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들어 보더니만 “그러면 자수를 해라. 법정에 가서 그대로 진실하게 고백을 하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저는 변호사도 없고 돈도 없고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완전히 덮어썼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니야, 괜찮아 그럴 때일수록 지금 그런 식으로 가지 말고 자수하는 것이 훨씬 더 이로우니까 가서 자수해” 그래서 청년이 용기를 내어서 경찰에 가서 자수를 하고 구속이 되어서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정에 갔습니다. 재판을 맡은 판사가 ‘피고인은 머리를 들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에 그는 머리를 들어보니, 세상에, 기차에 같이 탔던 그 신사 분이 거기 판사석에 앉아 있더랍니다. 담당판사였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더니 ‘그대는 무죄’ 하면서 탕 탕 탕 해결되어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 앞에 나의 문제를 내놓고 아뢰면 주님의 도우심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고 교회에 나옵니까? 주님에게 아뢰고 맡기려고 나옵니다. 자기가 자기 문제 해결할 것 같으면 뭐 하러 여기에 나오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복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 상처받은 자,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이 메어있는 삶의 고통을 다 풀어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하십니다(마11:28-30). 이렇게 우리 주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이요, 복주시기 위함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해결자 주님, 그 주님은 온전히 믿고 따르시기 축복합니다.
4.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17)
17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회당장은 이 사실에 대하여 비난하고 야단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습니다. 문제는 여인이 고치고 해결함 받았는데 영광은 모두가 돌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꼬부라져서 살아가는 걸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멋지게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하나님께 나아갔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날개를 주셨습니까? 저는 무거워서 도무지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도무지 걸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너무 짐이 되고 피곤합니다. 모두가 다 저보다 빠릅니다. 먹이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날개를 가지고 걸어가 보니 쥐도 못 따라갑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가지고 걸어가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그런 말을 했답니다. “얘야, 너는 걸어가도록 만든 피조물이 아니다. 너는 그 날개로 날아서 하늘을 날고 하늘에서 먹이를 찾으라고 내가 너를 만든 것이란다. 너는 날개를 가지고 땅을 걸어 다니니 짐이 되는 거란다. 날개를 가지고 걸어 다니면 먹이를 못 찾는다. 십 미터 앞도 못 본다. 그러나 하늘을 날아 봐라.” 그래서 독수리가 돌아와서 날개를 팍팍 치고 올라갔습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하늘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날면서 먹이를 보니 먹을 것이 천지였습니다. 먹이가 많았습니다. 자기가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못할 때에 그의 인생은 피곤한 인생이요 원망, 불평이 많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적어도 동물과 똑같은 피조물은 아닙니다. 땅에서 힘으로 사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경외하여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 인간의 먹을 것이 우주에 가득하고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도 하늘을 날아서 찾는 행복이어야 되고, 건강도 위를 바라보면서 올라가는 건강이어야 되고, 사랑도 축복도 발전도 우리는 위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사야 40:28-31절에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독수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여호와는 힘과 지혜와 능력이 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날개를 쭉 펴고 감사의 날개를 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날개를 펴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 있는 백성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11장에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신기하게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일어나 나왔지만 베로 수족이 묶인 채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풀어서 다니게 하라.” 주님은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셨으며 그를 새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의 진정한 해결자는 주님이십니다. 예수 때문에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받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간증들이 차고 차는 사람, 넘치고 넘치는 간증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불만하고 불평하여도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맺음: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에서 나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소생하며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1. 오직 은혜입니다
2. 주시하시는 주님
3. 묵은 문제의 해결자 주님
4.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