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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Jun 24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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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앞에서 세우면 됩니다
본문 :
본문: 행 4:18-21
1991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부부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75세의 남편, 던켄과 68세의 아내, 체이니 부부는 자녀들의 노력 끝에 죽은 지 1개월 반 뒤인 5월 1일에야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있던 승용차 안에는 기름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차 안에서 체이니 부인이 18일 동안 자신의 심경을 적어놓은 노트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노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1991년 3월 1일 금요일 오전 6시 30분, 이 아침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설경에 묻혀 있다. 길을 잘못 들어 눈 속에 묻히는 바람에 어젯밤 여섯 시 경부터 눈 속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밤에도 눈이 많이 내려 한 자 높이 정도의 눈이 더 쌓인 채 우리를 덮고 있다. 창문을 열 수도 없다.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글을 쓰려니 글씨가 엉망이다. 이해 해다오, 아이들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구나. 우리는 너희가 삶을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가족의 우애를 절대로 저버리지 말어 다오! 그리고, 우리가 손자 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다오!
어젯밤에 우리는 찬송과 성경읽기를 시작하면서, 잠깐씩 눈을 붙이며 지새웠다. 2시간마다 5분씩 차 엔진을 켜고 히터를 틀어 몸을 녹였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오늘이 3일째이다! 아직 배고픔은 없다. 글로브 박스에서 작은 젤리 봉지 두개와 껌 하나를 찾아냈다. 나중을 위해 이것들을 잘 두었다. 창문을 열고 눈을 집어 먹고 있다. 직장에 결근해야 하는 문제로 너희 아빠가 조금 걱정하고 있다. 3월 6일 수요일, 오늘 밤이 6일째의 밤이 된다. 차에 기름이 다 떨어져서 더 이상 히터를 켤 수가 없다. 3월 12일, 오늘이 눈 속에 갖힌지 12일이 되었다! 한 모금의 물이, 한 입의 음식....이렇게 귀한 줄을 다시는 잊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몸이 약해져 옴을 느낀다. 우리는 너희 모두를 진정 사랑했으며 지금도 너희들을 사랑한다 !
3월 18일, 18일째 됨, 너희 아빠가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주님 곁으로 가셨다. 모든 것이 몹시 평온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조차 몰랐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주님께 감사하다’는 것이다. 나도 곧 그의 뒤를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우 많은데.... 이제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이 잘 안 보인다. 잘들 있거라! 너희 모두를 정말 사랑한다!
결국, 이들 부부는 눈 덮힌 차 안에서, 이렇게 자기들의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 만에 자녀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극한 상황에서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세우면서 처절하게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일생이었습니다. 이렇게 피조물인 인간들이란, 누구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세우며 살다가 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우면 됩니다.
1. 하나님은 나의 근본이십니다.
창1:1,2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지금도 이끌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심을 잘 가르쳐 줍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주요 조물주이십니다. 나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이 세상에 내 보내신 분이시며 앞으로는 나를 데려가실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걸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삶에서 직접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근본이시오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하나님 앞에 세울 존재들입니다.
사43:1-3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41: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렘:1:5절,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시요 이 모든 것들을 다 지으신 그 조물주라고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 역사의 시작이시며 이 역사의 마지막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시작이며 처음이요 근원이십니다. 동시에 나의 시작이며 나를 이 땅에 내어 보내신 분이십니다. 내가 태어날 당시, 나를 조성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그렇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우리 아버지라고 믿고 그 분 앞에 우리를 세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6.25 전쟁 당시 추운 12월 겨울에 태어났습니다. 추운 겨울에 태어나서 지금도 추위가 싫은가 봅니다. 피난 갔다가 돌아오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지금도 제 고향에는 제가 태어난 그 집이 있는데 그 집의 대청마루에는 단기 4284년 신묘년 2월 몇 일에 세우다, 라고 써져 있습니다. 저는 제가 태어날 그 당시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그걸 아실 제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그 당시의 상황이 없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누가 아느냐? 사람들은 다 몰라도 우리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마치 6.25때 이 땅에 온 종군 군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 나라의 형편을 찍어서 남긴 것처럼 그때를 하나님은 다 아시고 다 이끌어 오셨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그런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저의 근본이십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모태에 짓기 전에 우리를 알았고 우리가 어머니의 배에서 나오기 전에 우리를 성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90:2절,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렘10:16절,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사44:1,2절,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를 예루살렘 공의회에 붙잡혔습니다. 그러자 공의회는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이후로 결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경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로 난 믿음을 가진 그들입니다. 그들의 단호한 고백은 그들을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세웠습니다.
행4:11,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들을 반듯하게 세운 사람들입니다. 결과로 누구도 이들의 가는 그 길을 못 가게 하거나 누구도 이들의 일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로 난 믿음’을 가진 자들, 주 예수 밖에는 더 이상 구원자가 없다고 믿는 자들, 그리고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세운 자들, 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그 제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19,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를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세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2.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사람입니다.
19,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제자들을 구속한 예루살렘 공의회의는 그들에 대하여 재판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재판 결과는 더 이상 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서 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를 전해 들은 제자들이 하는 대답입니다. 무섭도록 섬뜩한 반응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높이며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보고 들은 것이 있고 그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은 붙잡혀서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옥에서도, 풀려나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말로도 아멘, 행동으로도 아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죽고 사는 것이 바로 그들의 손에 있는데도 용기있게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십니까? 냉철하게 판단하세요, 어느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옳다고 판단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런데 이 시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또 생각을 해 보니까 이게 아닌 것 같아, 그런 것이 있다면 이제 과감하게 돌아서세요. 가다가 가던 그 길에서 돌아 서세요.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유월절을 지키려 와서 예루살렘에 왔다 집으로 가다가 하루 길을 갔는데 그만 예수가 곁에 없어요. 그때 그들은 열심히 가던 그 길을 뒤돌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고 성전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났습니다. 돌아 와서 만난 것입니다. 다시 와서 만난 것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야 합니다. 이게 신앙인의 신앙자세입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가지만 그러나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가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아무리 봐도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면 돌아서야 합니다. 내 가는 이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대로 돌아서고 바꾸어 가는 것이 이게 믿음입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교회적이지 않다, 그러면 주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야 제대로 가고 돌아서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대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한반도 문제가 전 세계역사의 중심에 섰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였고 북미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엄청난 역사를 이끌어 가고 운전하고 있습니까? 우리 대통령입니까? 북한의 지도자입니까? 아니면 미국의 대통령입니까? 분명한 사실은 그 역사를 이끌고 계시는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한 동포들의 억울한 죽음과 한숨소리를 듣고 살피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때가 되었다라고 판단하시고 그리고 이 일을 계획하셨고 진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운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는 신앙인들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우리가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설 때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얼마나 내 뜻대로 살다가 왔느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38). 그리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려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노력하셨습니다. 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위하여 온 삶을 살아가신 분이십니다(요9:4).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네 목표, 내 뜻, 그걸 정해 놓고 그걸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건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내 뜻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그래서 성경 읽고 그래서 묵상하며 그 뜻을 발견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3. 하나님께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20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결국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그 앞에 제가 설 사람들입니다. 이게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었고 그들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두렵지 아니하였고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설 날을 기다리고 그에 대하여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이 순교자 스데반의 고백입니다.
행7:56절,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제자들은 눈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위를 의식하고 사람들을 의식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시선에 관심하면서 맞춰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내 주위, 내 위치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사람들의 눈을 의식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서 판단하고 그 평가에 따라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다가 간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생을 보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12제자 들 중에 빌립은 북아프리카에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였고, 마태는 예루살렘에서 참수 당하였으며, 안드레와 바돌로매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달렸고,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창자가 관통하여 죽었고, 시몬은 영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였으며, 수제자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로 강제소환을 당하여 끓는 가마에 던져지는 형을 언도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은 건졌다가 결국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여 지내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설 날을 기다리며 살다가 간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롬14:10,11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서서 선악간에 심판받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우리 자신들의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앞에 설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그렇습니다.
러시아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축구하면 유명한 크리스챤 이영표 선수가 있는 데 그를 전도했던, ‘무속인 출신’으로 대한민국 축구선교회 대표 박에녹 목사님이란 분이 최근에「예수님, 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귀신으로부터 내림굿까지 받은 무속인이었다고 합니다. 형처럼 지내던 무속인 법사가 죽어가며 “동생도 예수 믿게!”라던 말을 듣고 번민의 나날을 보내다가 힘들고 괴로웠던 10여 년의 무속인 삶을 청산하기로 결심하고 ‘귀신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를 선택해야 한 번에 끝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께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고 그리고는 회심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속으로는 무섭고 두렵고 떨리더랍니다. 한 번씩 귀신이 다가왔지만, 그럭저럭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해 갔고, 1992년 12월 27일 하용조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서 마침내 ‘귀신의 종’에서 ‘예수의 종’이 되었고 지금은 축구 선수들을 양육하는 대한민국축구선교회 대표목사님이 되어서 ‘기독교와 무속의 차이’,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도한 사람이 이영표선수이고, 지금 월드컵 선수인 기성용, 김신욱 선수와도 성경공부를 함께 하며 기도해 준다고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던지고 하늘나라 하나님 앞에 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7:9,10,12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그 날을 늘 기다리며 내 등불 밝게 켰다가 ... 주께서 오라 하시면 이 영혼 들어 가겠네입니다.
맺음 :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 앞길에 어떤 어려운 일들이 다가와도, 정말 어떤 어려운 상황들이 다가와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은 상황을 이길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자세가 분명하면 승리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엄청난 권력이라는 세속의 힘이 그들을 억눌렀습니다. 위기 앞에 봉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하나님 앞에 세웠고 그리고 극복하였고 그리고 이겨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황논리에 빠질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생명싸개 안에 감싸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그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우며 이긴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면 우리도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하나님과의 반듯한 관계로 살아가시기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은 나의 근본이십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1912년 4월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는 데 악단들이 연주하던 그 찬양은 찬송가 336장입니다. 그들은 그 찬양을 연주하면서 조용히 차가운 바다에 묻혀갔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에 열중한 사람들입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