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경공부-이미지-2.jpg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말씀과 찬양.png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Dec 03 2017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

본문 :

본문: 행10:1~4

인생을 여기까지 살다가 보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고 기억에서 그대로 지나버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게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다는 게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들을 잔득 칭찬합니다. 또 루포의 아내를 기억하며 칭찬하고 안드로니고 유니아 등 여러 사람들을 기억하고 칭찬합니다.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는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를 특별히 조심해라 그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다, 데마는 세상으로 가버렸다라고 그들에 대한 경고를 말합니다. 아마도 바울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들 중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으로 구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의 기억에 좋게 남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된다면 그건 더없이 축복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이 기억되고 기억에서 잘 자리하고 있습니까?

누구에게 기억이 되느냐, 어떤 사람의 기억으로 남느냐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일반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들도 복이지만 선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들, 그가 복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선한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면 잘못하다가는 엄청난 비극의 단초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기억에 남느냐의 문제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하나님께 기억이 되는 사람, 그가 복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시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으로 가이샤랴에 주둔하였던 로마부대의 장교였습니다. 가이샤라는 이스라엘의 갈멜산 남쪽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로 가이샤의 고을이란 의미의 지명으로 로마통치시절의 로마행정중심지였으며 총독의 거주지였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고서는 팔레스틴의 수도이기도 하였던 지역입니다. 거기에 약 1,000여 명의 로마군인들이 주둔하여 있었는데 그 중의 100명 정도를 관리하던 장교가 바로 이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 이 고넬료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들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매우 귀하고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성령으로 고넬료에게 다가가셔서 그렇게 표현하시면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용하셔서 이방인에게 세례를 주게 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전달되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넬료를 아주 특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게 엄청난 은혜요 놀라운 축복입니다. 더구나 외국인 군인이 하나님께 이렇게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갖게 합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의 눈에 뜨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대하여,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 즉 3중의 바른 관계,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과의 바른 관계, 제대로 잘된 관계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이 세가지 방면의 관계, 이것을 갖추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3관계를 잘 가지시고 바르게 세워가시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기억에 되고 하나님의 눈에 확 들어가고 그리고 바르게 사용되고 쓰임 받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고넬료가 왜 하나님께 기억되었을까? 그의 어떤 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기억이 되고 쓰임받는 은혜를 입게 하였을까를 살피기로 합니다.

1, 경건한 사람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제대로 된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인물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우리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억되는 존재이며 도대체 나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건한 사람입니다. 경견이 재ㅔ대로 서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넬료, 그는 이 경건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이 경건이 잘 세워져서 반듯하게 살아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에 확 뜨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경건,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경건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선지자들을 그렇게 찾으셨고 제자들을 그렇게 찾으신 하나님이시오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넬료는 이렇게 무척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온 집안 가족들과 더불어 함께 하나님을 섬긴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하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너무나 대단한 일입니다. 경건함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이란 헬라어로 eulabeis란 말로 이는 eu의 ‘잘’, ‘좋다’란 접두어이며 lambano의 ‘받는다’라는 합성어입니다. 즉 ‘경건’이란 ‘잘 받아들이는 사람’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은혜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에 각 지역의 15개국에서 흩어져 살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베드로가 그들에게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자 이 사람들이 경건하여서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아멘하여서 초대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라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합니다(행2:5). 이렇게 경건하다란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아멘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전부 유대교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란 당시로는 신생종교요 신흥종교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아멘하여서 받으며 바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가슴을 찢으며 아멘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는 전혀 듣지도 받지도 못하였던 기독교 복음, 십자가 복음을 들었는데 그대로 아멘하며 수용하고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이건 우리가 못 듣던 말인데, 라고 거부하고 뒤돌아 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의 새로운 설교말씀을 듣고 그대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용성이 큰 사람들,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의 가르치심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고 아멘하는 사람들, 수용성이 큰 사람들, 그들이 경건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야 군대의 백부장 군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군인들이 믿음을 갖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점령군으로 와 있는 군대장교가 이방종교인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이 되기가 정말 어렵고 힘들고 잘 못하면 기 막히는 곤궁에 처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일입니다. 점령군 장교라면 당연히 그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때로는 착취하고 약탈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요 특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교가 경건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수용하고 잘 받아들인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고넬료는 성경이 “그가 경건하여”라고 그렇게 기록할 정도로 잘 받아들였고 그리고 삶에 적용하였던 경건한 군인이었던 것입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섬기되 혼자만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자기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려고 애를 쓴 신앙인이었을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온 가족들까지도 다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이었으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행위로 나타난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잘 믿고 자녀들도 잘 믿고 반듯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그렇게 온 가족들이 다 잘 믿는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의 눈에 잘 뜨였던 것입니다. 이게 경건함입니다. 이렇게 경건함이라 수용성이 좋은 믿음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멘 잘하고 말씀을 잘 받아들이며 우리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세우고 바르게 세워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건하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구별되다’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구별된 생각과 구별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3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하나님은 그런 경건한 고넬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대로 구별된 사람, 위로 하나님 앞에 아멘 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 수용성이 넉넉한 사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시고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경건하여 하나님의 칭찬받는 성도들, 하나님의 눈에 잘 뜨이는 성도, 하나님이 잘 기억하시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2. 항상 기도하는 사람
2절,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성도의 두번째 조건은 자기를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생을 기도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어떤 일보다 기도를 귀하게 여기며 그 자라에 앉고 서고 기도의 인물로 만들어 가는 사람, 그게 중요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러다가 5절,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기도가 상달되어서 하나님이 기억하심 바가 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항상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을 기억하시고 찾으십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성도가 자기 자신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워간다는 말입니다. 위로 하나님께로는 경건을 세우는 사람이요 자기의 내면으로는 자기 자신을 기도의 사람으로 세우고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봉사도 귀하고, 섬김도 귀하고 다 귀하지만 그러나 기도하는 일, 그것이 반듯하게 새워져 있는 일, 이것이 너무나 값지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세우겠다, 그래서 기도하련다, 엎드리겠다,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한 성도로 바르게 세우고 바른 인정을 받고 그리고 바르게 평가받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자기를 기도의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세우느냐, 기도하는 존재로 세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우리는 누구나 자기를 기도하는 존재로 만들고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도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은 바로 자기를 기도하는 존재로 세우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면서 사는 사람, 기도하는 일이 업이요 기도가 삶에서 가장 핵심인 사람, 그렇게 자기를 세워가는 사람, 그들이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세워가는 사람인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주시하시고 기억하신다는 말입니다.

고넬료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백부장인 그는 늘 기도하였고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을 세워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의 안정을 위하여 기도하였을 것이고 자기의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우려고 기도하였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바른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가려고 몸부림을 치며 치열하게 기도한 인물입니다. 그런 기도가 살아 있어서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리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세우려고 얼마나 노력하시고 얼마나 애를 쓰십니까?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얼마나 열심히 자기를 세워가시는 중입니까?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경고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만의 기도, 나를 지키고 나를 붙드는 그 기도, 나에게 그러한 기도가 세워져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런 나를 제대로 잘 기억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자신이 기도로 세워진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찾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넬료는 기도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고넬료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3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있는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규칙적으로 기도를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기도가 생활화된 기도의 사람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기도를 체득하고 기도를 생활화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영성이 살아나고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그래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자기의 내적으로는 자신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워가는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자들입니다. 내 자신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이게 중요합니다. 누가 전화하면 기도중이라서 전화를 못받았습니다. 그럴 수가 있어야합니다. 기도 끝나고 전화드린데요 그래야 합니다. 나는 기도하러 가겠다, 그래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엎드리겠다, 전화기 찾는다가 아니라 엎드려 기도하련다, 이게 기도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열심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다니엘기도회를 마치고 나서 몇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녁으로 21일 간을 매일 모여서 하루 3시간씩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그러니까 마치고 나니 나중에는 병이 나더래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습관이 되어 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니엘 기도회를 하면서 그 교회 성도들의 참여열성과 기도의 열정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설교말씀이 마쳐지고 나서 목사님이 기도를 인도하시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대로 앉아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보다 더 많이 인내하고 더 오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계속하면 그게 습관이 되듯이 기도가 그런 습관이 된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렇게 기도로 세우는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눅18장에는 기도하는 두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세인과 세리입니다. 주님은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긴 기도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자기를 보면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자신을 세워 가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인은 다른 사람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비교하며 우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세워가는 내적 작업입니다. 그런 작업이 잘 세워진 사람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자녀들은 대개 부모의 신앙생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떤 영향을 많이 받을까요? 그에 대한 조사를 하니까 가장 많은 것이 부모의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이야기 한데요. 내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 내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 가정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같이 기도하고 그런 모습에서 가장 은혜를 받고 그리고 그걸 보고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영향을 받고 그렇게 살아간데요. 그렇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즐겁다

나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들은 그렇게 나의 기도를 세워가는 일, 그것이 일생일대의 가장 귀하고 가장 값진 일이다라고 믿고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고넬료를 찾으셨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기도로 인정받고 기도로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 기도를 세운 사람, 그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입니다. 그 자신의 일상의 생활에서 기도의 삶이 분명하게 세워져 있고 자리하고 있고 그 기도가 잘 잡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성도들이 되도록 힘써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경건한 사람, 자신에게는 기도를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
4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천사는 고넬료가 이웃을 많이 구제한 인물이라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면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 앞에서 누구냐?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넬료가 그걸 우리에게 제시하고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그렇습니다.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아름답게 보시고 받으셨습니다. 구제한다는 것은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곧 그를 지으신 분을 돕는 일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잠17:5절,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잠19:17절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는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하고 무언가를 세우려고 하고 무언가를 일으키려는 그런 사람을 기대하십니다. 공동체를 세워가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떻게 하든지 그 공동체를 헝클게 하고 허무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공동체를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세우고 일으키고 받들어 가고 그리고 만들어 가려는 노력,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세입니다. 깨고 헝클고 부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가 가진 노력으로 힘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세워가던 고넬료를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세우는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포용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상대의 허물을 보고 끄집어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상대의 약점을 잡고 물고 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려고 하고 섬기고 세워주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끌어내려 봤자 결국 자기만 황폐하여 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포용하고 그리고 내가 먼저 사랑하고 베풀고 내가 먼저 그들을 안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생명에는 두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지금도 병원에 가 보면 산소호흡기를 꽂고 곡물 쥬스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늘 그들을 돌보고 지켜주고 간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느냐? 우리는 의사나 간호사들처럼 가능하면 남들을 돕고 세워주고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돕고 세우고 기도해 주고 웃어주고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려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살전5:14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위의 약한 자들에게 다가가서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세워주는 자가 강한 자들입니다. 내가 가진 것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합니다. 좀 풀어서 나누세요, 시간도 풀고 재산도 풀고 돈도 푸세요, 그리고 도우세요, 선교하세요, 구제하세요, 내가 누구세요? 우리는 적어도 우리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세요. 힘이 없으면 기도만이라도 해 주세요, 만나면 웃기라도 해 주세요. 그래야 하나님의 기억이 되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그런 사람을 살다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그런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의 도움으로만 사는 환자들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축구선수, 농구선수들처럼 뛰는데도 지치지 아니하고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자기의 힘으로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주고 베푸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되라는 말입니다. 신앙의 에너지, 기도의 에너지, 언어의 에너지, 말로, 주머니로, 감사로 주고 베푸는 그런 에너지 넘치는 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맺음 :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서 3가지의 바른 관계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인물입니다. 자기에게 대하여 기도하는 인물로 세웠습니다. 이웃에 대하여 구제하고 도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3관계가 분명하니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고 그리고 그를 부르셔서 이방인들에게로 전도의 문을 활짝 여는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물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