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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r 11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하나님께 기억되게 살자

본문 :

본문: 행 10:1-5

지금 우리 한반도, 즉 남북한의 문제가 전 세계를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만 하더라도 우리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하였는데 그 한 주간 사이에 북한에 가서 북한 최고 지도자를 만나고 와서 4월 중의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여 온 국민들을 시원하게 하더니 이어서 그 대표단이 미국에 가서는 그 다음 날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는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사일을 포기하며 서로 대화하자는 합의문을 발표하였는데 5월에 미국대통령을 북한이 초청한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가겠다고 바로 발표하여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이렇게 한반도 문제가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변화시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하면 이건 틀림없이 우리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이요 북한의 김정은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지심이며 우리 국민을 사랑하시고 북한의 굶주리는 주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이며 이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남북의 기독교인들의 기도응답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에서 저는 여러분들께 우리는 이 대표단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자고 하였고 여러분들과 저는 이들을 위하여 또 우리 나라를 위하여 일주일 간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의 결과가 이런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라고 확신하며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의 눈물을 보신다는 이런 확신에 몸둘 바를 모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되어집니다.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돌아보면 이 모든 일 뒤에는 한 사람의 생각과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쩠든, 과정이야 어쩠든, 잘하고 못하고 또 책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늘 이런 사이다 같은 환경 조성의 결단과 결정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마음, 즉 그 한 사람의 결단이 이련 결과로 이어져 간다는 사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한 사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그런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그 한 사람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한 사람, 그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한 사람, 남에게 유익을 주는 그런 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리시고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개개인이 삶을 살다가 보면 우리에게도 기억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일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그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특별히 기억되고 정말 감사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억되는 그런 인물들도 있을 수 있는 법입니다. 어떤 연유로 나눠지느냐? 그게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억된다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고넬료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물이었고 그렇게 기억되도록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 고넬료에 대하여 성경이 잘 기록합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에 고넬료의 신앙과 삶, 그의 인격 등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 나타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었느냐?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하면 고넬료가 경건하여서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성도가 경건하여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경건하여야 우리 하나님이 그를 도우십니다. 경건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다’란 뜻인데 성경적인 경건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되 그 분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가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뜨거운 사랑과 충성의 자세를 견지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평생을 두고 차근차근 세워가야 할 과제입니다. 이 과제에서 모두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말로만 하는게 아닙니다. 생활로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워가야 할 진정한 경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나 혼자 신앙생활을 혼자 하는게 아니라 가족들과 같이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야 그 경건이 오래 가기도 하고 제대로 가기도 한다 그런 의미입니다. 아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경험한 사람은 자기만 믿고 살지 않습니다. 이 귀한 생명의 삶을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같이 공유하고 같이 즐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고넬료는 성공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실제로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경건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지키던 사람으로 술도 마시고 어쩌면 윤리적으로 타락된 삶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이권에 개입도 하였을 것이고 me too에도 한 두 번이 걸리지 아니할, 아니 수도 없이 걸릴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한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종군위안부 문제로 우리나라와 이웃 일본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고 도저히 풀릴 것 같지가 않아 너무나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이 일본종군위안부 피해 나라는 우리나라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 등 여러 나라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입은 어두웠던 시대의 역사의 흔적이요 살아 있는 상처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 시절, 그들 일본군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후손인 지금의 일본 사람들은 그 엄청난 사실에 대하여 전혀 반성도 언급도 없는 듯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그들 형사들은 점령지인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이 나쁜 짓을 자행하였겠습니까? 무수한 사람들을 잡아가고 고문하고 죽이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형사들이 무서웠는지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아기들이 울면 ‘형사 온다. 형사가 잡아간다’라면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워서 울던 아이가 그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점령지 주민들의 인권이란게 그렇고 또 군인이나 형사들이나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고 착취하고 하는게 너무나 당연시 되었고 그리고 보편화 되었던 상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일반인들보다 더 군인이라는 신분은 신앙을 지키기도 어렵고 경건을 세워 가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기록하기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고넬료만 아니라 고넬료의 가족 온 집안이 다 경건한 사람들이었음을 기록합니다. 이처럼 진정한 경건은 혼자가 하는게 아니라 집단으로 하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온 가족이 같이 하나님 앞에 잘 나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같이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가지고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 자신들이 점령해서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종교를 믿고 받아들였던 사람입니다. 로마의 황제숭배가 철저하였던 그 시절에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잘못하면 황제를 반역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잘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온전히 잘 믿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온 가족이 더불어 그 신앙을 지킨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온 가족이 다, 온 식구들이 다 하나님을 잘 믿는 그런 가정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이렇게 고넬료처럼 온 가족들이 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 믿음을 지키고 경건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께 기억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백부장 고넬료는 로마군대의 지휘관이었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인정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귀찮은 일에는 피하려는 본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어려운 일, 힘든 일이어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돌보고 구제하고 힘이 되려고 노력하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생각이 빈듯하고 바른 사람입니다. 거룩한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입니다.

잠14:31절,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고 불쌍히 여기며 돕고 세워주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세워주는 일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구제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나보다 힘이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돌보고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잠11: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구제한다’라는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내가 구제하면 도리어 풍족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구제하는 일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려면 우선 내 것을 풀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결코 이웃을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내 주머니를 열고 내 지갑을 풀고 나의 곡간을 헐어야 그래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고 구제합니다. 주머니를 연다는 것, 지갑을 연다는 것, 곡간을 연다는 것, 이런 것들은 자기 희생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것을 나누는 일, 구제는 간단하면서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군대의 지휘관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백성들을 많이 많이 구제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입니다. 사람들은 구제를 구제라고 하지 경건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제를 경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경건, 그건 바로 구제하고 돕는 일입니다.

약1: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는 이렇게 고아를 돌보고 과부들을 그 어려운 환란에서 돌보는 일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진정한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큰 덕목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구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고 있는 사람들을 좀 아십니까? 이 시대 최고의 부자들인 빌 게이츠, 웨렌 버핏 같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라고 하는 클럽이 있습니다. 이 클럽은 고액기부자 클럽입니다. 최소한 1억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이 이 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현재 약 15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이 잘 아는 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가수 김장훈 씨 같은 경우에는 100억 원도 넘게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배우 장나라 씨, 신애라 차인표 씨 부부와 같은 사람들도 열심히 자선 활동에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구제를 행하여 경건을 이루는 사람들입니까? 한 마디로 자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환경에 대하여 만족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이 정도면 됐다, 정말 감사하다 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마음을 내어서 돕고 구제하는 것입니다. 고후6:10절,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남들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에 경건하게 되고 감사하며 도울 수 잇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먼저 생각하고 심하면 나만 생각하고 그러다가 보면 남을 돕는다, 구제한다 그건 불가능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도 늘 계산하고 감사헌금이다 십일조다 꿈도 못꾸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경건은 자족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법입니다.

딤전6:6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아멘입니다.

3.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항상 기도하는 일, 이 말은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정한 시간에 기도를 쉬지 아니하고 그대로 꾸준히 기도생활을 실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하는 사람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일상의 삶에서 기도가 살아 있는 사람,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형통하고 잘 될 때나 어렵고 힘들 때에나 언제나 기도하고 엎드리는 사람,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들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특별히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고넬료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그 고넬료를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그 물을 가만히 그대로 두면 자연스레 이끼가 끼고 부패하고 나중에는 썩고 말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기도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레 세속의 물결이 귀로, 눈으로, 오감을 통하여 그 사람의 속으로 들어오고 파고 옵니다. 그래서 그는 세속화가 되어지고 그래서 속세의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이건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걸 막을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기도하면 그러한 세속화를 이기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기도하여야 하고 기도를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기억하시고 누구를 만나느냐? 가까이 오고 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권면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8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라고 말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알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벙법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화가 끊기고 말이 없으면 사랑이 식어지고 관계가 서먹하여 집니다. 당연한 순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는 대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대화법을 익히고 터득하는 것이 중요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과의 대화를 위하여 이 땅에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게 에덴동산이고 그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를 트기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관계를 트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소통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이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데 모든 열정을 다 쏟는 사람들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되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기도의 통로가 살아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열심히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통하며 살아가는 사람, 기도가 분명하게 살아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도는 성도의 영적인 호흡인데 영적 호흡이 죽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고 또 살아있는 하나님과 교제를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도를 살려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기도가 막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가 살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하셨으며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고넬료처럼 우리도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십니다. 구약의 다니엘처럼, 행3장의 성전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베드로처럼, 본문의 고넬료처럼, 기도시간을 정해 두고 기도를 살리고 세우면 우리 하나님이 더욱 그를 기억하시고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의 거룩한 습관이 있는 자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자가 되어 멋지고 아름다운 그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하나님이 찾아가셨고 그리고 그는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3절, “하루는 제 9시 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고넬료야 하니”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고넬료를 기억하고는 고넬료야 라며 친근하게 그 이름을 부르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다니엘을 직접 사자의 입에서 보호하셨고 기도하는 베드로를 통하여 앉은 뱅이를 일으키셨고 기도하는 고넬료를 찾아가셔서 “네 기도를 들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어서 벽을 향하여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라고 응대하셨습니다(왕하20:5).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기억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기억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늦다고 낙심하나 기도를 중단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잘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기억하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하여 올리는 향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가 살아서 경건의 삶을 세우고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가 경건의 가장 큰 에너지입니다.

4. 균형잡힌 신앙
하나님이 고넬료를 기억하시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고넬료의 신앙의 균형입니다. 그는 정말 균형있는 신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보세요.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즉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한 사람이지요, 여기에다 항상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런 삶을 자신만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진 가정의 가장입니다. 정말 신앙과 생활, 가정 모든 면에서 균형을 잘 이룬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많이 하지만 그의 일상의 삶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기도 생활은 별로 하지 않는데 일상의 생활에서 이웃을 잘 돕고 잘 세워주고 그러한 사람들도 역시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앙심도 좋고 삶도 모범적으로 다 잘해요, 정말 기도도 많이 하고 이웃에게도 잘 해요 그러나 평생을 혼자만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두 균형이 잡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가족이 다 믿지 못한다면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이 모든 면에서 다 갖춘 그런 균형을 잡은 인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동시에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사상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아름다운 삶을 온 가족이 함께 누리고 행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삶은 구체적으로 삶의 행위에서 드러내고 나타내는 삶입니다.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 계명을 다 지켜 행하였던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 삶을 실제생활에서 아름답게 실행하였던 사람입니다. 온 집안이 모두가 다 그렇게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한 균형잡힌 고넬료를 기억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할 수 있으면 기도를 살리고 그리고 이웃이게도 선을 많이 행하는 일입니다. 고넬료가 왜 하나님께 특별히 기억이 되었나요? 그는 분명 이런 기도와 사람이 균형을 조화로이 잘 이룬 사람입니다. 정말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한 사람입니다. 그가 구제한 것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얻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행하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더욱 선을 행하며 살아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며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입니다(엡2:10).

우리는 구원 얻기 위하여 지음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빛을 받기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구원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빛을 받은 후에’ 그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실행하여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일, 그걸 행하기 위하여 지음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혜로 구원받았으면 신한 일로 갚아 디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서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산다면 그런 균형있는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은 특별히 기억하시고 도우시고 놀라운 은혜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균형잡힌 신앙인, 우리가 취할 자세들입니다.

맺음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사야를 통하여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43:26). 우리에게도 주시는 권고입니다.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는 권고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도 특별히 기억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우리 하나님께 특별히 기억나는, 기억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그런 대상이 된다는 것, 이보다 더 귀하고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넬료처럼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일군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 땅을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통할 때나 불편할 때나 언제든지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또 이웃을 바라보고 작은 힘이라도 그들을 돕고 세우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선을 행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각자 기도를 세워갑시다. 구제와 선행을 세워갑시다. 온 가족들을 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도록 합시다. 균형잡힌 신앙으로 살아가는 반듯한 그런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시는 그런 복된 한 사람,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 복된 한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 귀한 한 사람이 세상의 역사에도 값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값지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반드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그러한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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