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는 우리 교회
택한 백성, 선한 이웃, 귀한 교회
은혜의 물댄동산
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y 15 2016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주보 :
제목 :
제목: 하나님, 우리의 선생님
본문 :
신8:1-6
교사주일, 스승의 주일입니다. 모세 5경 중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교육하시는 선생님과 같으신 분이시고, 그 분이 사용하시는 교재는 바로 '역사'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잘 듣고 배우는 모범학생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광야 같은 때를 만나기도 합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신나서 자랑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을 때도 잇습니다. 형통의 때도 있고 참으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만큼 못난 사람도 없고 복 없는 사람도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반대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사람같은 때도 있고 가장 복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더 느끼는 것은 사람은 평생을 배우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제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대학원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대학원을 지나고 나니까 무슨 과정 무슨 과정이란 게 있었구요 그런 것들을 다 지나고 났는데 그런데 여전히 기다리는 것은 배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발견하는 게 이겁니다. “아, 인생이란 평생 배우며 사는 존재로구나”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아니 우리 모든 인생은 평생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교사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하나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역사를 통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고전10:11절에는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역사라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들이 어떻게 가야할 지를 배워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엄청난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를 보고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우리의 인도자요 스승이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이 40년간의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직선으로 가면 10일 정도이면 갈 수 있는 그 길을 왜 40년간이나 걸려서 가게 하셨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우리 하나님의 그 의도를 잘 알아라 는 것입니다. 왜요? 거기서 정말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정말 고되고 험난한 40년간의 기나긴 과정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걸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의도였습니다. 그게 이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그게 고전 10장의 거울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우리이게 제대로 가르치시고 우리가 그걸 알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교육하시고 가르치시는 스승이십니다. 그 역사를 이끌고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교육을 하시는 선생이십니다.
1. 말씀으로 살게 훈련하신 하나님, 선생님
3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간을 연단을 받으면서 헤매고 다녔는데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기간은 축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40년의 기간은 참 고달프고 서글픈 기간이었습니다. 우선 그들 앞에는 끝없는 사막만이 펼쳐져 있었지요,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지요, 배는 엄청 고팠지요.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을 것입니다. 보세요, 사람들에게 가장 서글픈 것은 먹을 것이 없을 때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춥고 배고픈 것만큼 서글픈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육체적인 고통은 결국 하나님을 찾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을 것을 찾지 아니합니다. 배가 부르면 안심하고 만족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또 헐벗은 자들에게 입을 것을 주시며 병든 자에게 치유의 손길을 펴 주십니다. 그때에 받은 은혜가 두가지입니다. 육신이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찾고 배부름으로 끝나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구함으로 더 하나님을 찾고 감사하는 자가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받은 은혜는 인간의 생존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십 년 동안에 그들을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생님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이 광야의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40일 금식을 하시고 마귀가 다가와서 이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어 먹으라고 말하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대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영의 양식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영의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먹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만 그러나 그 먹는 것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은혜가 필요하고 영적인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벌어야 해, 그러면서 열심히 버는 데만 몰두하면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광야길 인생은 먹고 입고 자는 것만 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매일 먹을 만나를 주셨고 그리고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지만 그러나 그걸로만 먹고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자 만나도, 메추라기도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절실히 요청되었습니다. 은혜로 사세요, 감사로 사세요, 아멘으로 사세요,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에 응답하심으로 사세요, 이게 인생길의 필요요소들입니다. 이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시기 축복합니다.
2. 40년간 옷을 입히신 하나님, 선생님.
4절,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 세상에 40년 동안 낡지 않는 의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선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입은 옷은 얼마가지 못하여 찢어지고 해어지고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옷을 만들지 도 아니하였고 그러기 위하여 길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옷이 전혀 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여 주신 옷에 대한 다른 대책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광야길 사십년 동안에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옷을 입는 목적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우선은 자기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습니다. 추위로부터 보호하려고 옷을 입습니다.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때로 있을 수 있는 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습니다. 하여튼 자기의 신체를 보호하고 간수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옷을 입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옷을 입습니다. 옷을 입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으면 부끄러운 모습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옷을 입는데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렸다고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남자는 남자로 부끄럽고 여자는 여자로 부끄럽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옷을 입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수치를 가리고 부끄러움을 가리는 데에 옷을 입는 목적이 있습니다. 옷은 부끄러움을 가려 줍니다.
옷은 신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왕이 오승ㄹ 입으면 왕복입니다. 군인이 옷을 입으면 군복입니다. 운동선수가 입으면 운동선수복입니다. 등산할 때 입으면 등산복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간곡히 당부하는 게 있답니다. 제발 해외여행 올 때에 등산복을 입고 오지 말라고 그런답니다. 이번에 중국 가서 보니까 그 사람들은 추리닝을 즐겨 입더군요. 공항에서도 여성분들이 추리닝 하의를 입고 그 추리닝 차림으로 비행기에 오르더군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 가나 outdoor옷 즉 등산복을 입습니다. 일하러 가는 자리에도,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도, 출근하는 때도, 그러다 보니 해외여행에서도 그걸 많이 입습니다. 지난 2월에 저도 그걸 입고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만 등산가는 곳이 아닌 곳에 그 옷을 입고 다닌데요. 그래서 해외에서는 지나다가 outdoor옷 입은 사람이 보인다, 그러면 저 사람은 코리안이다 그런답니다. 그래서 제발 해외여행에서 그 옷 입고 나오지 마세요 부탁해요, 그런답니다.
갈3:27,29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습니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신분입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사람들의 영광스러운 신분입니다. 그런 구원받은 우리들의 신분을 표시하는 옷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입은 옷은 영광스런 옷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간 옷을 입혔습니다. 해어지지 않는 옷 그 옷을 모두에게 입히셨습니다. 이 옷은 신비한 옷입니다. 신비한 은혜의 옷입니다. 세상에 있는 인간들의 옷은 낡아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은 옷은 하나님의 옷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은 옷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짓고 그리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따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가죽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떨어지지 아니하는 옷입니다. 그 옷을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사람의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 주신 그 옷, 그 옷이 있어야 하고 그 옷을 입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말씀하십니다. 마6:28-32,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인간의 옷을 낡습니다. 해어집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보호막이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옷이 가려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가려 주셔야 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복은 낡지도 안구요, 해어지지도 않구요, 변하지도 않는 옷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러한 먹고, 자고, 입는 것을 주시고 또 영생을 위하여 구속의 옷을 입혀 주실 것은 계시하셨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는 영원한 옷을 입혀 주시는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옷을 입어야만 광야 40년 간을 극복하고 가나안에 간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입성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옷을 우리에게도 입혀주시는 아버지시요 우리의 선생님이십니다.
3.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 선생님,
4절,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광야를 가는 동안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습니다. 발병이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실 인간이 가는 길에는 언제나 힘이 들고 발병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는 발병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축복이며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았던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신고 나온 애굽산 신발은 어쩌면 하루도 제대로 못가고 해어지고 그들의 발이 부르터서 걷지도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40년간 발이 부르트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그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그들에게 특별 신발을 신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그들을 세심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국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3자 교회, 자양, 자치, 자전 운동이라고 하여 3자 교회입니다. 담임목사는 중국공산당원이어야 하고 정부의 지도와 통제를 받는 교회입니다. 또 지하교회가 있는데 그 지하교회는 약 1억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중국에 가서 보면 정말 그들은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중국 각 지역에 흩어져서 복음을 붙들고 그 복음을 전하고 나누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은 보면서 정말 초대교회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먹는 것이라곤 정말 우리로 보면 안꼬 없는 빵 밀가루를 부풀어 올린 그런 빵을 뜯어서 먹어요. 그렇다고 무슨 반찬이나 간식이 있냐 그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그걸 먹어요. 그리고도 찬송하는 걸 보면 살았어요, 기쁨의 춤을 춰요. 감격의 눈물을 흘려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그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왔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십니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못살아, 남들에게 뒤 쳐져, 경쟁에서 도퇴돼, 그래서 열심히 살고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시나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이 부르트지 않구요, 그래야 가는 길에 안전이 있구요, 그래야 실족당하지 않아요, 그래야 그 길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이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으로 가려면 반드시 전능하신 너희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꼭 있어야 한다, 그걸 가르치시는 분이셨습니다. 광야길 40년은 그들에게 엄청난 교육을 하시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우리에게 이런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4절).
저는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업이 바쁘다고, 일이 많다고 시간이 못내고, 겨우 주일대예배만 드리는 그런 신앙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높이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앞에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순례자들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토요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토요일에 가족과 함께 드리고 주일예배를 잘 드리라구요. 사업이 바쁜 중에도 수요예배를 오시구요, 금요기도회를 드리구요, 목장을 오시구요, 그래야 영혼이 제대로 삽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그게 복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의 전진을 보시려고 광야 40년간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걸로 우리를 교육하시는 중입니다. 아멘입니다.
교회에 드릴 것이 많은 사람이 복입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이 복입니다. 사업은 잘 되는데 시간은 없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제는 나아졌고 아파트 평수도 이전보다 더 넓어졌고 자동차도 더 좋아졌는데 그런데 더 바빠요, 예배 못해요, 주일도 겨우 드려요, 그건 시온의 대로가 열린 게 아닙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젖과 꿀이 흐리고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나 혼자 정말 열심히 살아갑니다. 뭔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뭔가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의 발이 부르트게 되구요, 걷지를 못하구요, 하나님이 없는 그런 삶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발이 부르트지 않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4. 징계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하나님, 선생님.
5,6절,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하나님이 선생님의 역할을 하신 것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광야 생활 40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고난과 징계라는 하나님의 채찍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경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고 곁길로 가면 그때마다 징계의 채찍을 하시면서 깨닫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고 그 길에서 가나안을 입성하도록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면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그들에게 징계하셨고 채찍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저들이 원망하고 불신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내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알맞게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은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고 대든 것은 하나님을 불신한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행위였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때로는 참고 기다려 주셨지만 때로는 직접 징계를 하셨고 채찍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히12:5,6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죄 짓는 자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민21: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반항하고 대들었습니다. 그들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던 그 때에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채찍을 들어 징계하셨습니다(민21:6).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게 되자 지도자 모세에게 호소합니다.
민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그러자 지도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가르치셨고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 즉 모두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계를 받으면서 그들을 광야에서 이끌고 인도한 인도자는 자기들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걸 위하여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채찍을 내리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대로 내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즉시 때리고 반응하시는 것은 직접 징계요 그대로 내 버려두시는 것은 간접징계라고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내 버려두시는 것은 잘못하면 망하게 그대로 방치하시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방치하는 징계가 더 무서운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바로 오지 않는다고 안심하면 안됩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이게 징계에 대한 교훈이며 가르치심입니다.
혹시 여러분, 자신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교육받고 계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욥은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욥23:10). 그렇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 신앙도 성숙하고 인격도 성숙합니다. 고난을 잘 받으면 그 신앙과 인격이 정금처럼 나오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받고 있는 그 시련 속에서도 감사하세요. 찬양하세요. 나에게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혹 징계로도 나타나고 혹 때로는 방치하심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잘 보시고 유심히 의미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깨닫고 느끼고 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교육을 잘 받고 그래야 우리도 욥처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셨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경제도 무거운 침체기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업이 그대로 주저 앉아 가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그대로 침체되어 일어나지 못합니다. 건설사는 폭탄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철강산업, 전자산업 등 국내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이런 어려움의 시대에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시대를 넘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5포 시대를 지나서 지금은 여기에다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혼자 외로이 적게 벌고 적게 먹는 사토리 세대, 지금 당장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대인 이케아 세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한국경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교육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열심히 우리를 가르치시며 교육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인 정말 뜨겁게 우리를 훈련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맺음 : 하나님은 역사를 교재로 사용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길 40년은 역사교재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잘 배우고 터득하고 멋진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가르치시고 만들어 가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 가르치심의 끝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잘 배워서 그 가나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다음이 기다립니다. 7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멋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스승의 주간에 우리의 스승 같으신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역사라는 교재로 잘 배우고 훈련을 받아서 멋진 학생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래서 일생의 과정을 잘 지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렇게 되시기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