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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r 18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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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칭찬 받으며 삽시다.
본문 :
본문: 막 12:28-34
예수님 주위에는 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따가운 시선이 멎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책잡아서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가장 큰 첫째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질문했던 서기관이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의 대답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라고 평하셨고 엄청나게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왔다가 걸리고 넘어지고 돌아서고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칭찬을 받았는데 그것도 엄청난 칭찬을 받았으니 이건 정말 대단한 감격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서기관은 이러한 감격적인 칭찬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공동체든지간에 구성원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야단맞고 눈총받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은 특히 me too를 통하여 이 사회를 들여다 보면 잘못하면 살아남지도 못하고 배척당하고 매장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구성원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우리 구성원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며 어떤 평가와 인정 속에서 살아가는 중입니까? 아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시는 사람들입니까? 그게 중요합니다. 그 평가가 중요합니다. 그걸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리고 그 인정과 평가 그걸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금년도 우리교회의 표어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님은 서기관에게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은 사람’이란 칭찬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며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은 사람입니까? 어떤 의미로 우리 주님이 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또 어떤 사람을 보고 주님이 그렇게 평하셨고 칭찬하신 것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우리 모두도 다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주님이 언급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저 세계의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오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이룰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여기, 이 땅의 세계에서 먼저 이뤄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다가가 있어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 봐야 아는 것이지 여기 지금은 도저히 모른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연속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일의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의 하나님의 나라의 연속되는 연속선상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서기관이 이런 칭찬을 받았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칭찬받으며 삽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으면서 여기서도, 영원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면서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1. 선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34절,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지금까지 많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질문하였습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어쩔 줄 몰랐고 때로는 너무 길게 설교하시다가 해를 넘기기도 하셨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으로부터 꼬투리를 잡고 올무에 빠트리려 시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찾아 와서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그런 악의를 가지고 다가온 사람이 아닙니다. 선한 말로 예수님을 향하여 질문하였고 그리고 궁금한 것을 풀고 해결하려고 디가 와서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돌려보면 그는 선한 의도로 질문하였고 그리고 대답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이 사람의 이런 태도와 자세를 우리 주님은 아주 귀하게 보셨고 그리고 평가하셨고 그리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칭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께 나가는 사람은 무엇보다 그 마음, 그 다가가는 자세가 순수하여야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알아보려고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더욱 비판하려고 다가가는 게 아닙니다. 그 이상의 수준, 즉 예수를 알고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분을 믿으려는 마음, 다가가서 구주로 고백하려는 자세가 된 사람, 예수의 가르침에 아멘하고 따라가고 그리고 그분을 구주로 섬기며 일생을 그 분 중심으로 살려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순수한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다 받으시고 품으셨고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왜 신앙을 가지는지 베드로 사도가 잘 규정하였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그렇습니다. 왜 믿느냐?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구원 받으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 또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는 요3장의 니고데모를 압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물었던 그 순수한 니고데모는 결국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를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게 요7장의 바리새인들이 그 예수를 잡아서 죽이려 할 때에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라고 못잡게 예수님의 편을 들었습니다(요7:50). 그리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였습니다(요19:39).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 그 장례를 집행한 사람, 그가 니고데모입니다.
정말 공회원, 요즘 말로는 국회의원급인 니고데모도 순수하게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모시고는 그 예수님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아멘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다가가서 찾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아멘하고 순종하고 이게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그런 선한 마음이며 지혜 있다고 하신 그런 마음입니다. 믿으려는 자세입니다. 구주로 모시려는 자세입니다. 나의 주님이시기에 섬기려는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선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려 나가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를 덧입기 위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만나주시고 그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가 이런 신앙으로 은혜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옳소이다” 하며 다가가야 합니다.
32절,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옳소이다”라고 긍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고백, 그 신앙의 고백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이 서기관, 그는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다가가서 질문합니다. 28절,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29절 이하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그 서기관의 어느 계명이 큰지에 대한 질문에 우리 주님 예수님은 차분하고 준엄한 말씀으로 하나하나 대답하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리어 책잡으려고만 야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가르치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배척하였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 서기관 보세요. 그의 대답이 정말 대단합니다.
32절,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선생님 옳소이다”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정말 옳습니다. 천번 만번 지당하고 옳습니다. 저는 그 가르치심에 전적으로 그저 아멘입니다. 그런 대답의 말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저는 주님의 이 가르치심에 전적으로 아멘합니다. 동의합니다. 이건 정말, 정말이지 옳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서기관의 대답의 말이 예수님을 감동하시게 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옳소이다’가 감동시킨 것입니다. ‘옳소이다’란 지금 말로 ‘아멘입니다’ 입니다. 그의 아멘고백이 예수님을 그토록 감동시킨 것입니다. 아멘의 능력입니다. 아멘의 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멘하면 하나님은 감동하십니다. 우리가 아멘하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감동하십니다. 우리의 아멘에는 이런 능력이 담겨져 있고 이런 엄청난 위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기관의 이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여기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고백이었다는 사실, 이걸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예수님이 아멘이시기 때문입니다.
계3:14절,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아멘의 주님이십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이십니다. 한마디로 우리 주님이 아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하면 주님을 인정하며 부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그 아멘에 응답하시고 아멘에 대하여 책임을 지십니다. 우리 입술의 아멘을 우리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이 아멘 고백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 입에서 진실된 아멘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아멘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하면 하나님이 그 아멘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 아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서 하는 고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멘을 책임져 주십니다. 즉 아멘은 우리가 하고 그 아멘의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에 아멘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서기관의 옳소이다란 대답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도다” 누가요? 아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구요, 강단의 말씀에 입으로 아멘, 가슴으로 아멘, 삶으로 아멘, 행동으로 아멘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이런 아멘을 책임져 주셨고 그리고 그 아멘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잘 보세요, 우리 주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였다, 거기에 감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님께 갖다 드렸다 역시 거기에도 감동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어디에 감동하십니까? 그것보다 우리의 고백에 감동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아멘에 감동하시고 우리가 하는 옳습니다에 감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서기관의 그 고백에 칭찬하시고 그리고 그걸 자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욥이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건강까지도 다 잃고 심지어는 자녀도 아내도 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하는 고백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욥1:21).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고백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고백자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도저히 여러분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아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나에게 이 상황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좋은 신앙인입니까? 누가 칭찬받을 수 있는 신앙인입니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 자리에서 아멘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아름다운 신앙인입니까? 예수님의 칭찬을 가장 귀한 것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아멘의 사람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다가가야 합니다.
34절,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서기관이 칭찬을 받은 것은 그야말로 고운 마음으로 다가감이요 순수한 마음으로 아멘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간 결과입니다. 다른 말로는 어린 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14-15). 어린 아이들은 그저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습니다. 조금만 보이지 아니하여도 울고 웁니다. 언제나 엄마 아빠입니다. 이런 아이들처럼 순수히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는 사모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은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재하시도록 자꾸만 자리를 내어 드리는 동시에 그의 생활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이 삶의 센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삶을 살고 그럽니다. 모든 결정의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 중심의 결정과 하나님 중심의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사건을 이해하는 폭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질 것입니다. 이전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하던 상황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본문의 칭찬받은 그 서기관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삶으로서는 예수님의 그 가르치심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보니까 그 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것이 율법의 핵심이며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율법 아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아니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드려 온 그 모든 번제물과 다른 모든 제물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이 센터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이 정말 소중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아니한 제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아니한 제물은 아무리 많이 드리고 열심히 드려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동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드려야지 내가 복 받고 내가 은혜를 받고 내가 살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그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조리가 있고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일들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죽음까지 정복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이 없이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리고 귀한 예물은 드린다하여도 그건 하나님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열심히 드리고 많은 일을 하여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고 멀어서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즉 사랑제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려면 먼저는 자기를 용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나를 보면 불만일 수 있고 불평일 수 있지만 그러나 나를 인정하고 나를 용납해야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두 다리와 두 팔이 없이 태어났지만 그는 ‘육체는 불만족, 그러나 마음은 대만족’이라면서 조금도 자기의 상황을 불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야 이 두 팔, 두 다리가 없는 놈아”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러자 그는 조금도 주저없이 “야, 그래 이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 놈아”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자신에 대하여나 이웃에 대하여 화를 내지 아니하는 건강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건강한 자기 이해입니까? 자기를 용납하고 자기를 용서하여야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또한 이웃과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의 화두는 청년실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미국의 포천지(誌)가 ‘감원태풍 속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이라고 이런 불경기에 직장인의 직장에서 처신하는 요령을 10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신뢰를 얻으라 2)스스로 많은 일을 하라 3)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라 4)재택근무는 삼가라 5)상사와 자주 대화하라 6)상사의 고통을 공감하라 7)불만 토로를 자제하라 8)정장을 자주 입으라 9)고자세를 버려라 10)정보를 가까이 하라는 등을 꼽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상사와 동료와 소통하면서 지내고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입니다. 혼자 열심히 일하여서 어쩌든지 많은 결과물을 내어라가 아니라 가능하면 자신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이웃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웃과 함께 하는, 그 이웃을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하는 자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우리는 멀리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해하기만 하면 그를 사랑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언제나 조금만 상대를 이해하면 훨씬 더 가까워 정말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이해하려고 노략하는 데서 받아들이고 용납하려는 데서 부터 시작합니다.
맺음:
신앙인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주님은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다 칭찬하시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누가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순수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2. 아멘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칭찬을 하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칭찬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칭찬은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도다”라는 칭찬입니다. 여러분들과 우리는 모두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은 사람,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그 인생을 주재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며 세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칭찬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