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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Mar 25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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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자들과 함께 한 겟세마네
본문 :
본문: 마 26:36-46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에 나오는 한 토막입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3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청년이 되자 도시로 진출하기로 하고 길을 나섭니다. 그러다가 세 갈래의 갈림길을 만나자 그들은 모두 다른 길을 선택하여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한 도시에 강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 사람이 가게에 침입하여 주인을 해치고 돈과 물건을 도둑질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붙잡혀서 결국 법에 의하여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기이한 운명은 그 강도와 가게 주인, 그리고 이 두 사람을 재판하는 재판관이 셋은 알고 보니 함께 길을 떠났던 한 형제들이었습니다. 오랜 전에 함께 도시로 나섰던 3형제가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여 떠났었는데 그들이 이제 한 사람은 강도가 되었고, 한 형제는 가게 주인이 되었고, 한 형제는 이들을 재판하는 판사가 되어 이 3형제가 법정에서 서로 만난 것입니다. 무엇이 이 3형제의 인생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 인생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나중의 결과들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걸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는 선택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정녕’ 죽는다는 말은 ‘반드시’ 죽는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 선악과를 따 먹을 수도 있고 참으로 멎고 싶지만 그걸 참고 따 먹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반드시 선악과를 따 먹도록 만들어져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에게는 먹든지 안 먹든지 그건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입니다. 분명히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 선택권이 다 주어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의지대로 그 선택권을 사용하여 먹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늘 선택하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선택의 연속이 바로 인생입니다. 성공과 실패도 선택의 결과요 어떤 인생을 살아가느냐도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선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어디에 선택의 기준을 두느냐, 무엇이 가치기준을 두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행로가 결정이 됩니다. 서양의 실용주의 문화는 철저히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이 중심이고 개인이 우선입니다. 개인의 유익이냐 손해이냐가 결정의 가치기준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이며 타인과의 인간관계도, 사회성도 떨어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영원한 형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음부에서 하늘나라로 호적이 옮겨져서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성경은 뭐라고 가르치는가?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중시하고 선택하며 가치를 부여합니다. 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리신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이런 한 모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겟세마네 동산
주님은 기도하러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때는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저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공생애를 마무리하는 시점입니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즉 내일이면 새벽에 붙잡히고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하고 빌라도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을 운명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서 죽을 운명입니다. 이 모든 걸 미리 다 아시는 주님은 이제 모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오르셨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더 나아가 기도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슬픔에 젖어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겟세마네는 정말 너무나 힘들고 처절한 동산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서 기도하십니다. 정말 주님께 있어서 이 겟세마네동산은 너무너무 힘이든 고통의 자리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하나 그냥 피하여야 하나라는 심각한 고민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주님이 서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하신 분이 이제 초라하게 십자가에서 죄수의 몸으로 잡혀 달려서 돌아가시려 하니, 속된 표현으로 그야말로 쪽 팔려서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너무나 창피하고 격에 맞지 아니하신 그런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표현을 하시면서 그 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르신 그 겟세마네의 이 하루 밤이 주님의 입장에서는 주석가 바클레이와 매튜헨리는 ‘승리를 겨루는 고투의 시간’이었고 ‘위대한 고민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의 공포와 맞선 씨름‘이었으며 죽음을 코 앞에 둔 ’무서운 투쟁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처절한 그 밤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겟세마네에 오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르신 그 겟세마네는 자신 중심으로 모든 걸 다 평가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겟세마네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엎드려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결정하여야 할 때는 이런 겟세마네의 기도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값진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고민이 없는 인생은 그 존재가치를 잘 모르는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많습니다.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 그걸 넘고 지나야 그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법입니다.
시편에서 가장 긴 119편의 71절은 이 고난에 대하여 잘 가르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난의 유익을 말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다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고 주께로 돌아서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나의 삶을 훈련시켜 거룩하게 하고, 정결하게 만듭니다. 과일과 채소들이 여름철 뙤약볕을 받아 가을에 보기 좋은 붉은 빛깔을 내고, 영양소와 맛을 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고난은 나의 신앙생활에 많은 유익을 줍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람은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복’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고, 묵묵히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귀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찬양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 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라는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 그건 변장된 축복입니다. 우리들에게 오히려 은혜를 주시려고 가져다 주는 기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신앙으로 인하여 오는 그 고난, 그에 대하여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평하고 좌절하면 고난을 통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러한 진지한 고민은 그의 인생을 보다 무게 있게 만들며 보다 가치있게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겟세마네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지한 인생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깊은 문제 속에서 겟세마네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문제를 가지고 의논하고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나를 얹어두고 질문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인생의 문제를 기도로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좀 더 가치 있는, 가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자세입니다.
2.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시면서 직접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그만큼 힘들고 지쳤다는 표현입니다. 일단 우리 주님은 그 현장에서 “죽게 되었으니”라고 표현하실 만큼 고민하고 힘이 들었다는 표현입니다. 주님은 그런 고민의 자리에서 겟세마네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민에서 그대로 멈춰 있지 않고 기도의 자리에 오르신 주님,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며 인생에서 취해야 할 정답입니다. 처절한 고민의 자리에서 처절한 기도를 드렸던 주님이십니다. 기도하러 가신 주님의 상황을 보면 고민하고 슬퍼하셔서 죽게 될 만큼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으로 겟세마네에 오르신 주님이십니다.
성도들에게 있는 고민들, 그 고민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문제를 위한 고민만 이면 가치가 적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그런 단순한 의식주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가치가 적은 세상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성도들이 당하는 그 고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민이어야 참된 가치가 있고 그리고 십자가를 질 일에 대한 그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고후7: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도의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어야 합니다. 그 근심은 회개를 위한 근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회개하고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갈까를 근심하는 그런 근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회개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려는 근심, 그래서 울고, 그래서 잠 못자고 그래서 통곡하고 이게 성도의 근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하나님께로 다가가야지 하는 생각에 젖은 사람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근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다 그러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더 고민하고 더 슬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겟세마네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고민들로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고민만 하지 말기 바랍니다. 밤 못 자고 숨도 못 쉬고 그렇게 고민을 끌어안고 있기만 하면 정말 예수님의 표현대로 죽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고민만 하고 있으면 그 고민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도대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나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문제에서 그대로 고민만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밖으로 나오지를 않아요, 겟세마네에 오르십시오, 그리고 죽게 된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세요.
1912년 4월,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파선한 후 영하 4도의 얼음 바닷물 속에 빠져서 함께 죽어 가던 때에 청년 잭 도슨이 사랑하는 로우즈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살아야 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처럼, 몇 시간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예수님이 얼마 동안 세상에 살아 남아 있을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끝까지 살아야 한다”라고 다짐하며 격려하셨습니다.
문제를 안고 겟세마네에 오르는 성도들, 그들에게 희망이 있고 그들에게 하늘의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겟세마네에 오르면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들 앞에서도 하나님이 그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세상은 그를 위로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고 세우시고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는 구원하실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서는 해결의 길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해결의 길을 제시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심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세요, 하나님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일어나세요. 정말 타이타닉호의 청년 잭 도슨이 말한 것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살아야 해, 정말 우리 모두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견디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그렇게 끝까지 견디고 버티고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다운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심령 깊은 곳에서 눈물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고귀한 액체는 땀과 눈물과 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에 우리는 눈물 없이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눈물을 흘리며 땀을 흘리며 울고 우신 것처럼 우리도 눈물을 흘리는 감격과 사명의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눈물이 없이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처럼 우리도 가슴을 흔드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시고 가신 십자가는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십자가입니다. 이 길은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네 그렇습니다. 영문 밖의 좁은 길이요 골고다의 험한 길입니다. 오늘 고난의 주일에 예수님이 지신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서 걸어가신 골고다의 그 험한 길을 따라가며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3.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38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오르신 주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죽게 된 일, 하나님 나라건설을 위하여 깨어서 같이 정말 같이 기도하자는 간절한 부탁입니다. 주님은 그 처절한 위기에서 함께 하는 기도의 부탁을 제자들에게 간절하게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시간이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울 것을 믿습니다. 매일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혼자 가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와 같이 기도하자, 같이 기도하자라고 요청하십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던지, 예수님께서도 고민 중에 죽을 것 같이 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이 말은 자기의 기도에 동참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와 함께 깨어서 기도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지 않나요? 예수님께서도 세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함께 해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분의 기도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함께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슬픔 중에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죄악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탄식하고 계십니다. 죄악된 우리를 바라보시며, 눈물 흘리고 계십니다. 눈물 흘리고 계시는 주님이 보이십니까? 이 땅은 불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비참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에서 단순히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이유로 테러와 학살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아니 아직도 우리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자는 부탁입니다. 나와 함께 깨어서, 함께 같이 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기도에 동참하자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기도, 생명구원을 위한 기도는 그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십자가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결코 아무나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같이 지자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간절한 기도 부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8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우리는 이 부탁의 소리를 외면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부탁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실행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겟세마네의 기도를 세우십시요. 힘들어도 세우십시오. 고난이어도 세우십시오. 겟세마네의 기도가 세워져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역사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요청하십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이 음성을 들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십자가는 영원과의 대화
겟세마네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이제는 자고 쉬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45,46). 이제 주님은 결단이 섰습니다. 내 뜻을 접고, 내리고, 아버지의 원을 따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토록 간절하게 온 몸에 피가 나도록 기도하셨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서는 그 아버지의 원을 따라 고난의 길에 오리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원이 내 뜻보다 훨씬 더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자기를 잡으러 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성큼 성큼 일어나서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얼마나 힘든 결단이었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런 걸음이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나섰습니다. 잡히고 채포되고 불법재판을 받고 그리고 그 무거운 300파운드나 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야하고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는 자리에 서야 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제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일어나셔서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no pain, no gain” 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의 처절한 순간이 있었기에 결국 주님 앞에는 부활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no pain, no gain”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고통과 고난이 없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겟세마네가 십자가를 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겟세마네에서 능력을 받았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온몸의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고 기도한 결과 그 다음날 아침의 고통을 향하여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롬8장 34절은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가르칩니다. 겟세마네를 넘어서신 주님은 이제 그 모든 것을 극복하시고 다시 살아 나셨고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no pain, no gain”입니다. 그런 고통의 과정을 넘어서니까 그 십자가의 고난은 영원과 연결되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다 보상되고, 갚아지고, 얻어지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영원한 천국으로 연결되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의 고통은 십자가를 지기 위한 고통이었고 십자가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이어져 나타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오늘은 영원과 있대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내일로 연결되고 내일은 또 그 다음으로 이어지며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영원한 천국의 시작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맺음 : 우리 인생은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에 올라가야 합니다. 겟세마네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 겟세마네에서 주님과 함께 진지하게 기도하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내 뜻을 선택하지 말고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게 고난입니다. 나를 포기하는 고난, 나를 내리고 접어야 하는 고난, 내 것을 접고 하나님의 것을 따르는 따라 나서는 용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향하신 그 소원을 알고 선택하였으면 예수님처럼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가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 용기가 결국 그 사람을 살리는 원동력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영원을 선택하는 선택입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나를 내리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기있게 일어서야 합니다. 그 용기야말로 영원을 선택하는 길목이 될 것입니다. 겟세마네에 오르십시요. 그리고 처절한 기도의 순간을 맞으세요. 그 대목에서 모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서 같이 기도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귀한 자리는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그 길을 우리 하나님은 가장 고귀한 자리라고 인정하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정말 그러한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아직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열심히 여전히 십자가와 관련이 없는 나를 위한 자리에서 부지런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결국 우리에게 마지막에 가서 남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진 십자가만 남게 됩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하나 다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단 하나라도 그냥 없어질 십자가가 아닙니다. 모두 다 평가받고 인정받고 계산을 받게 될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며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주님과 함께 겟세마네에 오르십시오. 그리고 그 위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과 같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겟세마네에 오르는 신앙,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없는 영광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멋진 겟세마네의 경험, 예수님과 함께 한 경험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