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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설교
Sun Jan 14 2018 02: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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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목: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본문 :
본문: 눅17:20-21
여러분,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우리 교회의 금년도 표어처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로 사셨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며 사셨나요? 이웃과 평강한 관계를 가지며 사셨나요? 나 자신으로는 희락의 삶, 즉 기쁨을 가지고 사셨나요? 금년 1년 내내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 받으시고 이웃과 평강한 관계로 사시고 나 자신의 내면에 참된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사시며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마4;17절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렇게 하신 사역이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입니다. 하나님 나라 전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가치였습니다. 눅4:43절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그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설명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가장 정확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그렇습니다. 확실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시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 역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열심히 전파하셨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평생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일하시다가 가신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 나라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주관하시는 영역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마귀가 지배하여 이끌고 인도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성령님이 지배하셔서 이끌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영역,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영역, 그 관계, 그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도 있고 하늘나라에도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라, 국가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한 국가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 그건 국민, 영토, 주권 이 세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함께 이루어져서 한 국가가 세워지게 됩니다. 국민 없는 국가가 없구요, 땅이 없는 즉 영토가 없는 국가가 없구요, 주권이 있어야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이루려면 국민, 국토, 국법, 이 세가지가 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 피로 값주고 사신 백성들, 즉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국토, 즉 땅입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 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있는 영적 이스라엘이 있구요, 그리고 주권인 국법, 즉 하나님의 법이 주님께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다 이뤄질 때에 거기에 아름다운 하나님이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으로 변화합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가 되면 시작되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치 호롱불이 전기불이 드렁 오면 다 떠나가고 희미해지듯이 말입니다. 그 밝다고 하ㅣ던 전기불이 태양이 비춰오면 다 소용없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모시면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는 현상입니다.
사도행전의 유명한 예수 핍박자 사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바울로 변한 사람이요 변하였어도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이었을 때, 그의 내면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들은 분노와 갈등, 경쟁심, 미움, 살의 등 이런 복잡하고 얽혔던 악한 육적인 생각들이 다 없어지고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까, 어떻게 하면 생명을 구원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가득 차 있었던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보다 내 안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이뤄지는 나라입니다.
눅17:20,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을 내 안에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집니다. 내 안의 나의 보좌에 앉아 있는 내가 내려 오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그 보좌에 왕으로 자리하시고 앉으시도록 모시는 일입니다.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 도마의 고백처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셔서도 내 주인으로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결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함에서 이뤄지는 영역입니다.
맹인박사 강영우 박사의 유작품인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대한민국 최초 장애인 박사,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바라보며, 절망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사람의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중학교 시절 축구를 하다가 사고로 실명한 후, 이어 모친과 누나를 잃고 맹인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으로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 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버지의 인도로 하나하나 그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나갔습니다. 그 내면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며 살기로 결심하니까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내와 도미, 3년 8개월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1976년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강박사가 하는 고백은 자기 인생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사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 분은 정말 환경 속에 아무 것도 말할 수 있는 어려서 눈이 멀어버릴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 안에 오셔서 그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나니까 그는 그 어두움을 극복하고 두 눈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그를 지배하고 인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안에 하나님 나라 이루어진 사람들,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인도하시는 사람들, 마음 속에 내면의 천국을 이룬 사람들, 그들은 환경을 바꿉니다, 인생을 바꿉니다, 삶을 바꿉니다, 사명을 바꿉니다, 비전을 바꿉니다. 내 안에 하늘나라가 건설된 자들은 나만 아니라 주위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져서 이 세상을 우리 주위를 바꿀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이 되실 때에 가능합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인도자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내 삶의 진정한 주관자로 모시면 됩니다. 내 안에 진정한 주인, 하나님이 주인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거기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통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면 그분의 지도와 통치를 받게 됩니다. 주여 내 삶을 지도하여 주소서, 나를 인도하여 이끌어 주소서라는 고백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나면 이제 그 다음 순서는 하나님을 나의 통치자로 모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에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을 뿐이지 우리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됩니다.
시145:13절,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국가에 대통령이 바뀌니 통치자가 바뀌었습니다. 통치자가 바뀌니 나라가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께 통치권을 내어 드리는 사람, 나를 내어 드리고 나를 이끌어 가시도록 맡기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의 모든 영역에,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제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 사람입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유명한 고백, 우리가 잘 아는 치열한 인생의 삶을 사는 자의 고백입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통치자로 모시고 난 뒤의 그 치열한 인생을 고백하는 구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은 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입니다. 더 이상 내가 내 인생의 주관자가 아닙니다. 나는 죽고 그 죽음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죽고 다시 예수로 살아나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자입니다. 더 이상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내가 아닌 예수가 사는 자, 그들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님이 그를 통치하고 이끌고 가시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통치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어느 날 여리고로 가시던 예수님이 큰 나무를 지나다가 그 나무 위에 올라가 지나가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그를 내려오게 하시고 “삭개오야 내려 오라. 오늘 네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셨고 나중에는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삭게오라는 사람은 세리장이로 지금까지 오로지 한기지만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가진 그 재산을 빼앗아 내 재산을 늘릴까 자나 깨나 그런 생각으로만 가득하였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고와 삶의 중심에 바로 자기라는 나, 이고가 자리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는데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서는 그 속 사람이 이제 변화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서 그가 하는 예수님께 고백하는 말은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는 고백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삭개오를 돌아보면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렇게 변하자 예수님은 응답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러자 하늘나라가 그 안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삭개오 안에 예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고 그 하나님의 뜻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누구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은 4배나 갚겠나이다” 이건 단순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사람의 가치관의 변화요 삶의 철학이 바꿔진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의 가치관, 생각들에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어떤 것을 결정하는데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일, 이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세상 가치관에 물들지 않는 강한 신앙의 내구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물밀 듯 나에게 몰려오지만 그래도 우리가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붙잡고 나아가는 사람,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패하는 것 같아도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세상 가치관과 맞서서 싸우고 포기하지 아니하는 사람, 그들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고 자기가 이끌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고전6:9,10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자들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 아직도 여전히 내가 이끌고 내가 살아서 나를 통치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10절,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비록 신앙을 가졌어도 탐욕을 부리고 술 취하고 속여 빼앗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결코 유업 받지 못한다, 받을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고전4: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말로 소망한다고 이루어지거나 바라고 노력한다고 건설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도우셔야 하고 베푸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이신 하나님이 도우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섭리하셔야 이루지고 세워지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능력 삼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니 사울이 바울이 되고 나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내어 드리니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사울이 자기 중심심의 시선에서 이웃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노력하는 바울로 채인지 되었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단순히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하는 말이 삶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사람으로 변화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서 바울로, 살기등등하던 혈기의 사람에서 생명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가가서 돕고 세워가는 그런 헌신의 사람으로 그렇게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의 정상적인 변화요 표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일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은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란 이뤄지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통치하셔야 그래야 제대로 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내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이것이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겪게 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일 것이요 힘든 과업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물질이나 재능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기로 하고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만 하면 그러면 그 신앙의 앞길은 환하게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을 이끌고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라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이 갖춰져 있어야 한 국가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영역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면 그 나라를 이끌고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이 그 통치지시요 인도자이시며 주인이시오 주관자이십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자들이 해야 할 일의 가장 우선되는 일은 그걸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바른 예배자들이 되는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계시록 4장부터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는 일은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계4:1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열린 문 사이로 바라본 천상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 소개되는 것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그리고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예배하는 장면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예배하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도 바로 예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들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바른 길을 발견하고 그 길에 서서 살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잘 건설될 것입니다.
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은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제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갈망이 그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세워가는 힘입니다. 그런데 돌아보고 분석해 보면 우리들의 기도와 바램은 이런 예배자로 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는 것들이 이런 것과는 무척 거리가 먼 것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공부 잘 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합격하게 해 주세요’ 대개가 다 이런 기도들입니다. 우리 기도가 ‘예배 잘 드리게 해 주세요’ ‘예배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세요’ 그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별로 많지 않습니다. 온전한 예배자로 서는 일 이게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을 거의 다 이 땅의 문제들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교육부서의 고충들 – 아르바이트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런 고충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는 기도로 마무리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의 시선은 이 땅이 아닙니다. 기도의 초점은 여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오실 우리 하나님의 나라가 어서 이 땅에 회복되기를 바랍니다란 내용의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올바른 예배자로 서려고 몸부림을 치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진정한 기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로 성공하는 일입니다. 어떤 환란에서도 예배하고 어떤 바쁜 일에서도 예배 성공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예배 방해하는 일이라면 멀리하고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우뚝 서는 그 일에 자신을 드리는 사람,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인 것입니다. <인간풍조가 바뀌어 가고 나는 내 믿음 지키리라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가치관이 변하여도 나는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리라, 예배자로 승리하리라 그런 결단과 용기,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완성되어 임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13:43)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맺음 :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안에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잘 세워지고 이뤄지길 원하십니다. 어떻게요?
1. 하나님은 온전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우리의 통치지로 모셔야 합니다.
3.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하여 확장되어야 합니다.
